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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Sep 23. 2022

60. 시부모를 모신 며느리에게도

시부모를 모신 며느리에게도   


  

  왜 며느리는 시부모님의 보호자가 될 수 없나. 며느리가 공인일 때 시부모님의 상을 당해도 그 동아리 전체 홈페이지에 공고를 해 주지 않는다. 평소 시부모를 모시고 시중들고 허드렛일을 도맡는 것도 며느리다. 왜 직계가족만 길흉사를 알려야 할까.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신 사람에게는 시부모님이 친정 부모님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모든 길흉사에 직계가족이니 아니니 따지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며느리가 어떤 단체의 회원일 때는 시부모든 친정 부모든 상을 당했다면 단체에 공고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 아닌가. 길흉사에 참석하고 안 하고는 각자의 몫이다. 길흉사를 알리는 것에도 남녀 차별을 한다는 것이 21세기에 타당한 일인가. 


  고령의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병원과 병원 응급실을 수시로 들락거렸었다. 농부가 없을 때는 며느리인 내가 모시고 다녔는데 어떤 수술이나 입원 절차에서 불이익을 당했었다. ‘보호자님을 모시고 오세요. 며느님은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랬다. ‘이건 불공정해.’ 하면서도 농부를 불러 보호자 도장을 찍었었다. 그렇게 긴 세월을 며느리로 살아왔다. 이번에 시어른 상을 당했을 때였다. 내가 속한 문학 단체 사무국장에게 알렸다. 사무국장은 직계가 아니라서 단체 공고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군자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란 사고방식이 이럴 때 적용되는 건가. 남자들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남존여비 사상의 발현인가. 

 

 한 집안을 이끌어가는 힘은 남자보다 그 남자를 보필하는 여자의 힘이 더 강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권력도 베갯머리송사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아직도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다. 남자들 무의식에 자리 잡은 남성 우월 사상이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남자도 엄마 뱃속에서 자라 세상에 나온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시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여자의 도리라면 여자에게도 시부모의 보호자가 될 권리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부계 중심 사회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여자의 사회 진출이 높아지고 권력의 상층부에도 여자가 올라앉지만 그런 여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국회 의원인 여자가 시부모 상을 당했다면 공식 석상에 ‘00 국회의원 누구의 시아버님이 소천하셨습니다. 기타 등등’ 명시가 될까? 명시하지 않을까?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여자 국회의원이 시부모 상을 당했다면 모르긴 해도 그 끈을 잡으려고 조문객이 줄을 설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랄까. 권력에 빌붙어 우듬지를 향해 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랄까. 정승이 죽으면 파리만 날려도 정승 집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말을 생각해 볼 일이었다. 

 

 남자와 여자를 편 가르기 하는 것은 아니지만 21세기를 사는 현재에 불공정한 것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장례문화에서도 불평등은 여전했다. 부모를 모신 사람이 차남일 때도 모든 것은 맏상제와 맏며느리 순서로 진행된다. 유산 상속도 호주 상속도 그런 순서라고 알고 있다. 부모를 모신 사람이 차남일 때, 혹은 딸일 때, 유산을 놓고 따따부따하는 집이 많다고 들었다. 법에 호소해서 M분의 1로 공평하게 나누는 집도 있고 법정 싸움을 불사하는 집도 있단다. 돈 앞에 욕심 없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맏자식이 부모님을 모시지도 않았으면서 부모님 사후에 맏이라는 빌미로 부모님의 재산을 탐낸다면 그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 될 소지가 많다.  

 

  나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민법 제768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개 법률적이나 행정적 필요에 의해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가족을 따로 구분하는 말. 직계(直系)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 등 혈족으로 이루어진 수직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형제나 자매, 배우자는 직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민법 제768조에는 혈족의 정의를 규정하면서 "자기의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을 직계혈족이라 하고 자기의 형제자매와 형제자매의 직계비속, 직계존속의 형제자매 및 그 형제자매의 직계비속을 방계혈족이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직계존비속은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취했다.>// 

 

 나는 수직관계 남자와 사는 여자도 직계로 인정해야 옳다고 본다. 시부모를 모시는 며느리도 시부모의 보호자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아들이 부모님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니라 며느리가 시부모님 시중을 든다. 며느리로서 시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남성중심주의 사고다. 현대는 남녀평등한 사회라지만 삶의 구석구석에는 남녀 불평등이 존재한다. 이 사회는 아직도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사회란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차남의 아내로 평생 두 어른을 모셔왔던 나는 노인 대열에 들어서면서 몸도 아프고 지쳐서 한때, 시부모님 모시는 것에서 한 발을 빼고자 했었다. 반발은 생각 외로 거셌다. 내 편이 되어줘야 마땅한 농부가 ‘여태 당신이 모셔놓고 왜 못 모시겠다고 하느냐. 며느리의 도리를 다 해라’는 식으로 윽박질렀다. ‘당신이 아들이고 보호자잖아. 당신 부모니까 당신이 모셔 봐.’라고 응수했지만 정신적 고통은 심했었고 나 역시 평생을 모신 시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만큼 두 어른에 대한 정도 깊었다. 사랑도 많이 받았다.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해가 바뀔수록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민법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근본적인 것은 바뀐 것 같지 않다. 1990년 1월 13일에 바뀐 민법 제768조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며느리는 시부모님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 없다. 예외가 있긴 하다. 시부모님을 모셨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경우 대습상속이란 방법이 있긴 하지만 복잡하다. 부모를 모신 차남일 경우 아내 대신 부모님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는 있단다. 현재의 민법 제도라면 맏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고 그로 인해 부모님의 재산을 상속하고 호주 승계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맏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고 차남이나 딸이 부모를 모셨을 때 재산 상속을 놓고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시부모님을 모신 며느리에게도 법적으로 보호자가 될 수 있고 상속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현재의 법으로는 고령의 시부모님을 모시려는 며느리가 갈수록 드물어지지 않을까. 집에서 죽고 싶다는 노인들 소원은 소원으로 그치고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이승을 하직하는 외로운 노인들만 늘어난다. 우리 세대는 혼자 의식주 해결할 수 없으면 요양원 들어가야지. 마음먹지만 막상 그래야 할 때가 오면 당신 발로 요양원을 찾아가는 노인이 얼마나 될까. 노인이 설 자리가 없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늙어가는 것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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