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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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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Sep 19. 2022

59. 비만에 대하여

비만에 대하여


     

  변기커버가 망가졌다.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쓸 때마다 불편했다. 마트에 가서 중형 변기커버를 사 왔다. 남편에게 변기커버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바꾼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망가져?’하면서도 남편은 새 변기커버로 갈아줬다. 폭신하니 좋다. ‘새건 확실히 편하고 좋네. 자주 갈아야겠다.’ 종알대도 들은 척 만척한다. 슬그머니 미안하다. 


 나는 고도 비만이다. 다이어트해야겠다는 사람들 말을 자주 듣지만 실천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참느니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일까. 몸무게를 줄이려면 억지로 살을 빼야 하는데 그 억지가 싫다. 생긴 대로 살지 뭐. 만포장이다. 삼시세끼 중에 한 끼도 못 굶는다. 기름진 것을 좋아하고, 밀가루 음식이라면 무한정이다. 밥은 세 끼를 다 챙겨 먹으면 화가 나지만 국수는 불어 터진 것도 세 끼를 먹는다. 전생에 나는 밀가루 음식이 주식인 중국 어느 지방에서 살았던 것일까. 


 처녀 때는 몸매에 신경 쓰느라 애쓴 덕인지 뚱뚱하다는 말은 안 들었다. 뽀얀 피부에 볼륨 있는 몸매, 귀염성 있다고 들었다. 섹스어필까지는 아니지만 매력 있는 처녀가 아니었을까. 성격도 강하고 교만하기까지 했었다. 한 마디로 눈에 뵈는 것이 없었나 보다. 카리스마를 가진 여자라는 평을 들었다. 남자 흰 고무신에 회색 통바지(몸빼)를 입고도 당당하게 나이트클럽을 갔던 적이 있다. 시집와서 첫 애 낳고부터 몸무게가 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둘째 마지막 산달 몸무게를 내려간 적이 없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살이 안 붙는 체질인 남편은 뚱뚱한 나를 좋다고만 했다. 


 아무튼 세월은 쑥쑥 흐르고 나는 고도비만이 되었다. 관절에 이상이 오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자 남편은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말만 그렇게 할 뿐 도와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 대여섯 끼를 챙겨야 하는 시부모님과 농부의 뒷바라지에 일 년 내내 일꾼을 부리는 집에서 음식 만들고 차리기는 필수였다. 스트레스 살이라고 핑계를 댄다. 농사는 중노동이라 집에 술이 안 떨어진다. 문제는 반주다. 일하고 오면 막걸리나 맥주 한 잔 마셔야 허기를 면한다는 농부다. 반주도 혼자 하면 맛이 없다고 꼭 권한다. 


 문제는 살찐 몸매를 부끄러워해야 다이어트도 하련만 천성 탓인지 몸매에 관심이 별로 없다. 아니, 날씬하면 좋겠지만 식성을 봐도 살찌는 체질이다. 나는 뭐든지 잘 먹는다. 채식보다 육식이다. 체질 탓을 해 본다. 시댁 식구들은 잘 먹는데도 살이 안 찐다. 친정 식구들은 잘 먹는 만큼 살이 찐다. 딸은 남편 체질인지 날씬하지만 아들은 어미 체질인지 덩치가 크다. 우리 가족은 모두 운동을 좋아한다. 수영과 헬스는 기본이다. 그 외 검도, 달리기, 궁도, 테니스 등등. 


 나도 처녀 때는 등산도 좋아하고 여행 다니기를 즐겼고 테니스도 쳤다. 정적인 독서와 동적인 운동 모두 즐기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휩쓸려 다니며 수다 떠는 것에는 무심했지만 혼자 노는 일은 잘한다. 노인 대열에 들어서면서 성인병에 시달리자 농사도 대폭 줄였다. 지금은 일꾼 뒷바라지할 일도 없어지고 시아버님도 저승길 떠나셨다. 시어머님은 요양원에 계시니 자주 찾아뵙는 일만 남았다. 가끔 너무 편해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자문한다.


 올 추석은 길었다. 남매가 일찍 와서 추석 준비를 해 줬고, 짧고 긴 여행에 맛집 나들이를 하다 보니 삼시 세 끼가 푸짐했다. 매끼 특별 식으로 먹었다. 남매도 음식 솜씨가 좋다. 둘이서 매끼를 책임지니 앉아서 받아먹기만 했다. 연휴 동안 포식하다 보니 몸무게가 느는 것이 보였다. 기름진 음식에 질릴 즈음 추석 연휴도 끝나고 남매도 떠났다. 기본 내 몸무게에 살이 붙었다. 적게 먹어야지. 작정을 하지만 타고난 식복대로 먹을 것이 지천이다. 추석 선물로 들어오는 것이 많다. 과일이며 육 고기며 만두며 냉동실이 꽉 찼다. 먹어치우는 수준이다. 


  “이건 참 불공평해. 당신은 어째 살이 더 빠진 것 같네. 고단백으로 그렇게 먹었는데도. 나만 살찐 것 같아. 사실 먹는 양 보면 당신보다 적게 먹는데 왜 나는 살이 찔까. 속상해”    


  툴툴거리면서도 새 커버로 교체한 변기를 기분 좋게 감상하다 거실로 나왔다. 남편이 벽걸이 칠판에 뭔가 적고 있다. 우리 부부도 노인 대열에 들어서니 치매의 지름길이라는 건망증이 심해진다. 사야 될 물건, 해야 할 일을 칠판에 적어 놓는다. 이번 주 일정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나? 칠판에는 커다랗게 <궁디 무게를 줄이자.>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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