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그는 아직 자신의 입으로 아들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없다. 다만 아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살갑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부부였고, 가족이었다. 각방거처가 기정사실이 되면서 부부 사이 앙금도 적당히 가라앉고 남이 사는 것처럼 살았던 것이다. 아내 생각이 나면 아내 방으로 찾아가면 아내는 예전처럼 마음 다해 받아주지는 않았지만 다소곳이 그의 청을 들어주면서 아내 자리를 지켜 주었다. 그에게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자리가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면 아내 역시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서로의 본분에 충실하자는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눈치껏 은연중에 묵인 된 사항으로 받아들였다. 그 끈은 아들이 잡고 있었다. 아들이 놔버리지 않는 한 그 끈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었다.
그런데 끈이 사라져 버렸다. 아내는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예 대못을 꽝꽝 박아서 더 이상 뽑아낼 수도 없게 처리해 버린 것이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발악하는 게 낫다. 말을 잃어버리고 고집도 잃어버리고, 넋을 빼다 수천 길 낭떠러지에 버린 사람처럼 무슨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일처리만 하는 거죽뿐인 아내보다 성질부리는 아내가 백배 낫다. 아내는 밖에 나가는 법도 없고, 빨래를 켜켜이 쟁여 놓지도 않는다. 친구를 불러 수다도 떨지 않는다. 집안은 언제나 쓸고 닦아 반질반질하고 조용하기가 절간 같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절간 같은 그 고요가 그를 무겁게 짓누른다.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 날이면 그는 아무 말도 않고 밖으로 다시 나간다. 터벅터벅 골목을 벗어나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구멍가게에 가서 술을 마신다.
“자네, 요새 얼굴 보기 심드네. 심든 일 겪으모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 단단히 묵고 열심히 살게나. 곧 좋은 소식 올 기 거마. 뭔 일이 있을라고. 젊은 애들은 워낙 천방지축이잖은가. 친구랑 놀다 보모 부모도 잊것제. 예뿐 처니랑 신방 차리고 사는지도 모르고. 부모가 멜 쿨까 봐 근신하는지도 모르제.”
김씨, 박씨, 이씨, 전씨, 허씨, 어르신이거나 연배거나 술좌석에 끼어들면 그런 인사치레를 한다. 그런 인사를 받는 것도 이제 부담스럽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속이고, 이웃을 속이고, 아내를 속일 수는 있어도 현실은 달라질 수 없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도 안다. 왜 하필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문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사람 사는 일에 정해진 틀이 없지 않는가. 하필이면 그게 내 일이 되어버린 것이 문제지만.
그는 바위에 붙였던 궁둥이를 털고 일어나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일터에 도착했다. 목재소는 늘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넓은 마당에는 온통 나무로 가득 차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삼나무, 잣나무, 편백나무 같은 나무 등걸이 수입 산과 국산으로 나누어져 있거나 서까래 용, 기둥 용, 각목 용 등으로 세분화 되어 쟁여 있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기계에서 적당한 크기로 잘려 나온 기둥감이나 서까래용 나무를 전기 대패로 다듬거나 끌이나 장도리 등으로 홈을 파는 일이었다. 그는 일에 신명을 다했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모든 잡념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계소리가 온종일 끊이지 않는 곳에서 지내다보면 아내의 모습도 잊게 되고, 아들 생각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그만 맥이 빠졌다. 다시 죽음과 같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정말 싫을 때가 있다. 석고상 같은, 마루타 같은 아내를 마주대해야 한다는 것도 고문이다. 그렇다고 아내 말처럼 할 수는 더욱 없다. 만약 아내를 위하는 길이라면, 별거라도 해야 한다면, 자신에게 물어본다. ‘안 될 말이야.’ 그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지금 거리를 두게 되면 영원히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짓눌렀다. 아들에 이어 아내마저 잃는다면 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쓰러질 것이다. 만약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아내도 사라질 것이다. 아내까지 사라지고 어쩌면 그도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 안될 말이다. 집과 아내를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마저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삶 전체를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터에 있으면서도 아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들 방에서 나오면 부엌 싱크대에서 몇 개 안 되는 그릇을 씻고 또 씻고, 이불을 털어 난간에 내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젖은 수건으로 문틈이나 창틈에 낀 먼지를 닦고, 목이 마르면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집 옆의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거나 마당가에 풀을 뜯고 있을 것이다. 300평이나 되는 집 안팎이 제초제를 뿌린 것보다 더 말끔하니 아내가 얼마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사는지 알 수 있다. 로봇처럼 틀에 맞추어 움직이는 아내의 모습은 그림자 같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자신의 존재를 숨겨버리는 재주를 타고난 여자일까.
그는 퇴근을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여보, 나 왔소.’하면서 기분 좋게 웃자, 부드럽게 말을 걸자.
그러나 그가 육중한 철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내는 등을 돌렸다.
현관에 들어서면 싱크대 앞에 서서 밥상을 차리는 아내를 본다. 아내의 모습은 고요하다. 틈이 보이지 않는다. 표정도 없다. 보일러 작동 기에 온수가 눌러져 있고, 속옷과 평상복이 목욕탕 앞에 놓여 있다. 그가 목욕을 마칠 때쯤이면 보일러 도는 소리가 멎고, 식탁에는 찌게 냄비가 놓이고 그가 목욕탕 문을 열고 나오면 밥그릇이 수저 옆에 놓인다. 완벽하다.
마주 앉아서 수저질을 한다. 아내 앞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별일 없었소.’라고 묻기라도 하면 힐 것 그를 쳐다본다. 그 눈이 공허하다. 그를 마주보는데도 아내는 그를 보는 것 같지 않다. ‘네’ 짧은 한 마디로서 대화는 끝난다. 꾸역꾸역 밥만 퍼서 입으로 가져간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럴 거요?”
결국 그가 포문을 연다. 아내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내 잘못이란 거요? 진짜 내 잘못 같소?”
아내는 미동도 않는다.
“나도 아파요. 아픈데 어쩌겠소. 사람이 살고 봐야지.”
역시 아내는 미동도 않는다. 다만 아내가 잡은 젓가락에 찍혔던 김치가 식탁에 뚝 떨어졌을 뿐이다. 아내는 조용히 떨어진 김치를 다시 찍어 밥 위에 올린다. 젓가락으로 밥을 퍼 입에 넣는다.
그도 말없이 숟가락질만 반복한다. 밥알이 모래알 씹는 것보다 더 딱딱하다. 차라리 화를 버럭 내 봐. 사람이 무시당하는 것도 한도가 있다고,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그릇이라도 던져 박살을 내고 식탁이라도 엎어버려 봐. 그렇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가 성질을 못 이겨 부리게 되면 그 여파는 뻔하다. 아내는 두말없이 입은 옷 그대로 집을 나가서 잠적해 버릴 것이다. 그는 아내가 사라지는 게 무섭다. 끈이 없어져버린 이 마당에 아내에게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아들이란 끈은 질기고 강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그 끈 때문에 아내는 부부 싸움을 아무리 거창하게 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등 돌리고 나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끈도 희망도 없다.
어딜 가서 아들을 찾는단 말인가.
대학 일학년이던 아들이 실종 되었다. 그 동안 아들을 찾기 위해 길바닥에 깐 돈만 해도 논 몇 마지기는 반반하게 덮을 수 있을 것이다. 논 팔고 밭팔아 전국 어디든 안 다녀본 곳이 없다.
아들이 사라진 그해 5월부터 가을까지 전국은 지글지글 끓는 지옥계였다. 불신과 거짓과 사기가 판쳤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은 국민을 기만했고, 국민은 믿음을 져버린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에게 실망하여 전국적으로 대규모 촛불 집회를 벌였다. 처음에는 미국산 광우병 든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시작된 촛불집회였지만,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에 이어 대통령 탄핵에 이어 국가보안법 탄압 규탄대회로 번졌다. 처음에는 평화적인 촛불집회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참하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거센 불길이 되었고, 나중에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이어졌다. 물 대포와 소화기를 쏘고, 최루탄을 발사하고, 곤봉과 방패로 시민을 두들겨 패고, 시민은 몽둥이를 들고 맞섰다. 폭력이 난무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인권 침해 논란까지 겹쳐 전 국민이 열화같이 화를 냈다. 직접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지 못한 사람은 안방에서, 일터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같이 고함지르고 박수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잠깐 촛불 집회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
촛불 집회는 시민들이 광장 등에서 촛불을 들고 벌이는 집회이다. 주로 야간에 이루어진다. 세계 각 곳의 촛불 시위는 보통 비폭력 평화 시위의 상징이며, 침묵시위의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것으로 1988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촛불 시위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촛불 집회는 국내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해가 진 이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문화행사 등을 예외로 한다.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문화제의 형태로 특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촛불 집회는 시각적 효과가 크고 일과를 끝낸 시민들의 참여가 용이하며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장점이 있다.-인터넷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취.
그도 동네 사람들과 읍면 도시에서 촛불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열 일 제치고 참석하여 한 목소리를 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 각 지방마다 난리인 골프장 건설 반대를 외쳤다. 이 작은 나라 국민의 건강은 누가 책임져야 하며, 이 좁은 땅덩어리 얼마나 더 파헤쳐 무엇을 얻겠다고 그 난리인지 그가 생각해도 정부 하는 일이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자연은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인간을 위하는 일이란 사실을 위에 계신, 가진 분들은 도대체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아무리 인간이 자기 본위로 보고 생각하고, 느낀다지만 이건 너무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그도 자진해서 촛불 집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결국 평화 시위 끝에 경찰 개입이 시작되었고, 물 대포와 최루탄이 발사되고, 사람들이 다치기 시작했다. 전국이 폭력과 탄압으로 멍들면서 제5공화국 시절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평화 촛불집회가 폭력촛불 시위로 바뀌는 과정에서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여기 서울입니다. 방학하면 바로 집으로 가겠다고 어머니랑 약속했는데 못 지키겠어요. 우리 동아리에서도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로 해서 서울 올라 왔어요. 어머니께서 걱정하시는 바람에 되도록이면 참석 않으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아이고 어른이고 모두 나오는데 저만 안 나올 수 없잖아요. 아버지도 와 보시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진짜 우습다 안 해요. 이건 5공 때보다 더해요. 경찰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 시민과 대치 중입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친구들이 주동자로 잡혀 닭장 차 타고 가고, 곤봉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고, 물 대포에 허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 간 친구도 있습니다. 아버지, 전쟁이 따로 없어요. 어머니는 잘 계시죠? 어머니께는 비밀로 해 주세요. 그렇잖아도 저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시는데. 방학 동안 친구들과 여행 좀 하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그래, 국민이 하지마라 하는 것은 안 해야 하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너의 엄마가 알면 야단날 테니 몸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라. 세상일이란 성질대로 푸는 게 아니라 순리대로 풀어야 하니라. 몸조심해라. 여기 농민회도 촛불집회에 참석하려고 암암리에 준비했지만 사전 봉쇄당했다. 부디 몸조심해라.”
“예, 아버지 그럼 다음 달 어머니 생신 때 내려가겠습니다.”
그 후 아내는 며칠 째 아들과 전화가 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이 녀석이 핸드폰을 꺼 놓고 다니는지, 핸드폰이 고장인지 도대체가 전화가 안 돼요.’하면서 걱정 했지만 예사로 생각했다. 잘 있겠지. 성격이 신중하고 경거망동은 안하는 녀석이니까 별 일 없겠지. 경찰에 잡혀 갔으면 집으로 연락이 올 것이고, 병원에 입원 했다면 걱정할까봐 며칠 있다가 연락하겠지. 친구들과 휩쓸리다보면 부모에게 안부 전화하기도 힘들 테니 제 어미 생일에 내려온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되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애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통 전화를 안 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안부 전화를 하던 녀석인데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전화 한 통 없어요. 전화를 받지도 않고요. 도대체 무얼 하러 다니는지 집에 붙어있지도 않나 봐요. 한 번 가 봐야겠어요.”
“며칠 전에 내가 전화 받았다. 방학 했다고 친구들과 여행 좀 다니다 당신 생일에 맞추어 집에 오겠단다.”
아내가 안달복달하면서 아들에게 다녀와야겠다는 것을 제발 좀 나부대지 말라면서 아내를 말렸었다. 전화질도 제발 좀 그만 하라고. 마마보이라고 제 친구들이나 이성 친구에게 놀림감이 되는 것을 바라느냐고 아내를 다그쳐 주저 앉혔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 후, 제 어미 생일이 되어도 아들에게선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제야 그도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내와 서둘러 Y시로 향했다. 아들의 자취방은 잠겨 있었다. 옆방에 물어봤지만 ‘요 근래 통 집에를 안 오는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관리인에게 물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관리인에게 부탁해서 열쇠를 얻어 방에 들어갔다. 아들의 방은 먼지가 뽀얗게 쌓였지만 흐트러진 구석 없이 말끔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었다. 근 한 달은 비어 있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부엌 싱크대에는 서울로 떠나기 전날 먹고 씻어서 엎어 놓은 듯 밥그릇과 국그릇과 접시 두 개, 수저가 있었고, 냉장고에는 아내가 보내준 반찬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아들은 촛불 집회에 갔다가 그 길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학교도 가 보고, 경찰에 실종 신고도 내고, 구치소에 조회도 했지만 아들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들이 속한 학교 동아리 친구들을 찾아보았지만 서울에서 헤어진 후 만난 적도 연락도 안 돼 자기네도 애가 닳는다고 했다.
도대체 아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당신 탓이야. 당신이 애를 버렸어. 다른 사람은 데모니 뭐니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데. 당신이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잖아. 내 아들 찾아내, 내 아들, 난 그 애 없으면 못 살아. 그 애 찾아내 빨리........”
그 날 이후, 아내는 타인이 되었다. 처음 몇 달은 밤이고 낮이고 제 정신이 아니었다. 밥하다가도 갑자기 ‘우리 명이가 온 것 같아’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집 앞으로 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우리 명이가 왔나봐.’하면서 달려 나갔다. 그리곤 ‘당신 탓이야. 당신 탓이야’하면서 그를 붙잡고 낙루하다 혼절해 눕기 일쑤였다.
아내는 자리보전하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들을 찾으러 가자고 졸랐다. 그렇게 그는 아내를 데리고 전국 경찰서와 구치소를 다 둘러보고, 형무소에 찾아가 혹여 아들과 비슷한 수감자가 있는지 찾아보고, 신원불명의 지체 장애인을 수용하는 복지시설과 신원미상의 시신이 나왔다는 보도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확인을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아들은 어디로 잠적한 것일까.
“내일 도청에서 농민집회가 열리오. 나도 하루 일 쉬고 집회에 다녀와야겠소.”
아내는 말없이 저녁 설거지를 끝내더니 누런 봉투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도 말없이 아내가 내민 누런 봉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안다. 한참을 물끄러미 봉투를 바라보던 그는 봉투 속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이혼 합의 서류였다. 이미 아내의 이름 옆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는 아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헤어진다고 문제가 해결 될 것은 아니잖소. 실종 신고 후 5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아들은 사망처리 된다고 했소. 아직 2년이 남았소. 그 때까지라도 기다려줄 수 없소? 당신까지 없다면 나는 어쩌란 말이오. 그 사이 아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온다면 어쩌겠소?”
그의 울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저 먹먹하기만 했다. 아내도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틈새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하겠어요. 어떻게든지 해 보고 싶어요. 이대로는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어요. 그 애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 애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데 내 명을 포기해버릴 수도 없고, 당신만 자꾸 괴롭히는 것이 미안하고. 나 좀 어떻게 해 줘요. 여보, 우리 어떻게 해요.”
“우리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우리 아들, 경거망동 할 아이 아니잖소. 혹여 물대포를 맞았든가, 곤봉에 머리를 맞아 기억상실증에 걸려 어딘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잖소. 그러니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우리 두 사람 한 마음으로 버티면 그 애도 버텨주지 않겠소. 그러니 당신이 마음을 좀 바꾸어 봐. 나를 조금만 생각해서라도.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고. 그렇게 해 봅시다.”
“으 아 앙, 엉 엉 엉!”
아내가 싱크대 앞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에게 다가가 어깨를 안으며 함께 울기 시작했다.
팔월 한가위를 며칠 남겨놓지 않은 보름달이 창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