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의 진실

<끝>

by 박래여

......그는 거대한 도시를 낀 바닷가로 갔다. 짭짜름한 갯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그가 찾을 더 좋은 구멍은 있을 것 같았다. 일자리는 어디든지 마음만 먹으면 얻을 수 있었다. 칼국수 집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어느 모로 보나 미성년자가 아닌 청년이었다. 억세고 건강해 보이는 그가 정착한 곳은 배였다. 고깃배를 탔다. 일 삯도 필요 없고, 먹고 자고만 해결해 주면 된다는 말에 선주들은 그가 아직도 소년이란 것을 개의치 않았다. 가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고, 가짜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의 이름은 ‘이 돌구’ 돌연히 바닷가에 나타나 뱃사람 되길 청하면서 구멍을 찾는 사람이란 뜻이라 했다. 그는 그 이름만큼이나 고기잡이가 재미있었다.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나가 바닷속을 샅샅이 긁어 묵직한 그물을 끌어올릴 때의 그 숨 가쁜 희열이 좋았다. 고깃배를 타고 섬이란 섬을 다 돌아다녔다.

‘구멍을 찾고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그가 구멍을 찾는다는 것을 안 뱃사람들은 구멍이라면 동굴을 말하는 것이라고 믿었던지 바다 위에 솟은 크고 작은 섬들의 바위벽에 난 크고 작은 동굴로 그를 안내하곤 했다. 아무 곳에도 그를 매혹시키는 그런 구멍은 없었다.

“도대체 어떤 구멍을 찾는 기야?”

뱃사람으로 평생을 바다에 산 늙은 어부는 물었다.

“어머니의 그것보다 더 좋은 구멍이요.”

그의 말에 늙은 어부는 처음에는 파안대소를 했다. 웃음이 끝나자 바보를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그를 주의 깊게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구멍이라면 어머니의 그 구멍보다 더 좋을 수가 있지. 진작 말하지 돌구 자네 참 특이한 구석이 있어. 그곳에 가면 자네가 찾는 그 구멍이 있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너무 깊이는 빠지지 말게. 맛만 보고 이거다 싶으면 그 길로 돌아 나오게. 오래 있을 곳은 못 돼.”

늙은 어부가 안내한 곳은 창녀촌의 늙은 포주 어미 앞이었다. 오래전 지기라 했다. 젊어서 살 맞대고 살 때도 있었지만 서로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라 나잇살 채워지면서 둘도 없는 친구로 산다고 했다.

“내가 아끼는 우리 아들이네. 자네가 책임지고 세상 구경 좀 시켜주게.”

그곳에서 그는 여자들을 손님으로부터 지켜주고, 화대를 받아 포주 어미에게 가져다주는 거간꾼 노릇을 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언제든지 공짜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여자의 은밀한 구멍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쌓았다. 그곳에 물들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늙은 어부가 명심할 것을 명했지만 그는 자꾸만 자신이 왜 그곳에 와 있는지 잊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것은 선주라는 한 여자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버지의 노름빚을 갚아주기 위해 스스로 창녀촌에 들어와 몸을 파는 여자였다. 눈물 많고, 여린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빛줄기를 본 것 같았다. 그 여자를 사랑하면서 그는 자신이 그 여자 옆에 안주하기를 원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버지의 빚을 다 탕감하고 나면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거야.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 나처럼 상처 깊은 사람 만나서 서로 위로하며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살 거야. 그게 너라면 참 좋겠지만 나는 너에 대해 너무 모르고, 너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 그래서 싫어.”

선주는 어머니를 닮았다. 그는 어머니를 닮은 선주를 다른 남자의 꽃으로 내 보내는 것에 고통을 느꼈다.

“떠나자 우리.”

그는 칼국수 집 여자가 준 돈을 선주에게 주었다.

창녀촌에서 나온 그는 선주랑 살림을 차렸다. 아들과 딸이 태어났다. 그는 차 정비 공장의 견습생을 거쳐 어엿한 정식 정비공이 되었다. 시커먼 기름 보자기를 덮어 씌고 살았지만 그 시절이 그에겐 황금 알을 낳는 기간이었다. 아내는 착했고, 경제는 풍족하진 않지만 알뜰한 아내 덕에 통장엔 늘 뭉치 돈이 있었고,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그는 틈만 나면 칼국수 솜씨를 발휘해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충실한 가장이었었다.

그는 가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이 보다 더 좋은 구멍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제 자신이 찾고자 하던 구멍의 진실을 알았다며 당당하게 가족을 이끌고 어머니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한 해 두 해 세월이 갈수록 어머니가 원하던 답은 이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찾아가야지 하다가도

‘이게 아닐 거야. 이런 것인 줄 알았으면 어머님이 그렇게 냉정하게 나를 세상 밖으로 몰아냈을 리 없어.’

하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니가 나온 구멍이다. 그 속으로 도로 들어가고 싶나? 그 구멍에 대가리 처박아 명태 껍데기 붙이 주까? 세상엔 이 보다 더 좋은 구멍이 많다. 너거 애비처럼 떠나거라. 이 보다 더 좋은 구멍을 찾으모 그때 돌아오너라. 그때가 언제가 되던 그 구멍을 못 찾고 돌아오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갑게 그를 뒤흔들었고, 그때마다 ‘어머니 이 보다 더 좋은 구멍은 없더군요.’ 하면서 선주의 거웃을 제키고 자신을 밀어 넣었지만 아무리 밀어 넣어도 돌아 나오면 허전했다. 어머니가 찾으라는 구멍이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더욱 구체적으로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 떠나야겠어.”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 찾는 그 구멍의 실체를 꼭 찾으세요. 그리고 어머니께 돌아가세요. 만약 어머니께 돌아가시면 보여 드리세요. 당신이 찾은 구멍을. 그 구멍 때문에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 주시고요. 그리고 저에게 돌아오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어쩌면 우리 자신이 구멍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가끔은 당신이 찾는 것이 어머니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정말 당신은 고아 같으니까요.”

그는 다시 무일푼으로 세상과 마주 섰다.

이제 그는 젊지 않다.

그동안 그가 지녔던 이름만큼이나 경력도 화려했다. 본명인 박 상현이란 이름을 잊어버린 채 떠돌면서 얻은 이름들, 칼국수 집에선 구멍 총각, 어부 노릇을 할 때는 이 돌구, 정비공장에선 김 정직, 건설현장에선 한 뭉치, 산업현장에선 안 양반, 거리에선 부랑아, 공원에선 한 끼 빌어먹는 백수, 음식점 주방에선 마 기찰, 그렇게 그가 세상 구석구석을 돌고 돌다가 도착한 곳이 까마득한 기억 속에만 살아있던 고향이었고 고향집 허물어진 오두막을 보는 순간 박 상현이란 본명을 기억해 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더 좋은 구멍 찾기는 칼국수 집 여자의 구멍에서 실체를 발견하고, 아내 선주에게 머물렀지만 그것은 밥을 먹고, 뒷간을 가듯 일상적인 배설의 욕구, 쾌감의 욕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과연 그 일상적인 욕구 때문에 어머니는 그를 떠돌게 했을까.

“사십 년 만이군요. 어머니, 당신이 끌어당기셨나요? 그러셨다면 좀 더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못난 놈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아온 낡은 흔적 그대로 남겨두기 전에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좀 더 일찍 더 좋은 구멍을 찾거나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러셨어요?”

그는 회한에 잠겨 눈을 감자 맑은 이슬이 눈꼬리를 적셨다.

상현은 마루에서 일어나 담장 옆의 먹감나무 곁으로 갔다. 어릴 땐 심심찮게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며 홍시를 따 먹기도 하고, 감나무 가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어머니를 놀라게 하던 그 먹감나무 속 구멍을 봤다. 불에 그슬린 것처럼 검은 줄이 쭉쭉 난 구멍 속은 금세 어둠에 먹혀버린다. 눈을 꼭 감아 봐도, 눈을 크게 떠 봐도 어둠은 어둠으로 존재하고, 구멍은 구멍으로 존재한다.

“이놈아, 사십 년을 한 구멍만 팠시모 온천이라도 터졌것다.”

머리를 강타하는 호통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을 봤다.

거대한 구멍이 빠르게 회전축을 돌리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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