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단편 소설>
양지골 밤꽃 냄새
한 노인은 이름이 덕수요. 택호가 덕천이다. 동네에서는 덕천 양반으로 불린다. 그는 양지 골 장사다. 아직도 그는 동네에서 유일한 상일꾼이다. 동네 힘쓰는 일에 그가 빠지면 일이 안 된다는 말이 나돌 만큼 건장한 노인이다. 일흔둘이지만 흰 머리칼이 새치 정도 나 있을 뿐이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는 작달막하지만 딱 벌어진 어깨는 보기에도 힘깨나 쓰게 생겼다.
그 양반이 요즘 바람 든 봄 무처럼 속이 헛헛하다.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따끈따끈하게 군불 땐 사랑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 봐도 발 구린내만 난다. 애꿎은 담배만 줄기차게 피워 대니 서너 평 남짓한 사랑방이 온통 노린내에 절어 퀴퀴하다.
아내는 담배 냄새 지독하다고 아예 안채에서 내려오지도 않는다. 식탁에 밥상 차려놨다고 들어와 밥 먹으라고 고함만 치고 제 볼일 보기 바쁘다. 어쩌다 손이라도 잡아 보자면 이 영감쟁이가 못 먹을 것을 먹었냐며 퉁을 주고 등을 돌리기 일쑤다.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늙은 아내는 통 합궁할 뜻이 없다.
한 노인은 아직 마음은 청춘이다. 육체 또한 장년들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 날마다 그렇지는 않지만 새벽이면 비아그라 없어도 불 두둑이 근질거리고 거시기에 불끈 피가 몰린다. 땅 심 뚫고 올라오는 고사리처럼 속곳이 불룩해지면 여자 살 냄새가 그립다. 늙은 아내 냄새나는 샅이라고 문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 노인은 육덕 푸짐한 미스 킴의 엉덩이를 만지는 중인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도끼눈이 된 아내 얼굴이 불쑥 들어온다. ‘엇 뜨거라.’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니 꿈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단 담배부터 물었다. 담배연기 한 모금을 목구멍 깊숙이 삼키는데 머릿속은 온통 미스 킴의 달덩이 같은 궁둥이만 어룽거린다. 다시 사타구니가 뻣뻣해진다. 그는 담배를 물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새벽바람에 실려 오는 것은 시큼 텁텁한 것도 같고, 새콤달콤한 것도 같고, 비릿한 것도 같은 밤꽃 냄새다.
‘허, 벌써 밤꽃이 훨훨 피었나 보네. 그 냄새 참 지독하다. 에이 참.’
한 노인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아직도 뻣뻣한 사타구니를 내려다봤다. 아내 생각이 간절하지만 안채에 올라가 봤자 퇴짜 맞을 건 뻔한데. 그래도 밀고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젊어서는 무척이나 밝히던 여자 아니었든가. 아내는 미인이랄 수는 없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눈웃음 살살 칠 때 보면 총각들 마음깨나 울렁이게 했을 것이다. 젊어서는 딴 사내 앞에서 눈웃음쳤다고 으르렁거린 적도 있지만 아내는 순종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는 거세기가 병아리 깐 암탉 같다.
한 노인은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면서 생각했다. 오십이 넘으면 여자는 남자 같아지고, 남자는 여자 같아진다고 하는 말을 그는 믿지 않았다. 아내는 60이 넘어도 다소곳하고 순종적이던 것이다.
‘그 못돼 처먹은 의사 놈이 무슨 짓을 한 기라. 틀림없이. 안 그라고는 저럴 리가 없는데.’
양지 골에서 한 노인 내외 금실 좋다는 소문은 진작 나 있었다. 자식들 짝 지어 내 보내고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때도 두 사람은 신혼 같았다. 그런 아내가 몇 년 전 자궁을 덜어내고는 서서히 남편을 꾸어다 둔 보릿자루처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자기는 여자 아니라고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살갑게 굴던 아내가 자꾸 억세지는 것이다.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우리 한 분 하자.’ 이렇게 운을 떼면 그만 ‘지금 성이 나 죽것는데 무슨 소리 하요? 넘세스러버라.’하면서도 다소곳이 대 주던 여자가 지금은 ‘늙어 감서 주책만 늘어서. 무슨 남자가, 나이 값 좀 하소. 마당의 개가 웃소.’하면서 밖으로 힁허케 나가 버렸다. 그러다 보니 부부 싸움이 잦아졌지만 그는 아내의 기를 꺾을 재간이 없었다.
한 노인은 일전에 회자되던 ‘죽어도 좋아’라는 요상한 영화의 주인공이 부러울 때가 많다. 억세게 운 좋은 늙은이라고 구시렁거리다가 그놈의 의사가 아내 자궁 덜어내고 그 자리에 못된 성질 주머니를 달아 준 것은 아닌가. 또 의사를 미워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동안은 각방도 안 썼지만 억지로라도 남편 청을 받아주려고 애를 쓰는 것 같더니 이제는 아예 대 놓고 옆에도 못 오게 하는 것이다. 사실 같이 자다 보니 자꾸 아내 살맛이 그리웠다. 잠이 들면 습관적으로 손이 아내의 샅으로 들어갔다. 얼마 동안은 살그머니 빼내거나 돌아눕더니 나중에는 성질 확 부리면서 ‘내가 나가 까요? 당신이 나갈 라요?’ 윽박지르는 바람에 결국 그는 사랑으로 쫓겨난 것이다.
‘이 여편네가 고마 가만히 대 주기만 해도 되는데 송충이 붙은 것처럼 난리 벅구를 지니. 참내,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올 줄 우찌 알았노.’
하지만 이 날 새벽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내 살 냄새가 어찌나 그립던지 속곳 바람으로 슬그머니 안채로 들어갔다. 아내 불 두둑이라도 만져 보고 나와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현관문도 방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창문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새벽빛에 방안을 살피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내가 이불도 차 내고 고쟁이만 걸친 채 팔자 좋게 늘어져 자는 것이 아닌가. 속곳을 벗어던지고 아내 옆에 누웠다. 아내의 샅에 손을 쓱 밀어 넣었다.
“아이쿠 옴마야 이기 머꼬?”
아내가 깜짝 놀라 잠을 깼다.
그는 ‘내다 내.’하면서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이 양반이 미쳤나.”
아내가 매몰차게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발딱 일어나 불을 켰다.
“불은 말라고 키노. 전기세 아깝고로.”
그는 무안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이불에 처박았다.
“머 하는 짓이요. 내리 가소 퍼떡.”
아내는 쌀쌀맞기가 얼음 바람이다.
“임자가 자꾸 이러마 내 날 새자마자 딴 데 가서 일 보끼다.”
“날 샐 때까지 말라꼬 지다리요. 지금 당장 갈 데 있으모 가소. 퍼떡 안 가요?”
손사래까지 치면서 내쳤다.
그는 그만 풀이 죽었다. 칼자루를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봐야 하는데. 자신의 거시기가 먼저 고개를 푹 숙여 버렸으니 아내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내가 결기를 세우면 세울수록 더 빳빳하게 독이 오르던 물건이 순식간에 푹 꼬꾸라지니 그것도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 아닌가.
“간다. 가. 쭈구랑방테이 겉은 기 그래도 지가 여자라꼬 뻗대기는. 장미다방 미스 킴한테나 가야겠다.”
벗어던져 놨던 속곳을 찾아 입고 방문을 열고 나와서는 탁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뭐요? 장미다방 미스 킴! 그래, 가 보소. 신 새벽에 가면 아이쿠 서방님 쿠고 반기 것소. 그년이 정신 나간 년 아니면 고래 장을 하고도 남을 영감을 좋아나 할까. 영감은 돈이 아까바서도 그 딴짓 못할 위인이요.”
괜히 장미 다방 미스 킴을 팔았다가 아내의 결기만 세워 놓고 나온 꼴이다.
마당에 내려서니 추웠다. 속이 불덩이처럼 뜨거울 때는 몰랐는데. 새벽바람이 제법 차다.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일로 잔뼈가 굵었다. 막일이라면 지금도 젊은이보다 낫다. 더구나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이니 집을 보수하거나, 담장을 쌓는 일이나, 논밭에 경운기를 부리는 일이나, 거름을 내는 일에도 그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일 좀 해 달라고 부르는 곳이 많아 쉴 틈이 없는 사람이다. 옛날 같으면 품앗이를 하지만 요즘엔 삯일이다. 장골 하루 일당이 육칠만 원쯤 되니 벌이가 꽤 괜찮은 편이다. 동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조선 천지에 돈이 씨가 말라도 그 집 곳간에는 돈이 있단다.
한 노인은 훤하게 밝아 오는 동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돈이 아깝다고? 천만에. 인자 돈 안 아깝다. 내 죽고 나모 돈이 다 무슨 소용이고, 싸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돈 모아 놔 봤자 자슥들 쌈박질이나 할 낀데. 내사 마 돈 있는 거 다 씨고 죽을 란다.”
“잠 다 깨와 놓고 나가더이 뭔 청승이요? 돈 다 씨고 죽는다 꼬요? 온제는 초상비 맹글어놓고 죽어야 한다꼬 노랭이짓 하더마.”
“초상 비 겉은 소리 한다. 내 죽어 삐모 고만이고, 명 떨어진 고깃덩이 꺼다 내삐모 되제. 상포계는 여 놨다 아이가. 그람 된 기제. 예부터 말이 있다. 혼사는 빚지는 장사지만 초상은 남는 장사라고 했다. 할망구가 대 주다 안 함서 강짜는. 내 이 참에 새파란 색시나 얻어 볼란다.”
“맘대로 하시구랴. 심도 못 쓰는 영감쟁이 누가 좋다고. 내 겉은께 평생 살아 조옷제.”
“머! 심도 몬 쓴다고? 베에그라 한 알만 무모 하루 죙일 서 있다더라.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약 안 묵어도 벌떡벌떡 선다. 구멍이 센통찮다는 소리는 죽어도 하기 싫제?”
“누가 듣것소. 흰소리 고마 하고 산밭에 가서 고치 순이나 따오던가. 콩밭이나 좀 매고 오던가.”
한 노인은 아내가 닦달하지 않아도 산밭에 갈 요량이었다. 잠은 다 날아갔고, 다시 잠을 청한다고 올 것 같지도 않으니 밭에나 갔다 오는 게 상책이었다. 그는 댓바람에 삼각괭이를 들고 고샅을 나섰다. 콩밭이나 긁다가 올 심산이었다.
칠십 평생을 살았지만 사는 게 참 허랑한 이즈음이었다.
사실 얼마 전 절친했던 죽마고우 최 노인이 죽었다. 그것도 노인 전문 요양원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죽어 나온 것이다. 이웃에 혼자 사는 윤 노인처럼 아내 먼저 떠나보내고 오륙 년을 혼자 살아온 영감이었다. 이웃 마을에 살지만 늘 왕래가 잦았던 탓에 한 노인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살만큼 살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모르지 않건만 막상 가장 믿고 의지했던 친구가 이승을 떠나자 그 충격은 보통 이상이었다. 그것도 제 명대로 못 살고 분통이 터져서 죽은 것 같으니 더 마음이 아팠다.
최 노인은 아내가 살았을 때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복 많은 영감님’ 소리를 들었다. 아들이 다섯이나 되니 아내 복에, 자식 복에, 식 복까지 타고난 갖출 것 다 갖춘 부러운 영감이었다. 그러다 아내 떠나보내고 혼자 남게 되자 하루가 다르게 늙어갔다. 동네 사람들도 ‘저 복 많은 영감님이 며칠 안 본 새에 팍삭 쪼그라들었네.’라며 혀를 찰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혼자 너끈히 잘 지내오는 것 같더니 덜컥 병이 났던 것이다. 막내아들이 모셔다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집으로 왔다.
한 노인은 최 노인이 다 나아서 온 줄 알고 병문안을 갔더니
“자네, 자석들한테 재산 남겨 줄 생각 말게. 그게 다 헛거야. 돈 모아 두지 말고 영감 할멈 힘 남았을 적에 대명 산천 구경도 다니고, 먹고 싶은 것도 찾아 댕김서 사 먹고 하게. 효자 아들 열 명보다 악처 한 명이 낫다네.”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던 것이다.
“왜 그러나? 너거 자슥도 효자 아닌가. 아푸고 난께 마누라 생각이 간절한가 보네 그려.”
“그게 아닐세. 벌써부터 내 죽고 나면 재산 갖고 가겠다고 서로 난리라네.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다섯 며느리가 돌아가면서 압박을 가하네. 죽기 전에 저거들 모가치 챙겨 달라고 말일세.”
“설마 그럴라고. 촌살림 따시다 해도 자네 아들들 보기엔 푼 돈 밖에 안 될 텐데.”
“그게 그렇지가 않으이.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애들이 향우회다 뭐다 감투를 쓰고 있지 않는가 말일세. 저기 구시 골 우리 선산이 있는 자리 말일세. 거기가 골프장 개발지역으로 선정되었다지 않나. 그 아래 종답 여남 마지기 있는 것도 다 들어간다네.”
“그런 소문은 들었네만 확실한가?”
“그런가 보이.”
“그것 참, 골프장이 뭔지 모르지만 산 하나를 작살낸다고 젊은 사람들은 싫어하던데. 더구나 자네 자식들은 출세한 축에 들지 않는가. 그러니 고향을 지키는데 앞장서야 할 처지 아닌가 말일세. 더구나 다 살만 하다고 들었는데.”
“그런데도 병든 아비 하나 모시겠다는 자식은 없네.”
자식들이 못 살면 모르나 다섯 명이나 되는 아들이 모두 일류 대학 출신인 데다 대기업이니, 경찰청이니 해서 굵직굵직한 감투를 쓰고 있었다. 노인 한 사람 봉양 하지 못할 조건도 아니었고, 돈이 아쉬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최 노인이 막상 퇴원을 하게 되자 며느리 중에 누구 한 사람 ‘아버님, 우리 집으로 가세요. 제가 모시겠습니다.’하는 며느리가 없더란다. 병원 특실에 누웠을 때는 간병인까지 대어 놓았는데도 날마다 출퇴근을 하다시피 들며 나며 알랑방귀를 끼어 ‘어쩌면 노후에 저렇게 행복한 노인이 있나’ 하는 소리까지 듣게 만들더니 퇴원하기 며칠 전에 큰 아들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더란다. ‘아버님, 촌에 가서 혼자 계시기 힘든데 요양원에 들어가심이 어떨지’하면서. 그 순간 세상을 헛 살아온 것 같더란다.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등 떼기에 땀 마를 날 없이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아들을 다섯이나 두고 요양원이라니. 자기보다 먼저 죽은 아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란다.
“그래서 집으로 가자했네.”
최 노인은 그럭저럭 지내다가 다시 자리보전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아들네로 다시 병원으로 다시 이 집 저 집 한 달 두 달, 돌아가면서 자식들 집을 전전했지만 끝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24시간 간병인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가까운 친 인척 되는 사람들이 끼니를 챙겨 준다지만 그 일이 어디 쉬운가.
결국 최 노인은 전문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끝내 자신의 집에서 죽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최 노인을 억지로 요양원에 보내자 그 충격으로 요양원에 들어가자마자 그 다음날 이승을 하직했던 것이다.
최 노인이 죽고 나자 자식들 간에 재산 싸움이 벌어졌다. 모두 살만 한데도 서로 더 차지하려고 법정 투쟁을 벌인 것이다. 한 노인이 보기에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문이나 뉴스 가십 거리로만 알았던 일이 실지로 이웃에서, 그것도 가장 친했던 친구 자식들 간에 벌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 우리 내외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기운 있을 때 합방도 뻔질나게 하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정도로 건강할 때 가 보고 싶은 곳 찾아 가 보고, 먹고 싶은 것 사 먹어도 보고, 그렇게 원도 한도 없이 살다 죽어야 제. 뼈 빠지게 모은 재산 남겨 조 봤자 소용없는 기라.”
그렇게 살자 하는데 아내는 통 호응을 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집 옆을 지나 밭으로 오르는 산기슭에도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밤꽃 냄새에 멀미가 날 판인데 게슴츠레하던 한 노인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환장하겠네.’ 자신도 모르게 토해 놓고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비아그라를 먹은 것도 아닌데 불 두둑에 다시 불끈 힘이 주어졌다. 그는 ‘조것들을 그냥 콱’하면서 두 손으로 괭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가 슬그머니 내려놓고 허허 웃었다. 개울가에서 궁둥이를 맞대고 헐래 붙느라 끙끙대는 개 두 마리를 봤기 때문이다. 개들도 놀라고 그도 놀랐지만 수캐는 혀를 한 뼘이나 빼물고 헐떡거리면서도 늠름한데 암캐는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부끄러워 빨리 도망가고 싶다는 뜻일까.
“이것들이 누구 약 올리나. 저리 안 가나?”
후려치기라도 할 듯 괭이를 다시 들었다가 땅을 탁 쳤다. 개들이 움찔하긴 했지만 좀체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둘이서 비칠 비칠 구석으로 도망을 가면서도 얼마나 꽉 조였던지 벌겋게 나온 살덩이가 빠지지 않아 애를 먹는 것 같다.
“헛 참, 고이언. 저것들은 어째 꽂았다 하모 궁디 끼리 맞붙어서 전디는 것인지 원. 아침부터 재수 옴 붙었네 그랴.”
그는 침을 탁 뱉고 고개를 돌리며 된비알을 올라갔다. 산기슭에 비스듬히 개간된 산밭에는 벌써 고추 모종이 땅내를 맡아 푸릇하게 자라고 있었다. 고추밭을 빙 둘러보고 그 옆에 있는 콩밭으로 갔다. 바랭이와 명아주 같은 풀이 파릇하게 솟아 있었지만 도통 괭이질 할 맘이 생기질 않는다. 눈앞에 자꾸 어룽거리는 것은 헐래 붙은 두 마리의 영상이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감창소리로 들린다. 어슬렁어슬렁 시간만 죽이다가 그만 오던 길로 내려섰다.
그는 정신 나간 사내처럼 내달렸다. 장미 다방 미스 킴이 대문 열어놓고 기다릴 것 같아 한시가 급했다. 여자가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남자가 홧김에 바람피운다는 말은 별로 들은 적이 없는데 내가 왜 이러나. 머릿속은 훤한데 몸은 수동적으로 장미다방을 향해 달려간다. 꼭 누군가 자신을 끌고 가는 것 같다.
‘허참, 옛날 같으면 고려장 되고도 남은 내가 꼭두새벽에 양기를 못 이겨 허겁지겁 외간 여자를 찾아간다니 이게 말이나 될 법이냐.’
머릿속은 그렇게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다리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장미 다방이 있는 면소재지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최가야, 니가 그랬제. 죽으모 썩어질 몸 썩기 전에 해 볼 건 다 해 보라고. 그래야 원도 한도 없다고. 최가야, 니 말 대로 한 분 해 볼란다.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함 해 볼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함 해 볼란다. 자식들 얼굴에 똥칠한다 캐도 해 볼란다. 해 보고 죽으련다.’
한 노인은 장미 다방을 향해 잰걸음을 치면서 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최 노인이 옆에서 같이 달려가기나 하는 것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