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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Oct 28. 2022

66. 축제 제목에 대한 유감

 축제 제목에 대한 유감    

 

  며칠 전부터 국민체육센터 앞이 어수선하다. 부스를 세우고 차량 통제를 하고 알록달록 불빛을 내는 전구를 설치한다고 정신없다. 다리 아픈 나는 먼 곳에 주차를 해 놓고 수영장을 오가는 것이 엄청 불편하다. 수영장 주변 너른 주차장 사용을 못해서 그렇다. 플래카드가 붙었다. ‘리치리치 페스티벌’을 한단다. 무슨 뜻인지 헷갈렸다. 리치는 부자를 뜻한다. ‘부자 축제라고? 부자들만 하는 축제야?’ 반문하자 ‘부자 기운 받으라고 하는 축제래.’ 누군가 답을 준다.


 우리 고장은 솥바위가 있다. 솥바위 전설이 유명하다. 의령 정암루 아래 강에 있는 솥바위를 중심으로 8km 안에서 세 부자가 탄생한다는 전설이 있다. 부귀영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솥바위 전설이 현실이 되었다. 삼성그룹, 엘지 그룹, 효성그룹 창시자가 솥바위 인근에서 나왔다. 그 덕에 솥바위 앞에 무속 인들이 치성을 드리러 줄을 잇는다. 부자는 누구나 꿈꾸는 희망사항이다. 부자 기운을 받아 잘 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일까.


 그러나 왜 순수한 우리말을 살리지 않고 영어를 쓰는 것일까. 시골 촌로는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른다. 차라리 ‘솥바위 축제’ 라거나 ‘솥바위 전설 축제’ 라거나 ‘부자 기운 서린 솥바위 축제’라면 좋지 않을까. 누구나 읽기만 해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순수한 우리말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우리가 쓰는 말이 살아야 나라의 줏대가 서고 한국인의 정체성이 생긴다고 믿는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영어를 쓰면 유식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방천지 간판들도 영어 일색이다. 한국인지 외국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한글학자 고루 이극로 선생도 의령사람이다. 북한에 순수한 고어가 살아있는 것도 고루 이극로 선생의 업적이라는 말도 있다. 이극로 선생이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한국에서는 배척당했지만 다시 살리려고 애쓴다. 현재 국립 국어사전 박물관을 의령에 유치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이다. <말모이를 아십니까?> 이런 플래카드도 붙어있다. 말모이가 뭔가. 1911년 조선 광문회에서 편찬 작업을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한국 최초의 국어사전을 말한다. 완성단계에서 중단된 사전이지만 고유어를 살린 책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솥바위 전설을 배경으로 남강에 황금 물이 흘러 부귀와 영화를 가져오는 기운을 담았다는 축제 이름이 <리치리치 페스티벌>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의령에도 문학회가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 머릿속에 반감이 없을까. 수영장을 오가며 ‘무다이’ 화가 난다. 나도 글쟁이라 그렇다. 순수 우리말을 사랑하고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능하면 어려운 한자어도 풀어쓴다. ‘무다이’가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다. 표준어로 하자면 ‘뜬금없이’라는 말이다. 뜬금없이도 순수 우리말이다. 갑작스럽고 엉뚱하다는 뜻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이 끝나는 시점이다. 사방에서 축제를 연다. 축제 이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지역 특성에 맞아야 하고, 축제의 주제와 맞아야 하고,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으로 정해야 그 축제가 흥행하지 않을까. 어려운 외국 말을 쓴다고 배운 티 나는 것도 아니고 인품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다분히 허영 끼라고 본다. 속은 빈 수레면서 겉만 화려하게 꾸미는 짓을 안 할 수는 없을까. 속이 꽉 찬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 부와 권력을 쥐고 싶은 것은 인간의 속성이라고 본다. 


 우리 지역 축제다. 축제 분위기에 초를 치는 기분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분야라고 본다. 축제 제목을 기획하고 광고 포스터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자각했으면 좋겠다. 한국인이라면 한국말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줏대를 가진 한국인이라면 쓰는 말도 우리말이어야 하지 않을까. 말글이 살아야 그 나라가 산다고 믿는다. 순수한 우리말, 사라져 가는 고유어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요즘은 시골 아이들도 그 지역 사투리에 대해 잘 모른다. 평준화된 교육 탓도 있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 세대로부터 말을 배운 탓이라고 본다. 


 아무튼 오늘부터 <리치리치 페스티벌>이다. 수영장을 다녀와야 내 몸이 사는데 축제 분위기에 휩쓸릴 생각을 하니 기운 빠진다. 오늘 수영장을 쉬어? 차라리 목욕탕을 갈까? 내 몸의 건강을 다지는 일이니 빠질 수도 없다. 관광객과 장사치로 북적거릴 거리도 사흘이면 끝난다. 덕분에 사람 구경도 하고 부스마다 진열된 상품 구경도 재미있지 않을까. 구경하는 재미, 뭔가 상품을 사는 재미, 온갖 거리 음식을 먹는 재미 빼면 살맛 안 나잖아. 즐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부자들 축제>에서 어떤 기운을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탈곡을 하는 들은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가고 단풍은 사람 사는 마을까지 내려온 시월 말이다. 단감 따러 간 식구들 오면 오후엔 축제 구경 가는 셈 치고 수영장 다녀오자고 해야겠다. 이미 활시위는 과녁을 향해 떠났는데 뒷북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구경들 오세요. 부자 기운 받으러 의령으로 오이소.’ 의령 주민으로서 즐기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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