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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30. 2022

76. 한파다. 꽁꽁 어는 날

 한파다. 꽁꽁 어는 날    

 

  동장군이 제대로 강림한 것 같다. 바람이 살을 엔다는 말을 실감한다. 햇살이 환해도 간밤에 온 눈은 언 채로 해거름을 맞았다. 내 저질건강은 겨우 열흘인데도 표를 낸다. 입술이 부르텄다. 군불 때고 난로에 불 피우고 수영장 다녀오고 책 보고 영화 보고 빈둥거리는 것이 일관데도 몸에 부담이 가는 것인지. 날씨에 따라 뼈마디의 움직임이 굳는 증상을 느낀다. 골짝 호스가 얼어버릴까 봐 걱정이다. 

 

 읽다만 소설책을 다시 잡았다. 남들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상류층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소설집이다. <우시아로 가는 길> 우시아는 본질, 실체라는 뜻이란다. 군사정권 때 반정부 시위를 했던 학생들 이야기와 교수들, 판검사들, 정치권에 있는 권력자들, 그들 자녀의 무소불위의 삶과 실체, 인성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그들 세계를 잘 아는 서술자다. 연작 소설이다. 

 

 어떤 책이든 읽으면 배우는 것도 있고 삶의 이치를 깨닫는 점도 있다. 그 소설은 나와 다른 삶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농촌 삶과 전혀 다른 삶의 엿보기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며 공부하는 영재가 있었다. 교수는 똑똑한 그 학생에게 유학을 가라고 권했다. 영재는 국가에서 주는 학비는 받을 수 있지만 유학 가서 지낼 생활비가 없다고 했다. ‘왜 돈이 없어? 그냥 가면 되지’ 교수는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영재는 가슴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교수는 한 번도 돈이 아쉬웠던 적이 없는 거부의 딸이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 중 가난한 집 자식은 실제 가난한 삶보다 상대적 빈곤에 고통당한다. 그것을 극복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본인이다. 삶은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가야 할 장소다. 욕심 낸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좌절감도 크다. 그 좌절감을 이기고 욕심을 버리거나 자신이 가진 만큼에 만족한다면 행복의 질이 높아지지 않을까.

 

 저녁에는 아랫말 지인의 집에 제삿밥을 먹으러 갔다. 벌써 5년인가. 해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의 제사 파지 날이면 저녁 먹으러 오라고 청한다. 음식 솜씨 좋은 그녀는 정갈한 밥상을 차려낸다. 부침개도, 생선도, 탕국도, 갖은 나물도, 삶은 문어도, 돼지고기 수육도, 김장김치도 입에 착착 붙는다. ‘또 과식하게 생겼네. 울 영감 몫까지 먹어야 하니까.’ 올해는 이웃집과 우리 집 부부만 청했다. 그녀도 누군가를 초대해 밥을 대접하는 것이 힘에 부칠 나이가 되었다. ‘난 밥하기 싫어. 농부가 없으니 대충 때운다.’ 속내를 비쳤더니. ‘밥 하기 싫다는 아지매들 보면 이상해. 반찬 만드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데.’한다. 아직 젊구나. 마음으로 보는 젊음이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 같다. 살을 에는 바람이다. 제삿밥 푸지게 먹었지만 어둠만 가득 찬 집은 쓸쓸하다. 농부의 자리가 자꾸 넓어 보인다. 혼자 있으면 참 편하고 좋을 것 같았는데. 막상 혼자가 되니 농부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힘든 일을 하지 않는데도 입술이 진다는 것은 내 몸에 무리가 간다는 뜻이다. 농부 덕에 참 편하게 살았다는 자각을 한다. 농부는 어떨까. 마음가짐이 어떻게 변해 올지. 기다리는 내 마음과 반대면 조금 더 쓸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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