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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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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Nov 18. 2022

68. 상도를 생각하며

상도를 생각하며  

 

  

 장사의 원칙은 뭘까. 내가 정한 규칙대로 따르는 것이 옳은가. 변수를 만나면 구부러져 줘도 괜찮을까.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은 장사를 잘할까. 거짓말에 서툰 사람은 장사를 잘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내 잣대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장사다. 정해진 규칙대로 끌어가는 것도 요령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집 단감은 맛있으니까 싸게 팔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면 소신껏 장사하는 것이 나다운 처신이다.


 올해 올린 단감 가격을 끝까지 고수하기로 했다. 대신 여러 박스를 선물용으로 주문해 주시는 분께는 소신껏 단감 선물을 보냈다. 어떤 고객은 못난이도 정품 같다며 값을 더 올려도 되겠다는 말씀을 해 주신다. 집을 찾아오셔서 단감을 사 갔던 분이 재 주문을 하면서 ‘살살 녹습니다. 이런 단감 처음 먹어봤어요. 농사 참 잘 지었습니다.’ 칭찬도 서슴지 않는다. ‘농부가 농사는 짓고 저는 판매만 해요.’ 진담이다. 농부가 단감 파는 것에 대해 퉁을 주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잖소. 자꾸 그러면 손 놓는다.’ 엄포를 놓는다.  


 단감과 대봉이 풍년이라지만 수확 철에만 한정된 이야기다. 품질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얼마 전 농부의 친구들 계모임이 있었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남자들이 노래방 타령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연되면서 노래방 출입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었다. 따라갔다. 몇 년 사이 읍내 노래방은 거의 문을 닫고 유흥주점만 눈에 띄었다. 노래방 기기가 있는 거기로 갔다. 기본 사용료에 따라 나온 술과 마른안주와 과일안주가 있었다. 과일 중에 단감이 눈에 띄어 한 조각 입에 넣었다가 그냥 뱉어냈다. ‘이것도 돈 주고 사나?’ 의아했다.


 노래방에 안주로 나온 단감은 돼지우리에 던져주거나 거름에 부어버려야 마땅했다. 그런 단감을 돈 받고 판 사람도 돈 주고 산 사람도 손님 앞에 안주로 내놓은 사람도 상도에 어긋난다. 아무리 유흥주점이지만 손님이 돈을 내고 산 안주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내야지. 단숨에 그 유흥주점 전체가 불결해 보였다. 과일안주만이 아니라 마른안주조차 입에 넣지 않았다. 조명이 어둡다고 이럴 수는 없어. 노래만 목 터지게 부르고 나오며 선술집 아우를 생각했다. 아우네 선술집에 손님이 많은 이유는 맛깔스러운 음식과 넉넉한 오지랖이 아닐까.


 선술집 아우는 단감 철만 되면 미리 전화부터 한다. ‘언니, 단감 언제 따? 못난이 나오면 즉각 갖다 주기.’ 기다리라는 내 말에 ‘시장에 단감 쌔빘더라. 아저씨 보고 빨리 따라고 하셔.’ 아무리 그래도 농부는 마이동풍이다. ‘맛이 들어야 따지.’한다. 그 아우네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내 입에 맛없는 걸 손님 앞에 어떻게 내놔.’ 그 양심이 손님을 끓게 한다. 우리 집 못난이를 사흘들이 서너 망씩 주문한다. ‘또 야? 어제 갖다 줬잖아.’하면 ‘언니 집 단감은 금세 바닥나. 손님이 자꾸 달라는 바람에 본전도 못 뽑겠다. 너무 맛있는 것도 죄야.’ 그러면서 또 시킨다. 선술집 아우가 한 번 더 된 사람으로 각인된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읍내에서 지인을 만났다. ‘올해는 단감 안 먹어요?’ 물었다. ‘어, 단감농사 안 짓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다. 나는 글을 썼었다. 올해는 단감농사 안 짓는다고 만천하에 알렸다. 임대했던 단감 과수원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고 농부는 다시 양봉업에 도전장을 냈었다. 단감농사보다 쉬울 줄 알았던 양봉은 더 까다로웠다. 농부는 양봉에는 초짜 농군이지만 단감농사에는 노련한 농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우리가 짓던 단감농사를 이어받은 청년이 초짜 농군이라 가르쳐야 할 것이 많았다. 농부는 고민하다 양봉을 접었다. 양봉은 적성에 안 맞는다 했다. 농부는 단감농사 초짜 농군을 가르치는 숙련된 농군으로 돌아섰다. 단감 농사는 일 년 농사다. 겨울 가지치기부터 다음 해 가을 수확까지. 우리가 임대했던 감산의 5분의 1을 다시 지었다. 문제는 초짜 농군이 마당발이라 농부처럼 단감농사 하나에만 골인을 못하고 다목적 영농을 꿈꾼다는데 있었다. 가르치는 스승은 애가 닳아도 배우려는 제자는 천방지축이니 답답할 수밖에. 


 아무튼 단감 수확 철이 되었다. 나는 내 홈과 카카오스토리에 단감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어떤 지인이 전화를 했다. ‘올부터 단감농사 안 짓는다고 하더니 다시 지으신 거예요?’ 팍 줄여지었다고 말했다. 농부가 짓는 단감은 때깔은 안 나도 맛은 여전하다고. 시중에 단감이 나온 것을 보고 우리 집 단감 맛을 생각했다면서 반색을 하며 주문을 했다. 부득이 가격을 올렸다고 했더니 맛만 좋으면 된단다.


 그렇게 단감 수확을 했고 오늘 마지막 작업을 했다. 딸과 셋이 해도 무방할 마무리였지만 사람을 쓰기로 했다. 강 처사 부부도 부르고 부산 형님도 불렀다. 해마다 우리 집 단감농사를 도와주었던 이웃이다. 단감 선물도 할 겸, 점심도 같이 할 겸 부른 것이다. 오전에 단감 작업 마무리를 했다. 후련했다. 점심은 밖에서 먹었다. 단감농사 적게 지으니 일은 수월했지만 곳간은 찰 것이 없었다. 농사 적게 짓는다고 해마다 퍼내던 곳간 안 퍼낼 수도 없다. 퍼낼 수 있어 좋지 아니한가. 3백 주가 넘는 단감나무 농사지을 때에 비하면 넉넉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눌 것이 있어 좋기만 하다.   


 단감 판매는 장사꾼 마음이지. 작은 굵기를 보내라고 했는데 큰 굵기를 보낸 집도 있고 가장 굵고 좋은 것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못난이 좋은 걸 보낸 집도 있다. 입금된 금액을 보고 깜짝 놀라 전화를 했더니 주문자가 선물하는 것이라 좋은 걸 보내라고 했었단다. ‘우짜꼬 예? 못난이 좋은 거 보내라는 걸로 들었습니다.’했다. 주문자는 선물 보낸 집에 확인을 하고 다시 전화를 주었다. ‘단감이 굵고 참 맛있다고 좋아합디다.’한다. 남는 금액을 돌려드리겠다고 했더니 단감 한 상자를 더 보내 달란다. 모자라는 금액은 입금하겠다고. ‘아니 예. 제 실수니 나머지 단감은 선물입니다.’했다. 돈은 이미 입금됐고, 단감은 갔으니 어쩌겠나. 복불복이라며 웃어넘겼다. 


 우리네 삶은 단순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왜 생겼겠는가. 손님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신뢰가 쌓이고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비록 농부에게 ‘자알 한다. 니 맘대로 하소.’ 욕을 먹긴 했지만. 나는 돌아서서 혀를 쑥 내밀며 ‘삶은 정해진 틀이 없잖우. 사람은 실수하면서 늙는 거야. 그런다고 실없는 사람이 되진 않아. 내 줏대대로 살면 돼. 너무 비싸다 싶으면 좀 싸게 주면 되고, 너무 싸다 싶으면 좀 비싸게 받으면 되는 거야. 대신 당신도 나도 잘 퍼주잖아. 오늘은 몽땅 선물만 보내도 행복한데 뭐. 어떤 친구에게 못난이 한 박스 선물로 보냈는데 세 배 값을 입금시켰더라. 둘이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그래서 세상은 살 맛 나는 거지. 정으로 사는 재미라고나 할까.’ 중얼중얼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오후에 못난이 사러 온 지인이 가래떡을 두 봉지나 주고 간다. 나는 호박순 한 봉지 따 줬다. 물론 넉넉하게 못난이도 줬다. 오늘이 가래떡 데이란다. 복 받을 겨. 빼빼로 데이보다 훨씬 한국적이라 좋다. 쫀득쫀득한 가래떡을 참기름에 쿡 찍어 먹으며 희희낙락한다. ‘이런 재미로 사는 겨. 손익 계산 너무 따지면 뇌경색 일어나니 적당히 하고 삽시다.’ 농부는 또  ‘니 맘대로 하소.’ 퉁을 준다. ‘고맙습니다.’ 나는 공손하게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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