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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적인 사건은 여름 장마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장독간 옆의 돌담 때문이었다. 아니 돌담을 무너지게 한 장본인인 개나리 때문이었다.
명색이 그곳이 장독간이라고 하지만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빈 독 서너 개가 놓였을 뿐이었다. 동생 역시 들어와 살지만 아내가 없으니 장독간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 노인을 반하게 한 것이 그곳에 있었다. 나지막하게 쌓은 돌담에 기대어 무성하게 자란 개나리 군락이 그것이다. 옛 주인이 장독간 주위에 띄엄띄엄 심어 놨던 개나리가 빈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저절로 번성해서 장독간을 빙 둘러 멋진 울타리를 만들어 놨던 것이다.
김 노인이 처음 그 집에 들어섰을 때는 초봄이었고, 그를 반긴 것은 황홀할 정도로 만개한 개나리 군락이었다. 어찌나 꽃송이가 탐스러운지 삽짝에 서서 멍하니 넋을 잃었었다. 낡은 일자형 시골집에 보름달이 뜬 것처럼 환했었다. 아무도 가꾸어 주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개한 개나리 군락은 김 노인을 매혹하고도 남을 만했다. 어찌 도심의 대로변에 심겨 아스팔트 먼지를 시커멓게 덮어 씐 채 핀 개나리에 비할까. 꽃 색깔부터 너무 선명하고 밝았다.
‘이 집 정기를 저 개나리가 다 뽑아 묵었나? 우찌 저리 실할꼬? 아무래도 다듬긴 다듬어야겠는데.’
김 노인은 당장 전지가위를 사 와서 며칠을 일을 삼고 다듬었었다.
그런데, 그 개나리 나무들이 몽땅 죽었거나 아예 뿌리째 뽑아놨던 것이다.
김 노인이 여름 장마철에 무너진 돌담을 시간 나는 대로 다시 좀 쌓아 달라고 홍 노인에게 부탁해 놓고 도시의 집으로 돌아갔었다.
근 한 달을 도시의 아파트에 살다가 또 시골 바람이 그리워 동생 집으로 온 김 노인은 장독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홍 노인과 김 노인의 집 경계인 돌담은 앙증맞게 새로 쌓아두었지만 돌담 앞에 자리 잡고 있던 개나리는 뿌리가 뽑혀 하늘을 쳐다보고, 장독간 주위를 빙 둘렀던 개나리는 노랑 병이 들어 잎이 거의 말라가고 있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일부러 며느리를 시켜 온갖 종류의 야생화 꽃씨를 사 오게 해서 마당 구석구석 뿌려 놨던 채송화, 봉숭아, 코스모스, 맨드라미, 접시꽃, 국화 등 한창 꽃대가 올라 꽃이 만발하여 있어야 할 마당이 텅 비어 있었다.
“이보게 갑장! 집에 있제? 이리 좀 건너오게.”
김 노인은 분기탱천하여 담장을 넘겨다보고 홍 노인을 불렀다.
“어? 누고? 갑장 왔는가?”
홍 노인이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우리 집 마당이 이기 뭐꼬?”
“내가 그라목손을 뿌리서 깨끔하고로 해 놨거마. 좋제?”
김 노인은 무슨 칭찬이라도 들을 양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는 홍 노인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그라목손이라면 나무뿌리까지 죽인다는 독하디 독한 제초제 아닌가. 기가 막혀서.
“내가 언제 자네보고 우리 집 마당 청소해 달라더나? 이기 뭐꼬?”
그제야 김 노인의 얼굴에 노기가 꽉 서린 것을 본 홍 노인은 자기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 껌뻑거렸다. 김 노인은 화를 낸들 저 늙은이가 알아듣기나 하겠나 싶어 울화통이 터지는 것을 꾹 누르며 매몰차게 말했다.
“자네 눈에는 저 꽃나무나 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풀 겉이 보이제? 말귀라곤 못 알아듣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자네, 인자 우리 집에 오지 말게, 물어 볼끼 있시모 내가 자네 집으로 감세. 제발 좀 성가지게 하지 말게. 할 일이 없시모 차라리 논에 가서 일을 하든가 나무를 하로 댕기든가. 제발 부탁인데 인자 우리 집에 안 왔으면 좋것네. 내가 피곤해서 몬 살 것어. 나도 좀 쉬려고 촌에 와서 지내는데. 자네가 사사건건 간섭을 하려고 하니 내가 심들어. 그라고 아침에 제발 잠 좀 잡시다. 와서 안 깨워도 일어날낑께 오지 말란 말이제. 인자부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낑께네. 신경 좀 꺼 주모 좋것네. 우리 마당이 풀밭이 되어도 자네보고 매 달라 소리 하기 전에는 손도 대지 말게나.”
김 노인이 역정을 버럭 내면서 오금을 박듯이 또박또박 알아듣게끔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그려, 내가 참말로 눈치가 없었거마. 미안시럽어서 우짜노? 많이 배운 칭구가 이해를 해 주모 좋것네. 나는 잘한다고 한기제. 자네가 그리 싫어하는 줄 알았시모 안 그러제. 잘 알아 묵어싱께 너무 그러지 말게. 참말로 무안 쿠머.”
하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나가는 폼이 또 안 돼 보여서 ‘순박한 사람에게 내가 너무 심했나?’ 김 노인도 마음이 언짢았다.
그 뒤로 홍 노인은 김 노인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슬그머니 담장을 넘겨다보며 남의 집 살림살이를 살피긴 했지만 그 전처럼 쪼르르 달려와 감내라, 배내라 하지는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김 노인은 식구들을 불러 단감을 따 내면서도 홍 노인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아무 때나 불쑥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홍 노인의 관심은 김 노인의 집에 머물기는 했다. 슬그머니 밤을 주워 와서 마루에 놓아두기도 하고, 햅쌀을 찧었다면서 밥이나 한 끼 해 먹어 보라며 건네기도 했다.
김 노인도 가끔 홍 노인이 좋아하는 정종을 사다가 한 병씩 건네주기도 하고, 일 하다 배 고플 때 먹어 보라고 양과 점 빵을 사다가 담장 너머로 넘겨주곤 했다. 단감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식구끼리 나누어 먹으라며 수시로 건네주기도 했다.
“형님, 요새 옆 집 아재가 이상합니더. 새벽종을 안 울리니 늦잠을 잘 때가 많아예. 우짠 일이꼬? 인자 우리 집에 대한 관심이 뚝 끊어졌다는 말인데. 아마 저 아래 도시에서 새로 이사 온 양옥집 때문일 끼라 예.”
“인자 그 집에 가서 새벽종 울리고 오는가?”
“그런 것 같데예. 그 집 아지매를 차에 태워 준 적이 있는데. 학을 떼겠답니더. 그 노인네 제정신인가 묻던데 예. 그것도 이웃사촌 정이람서 웃긴 했지만.”
김 노인은 허파에 바람 빠진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동생이 어찌 알겠는가. 저간의 사정을. 김 노인이 말을 안 했으니. 동생은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잔업이다 회식이다 해서 저녁 늦게 들어오기 일쑤고 쉬는 날은 텃밭을 가꾸거나 단감 산을 돌보기에도 벅차니 말이다.
김 노인은 가을걷이를 끝내고 도시의 아파트에 가서 겨울을 났다. 농촌의 겨울은 노인에게 모졌다. 따뜻한 아파트가 노인이 살기엔 편했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동생 집의 방바닥은 쓱쓱 끓어도 방에 앉아 있으면 코가 시렸다. 사방에서 바람이 선들거렸다. 지난겨울도 김 노인은 아파트에서 겨울을 났다.
다시 봄이 왔다.
김 노인의 시골 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열흘 전이다.
김 노인이 삽짝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홍 노인이 반색을 하며 따라 들어왔다. 골목에 들어서는 김 노인을 발견하고 서둘러 뒤 따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자네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네.”
“와? 자네한테 빚 진 거 없는데?”
“몸보신 좀 시키 줄라꼬.”
“산삼이라도 캐 놨나?”
“하모, 산삼이제. 산에서 나는 귀한 약잉께 산삼이 따로 없제. 자네 줄라꼬 아껴 아껴 놨으니 저녁에 우리 술이나 한 잔 함세. 여편네한테 밥 준비해 놀낑게. 꼭 와야 하네.”
“설마, 자네 귀 빠진 날은 아니 것제?”
“아따, 나중에 와 보모 안다니께.”
홍 노인은 싱글벙글하면서 돌아갔다.
그날 저녁에 김 노인이 홍 노인 집에 가니 저녁 밥상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손 두부에, 겨울초 겉절이, 비지였다. 냄새만 맡아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한 비지는 돼지고기랑 김장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입에 착착 감겼다. 더구나 햇순을 따다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냈다는 두릅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이거 두릅 맞제? 벌써 두릅이 이렇게 컸던가? 장에서 사 묵는 맛은 이런 맛이 아니던데. 맛이 아주 기가 맥히네. 두릅 맛이 원래 이랬던가? 하도 오랜만에 자연산 두릅을 묵어보니 내 입맛이 변했는가? 자연산은 뭐든지 보약이라니까. 이 귀한 걸 묵어보다니.”
“참말로 맛있제? 갑장 줄라꼬 냉기 놨거마. 두릅보다 더 좋은 기제. 아나, 술도 한 잔 받아라. 우리 아들이 내 묵으라고 사다 준 복분자 술이라 카데. 이거 하고 술은 찰떡궁합이여.”
김 노인은 저녁 대접을 잘 받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비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집으로 왔다. 잠자리에 눕자 속이 후끈후끈해져 오면서 기분이 참 좋았다. 그동안 홍 노인에 대한 묵은 감정도 봄눈 녹듯 사라졌다.
사흘 뒤, 김 노인은 도시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어쩐지 몸이 근질근질했다. 보일러에 더운물을 올리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잠시 후 아파트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임~ 자~ 아! 옻 옻 오옻 수운, 아이고 죽것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