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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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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Oct 24. 2022

65. 느티나무야 힘내

느티나무야 힘내.  

   

  느티나무가 눈에 확 띄게 단풍이 들었다. 한쪽 가지는 새빨갛고 반대쪽 가지는 노르스름하다. ‘느티나무가 이상해. 나무의사를 초청해 진단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농부에게 말했지만 예사로웠다. 단풍이 일찍 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지가 죽어간다는 거다. 나무둥치가 병든 것 같다. 뿌리에 문제가 생겼을까. 아니다. 마당가에 설치했던 둥근 탁자가 썩어서 그 잔해를 치우지 않고 느티나무 둥치에 기대 둔 것이 문제 아닐까. 나 혼자 생각이 많다. 농부는 웃고 넘어가지만 나는 심각하다. 야외 탁자 나무는 방부 목으로 만든 거다. 방부 목은 썩지 않게 방부제 약품처리를 한 것으로 안다. 그 방부제가 시나브로 느티나무 뿌리로 스며든 것은 아닐까. 

 

 우리 집 울타리가 된 느티나무는 우리 집과 같은 나이다. 새 집을 지어 울타리를 조성하면서 느티나무도 심었었다. 느티나무 허리는 내 허리보다 굵다. 그 아래 나무 탁자를 만들어 놓고 손님 대접도 하고, 책도 읽고, 집 아래 길을 오가는 등산객 구경도 했었다. 나무 탁자가 세월에 못 이겨 볼품없어지고 마당 가운데 있던 은목서 나무를 파내면서 나무 탁자도 치웠다. 방부목이라 땔감은 안 된다고 느티나무 곁에 방치한 것이다. 늘 ‘저것을 안 치우고 왜 저기에 방치할까. 보기 싫은데.’ 생각만 하고 지나쳤다. 농부는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을 아내가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울타리 밖이니 시나브로 썩어 흙으로 돌아가겠지. 생각한 것이 잘못일까.   


 처음에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던 농부도 느티나무를 눈여겨본 모양이다. 느티나무가 죽어간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않더니 ‘느티나무가 왜 저럴까? 물이 모자라나?’ 걱정을 한다. 집 앞으로 아스팔트가 깔린 것도 문제가 될까. 느티나무가 있는 울타리에서 도로는 장골 키 두 질은 될 정도의 돌담이 쌓여 있다. 아무래도 뿌리 뻗침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나무든 가지 뻗는 것만큼 뿌리도 뻗어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집 주변에는 큰 나무를 심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뿌리가 집 밑으로 뻗치기 때문에 집의 기운을 나무가 빼앗아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느티나무는 너른 마당 너머에 있기에 우리 집 하고는 상관이 없다. 


 나는 들며 나며 느티나무에게 말을 건다. ‘너 살아야 돼. 우람하게 자라줘야 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는 내게 친구다. 농부랑 둘만 살면서 느티나무는 더 친한 벗 같은 존재다. 요즘 혼자 노는 날이 다반사인 나는 소설책이나 시집 한 권 들고나가 느티나무 아래 바위에 앉으면 선경이 따로 없다. 사방에서 새가 지저귀고 싱그러운 풀냄새에 야생의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오락가락한다. 배가 출출해지면 국수를 만 양푼을 들고나가 나무 그늘에 앉아 먹기도 한다. 새들에게 국수 가락을 던져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동구 밖에 마을 지킴이로 느티나무나 팽나무, 회나무를 심었다. 고향마을에도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버스를 타고 고향집을 찾을 때마다 그 느티나무에서 땀을 식히며 다리 쉼을 했었다. 승용차가 생기면서 동구 밖 느티나무를 지나쳐버리기 일쑤였지만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는 추억처럼 건재했다. 고향 마을이 현대화되었지만 아파트 사이에 그 느티나무가 아직 건재한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동구 밖을 지키는 나무는 어떤 종류든 동네로 들어오는 악한 기운을 막아주고 동네를 지켜주는 신목이라고 했다. 우리 집 느티나무도 우리 집을 지켜주는 신목으로 오랫동안 살아주길 바란다. 


 느티나무에 앉아 울던 새가 포로롱 날아간다. 저녁 무렵에는 때까치 떼가 날아들고 아침이면 까마귀가 날아들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은 박새, 곤줄박이, 직바구리 같은 새들이 쉬었다 간다. 덩치 큰 까마귀나 비둘기가 마당을 아장거릴 때면 어디서 나오는지 들 고양이가 나타난다. 고양이와 새는 천적인데도 노는 것을 보면 장난치는 어린애들 같다. 새는 아장아장 걸으며 고양이를 약 올리고 고양이는 잔뜩 움츠렸다가 한방에 덮치려고 높이뛰기를 하지만 새는 한 발 빠르게 날쌘 돌이가 된다. 구경꾼인 나는 번번이 박수를 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제 살 방법은 스스로 터득하는 것 같다.


 느티나무는 새들을 품어주는 너른 품이다. 새만 아니라 나도 품어주는 나무다. 삶에는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등치가 굵어진 느티나무도 나름 고비에 부딪힌 것은 아닐까. 가지치기를 해 주면 소생할까. 아직 심각한 것 같지는 않지만 지난해 베어낸 산딸나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느티나무처럼 가지가 하나 둘 말라가고 나뭇잎이 자잘해지고 꽃도 자잘해지더니 한 해가 못 가 숨을 멈추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던 우듬지부터 죽어갔다. 가을이면 가장 먼저 오색 단풍을 달아주고 봄에는 새하얀 십자수 꽃을 탐스럽게 달아주던 나무였다. 이십 수년을 자라오던 나무가 갑자기 숨을 거두자 슬펐다. 죽은 나무를 베어내지도 않고 이태를 그대로 세워두었었다. ‘차나무 때문이야, 차나무 뿌리가 직수니 산딸나무뿌리가 물을 못 먹어 고사한 거야.’ 그랬지만 나무박사가 아니니 산딸나무가 고사한 이유를 알 도리가 없다. 


 혹시 느티나무도 차나무 때문에 목이 마른 것은 아닐까. 느티나무도 그렇게 고사할까 봐 겁난다. 느티나무 앞에는 푸르고 싱싱한 차나무 울타리다. 차 꽃이 피기 시작하니 그 은근한 향이 일품이다. 차나무 때문에 느티나무도 물이 모자라는 것은 아닐까? 한 해가 다르게 무성 해지는 차나무다. 나무는 풀들과 어우렁더우렁 잘 살 것 같아도 사람의 삶처럼 강한 자는 살고 약한 자는 고사한다. ‘느티나무야 덩치 값해라. 차나무에게 밀리지 마. 느티나무야 힘내!’ 기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나보고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사는 작가라고 했는데. 빈말은 아니다. 자연과 함께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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