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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21. 2022

74. 새 달력을 보며

 새 달력을 보며     


  ‘새해엔 꽃길만 걸어요.’ 우리 집에 배달된 2023년 새 달력에 적힌 글이다.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 꽃길만 걷다 보면 꽃길인 줄 잊어버리고 엉뚱한 길을 찾지 않을까. 꽃길만 걷다 보면 꽃길이 아니게 된다. 감탄사는 잠깐이다. 시나브로 식상해지고 무심해지고 무능해진다. 항상 첫 마음으로 살라한다고 살아지던가. 인생은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굽이굽이 포진해 있을 때 희망도 생기고 열정도 생긴다. 꽃길만 있다면 금세 무미건조해진다.

 

 엊그제 뉴스에서 대기업 자식들이 마약에 빠졌다가 무더기로 입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마약을 하는 이유는 뭘까.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고독 아닐까. 마음은 풍족한 돈만으로 채울 수 없는 심연이다. 화려한 겉과 달리 빈약한 속이다.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마음을 마약에 의지한 탓이다. 어렵고 힘든 고비 없이 이루어진 것들은 바람 한 줄기에도 허물어지는 모래성이다. 마음의 양식을 찾아라. 인문학의 부재라는 현대사회를 생각한다. 

 

 반면 카타르 도하에서 대한민국 축구팀이 16강에 진출했다.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2002년 월드컵 때를 떠올린다. 그때는 나도 열렬하게 대한민국을 외쳤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자정에 시작하는 축구 경기를 보지 못했다. ‘내일 아침이면 결과를 알겠지.’ 잠자리에 들었다. 농부는 나와 달리 끝까지 축구경기를 봤나 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16강 진출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제 시작인데 4강까지 갈 수 있을까?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세상을 뒤집어주면 좋겠다.’ 그래야 기적이라고 외칠 수 있지 않을까. 축구팀 그들은 모두 스타다. 즉 별이다.  

 

 우주에 뜬 별은 멀지만 반짝인다. 별은 누구나 달 수 없다. 누구나 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귀하다. 아름답고 소중하고 도드라지는 것이다. 별이 된 사람은 그냥 되지 않는다. 남이 알아주거나 몰라주거나 한 길을 매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라고 본다.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칠전팔기 정신을 가졌기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것을 갖는다는 것, 어떤 목표를 세워 도전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면 그 사람은 이미 별이다. 누가 별이라고 치켜세워주지 않아도 누가 별인 줄 몰라줘도 상관없다. 

 

 2023년 새 달력을 벽에 건다. ‘새해엔 꽃길만 걸어요.’ 희망사항이라 좋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문장보다 낫다. 새해엔 꽃길만 걸을 수 있길 바란다. 어차피 노년으로 가는 길이다. 평탄한 길이 꽃길이다. 꽃이 봉오리일 때나 만개했을 때나 질 때나 그 길은 꽃길이다. 한 때 특별한 삶을 살고 싶었다. 작가로서 우뚝 서고 싶은 욕망도 가졌었다. 그 욕망에 부합되지 못했을 때 좌절을 맛봤다. 내 우유부단을 탓할 때도 있었고, 내 그릇이 작다는 것을 인정할 때도 있었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평범한 삶이 특별한 삶이라고 내가 나를 다독거렸다. 지금 나는 잘 살아왔고 잘 살다 갈 것이라고 믿는다. 

 

 벽에 걸린 달력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새해엔 꽃길만 걸어요.’ 꽃이 방그레 웃는 것 같다. 내게 꽃은 한창 물오른 남매다. 남매가 어떤 삶을 살든 그 삶의 가치를 깨닫고 보람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여보, 내년에는 우리 꽃길만 걸어요.’ 농부의 손을 장난스럽게 잡아본다. 농부가 빙그레 웃는다. 남은 나날 우리는 우바이 우바새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길이 꽃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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