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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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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Nov 24. 2022

69. 마음 챙김의 시간

마음 챙김의 시간   

  

 농부가 문화원에서 시행하는 선비문화체험을 떠났다. 문화원까지 배웅하고 KT전화국에도 들리고 한전 의령지부에도 들렸다. 전화국에는 집 전화가 불통이라 고장신고를 하러 갔고, 한전에는 돌아가신 시아버님 앞으로 나오는 전기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서다. 시어머님이 살아계시니 시댁 전기를 끊을 수는 없고 시어머님 명의로 돌려놔야 할 것 같다. 일단 밀린 전기세 고지서만 받아 나왔다. 농협에 들려 전기세를 납부했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를 쓸고 닦을 일이 많다. 번거롭다 생각하면 번거로운 일이지만 수순이다 생각하면 당연하다. 내가 죽은 후에 내 자식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농부가 시킨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나는 혼자 있어야 내가 할 일을 차근차근 한다. 습관이 무섭다. 혼자 있어야 머릿속이 맑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서정연해진다. 그냥 책이나 읽고 빈둥거려도 되지만 온종일 종종걸음 친다. 


 단감주문 들어온 것을 선별해서 포장작업을 해 놓고 도토리묵을 끓이기 시작했다. 도토리묵은 솥 바닥에 눌러 붙지 않게 잘 저어가며 뭉긋하게 오래 끓여야 찰지다. 올해 두 번째 끓이는 도토리묵이다. 농부가 주워 온 도토리를 방앗간에 가서 갈아다가 걸렀었다. 가라앉은 앙금 중 3분의 1은 끓이고 3분의 2는 페트병 몇 개에 나누어 담아 저장고에 뒀었다. 쑤었던 도토리묵이 바닥났지만 묵 쑬 여유가 없었다. 어른들 말씀에 도토리앙금은 쉽게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간하게 간도 됐으니 저온 창고에 두어도 오래 간다. 


 그 중 세 병을 꺼냈던 것이다. 오른 팔은 힘을 가하면 불편하다. 채를 쓴다거나 무거운 것을 든다거나 할 때 조심해야 한다. 도토리묵 젓는 것도 중노동이다. 농부가 있으면 도와주겠지만 없는 게 편할 때도 있다. 잔소리 안 듣고 내 자유의지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좋다. 도토리묵을 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량의 물이다. 도토리묵이 알맞게 쑤어졌다. 묵 색깔이 진해지면서 부풀린 껌이 탁 터지듯이 팔딱팔딱 튀어 오를 때까지 저어준다. 찰진 느낌이 들면 묵 중앙에 주걱을 세워본다. 반듯하게 선다. 되직한 것이 알맞다. 양푼에 부어 식혀 놓고 돌아보니 점심때가 지났다.


 라면을 볶는다. 볶음 라면은 농부가 만들어야 맛나다. ‘안주가 있으니 술 먹어야지.’ 툭하면 부녀가 볶음라면을 놓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엄마는 살쪄. 안 줄 거야.’ 말만 그렇다. ‘한 입 주면 안 잡아먹지’ 옆에서 재롱부리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볶음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어준다. 어찌나 맛난지 뺏어 먹고 싶지만 참기 일쑤다. 야식을 해도 살이 안 찌는 부녀가 얄밉다. 그 딸도 없고, 농부도 없는 날이다. 볶음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수영장에 다녀왔다. 지난해 이맘때는 일꾼과 단감 작업한다고 기진맥진이었다. 농사 줄이니 좋네.


 아랫말 농부 친구도 단감농사를 짓는다. 혼자서 북치고 장고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도매상에 올리면 가격이 형편없다고 길거리 장사를 한다. 수북하게 쌓인 단감박스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단감도 숨을 쉬는 생물이다. 빨리 처분하는 것이 낫다. 단감은 물러지면 똥 된다. 그렇다고 남의 일에 나설 수도 없다. 주인이 알아서 하겠지만 주말부부로 사는 그들, 이럴 때 아내가 와서 도와주면 좋을 텐데. 남의 가정 사 알 수도 없지만 알 필요도 없다.  


 또 다른 농부 친구의 며느리가 찻집을 개업했다. 개업 인사차 들렸다. 빵도 구워 전시했다. 빵과 커피를 시켰다. ‘단감 참 맛있어요.’ 솜씨 있고 예쁜 애기엄마가 인사를 한다. 친구들에게 광고했단다. 며칠 전 개업 인사차 단감 한 박스를 선물했었다. 농사 많이 지을 때는 지인들에게 10키로 박스를 선물했지만 올해는 5키로 박스를 선물하기로 했다. 단감농사는 5분의 1로 줄였는데 해마다 선물할 곳은 그대로다. 단감 판매용과 선물용이 비등하다고 농담을 한다. 그래도 먹고 살면 된 거지.


 근 3주 동안 단감작업을 돕고 간 딸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 ‘얼마 주랴?’ 물었다. ‘엄마, 괜찮아. 대신 여기저기 내 지인께 단감 선물 많이 했잖아. 오히려 내가 돈 드려야겠다.’한다. 단감 수확 철에는 경비도 푸지게 든다. 단감 팔아 경비 쓰니 남는 장사도 아니다. 농부는 ‘단감 팔아 지가 다 독식하면서.’ 서운함을 비친다. ‘퍼주라며? 돈은 왜 챙겨? 장사는 내가 하는데. 당신은 한 푼도 안 줘.’ 말만 그렇다. 솔직히 나는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외모를 꾸밀 일도 없고 나들이할 일도 많지 않다. 유일한 것은 외식이다. 밥하기 싫을 나이다. 


 내 통장에 들어온 단감 판 돈 뽑아 남편 통장, 딸 통장에 나누어주니 내 통장에 남는 것이 없다. 아들이 걸린다. 가정 학습 기간에 돕고 갔었다. 아들에게도 용돈 조금 보내자고 했더니 ‘봉급 받는 아들에게 용돈이라니?’ 농부가 째려본다. ‘돈 모아 뭐할래? 어차피 우리 죽고 나면 재산은 애들이 갖잖아. 살아있을 때 나눠 주는 게 낫지. 우리 힘들면 애들이 돈 보태줄 거고. 뭔 걱정.’ 나는 돈 들어오는 재미도 좋지만 돈 나누어주는 재미가 더 좋다. 삐기 통장 잔고가 바닥 칠 때 가슴 졸였던 지난날 생각하면 지금 나는 부자다. 더하기 잔고니까.


 농부는 ‘당신 인공관절 언제 할 건데? 병원비는 있어야지.’한다. ‘안 해. 이대로 살다 죽을 거야.’ 간단하게 답한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라지만 생명 연장하며 살 생각은 없다. 나는 굵고 짧게 살고 싶었다. 환갑 지날 때까지 살 거라는 생각 안 했다. 이순 후반에 접어드니 길게 산거다. ‘나이 더 들어봐라. 살고 싶다고 노래 안하면 장땡이지.’ 그 말도 인정한다. 주변 노인들 보면 대부분 그랬다. ‘이 좋은 세상 더 살아야지. 왜 죽어?’ 날마다 병원 다니며 주사 맞고 물리치료 하는 낙으로 살던 노인이 어느 날 유명을 달리하거나 요양원에 들어가 명보전만 한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탐닉>에서 말한다. 늙어가는 것이 두렵다고. 늙고 싶지 않다고. 오십 밑 전에 삼십 중반의 러시아 유부남을 만나 뜨겁게 사랑하다 헤어진 이야기다. 작가로서 돈과 명예를 가진 그녀는 젊은 애인에게 모든 애정을 쏟지만 육체적 탐닉도 겨우 일 년 만에 끝난다. 일기 형식의 <탐닉>은 육욕과 질투와 의심과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고통당하는 중년 여인의 갈망을 담은 작품이다. 자전적 이야기라지만 보편성을 염두에 둔 작품이다. 식상한 점도 있다. 젊은 남자를 애인으로 둔 작가기 때문에 그런 일기를 썼을 것이고 책으로 묶으면서 보편성에 중점을 두지 않았을까. 작품 속에서 그 남자 때문에 운다. 울었다. 표현이 많이 나온다. 과연 울었을까? 찢어지는 마음을 표현한 낱말에 불과하지 않을까. 


 예순 후반에 접어든 나는 무덤덤하게 그 소설을 읽고 있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도 별 감흥이 없다. 그런데도 끝까지 완주하게 만드는 힘은 뭘까. 일기라는 형식으로 한 남자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 그 남자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비싼 선물과 성적 탐닉일 뿐이지만 그녀는 그 남자를 죽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열정만으로 그녀가 평범하지 않은 작가라는 인식을 가진다. 18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고, 두 아이를 둔 유명작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소설로 쓰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쓴다는 그녀, 평범한 글쓰기가 평범하지 않은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내면을 적나라하게 글로 표현한 것에 있지 않을까.  


 어둠이 내린다. 택배기사가 다녀가고 계란말이 덮밥을 해서 먹었다. 아니 에르노의 <탐닉>을 완독하고 창밖을 봤다. 밤하늘이 해맑다. 혼자 있어도 혼자인 것 같지 않음은 여유를 가질 수 있어 그럴까. 틱낫한 스님을 생각한다. 고요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 챙김이 된다고 했다. 말벗이 없는 혼자 있는 시간이 그렇다. 마당의 어둠도 가만히 바라보면 그 속에 든 사물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산 그림자, 나무 그림자, 집 그림자,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 소리, 밤새가 지저귀는 소리,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떠오르는 달빛조차 고요하다. 거치적거릴 것 없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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