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의 그늘

<단편소설. 7월>

by 박래여

임종의 그늘


1. 7월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 짙푸른 초록의 잎사귀들 위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물방울이 가진 산뜻하고 해맑은 느낌은 어디로 갔을까. 지네가 기듯이 발바닥에서부터 끈끈함이 기어오른다. 발등을 보았다.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린 빗물이 발등을 적신다. 빗방울에는 몇 개의 생명이 숨 쉬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스멀거리며 내 몸속을 파고든다. 징그럽다. 오른발로 왼발의 발등을 문질러버린다. 다시 왼발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또로록 굴려가기 전에 오른발로 왼발의 발등을 짓이겨버린다. 아, 따거. 불그레한 핏물이 발가락 사이로 흘러 신발 속을 파고든다. 하얀 남자 고무신의 둥근 가장자리를 따라 곡선을 그린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효도일 텐데. 그런데 난 뭘 하고 있지? 내 형편만 따지잖아. 아버지가 아프다는데,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데.

“너거 아버지가 아무래도 수를 못하실 것 같다.”

어머니는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어제는 내가 부러 술을 사다 한 잔 드렸더니 겨우 마셨다. 막내야, 너거 아부지가 자꾸 니가 보고 싶단다. 아무래도 또 병원에 모시고 가 봐야겠다. 이번에는 우짜든지 억지로라도 입원을 시키던가 해야겠다.”

“또 사람 찾아 난리 나게요? 인자 진우가 알아서 하게 하셔요. 옴마가 자꾸 이러면 나와 진우 사이만 더 벌어져요. 어쨌든 아들한테 기대야지. 딸이 무슨 소용 있어요? 자꾸 저한테만 이러니 저는 어쩌란 말이에요. 김 서방 보기도 미안하고. 제 형편에 맨 날 집 비우고 나 댕길 수도 없잖아요. 진우한테는 연락했어요? 안 했죠? 빨리 전화해서 들어오라고 하셔요. 아들이 병원에 모시고 가든지 해야지 인자 난 모르겠어요. 나도 할 만큼 했으니까.”

왈칵 짜증이 솟았다. 심심찮게 오라 가라 하는 친정어머니. 가까이 있는 아들에겐 언제나 조심스러운 어머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보다 딸이 더 편한 상대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남편 보기도 그렇고, 동생 보기도 그렇다. 내가 친정 부모님을 모실 형편도 아니면서 나설 수도 없는 입장인데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불러 제친다. 곧 아버지 숨이 끊어질 듯이 다급해하는 어머니 전화를 받으면 또 난 몰라 할 수가 없어 달려가기를 거듭하다 보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갈 때마다 아버지는 멀쩡했다. 밥도 잘 드시고, 술도 잘 드셨다.

매정한 내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온제 올래? 하시는 어머니.

“그래도 너거 아부지가 니만 찾는데 우짜노. 인자 똥오줌도 받낸다.”

“며칠 새에 그렇게 심해지셨어요.”

“말도 마라. 노망 끼도 있다.”

“여가 봐서 들어가든지 할게요.”

수화기를 놓으며 나는 금세 후회한다. 얼마를 더 사실지 모르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데. 내 형편만 따지는 딸이라는 것이 죄의식으로 다가온다. 항상 친정 일은 강 건너 불 보듯 해 왔다. 남동생에게 모든 것을 떠넘겨버린 채 외면하고 살았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명절 같은 때나 잠깐 인사하러 다니려 갔다 오는 정도로 친정은 내게 먼 존재였다. 따지고 보면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친정이다. 친정만 생각하면 속이 답답해진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풍족하게 해 드리고 싶은데 해 드릴 수 없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그만큼 친정은 내 마음의 부담이기도 했다. 언제나 내 호주머니 털어 도와드려야 하는 입장에서 넉넉하지 못한 내 살림살이가 친정 나들이를 부담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친정이 잘 살아서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뻔질나게 친정집 삽짝을 드나들면서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친정 나들이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으리라.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간사해서 늘 자기의 이득을 먼저 따지는 것이 본능 아닐까.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런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빗방울에 옷이 흠뻑 젖도록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결국 집안으로 들어와 전화기 앞에 앉았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도 속수무책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지울 수가 없다. 오랜 관절염으로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시는 어머니, 밥 대신 술병만 찾는 아버지, 두 노인네의 모습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모시고 가 봐야 하나.

얼마 전에 동생도 실업자가 되었다. 동생네 회사가 문을 닫았다. 무기한 기다리라는 통고를 받았다는 동생도 생활이 힘든 것 같다. 언제 회사가 가동될지, 마음고생 심한 동생의 어깨를 떠민다는 것이 부끄럽다. 제 밥벌이라도 해 보려고 도로 공사장으로, 책 판매 영업 사원으로 동분서주하는 동생에게 더 큰 짐을 지운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친정 일은 동생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어 결국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는데. 어찌했으면 좋을까. 엄마는 병원에 모시고 가 봤으면 하는데. 너 시간 낼 수 있겠니? 차라리 이번 참에 입원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니?”

“아버지가 죽어도 병원에 있기 싫다는데 우짭니꺼.”

“억지로라도 있게 만들어야지.”

“아버지 똥고집을 누가 꺾습니꺼.”

“그럼 어쩔래? 니도 시간이 없을 텐데.”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지 예. 제가 알아서 해야지 예. 누야는 걱정 마이소.”

동생은 선선하게 대답하지만 마음이 몹시 불편한 모양이다. 자식의 도리라는 게 무얼까. 동생도 나도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 있으면서 나를 낳아 키워준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 자식의 도움을 바라는데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 먼저이니 얼마나 이기적인가. 뒷날 내가 늙어 몸을 추리지 못할 때 내 자식들이 나처럼 생각한다면 내 심정이 어떨까.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동생이 알아서 하겠다는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나는 또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자식이라면 당연히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편하게 해 드려야 하는데 언제나 내 욕심이 먼저다. 그러다 보니 늘 동생에게 책임전가를 시키고 있으니 내 속이라고 편할 수는 없다.

장마철이라 밤은 무덥고 길었다. 새벽녘에 비 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도록 뒤척였다. 남의 입장에서 보면 팔순을 사신 친정아버지는 살만큼 사신 분이다. 지금 돌아가신들 그다지 아까울 것도 없는 연세다. 살만큼 살았으니 이젠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아버지, ‘내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니 나도 그 친구들 따라갈 때가 멀지 않았다.’고 한숨 쉬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정작 돌아가시게 되었다니까 겁부터 더럭 난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동생이 전화를 했다.

“누야, 지금 올 수 있습니꺼?”

“그렇게 심하시니?”

“누야가 병원에 좀 모시고 가 주셨으면 해서 예.”

“바쁘냐?”

“…… 안 된다면 제가 해야 하고.”

“몸이 좀 안 좋아서 운전하기가 힘들다. 집에 일도 많고.”

발뺌을 먼저 했다. 내게 책임을 지우려는 동생에게 조금 야속한 생각도 들었다. 숟가락을 놓기가 바쁘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딸 둘 중에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것은 나뿐인데. 비록 그 애정을 살갑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언니보다는 내게 너그러웠던 아버지가 아닌가.

나는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내가 갈 테니 너는 니 볼 일이나 보거라. 나중에 병원에서 전화할게.”

빗길을 나섰다. 굵은 장대비가 차창에 부딪힌다. 와이퍼를 힘차게 돌렸다. 빗방울이 창유리를 타고 지붕 쪽으로 올라간다. 아래로 흘러내려야 할 물방울이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묵직한 그림자 하나가 내 가슴을 짓누른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 또 내가 아버지에 대해 가진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 따지고 보면 언니가 외면하는 아버지는 불쌍한 노인이었다. 언제였던가. 아마도 결혼을 하고 시댁으로 들어오던 날이 아니었을까. 막내딸을 시댁에 데려다주고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는 두루마기 깃이 젖도록 우셨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잘 가시라고 인사하는 나를 보고 ‘저 철없고 냉정한 것을 떼어놓고 가려니 발이 안 떨어진다.’ 하시면서 퍽퍽 우셨다. 그날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정을 가슴에 담았다. 늙고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의외였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아버지는 늘 외고집으로 똘똘 뭉친 분이셨다. 딸은 자식으로 쳐 주지도 않으셨던 아버지, 아들 못 낳는다고 끊임없이 어머니를 구박하고 바람을 피우셨던 아버지, 아랫방에 번갈아 가며 첩을 들이셨던 아버지를 언니와 나는 좋아할 수 없었다.

“인자 니는 출가외인이다. 시부모님 잘 모시고 살아야 한데이.”

그날 이후 아버지는 한 번도 딸 네 집 나들이를 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모시려고 해도 한사코 싫다 하셨다. 시집살이할 때는 시어른 눈치 보인다고 거절하시더니 시댁 가까이로 분가하고 나니 친정 식구 드나들면 시어른 눈 밖에 난다고 싫다 하셨다. 이젠 문 밖 출입이 불편하니 ‘내 집이 제일 편하다.’ 하시며 오시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낯익은 풍경들이 지나쳤다. 긴 강을 따라서 완만한 능선과 논밭, 마을을 지나면 우뚝 솟은 지리산의 영봉이 안개에 싸여 내려다보고 있다. 고향 길은 언제나 막다른 곳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큰 산이 턱 가로막은 그곳에 올망졸망 모여 앉은 마을 중에 고향집이 있다. 나는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낯익을수록 마음 안에는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라앉는다. 고향도 예전 같지 않다. 물레방아가 돌던 그 시절의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내가 나이를 먹듯이 땅도 나이를 먹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거듭나기 시작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도 그 흔한 개 짖는 소리도 없다. 어느 집이건 아이가 있을 턱도 없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가 너무 조용한 것이 신기했다. 친정집이 보였다. 눈을 감고도 찾아들 수 있는 낯익은 집이지만 왠지 허전하고 낯선 느낌이다.

삽짝을 들어섰다. 대문도 없는 집안은 괴괴하기만 했다. 승용차 안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가에는 팥과 콩, 들깨가 기세 좋게 자라고, 다 쓰러져 가는 울타리에 호박덩굴이 칭칭 감아 올라 그 푸른 잎을 너풀거렸다. 마치 ‘낯선 집에 찾아온 당신은 누구요?’ 하는 것처럼. 내 배에 생채기가 나도록 타고 오르던 감나무도 잔등이 보기 좋게 부러져 달아나고 잔가지만 삐죽거렸다. 뭔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핥고 지나갔다.

“왔냐?”

뒤꼍에서 등이 굽은 어머니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려오셨다.

“비 맞고 오데 갔디 예?”

“뻔덕에 쇠 매로 갔다 오는 길이다. 날이 들 것 같길래. 진우 못 만냈냐? 급한 연락이 왔담서 조깬 전에 갔는데. 니 오모 보고 갈끼라꼬 기다리다가 먼저 간다더라. 들어가자. 너거 아부지가 니 온다는 소리 듣고 정신을 채리더라.”

“운신도 못하신다더니?”

“참 우습제. 서너 살짜리 알라다. 옷에다 똥오줌을 싸 재낀다. 니가 온다니까 일어나더라. 내 애 멕일라꼬 꾀병 부린 긴지 우짠지. 아침에는 죽 한 그릇을 비웠다. 들어가자.”

집안에 들어서니 퀴퀴한 담배 냄새와 병자 냄새, 구린내가 진동했다. 창문을 있는 대로 다 열어 제키고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윗목에 놓인 재떨이에서 꽁초가 타고 있었다. 그 옆에 다 피운 담뱃갑을 칼로 반듯하게 자른 듯이 펴서 켜켜로 쌓아 놓았다. 조금 전까지 담배를 피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모로 누워서 눈도 뜨지 않으셨다. 심술 난 아이처럼 웅크리고 누운 아버지.

“아부지. 저 왔어예.”

나는 왼손은 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버지의 감은 눈꼬리에 물방울이 또르르 굴렸다. 손으로 아버지의 눈가를 훔쳤다. 내 손을 잡은 아버지의 손에 미미하게 힘이 주어졌다. 가슴 안에 굵은 응어리가 뭉클거리면서 목구멍에 올라와 걸리는 것 같았다.

“그 새 잠이 들었디요? 영감이 기다리던 막둥이 왔소.”

“바뿔 낀데 말라꼬 또 왔노?”

그제야 아버지께서 눈을 뜨셨다. 푹 풀어진 눈자위가 불그스름하다.

“아부지, 많이 아파? 오데가 아푼데? 내가 주물러 줄께.”

아버지는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다. 멍이 퍼렇게 들었다면서 가슴을 내보이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멍 자국도 아버지의 눈엔 크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몸을 여기저기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어린애처럼 기분 좋은 얼굴로 내 손에 몸을 맡기셨다. 때로는 ‘아야 아야’ 하면서. 끙끙 앓는 소리도 내셨다. 깔고 있는 요가 더러워서 걷어내고 새 요를 깔았다. 아버지의 몸에도 구린내가 났다.

“아부지, 좀 씻고 병원 가입시더.”

“병원에는 와 가노? 안 갈 끼다.”

“아푼데 병원 가서 진찰해야지 예.”

“말라꼬 씰데 없이 돈 내삐로 가? 의사라는 작자는 다 도독 놈이다. 말라꼬 그 놈들 돈 보태 주끼고. 인자 죽어야제. 그런 돈 있시모 빚이나 갚고 죽으모 원도 한도 없것다. 팔십 평생 넘한테 빚 안지고 산 내가 빚지고 죽게 됐는데. 무슨 영화 보끼라꼬 병원엘 가? 나는 안 간다.”

아버지께 빚이란 것이 그렇게 큰 짐인 모양이다. 진날 갠 날 없이 등짐 지고 산을 헤매며 약초를 캐고 버섯을 따서 팔고, 외양간에 소 키우고, 산에 밤나무 단지를 해서 가꾸며 한 푼 두 푼 저축하여 모은 돈 남에게 빌려주면서 사신 분은 어머니지만, 그 어머니가 채워주는 돈으로 평생 수중에 돈 떨어져 본 적 없이 만고강산 돌아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 다 해 보고 사신 분이 아버지다. 딸자식에게는 땡전 한 푼 준 적 없는 자린고배 아버지지만 그런 아버지도 아들을 위해서는 몫 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런 분이 어머니가 농가 주택자금을 대출하여 쓰러져가는 오두막을 뜯어내고 반듯한 양옥집을 짓자 그 대출금 갚을 걱정을 하신다. 자식에게 떠넘기고 죽기 싫다 했다. 언니는 그런 아버지께 늘그막에 철이 들어서 자식 귀한 줄 알고, 마누라 귀한 줄 아는 모양이라며 옹이 박힌 소리를 한다.

“아부지, 빚 갚을라모 병원 가야지 예. 빨리 병을 고쳐야 돈을 벌지 예. 몸이 성해야 돈을 벌지 이렇게 방구들 지고 누워 있으면 오데서 돈이 나올낍니꺼? 송이 밭도 돌봐야 하고, 밤 돈도 해야 하는데. 병원 안 가모 다 헛깁니더. 빨리 일어 나이소.”

병원 가자고 달래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화도 냈다. 동생이 병원에 모시고 가려다가 실패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버지의 외고집을 꺾을 사람은 나뿐이었다.

겨우 아버지를 목욕시켜 옷을 갈아입히고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어머니는 동생이 이미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 두었다고 했다. 나락 석 섬을 한꺼번에 지고도 너끈하게 십리 길을 다녔다는 아버지, 백 리 길을 서너 시간 만에 질주할 수 있다던 발 빠른 아버지, 사나운 황소와 씨름하여 황소의 뿔을 꺾었다는 아버지, 쇳덩이처럼 단단한 몸을 지니고 계신 것을 자랑으로 아셨던 아버지. 지금은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듯이 야위셨다. 의자 등받이에 기댄 아버지의 몸피가 너무 작아서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딸이 운전하고 가는 승용차를 탄 것이 자랑스러운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기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곁눈질하며 나는 자꾸 속울음을 삼켰다.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복잡한 대학병원에서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지루하게 종합검사를 받은 아버지는 대합실 의자에 기진해서 누웠다.

“보호자 되시는 분 들어오셔요.”

간호사가 불렀다. 의사 앞에 앉으니 당장 입원을 시키란다. 병명이 뭐냐고 물었더니 정밀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폐암 같단다. 그것도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증상이라면서 입원치료하면 통증은 완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심해지도록 아버지 혼자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해지면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외고집을 어찌 꺾을 수 있을까.

“아버지, 입원하셔야 한대요.”

“고마 가자. 내 병은 내가 더 잘 안다. 병원에서 죽어나가기 싫다.”

억지로 입원수속을 밟았지만 아버지는 그새 어기적거리면서 병원 문을 나서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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