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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래전부터 그에게 먼저 추파를 던진 것은 장미 다방 미스 킴이었다. 장미 다방 미스 킴이라고 젊은 아가씨를 연상하면 오산이다. 그녀는 오십 대 중반의 살집 좋은 여자다. 그녀가 어떻게 양지 골로 흘러 들어왔는지 근거 있는 소문은 없다.
십수 년 전, 양지 골에도 다방이 생겼다. 한창 비닐하우스 붐이 불 때였다. 비닐하우스 덕에 양지골 노인들의 씀씀이가 풍족해진 탓인지 모른다. 상호를 장미 다방이라 붙이고, 마담은 스스로 미스 킴이라고 했다. 장미 다방 미스 킴은 장사가 잘 될 때는 예쁜 아가씨도 두어 명 두었지만 아가씨를 두고 장사하기에는 양지골 인구가 너무 적었다. 또한 시골구석에 박혀 있으려는 아가씨도 없었다. 선금 받고 왔다가 도망가기 일쑤니 이래저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 몇 년 안 가서 장미 다방 미스 킴이 혼자서 다방을 꾸려갔다.
소문에 의하면 미스 킴은 본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이 한 명 있다지만 같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동거하는 남자가 있느냐 하면 없었다. 동생이니 오빠니 하면서 남자가 들락거리기는 하지만 오래 붙어 지내는 남자는 없다는 소문이었다. 여자가 돈이나 많고, 인물이라도 좋으면 남자가 붙겠지만 돈도 없고, 인물도 볼 게 없으니 하룻밤 자고 가는 위인은 있어도 서방 입네 하고 들어앉은 남자는 없다는 뜻이 아닌가.
어느새 장미 다방은 양지 골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양지 골 모든 영감님의 친구이자 인생 상담 사로 알려졌다. 그녀는 양지 골 외로운 노인들의 기쁨조로 불렸다. 장미 다방은 양지 골 노인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일 없고, 기운 없는 영감님들이 아침 먹고 갈 곳이라고는 장미 다방이었다. 상냥한 미스 킴이 쌍화 차에 날계란 노른자 하나 띄워 주는 것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옆에 앉혀 놓고 허벅지를 문질러도 싫어하지 않고 대 주는 맛에 길들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암튼 양지 골 영감님들의 놀이터는 장미 다방이었다. 달걀노른자를 띄워 주는 차를 얻어 마시려면 오전에 가야 했다. 오후가 되면 밍밍한 쌍화 차나 맛대가리도 없는 커피 한 잔 놓고 몇 시간을 죽치다 나와야 했으나 미스 킴은 정이 많은 여자였다. 노인들이 앉아 시간을 죽치면 손수 감자떡이나 부침개 같은 군입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일 없는 노인들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장미 다방으로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 오라버니들, 한 씨 오라버니도 좀 모시고 오이소.”
언제부턴지, 어찌 된 셈인지 모르나 그녀가 한 노인에게 강한 호감을 나타냈다. 다방을 찾는 노인들은 보통 양기가 입으로 올라 가 있다. 노인들이 풀어놓는 음담패설 끝에는 꼭 한 노인 이야기가 딸려 나오곤 했다. 칠십이 넘은 영감이 사흘들이 그 짓을 해도 쌀가마를 덜렁 어깨에 메고 다닌다거나 산에 가서 생나무 등걸을 한 짐을 지고 오면서도 땀 한 방울 안 흘린다거나 하는.
그가 알부자에다 자린고비라는 소문도 소문이지만 그녀를 더 몸 달게 한 것은 오로지 아내만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양지골 변강쇠라는 소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오십 줄에 앉은 그녀도 의지처가 필요해진 것은 아닌지, 바람막이가 되어줄 울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지. 혹은 누군가의 의자가 되고 싶고, 베개가 되고 싶고, 이불이 되어주고 싶어진 것은 아닌지.
사실 미스 킴도 외로운 여자였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고아로 자라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팔자 드센 여자에겐 신도 질투를 하는지 이십 대에 남편 사별하고 어린 아들은 시댁에 빼앗기고 다방으로 술집으로 흘러 다니다 양지골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동안 모았던 돈 톡톡 털어 허름한 길갓집 한 채 사서 장미 다방 상호를 걸었던 것이다. 아들이 자라면 언젠가 어미를 찾겠지. 희망 하나 품고 살았지만 그 아들조차 십 대에 사고로 죽었다지 않는가.
미스 킴은 가끔 경운기를 끌고 우체국을 간다거나 농협에 오는 한 노인을 붙잡고 커피 한 잔 하고 놀다 가시라고 유혹을 해 봤지만 한 노인은
“거 커피라는 거 씹어서 우찌 묵것더노. 바빠서 고마 갈라요.”
하면서 곁을 주지 않았다.
“윤 오라버니 한 씨 오라버니도 좀 모시고 놀러 오이소. 친구 좋다는 게 뭡니꺼?”
그녀는 장미 다방 단골손님인 윤 노인에게 은근슬쩍 채근한 적도 있었다.
“미스 킴, 한 노인은 왜 찾아 호래비 내가 있는데. 그 친구 코피 값 아까바서 여게 안 온다니까 그러네.”
윤 노인 말에 의하면 그 영감은 평생 할멈 밖에 모르는 숙맥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집 할멈이 옹녀가 아닌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런데 세월 덕인지, 좀체 장미 다방 단골 영감들과 어울리지 않던 그가 장미 다방을 찾았다. 아마 안방에서 쫓겨나 사랑방 신세가 되었을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더니 그는 홧김에 다방 출입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방을 찾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커피 값 오백 원도 아깝다 생각하던 그가 커피 값 오백 원이 하나도 안 아깝게 되었다. 솔직히 맵고 짠 늙은 할멈보다 훨씬 젊은 데다 살갑게 구는 미스 킴 덕에 세상 살맛이 난 것이다.
“오라버니, 언제라도 오이소. 대문은 활짝 열려 있으니 맘만 묵으모 된다 아입니꺼. 우리 정분 함 나 보입시더. 이제나 저제나 아니 오시나 눈이 빠졌는데. 왜 이렇게 더디 오십니꺼.”
아예 신파극을 연출했지만 한 노인은 싫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으로 쫓아낸 아내에게 보복하는 길 같아서 통쾌하기도 했다. 더구나 윤 노인이 시샘 내고 부러워하는 것도 재밌었다.
“한가야, 니 이러다 미스 킴 하고 살림 차린다는 소문나것다. 내가 먼저 찍었응께 함부레 굴지 마라. 그랬다가는 당장 너거 마누라 불러 올기다. 덕천 띠가 알모 다리 몽디 뿔라지는 거 아닌지 모르것네. 나야 강짜 부릴 여편네도 없으니 말이지. 아그들이 집에만 있지 말고 걸어 댕김서 운동이라도 하라 쿠이 하루에 한분이라도 여게 왔다 간다 마는 니는 만다꼬 자주 오노? 니 일하로 들에 안 나가나? 인자 오지 마라.”
윤 노인은 한 노인 면전에 대 놓고 싫은 내색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노인을 대하는 미스 킴의 몸짓은 농익었다. 한 노인 옆에 착 달라붙어 일부러 몸을 비빈다거나 한 노인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댄다거나 하면서 애정 공세를 펴는 것이었다. 한 노인은 이거 미스 킴이 소문과는 다른 갑소. 하면서도 싫은 내색을 않으니 애가 단 것은 윤 노인이었다.
“와? 괘안타. 쭈그렁 방텡이 할멈보다 복시런 미스 킴이 더 좋은 걸 우짜노. 미스 킴이 자꾸 오라 하잔나베. 내가 좋다는데 불알 두 쪽 찬 놈 치고 싫다는 놈 있것나.”
하면서 윤 노인을 골리는 재미도 솔직히 좋았다.
사실 윤 노인은 장미 다방 미스 킴에게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아내가 북망산천 찾아가기 전부터 심심찮게 죽치고 놀던 곳이 장미 다방이었다. 일에는 베돌이요. 먹는 데는 악돌이라면 윤 노인을 이르는 말일 게다. 천성이 게을렀던 윤 노인은 일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그 고장에 유일한 장미 다방이 윤 노인의 놀이터였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더구나 오랫동안 당뇨를 앓았던 아내에게 잔정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막상 떠나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아내였다. 윤 노인에게 2남 4녀란 자식이 있지만 모두 객지에 나가 살았다. 자식들 모두 제 밥벌이 정도는 하고 살지만 최 노인과 마찬가지로 윤 노인 역시 혼자 남은 아버지를 모시겠다는 자식은 없었다. 그에게 죽을 때까지 아내 냄새가 밴 촌구석 낡은 집에서 혼자 밥을 끓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시킬 뿐이었다. 아플 때는 진짜 죽은 아내 생각이 간절했다. 흰 죽이라도 한 그릇 끓여 줄 누군가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는 것이 윤 노인 생각이었다.
윤 노인은 아내의 묏등을 자주 찾았다. 묏등에 난 풀도 뽑고, 잔디에 물도 주면서 눈물 찔끔거리기도 했다. 불쌍한 아내 생각보다 불쌍한 자신의 처지 때문에 우는 줄 모르고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이죽거렸다.
“살아 있을 제 잘 하제. 죽고 나서 찾아 댕김서 울모 뭐 하노. 못생기고 병든 여편네 엔간히 괄시하더마. 없응께 아쉬운 가베. 그렁게 있을 때 잘 하제. 그나저나 저 영감은 땡잡았어. 할멈이 꿍쳐 둔 돈이 많았다 안 하나. 지 죽고 나모 다 헛기제. 아무리 아파도 약 한 제 안 지 묵고 달달 떨더니 영감 좋은 일만 시키데. 장미 다방 마담한테 푹 빠졌다네. 그람서 할멈 묏등은 말라고 저리 찾아댕길꼬.”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윤 노인은 아내 묏등을 자주 찾았다. 윤 노인은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던 것이다. 평생 꿍꿍 일만 하다 죽은 바지런하기 짝이 없던 아내가 거금을 남겼던 것이다. 윤 노인 모르게 보험도 들어 놓고, 현금 통장도 무려 서너 개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윤 노인은 아내가 죽고 난 후 신사가 되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입성을 바꾸었다. 서너 마지기 되는 논도 팔아 치웠다. 자식들에게 섭섭지 않게 한 몫씩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저금통장에 넣었다. 매달 나오는 이자만 가지고도 고기반찬 한 두 끼 사 먹을 정도는 되었다.
윤 노인은 아내 죽고 몇 달 혼자 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
“미스 킴, 고마 내 하고 살모 안 되것나. 돈도 좀 있고, 아쉬운 거 없이 해 줄깅게.”
“오라버니, 그런 소리 마이소. 이리 오누이로 지내는 기 더 좋다 아입니꺼.”
정중하게 거절당했던 것이다.
윤 노인은 미스 킴에게 거절당하고도 그녀를 단념하지 않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던가. 두둑한 통장도 있겠다. 자신이 장미 다방으로 들어가 앉던지, 미스 킴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앉던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되도록 정성을 다 할 참인데. 불청객이자 강적이 끼어든 것이다. 한 노인이었다. 아내가 없는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지만 나이답지 않게 짱짱한 한 노인이 윤 노인에겐 막강한 경쟁 상대였다.
더구나 미스 킴이 어찌 된 셈인지 한 노인이라면 껌뻑 죽는시늉을 한다는 것이었다.
윤 노인은 애가 닳았다. 장미 다방 미스 킴과 한 노인이 죽이 맞아 가는 눈치 때문이었다. 장미 다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던 한 노인이 근자에 들어 다방 출입이 잦아진 것도 미스 킴의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도 모두 요상한 조짐을 보였다.
‘설마 그럴라구. 아니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 잖은가. 아무래도 저것이 일 내지 싶네.’
그러던 참인데. 이날 아침도 윤 노인은 아내의 묏등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동네를 벗어나 산밭 머리를 오르는 중인데 멀리 산밭 쪽에서 어떤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보니 한가다. 저 인간은 잠도 없나. 참 부지런도 하이. 하면서 산길을 오르다가 다시 돌아봤다. 아무래도 무엇에 홀린 듯이 달려가는 한 노인의 거동이 심상찮다. 노인이라 하기엔 너무 날렵한 몸동작 아닌가.
“어이, 한가야!”
윤 노인이 불렀는데도 들은 척도 않는다. 별 희한한 일도 다 보겠다며 한 노인 뒤태를 바라보고 섰는데. 자기 집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면 소재지 쪽으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순간 윤 노인의 뇌리를 휙 스치고 가는 것은 화사하게 웃는 미스 킴의 복덩이 같은 얼굴이었다.
‘저 저 저 넘이, 정신이 회까닥 한 거 아이가. 아무래도 안 되것다. 일내기 전에 조치를 취하는 게 상수다.’
윤 노인도 부리나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노인이 면소재지 장미 다방을 향해 줄달음 칠 즈음에 윤 노인은 한 노인의 집 대문을 쑥 들어서면서 이렇게 안 주인을 찾는 것이었다.
“이보오. 아주머이, 일어났시모 내 좀 보소.”
“아니, 영감님이 이 첫 새복에 우짠 일입니꺼?”
부엌에서 밥을 짓던 덕천 띠가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왔다.
“한가가, 아니, 이 집 영감이 오데 간 줄 아요. 저기 장미 다방 미스 킴한테 갔소.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오는 길이요. 아주머이랑 이 집 영감이랑 이간질시킬 생각은 애초에 없었소만 무슨 일 벌어지기 전에 단속을 하도록 해 주는 기 친구의 도리 같아서.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하면서 마루 끝에 걸터앉은 윤 노인은 그동안의 한 노인 행적에 대해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다소곳이 듣고 있던 덕천 댁이
“알겠습니더. 우리 영감 일이니 지가 알아서 하겠습니더. 영감님은 눈 딱 감고 못 본 걸로 해 주이소. 별일이야 있겠습니꺼. 장미 다방에 간 걸 눈으로 본 것도 아닌데 다른 일 보러 갔을 수도 있지 예.”
윤 노인은 적이 놀랐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여자는 여자라고 질투에 눈이 확 뒤집혀 욕이라도 한 바가지 쏟아 내거나 몽둥이 들고 달려가 현장을 덮칠 줄 알았더니 의외였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구니 윤 노인 자신만 이상해졌다.
윤 노인은 김 빠진 맥주 꼴로 한 노인 집을 떠났다.
윤 노인이 대문을 나서는 걸 확인한 덕천 댁은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장미 다방이라고 적힌 이름 옆에 쓰인 숫자를 펴 놓고 수화기를 들었다. 금지 손가락으로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수화기를 한참 들고 있자 ‘여보세요.’하는 잠에 취한 미스 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동상! 날세. 우리 영감이 지금 자네 집으로 갔네. 대문 활짝 열어놓고 반기게. 내 부탁대로 잘해 주게. 그 영감이 살맛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 자네랑 살 궁합이 잘 맞았으면 좋겠네. 자네가 그리 공을 디리는 데도 마음을 안 움직여 내가 애달아 혼났네. 인자된 것 같네. 고마우이. 내 부탁 들어주어서. 이거는 자네랑 내만 아는 비밀일세. 차후에 우리 애들한테도 알릴 생각이네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고? 알았네. 그럼 자네랑 나는 도시 모르는 사이네.”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은 덕천 댁은 거실 창가에 가서 앉았다. 창으로 보이는 앞산이 온통 노르스름하게 보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쓰윽하고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 비릿한 남자의 거시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올해는 밤꽃도 허벅지게 피었나 했더니 그 냄새도 유난스럽네 그려. 내년에도 저 밤꽃 냄새를 맡을 수나 있을 랑가. 자궁을 덜어냈는데도 그 못된 암 덩이가 온몸으로 뻗쳤다니까 오래는 못 전디것제.’
덕천 댁은 시름겨운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