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처음>

by 박래여

<단편소설>

아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는 꼭두새벽에 마루 끝에 놓인 연장을 챙겨 집을 나서면서 자꾸 뒤를 돌아봤다. 꽉 닫힌 현관문이 그를 전체적으로 거부하는 느낌이 든다. 희뿌연 안개가 산마루에 오르지 못하고 골짝에 머무는 것이 꼭 아내 마음 같다. 저 안개가 언제쯤 걷히게 될까. 영원히 걷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내 말처럼 헤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 헤어져요. 당신이 그래주면 좋겠어요.”

어젯저녁 식탁에서 아내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말했다. 그는 입으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내는 밥그릇에 눈을 박고 오뚝이처럼 숟가락질만 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아내의 표정을 살폈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아내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감정이 철저하게 걸러져버린 사람의 얼굴이 저렇지 않을까.

“안 돼.”

그가 칼로 무 자르듯 대답했지만 아내는 희다 검다 대답 한 마디 없이 자신의 밥그릇을 비우고, 빈 그릇을 개수대에 담더니 등을 돌리고 서서 설거지를 했었다. 덕분에 그는 밤 내내 뒤척이면서 잠을 설친 탓에 눈이 따끔거리고 섬벅섬벅하다. 그는 눈을 쓱 비비고 아내가 잠든 방의 창문을 바라봤다.

아내를 만나던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농사꾼 아들이었다. 아버지 대를 잇는 농사꾼 되기 싫다고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시로 튀었다. 젊은 혈기에 힘만 믿고 노가다 판에 뛰어들어 노동자가 되었지만 힘들고 고달픈 직업이었다. 행운이라면 아파트 건축 현장 사무실에서 경리를 보던 아내와 눈이 맞아 식도 안 올리고 살림부터 차린 일이었다. 아내를 열 평짜리 셋방에 들어앉히고 그는 공사판을 전전했지만 열 평짜리 셋방살이는 행복이었다. 일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뛰었다. 날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를 먹는 생활이 계속 되어도 아내만 보면 좋았다. 아내도 그만 보면 좋아서 헤벌쭉거렸다. 그가 인상을 사납게 쓰고 눈을 부라리며 현관문을 들어서도 득달같이 달려와 눈웃음 살살치며, ‘여보, 힘들었죠? 이거 드세요.’ 마를 갈아서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넨다거나 인삼에 대추와 생강을 넣어 푹 고아 놨다가 내민다거나 했다. 그의 건강에 대해 엄청 공을 들이며 그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목욕물 올려라, 발 씻겨라.’ 온갖 잔심부름을 시켜도 ‘예이’하면서 솜사탕처럼 보드랍게 굴었다. 더구나 ‘이불 깔아라.’ 한 마디에 눈초리가 사르르 풀리면서 볼이 발그레 물들곤 했다. 일부러 그가 피곤해 죽겠다며 소 닭 보듯 이불 속에 쑥 들어가 코 고는 소리를 내도 아내는 콧소리를 내며 살며시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가 거치적거린다고 발로 툭 짜거나 등짝을 밀어 구석으로 내 몰아도, 무슨 여자가 거시기만 밝히느냐 고, 밝힘 증 환자 아니냐고 면박을 주어도 무안해 하기는커녕 ‘좋은 걸 어떻게 해. 온종일 기다렸단 말이야. 자기도 좋으면서’ 달려드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사랑 놀음에 괭이자루 썩어 나가고, 호미자루 부러지는 줄 모르던 시절도 있었다.

그는 트럭에 올라 일부러 요란하게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탕 탕 탕 탕 골짜기가 떠나갈 듯 요란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도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니한테 가가 중했시모 나도 중했다. 서로 같이 아픈 거지. 니만 아픈 게 아니잖아. 나도 할 만큼 했고, 참을 만큼 참았다. 나는 뭐 배알도 없는 놈인 줄 아나. 그래도 참았다. 참는다 카이. 왜냐, 왜냐면 말이다. 다 니를 위해서다. 아니 그놈을 위해서다. 알겠나? 그러니 이혼은 꿈도 꾸지 마라.’

그는 아내가 옆에 서 있는 것처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중얼거렸다. ‘여보, 적당히 눈치 봐 가면서 몸 아껴 가면서 일해요.’ 하면서 손 흔들던 예쁜 아내 모습이 언제 적 이야긴지 모르겠다. 그런 날이 있긴 있었는지.

그는 트럭의 기어를 1단으로 놓고 천천히 삽짝을 나서며 자꾸 백미러를 바라봤다. ‘아빠, 잘 다녀오세요.’ 어린 아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백미러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고개를 뒤로 휙 돌렸다.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당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는 머릿속을 지웠다. 생각을 접어버리자. 지금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데, 아무것도 확신해서도 안 되잖아. 기다리자. 기다리다보면 어떤 결정이 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과 나 이러면 안 돼. 우리 좀 더 느긋해질 필요가 있어. 내게 그놈보다 당신이 더 중요하다면 안 믿겠지만 내 마음은 그래, 당신에겐 나보다 그 애가 중요하겠지만 나에겐 당신이 더 중요해. 그는 아내에게 말하듯 자신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신혼 때나 여태 아내 생각하는 마음은 일편단심이고, 아내 좋아하는 것도 변함이 없는데 변한 것은 오직 아내뿐인 것 같아서 속상할 때가 많다. 사내자식이 오죽 못 났으면 외골수로 아내만 바라볼까 하는 남자도 많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도 아내 때문에 살아지는 삶인지도 모른다.

그는 30대 중반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경운기 사고로 돌아가시게 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였다. ‘고향에 돌아와 선산 돌보고 살아라.’ 그 즈음 도시 생활에 염증을 내기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귀한 아들 한 명 키우고 살았지만 찌들고 힘든 도시 생활이었기에 아내 역시 귀농을 쌍수 들고 반겼다. 물론 아버지가 가진 농토가 제법 있었기에 믿는 구석도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 중 일부를 팔아 300평 대지에 날아갈 듯 멋진 오십 평 남짓한 통나무 전원주택 지었다. 어머니와 세 식구가 방 하나 씩 차지할 수 있었다. 아내는 그와 안방을 썼지만 구석 방 하나를 자신의 화실로 꾸몄다. 화가가 꿈이었던 아내는 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종이의 빈 여백만 있어도 새도 그리고 산도 그리고, 아이도 그리고, 남편도 그렸다. 그가 보기에 아내 솜씨가 그렇게 뛰어나진 않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니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등한히 하면서 그림에 매달리면 눈총이라고 주련만 아내는 빈틈을 찾아 제 취미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가끔 이젤이 마당에 세워져 있기도 했지만 재미삼아 하는 것이려니 여기고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시골 살이 몇 해는 진짜 담장 기어오른 수세미 줄기에 주렁주렁 달리는 수세미처럼 행복이 주렁주렁 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행복도 길면 불행이 시샘을 하여 찾아오는지 아내와 어머니 사이가 갈수록 서걱거리기 시작했다. 계집이 살림만 잘 살면 되지 콩밭이 쑥대밭이 돼도 가서 풀매라 소리 안 하면 들에 나갈 생각도 않고 골방에 처박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이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일꾼 사서 제초제 치면 되는데 왜 그런 걸 일일이 자기가 해야 되느냐고 불만이었다. 그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머니는 그림 그린다도 방안에 처박힌 아내를 못 견뎌 했고, 아내는 아내대로 사사건건 잔소리하고 트집 잡는 시어머니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집에서 맨날 어떻게 처신하기에 어머니께서 저렇게 역정을 내시는 거야?”

“별 거 아냐. 뒷집 형님은 못하는 게 없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러시지 뭐. 나보고 밥충이래. 여자라면 살림은 아무나 사는 거라면서 저러시네. 무조건 나만 닦달하지 마. 나도 힘드니까.”

“당신이 뭐가 그리 힘든데? 집구석에서 빈둥거리기나 하지. 노인네 비위 하나도 못 맞추는 여자가.”

“그것도 말이라고 해? 왜 당신까지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제발 좀 고마 덜덜 볶아라. 나도 힘들어.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그런데 왜 당신은 늘 어머니 편만 들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하는데.”

하면서 악에 바쳐 소리치는 아내에게 어머니는 ‘못돼 처먹은 게 하늘같은 남편에게 대들기는.’하면서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리곤 했다. 그렇게 고부간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그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일방적으로 아내를 나무랐다.

그런데,

“여보, 어머니가, 어머니가......돌아가셨어.”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시작되던 그해 오월이었다. 도청에서 농민회 집회가 있던 날이었다. 각 면 단위로 관광버스 한 두 대씩을 세 내어 모인 농민이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에 반대하기 위해서 도청 앞 광장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낼 즈음이었다. 손 전화를 받아든 그는 들고 있던 피켓을 땅에 떨어뜨렸다.

‘쌀 수입 개방 반대, 농민도 사람이다 우리도 좀 살자.’

그는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봤다. 햇살이 눈부시게 다가와 그의 얼굴을 하얗게 채색하고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은 그였지만 실질적으로 그를 지탱한 것은 어머니였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일흔 둘이셨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아버지 때보다 충격의 강도가 더 컸다. 아버지 때는 좀 더 젊었고, 오래 떨어져 살아서 살가운 정을 느낄 여가가 없었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그날 아침에도 집회 간다고 집을 나서는 그를 불러 세우고, 제발 이제 나이 생각해서 데모 하는데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나무라지 않았던가.

“니가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농사꾼이 농사를 안 짓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인자 고마 해라. 자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인자 안 했시모 좋것다.”

“어무이, 우르과이라운드가 협상 되면 농사꾼은 거리에 나 앉아야 돼요. 쌀이고, 생필품이고 다 들어오모 우리는 몬 사는 기라 요. 우리 동네 젊은 축에 드는 제가 빠지모 욕 묵습니더. 밖에 나가서는 함부레 그런 소리 마이소.”

하면서 어머니를 달랬던 그가 아니었든가.

그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 같았다.

그 날,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콩밭 맨다고 나가신 뒤 점심때가 돼도 돌아오지 않아 아내가 찾아 나섰다가 밭골에 쓰러져 계신 것을 발견했다. 이미 손 쓸 틈도 없었다. 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그는 아내를 몰아세웠다. ‘젊은 여편네가 집에서 뭐 하고, 노인네 콩밭 매게 했느냐고’ 아내는 아내대로 화를 냈다. ‘일꾼 사서 하면 된다고 하지 마라해도 황소고집인 노인네를 내가 어떻게 하냐고’ 그것을 빌미로 두 사람은 각방거처를 하게 되었다. 아내가 화실 방으로 잠자리를 옮겨버린 것이다.

한번 틀어져버린 아내를 제자리로 돌려놓기에는 그의 정성이 역부족이었는지, 애정이 식은 것인지, 어머니와 한 집에 살면서 쌓인 게 많아서 그런지 아내는 영 예전같이 살갑게 굴지 않았다. 그도 역시 딴방 거쳐 해도 별로 아쉽지도 않았다. 물론 처음에야 아내 고집을 꺾지 못해서 불 같이 화도 내고, 사사건건 트집도 잡아봤지만 금세 풀이 죽어서 ‘그래, 니 맘대로 해라.’면서 손발 들어버렸다. 만약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각방거처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부부가 나이 들수록 한방 거처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화가 나도 딴방을 쓰게 되면 부부 사이 정이 그만큼 뜨는 법이라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내와 한 방을 쓰려고 애를 쓴 적도 있지만 사실 그로서도 각방거처가 편해져 버렸다. 대신 돌아가신 어머니의 자리는 세월이 갈수록 넓고 깊어만 졌다.

그렇게 아내와 딴방 거처를 한지도 오래 되었다. 남편이 나가거나 말거나 관심도 두지 않는 아내나, 아내가 일어나거나 말거나 자신의 밥그릇 챙겨먹고 일 나가는 그나 서로 무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내가 일찍 일어나 밥상을 차려놓아도 반찬에 젓가락질 한 번 안 하고 국에 밥 한술 말아 먹고 일어선다.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겉으로 보기엔 부부 사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모습으로 살아갔다.

그는 가끔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는 것이구나. 부부관계 없이 타인처럼 살아도 남의 눈에는 정상적인 부부로 비칠 수 있구나. 남이 보기엔 지극히 행복한 부부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는 마음속에서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둘 사이를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부부로 보이게 하는 것은 아들의 존재였는지 모른다.

벌써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Y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은 작은 원룸에서 자취를 했다. 아들은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집에 다녀갔다. 어려서부터 농민 집회에 데리고 다녔던 탓인지 아들은 대학에 가서도 운동권이었다. 인권운동 수호를 위한 집회나 교내외 시위 군중 속에도 아들이 있었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적극적인 아들을 그는 대견하게 바라봤다. 그가 농민운동을 하듯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아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아들이 집에 오면 온전한 가족이 되었다. 아들을 가운데 세우고 근교 도시의 심야 영화관에도 가고 외식도 하고, 셋이서 읍내 헬스장에도 다니며 행복을 과시했다. 참 행복한 집이라는 뒷말을 들었다. 어깨 너머로 듣는 그런 말에 그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아내와도 무덤덤할 뿐이지 각진 구석은 없으니 편했다.

그렇게 바깥바람을 쐬고 집에 돌아오면 셋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두 분이 왜 계속 각방 쓰세요?”

아들의 물음에 둘은 입을 맞춘 것처럼 합장을 했다.

“늙으니까 둘이 보다 혼자 자는 게 편하더라.”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일이 터져버렸던 것이다. 사소한 것이 발단이 되어 벌어졌던 틈새가 그대로 굳어져버린 상태에서 서로를 묶고 있던 구름다리가 끊어져버린 것이다. 이제 구름다리를 새로 이을 기력도 없고, 둘 다 그럴 마음도 없으니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더 깊고 넓게 골이 파여서 이제는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하다 싶어 가슴속이 휑하니 비곤 한다. 그렇다고 아내마저 잃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 당신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픈데도 입에 풀칠하려고 돈벌이 나가는 나를 봐라. 누구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노. 나도 이러고 싶은 줄 아나. 하루에도 골백번 혓바닥 빼 물고 죽고 싶을 때 많다.’

그는 가속 페달을 꽉 밟았다. 차가 갑자기 왜~엥 하면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주저하는 법도 없이 핸들을 요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면서 재에 올랐다. 어디 경찰이라도 서 있었다면 난폭 운전에 과속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을 것이다.

사위가 뻥 뚫린 재에 올라서니 북쪽 골짝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그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재에서 남향 쪽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의 집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동네에서 가장 끝집이니 눈을 감고도 자신의 집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갓길 벼랑 위에 있는 넙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집을 내려다보았다. 크고 작은 나무로 둘러싸인 푸른 집은 죽은 듯이 괴괴하다. 자갈을 깐 넓은 마당에는 햇살만 한 가득 차 있다. 아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들의 방에 가서 아들의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거나 아들의 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고통이든 이성으로 접을 건 빨리 접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접을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이 그렇다. 아비는 속으로 묻고, 어미는 겉으로 드러낸다는 것의 차이일 뿐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을 저울에 단다면 한 치의 차이도 안 날 것이다.

“어떻게 좀 해 봐요. 나 미치기 전에.”

가끔 아내는 세 살짜리 어린애처럼 울면서 떼를 썼다.

“내가 뭘 어떻게 한단 말이야. 살아 있으면 언젠가 돌아올 것이고, 죽었다면 못 오고 말겠지. 이젠 나도 더 이상 어째 볼 수가 없어. 당신도 알잖아. 우리가 안 해 본 게 있어? 학교랑 자취방이랑 동아리 친구들 집이랑, 경찰서랑, 병원이랑, 절이랑, 교회랑, 복지원이랑, 지하철 안의 노숙자 잠자리도 다 뒤졌잖아. 갈만한 곳, 비슷한 사람이 있다하면 어디든 달려가 봤잖아. 계속 실망하고, 쓰러지고, 울고 보채는 것 이제 그만하자. 무자식 상팔자란 말도 못 들었어? 살아 있다면 언젠가 돌아오겠지. 내 이놈의 자식 오기만 해 봐라.”

“어떻게 당신이 그런 말을 해요. 어떤 자식인데. 내가 딴 데서 놔 데려온 아들이요? 아비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랬다. 아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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