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단편 소설>
구멍의 진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는 온기가 없다.
멀 대처럼 자란 쑥과 망초 꽃이 하얗게 핀 풀이 무성한 마당엔 금세라도 뱀이 스르르 기어 나올 것 같다. 담장 옆의 먹감나무는 삭정이가 된 가지, 구멍 뚫린 몸뚱이를 가지고 엉성하게나마 푸른 잎을 펼치고 있다.
정주간 옆에 아담한 돌담으로 만들어진 장독간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가 먼지를 뽀얗게 덮어 씌고 있다. 그 앞에 있는 수도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다. 물은 늘 그만한 간격으로 떨어졌는지 수도 아래 제법 널찍이 깔린 돌에는 푸른 이끼가 자라고, 빨래판으로 썼을 납작한 돌에도 때가 끼었다.
상현은 집을 봤다. 오랜 세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없는 집은 사방에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저 구멍으로 들고나는 것은 무엇일까. 대관절 무엇이길래 나는 아직도 구멍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상현은 창호지가 다 떨어진 지게문 위에 자랑스럽게 걸린 액자들을 바라봤다. 흑백의 가족사진엔 쪽을 찐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들이 마루를 기어 다니는 모습도 있다. 초등학교 개근상, 표창장, 학업성적 우수상, 양보 상, 봉사 상 등 별별 상장이 누렇게 변색된 채 걸려 있다. 마룻장이 썩어 내려앉은 마루 한쪽엔 문짝이 달아난 늙은 뒤주가 놓여있고, 그 속엔 좀 먹은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엉클어져 있다. 쥐가 새끼를 쳤는지, 새가 둥지를 꾸몄는지 지푸라기들이 사방에 날린다.
상현은 입으로 훅 바람을 내어 마루의 먼지를 털고 걸터앉았다. 삐거덕 하면서 금세 내려앉을 것 같은 마루는 오히려 건재하다. 마루가 삐거덕거리자 뒤주에서 살찐 쥐 한 마리가 고개를 쏙 내밀다가 상현과 눈이 마주쳤다. 상현이 씩 웃으며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자 쥐는 손살 같이 달려 뒤주 옆의 벽에 난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 구멍은 방으로 이어지고, 문짝도 없는 방을 통해 방 뒷벽으로 난 구멍으로 이어졌다. 쥐는 불청객을 경멸하듯 달려가다가 뒷벽 구멍 앞에서 대담하게 돌아선다. 불청객은 물러가라는 표정으로 입을 씰룩거리며 얼굴을 닦는다. 그가 손을 슬쩍 들자 금세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쥐가 사라진 구멍에 환한 햇살이 부채 살처럼 방 안으로 퍼진다.
벽과 벽의 이음새에도 이미 주인이 있다. 거미줄이 하얗게 달린 모서리마다 작은 눈들이 사방에서 상현을 쏘아본다. 그 눈은 어머니의 눈이다.
돌아왔구나.
네 어머니, 이제야 돌아왔지만 아직 더 좋은 구멍은 찾지 못했어요.
상현은 낡은 벽지가 너덜거리는 방안을 들여다본다.
윗목엔 등잔불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아랫목에는 한 여자가 누워 있다.
‘아이고 숨 막혀. 아이고 답답해라.’
여자는 벌떡 일어나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치마를 벗어던진다. 무명으로 꽉 조였던 가슴을 풀어내자 탐스럽게 출렁거리는 둥글고 흰 젖이 흔들거린다. 얇은 명주 속곳 사이로 검은 거웃이 보인다.
옆방에서 공부를 하던 어린 소년은 살그머니 다가간다. 벽장문을 열고 이불을 꺼내 여자에게 덮어준다. 여자는 금세 발길질을 하며 이불을 차 내서 가랑이 사이로 끼운다. 그는 낑낑거리며 여자의 축 쳐진 몸뚱이를 반듯하게 눕힌다. 가랑이 사이에 끼였던 이불을 끌어낸다. 여자는 가랑이를 쩍 벌리고 가운데가 터진 속곳 속으로 손을 넣어 거웃을 벅벅 긁는다. 탐스러운 거웃 틈으로 붉은 팥알이 보인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의 다리를 살짝 더 벌려본다. 벌겋게 달아오른 그곳에 구멍 하나가 보인다. 여자는 그 구멍 위의 붉은 살덩이를 피가 나도록 긁는다. 그는 그 아래 구멍에 손가락을 대 본다. 끈끈한 액체가 묻어 나온다. 축축하게 젖은 그곳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의 고추가 빳빳하게 고개를 든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여자의 입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그는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여자는 여전히 인사불성이다. 그는 좀 대범하게 여자의 두 다리를 벌렸다. 등잔불을 가져다 여자의 다리 사이가 환하게 보이는 곳에 놓았다. 붉은 동굴이 보였다. 그는 그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요리조리 움직였다. 여자의 몸이 바르르 떨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여자 입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났다. 그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끈끈한 액체가 흘러넘쳤다. 그는 신이 났다. 구멍 속은 아무리 헤집어도 끝에 가 닿지를 않는다. 손가락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세 개가 네 개가 되었다. 땀이 뚝뚝 떨어지도록 그 구멍의 깊이에 몰입하여 있는 동안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진 것을 몰랐다. 이상한 정적이 돌았다. 자신도 모르게 빳빳하게 긴장된 그가 여자 쪽으로 살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허리를 반쯤 일으킨 여자의 눈과 마주쳤다.
“니가 나온 구멍이다. 그 속으로 도로 들어가고 싶나? 그 구멍에 대가리 처박아 명태 껍데기 붙이 주까? 세상엔 이 보다 더 좋은 구멍이 많다. 너거 애비처럼 떠나거라. 이 보다 더 좋은 구멍을 찾으모 그때 돌아오너라. 그때가 언제가 되던 그 구멍을 못 찾고 돌아오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뇌성벽력 같았다. 그 순간 그는 아늑한 절벽으로 끝없는 추락을 시작했다.
다음 날 그는 구멍을 찾아 길을 떠났다. 간단한 옷가지 몇 개 가방에 챙겨 넣어 집을 떠났다. 뾰족한 구두에 머리는 달달 볶고, 몸에 착 붙는 꽃무늬 양장에 궁둥이가 탱글탱글한 여자의 가는 허리를 껴안고 그녀 몰래 사라진 아버지와 달랐다. 그녀는 근근이 모은 쌈지 돈을 털어 여비까지 챙겨 주면서 그를 쫓아낸 것이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란 소리 듣게 키울 수 없다. 그러니 너는 천애 고아라 생각하고 이 순간부터 어미는 싹 잊어라.”
여시 골에서 유일한 중학생이었던 그는 책가방 대신 옷가방을 들고 마을을 떠났다.
그래, 세상 구경을 하는 거야. 어머니 말처럼 구멍에 대해 나는 너무 몰라. 세상은 온통 구멍 투성이야. 내 몸에 있는 구멍 속도 모르잖아. 콧구멍, 귓구멍, 눈구멍, 세상에 구멍이란 구멍이 어디 한 두 갠가. 지금부터 구멍에 대한 진실을 파 내 보는 거야. 당당하게 찾아보는 거야. 그리하여 어머니가 말한 더 좋은 구멍을 찾으면 돌아오는 거야.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떤 구멍을 찾아야 하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처음 세상과 마주친 곳은 사람들이 버글거리고 전기불이 환하게 켜진 장사꾼의 도시였다. 가는 곳마다 간판이 있었고, 사람들은 호객꾼이 되어 손님을 기다렸다. ‘싸요. 싸, 들어와 보고 가이소. 맛있습니더. 먹고 가이소. 괜찮은 곳 있습니더. 쉬다 가이소.’ 하지만 그를 반기는 곳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는 다리가 아프도록 걷다가 배가 고프면 어머님이 주신 돈으로 풀빵을 사 먹었지만 며칠 못 가서 돈은 바닥났다. 더 이상 돌아다닐 기운도 없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밥을 주는 곳도, 밥을 사 먹을 돈도 없었다. 며칠을 씻지도 못해서 그의 몸에선 냄새가 났다. 이가 득실거리는 몸뚱이는 가려워 미칠 것 같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방법도 여비도 없었다. 그는 학교도서관에서 읽은 소설 속의 장발장처럼 빵 한 조각을 훔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 좋은 구멍을 찾으라 했다. 아직 그는 그 구멍을 찾을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 수도 없었다. 열네 살에 장가를 가서 가장이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아내는 다섯 살이나 많은 이웃집 처녀였다. 누나, 누나 하다가 여보 당신 하는 그 친구라면 구멍의 진실을 알고 있을까. 그는 집을 떠나기 전에 그 친구에게 구멍에 대해 물어나 볼 걸 그랬다고 후회도 했다.
그는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만큼 더 좋은 구멍에 대한 호기심을 버릴 수 없다. 어머니는 늘 어린 그에게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큰 포부 하나는 가져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여자에게 빠져 가장의 책임을 일시에 내 팽개치는 남자는 사내대장부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저잣거리 골목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구멍은 없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말의 홍수 속에 살았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면 분명 구멍이 있을 것이고, 그 구멍에만 들어가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구멍, 구멍이 어디 있을까.
그는 여기저기 저잣거리를 헤매다가 결국엔 한적한 골목 모퉁이의 길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지친 몸을 어느 집 담장에 기대어 있다가 ‘아얏’ 비명을 지르며 발등을 탁 쳤다. 발등에는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버둥거렸다. 그는 땅을 내려다봤다. 그가 밟고 있는 곳은 개미 행렬이 이어지는 개미 길이었다. 과자 부스러기 하나에 개미 대여섯 명이 물고 가기도 하고, 혼자서 제 몸의 몇 배나 무거운 먹이 덩이를 물고 가기도 한다. 그는 발을 옮기고 눈으로 개미의 줄을 따라가다가 심술이 나서 장난을 친다. 손으로 길을 쓱 긁어 개미 행렬의 중간을 뚝 분질러버린다. 개미들은 깜짝 놀라 우왕좌왕 하지만 금세 일렬종대로 질서 정연하게 제 길을 간다.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개미굴 입구까지 따라갔다. 개미굴은 <만난 칼국수> 간판이 걸린 집의 딱딱한 블록 벽 틈새로 이어진다. 구멍은 아주 작았다. 그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와서 개미굴을 막아버린다. 개미들은 그 주변을 뺑뺑이 질 친다. 구멍을 열어놓으면 금세 막힌 구멍의 흙덩이를 들어내고 개미 행렬은 이어졌다. 개미구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개미집을 파내어 보고 싶지만 그러자니 만난 칼국수 집의 마당 전체를 뜯어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구멍 안에는 어머니가 말한 더 좋은 구멍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배가 고팠다. 구멍의 진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개미구멍 옆의 벽에 기대앉은 그의 머릿속은 온통 구멍으로 뻥뻥 뚫려버릴 것 같다.
“너 집 나왔니?”
아주 상냥하게 생긴 여자가 얼룩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말을 걸었다. 자세히 보니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의 나이쯤 되어 보인다. 어머니처럼 쪽진 머리는 아니었지만 곱슬곱슬한 단발머리에 어머니보다 덜 곱지만 어머니처럼 햇볕에 타서 새까만 얼굴도 아니고, 거친 손도 아니었다. 어머니보다 허리통 하나는 더 있어 보이지만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은 좋은 사람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이 어딘데?”
“고아원에서 도망쳤어요.”
“저런, 얼마나 못 먹었으면 얼굴이 저 모양일까. 배고프지? 우리 집 갈래?”
“아줌마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멍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구멍? 무슨 구멍? 그래 일단은 우리 집 가서 배 채우고 알아보자.”
그는 여자를 따라 <만난 칼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칼국수 집 여자는 혼자 장사를 했다. 아이들과 남편은 이웃 동네에 산다고 했다. 저녁 장사를 끝내고 주인 여자가 집에 가고 나면 그는 식탁 대여섯 개가 놓인 홀 안쪽의 쪽방에서 잠을 자고, 아침 겸 점심으로 칼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고, 칼국수 배달을 다녔다. 주로 시장 아주머니들이 점심을 시켰다. 곱상하게 생긴 데다 눈치가 빠른 그를 시장 아줌마들은 금세 자신의 아들인양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했다. 주인 여자는 복덩이가 저절로 굴러들었다고 그를 친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낯선 손님이 그를 보고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는 착한 아들이라고 칭찬하면 주인 여자는 우리 아들이 원래 저렇게 어미 걱정을 해 준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새 세상에서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조금씩 새로운 눈을 떴지만 자신의 본분만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어머니가 찾아오라는 세상에서 젤 좋은 그 구멍을 찾아 빨리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밤이면 밤마다 여우 울음이 그리웠다. 여시골에 여우 울음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 여시골 여우 울음이 들리는 환영에 사로잡히곤 한다.
“아줌마 세상에서 젤 좋은 구멍이 어딨는지 아세요? 알면 가르쳐주세요. 찾아야 하거든요. 얼렁요.”
하면서 그는 시장 아주머니의 옷자락을 잡기도 하고, 그 앞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어릿광대처럼 굴었다. 그가 하도 구멍에 대해 끝임 없이 질문을 퍼붓자 어떤 아주머니는 ‘이 넘아, 이 시장 안에는 쥐구멍이 천지다. 찾아봐라. 예쁜 쥐 색시가 너를 더 좋은 구멍으로 데려다 줄지.’ 하면서 머리통을 쥐어박기도 했다. 그래도 그의 구멍에 대한 물음이 그치지 않자 나중엔 살짝 맛이 간 녀석이라고 아예 별명을 구멍 총각으로 붙였다. 보기엔 멀쩡한 녀석이 어딘가 모자란다고 그의 뒤통수에 대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정 많은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저러니 한창 공부할 나이에 국수 배달이나 하면서도 저렇게 싱글벙글하는 거야’ 하면서 칼국수 집 아줌마를 부러워했다. 실한 일꾼 하나 잘 거두었다고.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칼국수 집은 그로 인해 옆의 점포까지 사서 평수를 넓혀야 할 만큼 장사가 잘 되었다. 그의 몸에도 어느새 칼국수 국물 냄새가 배었다. 열여섯 살이 된 그는 키도 훌쩍 크고, 덩치도 떡 벌어졌다. 칼국수만 먹더니 국수 가락처럼 쭉쭉 뻗어간다고 주인 여자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제 그는 주인이 없으면 직접 칼국수를 빚었다. 음식 만드는 요령도 생기고, 칼 다루는 솜씨도 늘어나 칼국수 맛을 기막히게 낼 줄도 알게 되었다.
“구멍 총각아, 너 야간 학교 다녀볼래? 그동안 얼마 안 되지만 네 이름으로 저금을 조금씩 해 놨단다. 일 삯이란다. 언제든지 네가 우리 집을 나가겠다면 그 돈을 주마. 잠자리와 밥만 먹여 달라고 했지만 네가 착실하게 일을 잘해주는 바람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어느 날 주인 여자가 말을 꺼냈다. 그의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지켜본 여자는 칼국수 집 배달원으로 놔두기에는 아까운 아이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줌마, 제가 찾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멍입니다. 그 외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요.”
그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학교에만 안 다닐 뿐이지 책이라면 충분히 읽고 있었다. 고물상이든 어디든 책 있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 섭렵해 나갔다. 문학서적도 좋고, 만화책도 좋고, 잡지도 좋았다. 구멍을 찾지 못한 길고 긴 밤을 그는 독서로 채워나가는 줄 주인 여자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밤마다 세상에서 그 구멍보다 더 좋은 구멍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기도드리는 줄 주인 여자는 알 턱이 없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책을 섭렵하지만 어머니가 말한 구멍의 의미는 자꾸만 모호해지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갈수록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어머니의 구멍, 자신이 나온 자리만 생각났다. 어떻게 그 작은 구멍으로 그의 큰 머리통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불가였다.
가끔 주인 여자도 술을 마셨다. 술 마신 밤에는 가게에서 잠을 잤다. 주인 여자가 쪽방에서 잠을 자면 그는 의자를 여러 개 붙여 홀에 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봄밤이었다. 그 밤에도 비가 왔다.
비바람이 몹시도 심하게 요동치는 밤이었다.
칼국수 집의 허름한 유리 문짝이 덜컹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는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구멍을 찾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너무 오래 한 곳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구멍에 대한 기억이 엷어지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안주한다는 것은 곧 구멍 찾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어머니를 찾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를 포기할 수만은 절대로 없었다. 아버지께 버림받고, 자신을 혼자 키우면서 가끔은 젊은 몸뚱이 주체할 수 없어 술의 힘을 빌려 잠이 들곤 하던 어머니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 얼마만큼 세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니 다시 구멍을 찾아 방랑길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었다.
평소에 어머니는 참으로 유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는 칼 같이 절도가 있는 분이셨다. 맵고 끊는 것이 너무 정확해서 정나미가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아버지는 어린 그를 안고 한숨을 쉬곤 했었다. 결국 그 점 때문에 아버지는 편한 여자를 찾아 밖으로 나돌다가 결국엔 그녀 곁을 영영 떠났는지 모른다. 그에게 어머니의 명은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이었다. 그 힘에 굴복하여 자라온 그에게 더 좋은 구멍을 찾기 전에는 절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제 여시 골의 맑고 밝은 소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적당히 약아빠졌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수능란한 세치 혀끝의 능력도 단련되었고, 무엇보다 어머니 같은 아주머니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어디를 가든 살아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어머니의 그 구멍보다 더 좋은 구멍을 찾아 세상을 떠돌아야 했다. 그는 한 곳에 안주하라고 어머니에게 내 쫓김을 당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유리문은 계속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누구세요?”
“구멍 총각 나야 나.”
주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가 문을 열자 술 냄새를 훅 풍기며 여자가 들어섰다. 앞가슴이 풀어진 것이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놀랐지? 한바탕 했어. 술 한 잔 했다고 꼴에 남자라고 영감탱이가 글쎄 손찌검을 하잖아. 어찌나 열이 받치는지 집을 나와 버렸지. 오늘 밤은 나 여기서 잘래. 괜찮지? 참, 너도 술 한 잔 하지? 우리 술이나 한 잔 더 하자.”
그는 주방에 있는 소주병을 챙기고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여자는 눈물 찔끔거리며 신세 한탄이 늘어졌다. 칼국수 장사하여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다가 구멍 총각 덕에 호주머니가 두둑해지자 백수로 살던 남자가 남의 여자를 넘본다고 했다. 낮에 여자는 손이 퉁퉁 붓도록 구정물에 손 담그고 사는데. 남자는 빈둥거리며 다방 가시나 치마 속이나 더듬는다는 것을 알고, 속이 상해서 친구랑 술 한 잔 하고 들어갔더니 그래도 남자라고 큰소리 탕탕 친다는 거였다. 남자는 바람피워도 당연하고, 여자는 술만 마셔도 죄인이 된다며 이런 빌어먹을 세상이 어디 있느냐는 거였다.
횡설수설하던 주인 여자가 식탁에 엎어져 잠이 들자 그는 여자를 부축하여 쪽방에 뉘어 놓고 홀에 의자를 모아 잠자리를 마련했다.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잠은 청할수록 멀리 달아나버렸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반쯤 남은 소주병을 비웠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고, 자꾸만 쪽방으로 신경이 모여들었다. 쪽방에서 여자의 코 고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어머니, 그 순간 그는 쪽방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든 여자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머니였다. 그는 여자 옆에 앉아 잠든 여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의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어머니가 술에 취해 잠든 밤이면 어머니 옆에 누워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잠이 들곤 했었다. 어릴 적에 빨던 어머니의 젖 냄새가 그리워 젖꼭지를 빨아보기도 했었다. 잠결에도 어머니는 ‘네 방에 건너가서 자거라.’ 하면서 그를 숨이 막힐 만큼 껴안아 주고는 가슴을 여미며 돌아눕곤 했었다. 어머니의 거웃을 보기 전까지 그에겐 어머니의 젖가슴은 포근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냄새는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가슴을 열고 젖꼭지를 물었다. 허겁지겁 젖을 빨기 시작했다. 여자가 ‘으음’하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여자의 손이 슬그머니 그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거웃이 만져졌다. 여자는 그의 손가락을 잡고 거웃 아래 갈라진 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구멍은 따뜻했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더 좋은 구멍을 찾으면 돌아오너라.’ 무슨 뜻일까. 더 좋은 구멍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찾은 것은 개미가 사는 그 작은 구멍 입구를 나뭇가지 하나로 막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자가 일어나 그의 옷을 벗겼다. 여자는 자신의 옷도 스스로 벗었다.
“처음이지? 나도 외도는 처음이야.”
주인 여자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어머니가 말한 구멍의 첫 단추는 이곳이었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하지만 그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여자는 친절하게 그의 몸에 돋아난 거시기를 잡아 그녀의 구멍을 막았다. 생전 처음 그는 이상한 열기에 휩싸여 다시 아득한 절벽으로 내리 꽂히고 있었다. 누군가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강타하는 것처럼 얼얼한 충격에서 한 동안 깨어나질 못했다. 여자는 노련하게 노를 저었다. 그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배 위에서 출렁거렸다. 저절로 힘이 불끈 쓰였다. 그의 몸에서 뭔가가 쫙 빠져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여자의 배 위에 널브러졌다.
“고마워.”
무엇이 고마운지 여자는 눈물까지 비추며 감격해했다. 그 뒤로 주인 여자의 개인 지도는 그를 새로운 것에 눈 뜨게 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좋은 구멍에 대한 갈증을 풀길이 없어 괴로웠다. 떠나자. 수 십 번 떠날 결심을 하다가도 그를 찾는 단골손님들을 실망시킬 수도 없고, 그에게 목을 매는 주인 여자의 사랑을 거부할 수도 없어 고통스러웠다. 구멍을 찾아 떠나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어머님께 두들겨 맞는 한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을 잡았다가 풀었다가 했다. 이게 아닐 거야. 이게 다라면 어머님이 충분히 설명해 줄 수도 있었고, 가르쳐줄 수도 있었어. 어머님이 말한 그 구멍에는 더 심오한 뭔가가 있어. 있을 거야. 그의 테크닉이 이젠 주인 여자를 파김치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단련되었다. 용케도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학생과 선생으로 과외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떠나는 것이 좋겠어. 자꾸 너에게 깊이 빠지니 내가 불안해서 안 되겠어. 애들에게 죄짓는 것 같고. 우리 아들이 너에겐 형뻘이야. 내가 못할 짓을 한 것만 같아서 참말로 미안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주인 여자가 구멍 총각이란 이름의 통장과 도장을 내밀었다.
그는 홀가분하게 장사꾼의 도시를 떠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