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3.
친정집에 갔다. 집이 텅 비어 있다. 친정엄마는 마을을 갔나 보다. 김치 통을 현관 앞에 놔둔 채 그 집으로 달려갔다. 허물어져 가는 빈집은 대낮에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다. 마른 풀밭이 된 마당을 지나 뒤꼍 샘터로 갔다. 심호흡을 했다. 주춤주춤 새미 곁으로 다가갔다. 고목이 된 풍개 나무는 잔등이 뚝 부러진 채 볼품이라곤 없었지만 여전히 새미 가에 건재했고, 샘에는 여전히 물이 넘쳤다. 새미 안에는 가랑잎이 소복이 쌓였고, 붉은 배에 검은 반점을 가진 비단개구리의 서식지로 바뀌었지만 맑은 물은 도랑을 타고 여전히 동네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다.
새미 곁에 바짝 다가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을 감고 손을 뻗쳤다. 물에 손이 닿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두 손을 등 뒤의 땅을 짚은 자세로 가랑이를 벌린 꼴이다. 그네를 타는 아이가 하늘을 향해 다리를 버둥거리며 까르르 웃는 풍경이 떠오른다. 누굴까. 몸을 젖힌 상태로 하늘을 봤다. 풍개 나무 가지 하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나뭇잎 하나 하늘하늘 날아와 내 얼굴에 앉는다. 거기 심장 모양의 검붉은 풍개 하나 대롱대롱 매달려 햇살에 반짝거렸다. 서쪽 하늘로 기울기 시작한 햇살이 내 얼굴을 따갑게 비췄다.
“야가, 오데 갔나 했더이 여게 와 있었네.”
순간 친정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심이 됐다. 나는 윗몸을 일으키고 앉아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 두어 달 새 더 노파가 되어버린 엄마를 멍청히 바라봤다.
“엄마!”
울컥 목젖이 젖어왔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나 어릴 때, 이 새미와 풍개 나무에 무슨 일이 있었지?”
“아무 일도 없었다. 야가, 구전 재전 이약은 만다 꺼내노?”
“내가 그 일 쳤을 때가 몇 살이었어?”
“그 일? 나는 모르것다. 씰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에 가자.”
엄마는 지팡이를 짚고 휘적휘적 빈집을 나섰다. 나는 엄마 등에 대고 말했다.
“어렴풋이 떠올라. 저 풍개 나무가. 그때는 엄청 컸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별로 안 크제. 고목이 된 밑동만 크네. 그네를 맬만한 가지가 없는데 어째서 내 기억에는 저 풍개 나무에 그네가 매달려 있는 것일까?”
“풍개 낭구에 그네가 매어 있기는 했제. 그네 맸던 가지는 잘라냈다. 쪼무래기들이 뒷마당에 나와 놀고로 해 논기 탈이었어. 어른들 잘못이 더 컸던 기라. 인산 양반이 험상궂게 생겼어도 아~들 한테는 자상한 아부지였던 기라. 우에 가스나들이 자꾸 그네 타령을 하자 저 낭구 가지에다 새끼를 꼬아 맸제. 앉아서만 노라꼬. 널빤지도 널찍한 걸 대 놨던 기라. 그 풍개 낭구 가지는 새미랑 반대쪽으로 뻗은 데다 거기는 편편했거든. 아~들이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었제. 저 낭구가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네.”
“개구멍이 어디 있었지?”
개구멍을 찾았다. 썩어버린 울타리에 개구멍이 있을 턱이 없다. 여름방학 때면 동네 조무래기들의 놀이터, 주인이 없을 때는 그 개구멍으로 들어가 샘가에서 놀았다. 샘은 맑았고 깊어 보이지 않았다. 물은 늘 철철 넘쳐나 도랑으로 이어졌다. 도랑은 제법 너르게 반석이 깔려 있었다. 도랑 역시 깊지 않아서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놀기에도 제격이었고, 풍개 나무 가지에 매달렸다가 도랑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덜 익은 시큼한 풍개를 따 먹으며 배고픔을 삭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 끼일 수 없었다. 언제부턴지 그 집 풍개 나무와 새미가 내겐 사천왕처럼 무서워졌다.
언제였던가. 보리타작을 할 즈음이었다. 초여름이라 덥고 후덥지근한 날이었나 보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자 집이 텅 비어 있었다. 배가 고파 밥솥을 열어봤지만 고구마도 감자도 없었다. 그 순간 그 집 뒤란의 풍개가 떠올랐다. 꿀꺽 군침을 삼켰다. 아직 단맛이 덜 들었지만 그게 대순가. 시큼한 것이 더 입맛을 돋울 나이였다. 하지만 나는 외면했다. 책 보따리를 마루에 던져놓고 찬물 한 바가지로 헛헛한 뱃속을 채우고 마루에 앉아 무료하게 햇살 바라기를 하는데 삽짝에서 친구들이 불렀다. 아랫마을에 사는 영이와 숙이었다.
“우리 그 집에 풍개 따 무로 가자. 아까 살짝 가 봤는데 아무도 없더라.”
숙이는 싫다는 나를 끌고 그 집의 뒤란으로 달려갔다. 울타리에 개구멍을 내고 그 집 뒤란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풍개 나무와 샘에서 멀찍이 떨어진 사랑채 처마 밑에서 망을 보고 친구들은 풍개 나무 둥치에 올라가 가지를 잡고 발로 쿵쿵 굴렀다. 풍개가 밤송이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밑에 떨어진 것은 나중에 주워 먹어도 된다면서 그 애들은 나무둥치에 올라앉아 손에 잡히는 것을 따서 먹었다. 두 아이는 굵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며 깔깔댔다. 나는 불안해 죽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숙이가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를 타고 미끄러졌는데 하필이면 새미 속으로 첨벙 쳐 박혔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 순간, 들에 나갔다 들어오던 인산 아주머니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고, 우짜꼬, 저 일을 우짜고.”
하면서 달려오던 아주머니 얼굴이 백납처럼 하얗게 질려 샘가에 퍼질러 앉는 것을 봤다. 순간 내 입이 딱 벌어졌다. 다리는 자석에 붙은 쇠붙이가 되었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달달 떨었다. 새미에 떨어진 숙이는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벌떡 일어났다. 물은 숙이의 허벅지밖에 안 닿았다. 숙이는 아무 상처 없이 물만 뒤집어쓰고 새미에서 제 발로 나왔다.
그때였다. 샘가에 퍼질러 앉았던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왔다.
“대번에 이것을 그냥”
하면서 내 팔을 휙 낚아채더니 사정없이 낯짝을 후려쳤다. 숙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순간 나도 넋이 반쯤 빠져있었다.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멍한 상태에서 아주머니께 호된 낯짝 세례를 받자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지, 처마 밑에 재인 나뭇단에서 나뭇가지를 빼내 나를 사정없이 때리시며 이렇게 사설을 읊었다.
“아이구 이년아, 내가 니 때매 몬 산다. 내캉 무슨 원수가 졌기에 또 이라노. 니만 보모 내가 소름이 끼친다. 저 풍개 낭구가 귀신 붙은 기 아이고, 니가 귀신 붙은 년이다.”
영문도 모르고 매 타작을 당하는 나를 보자 숙이랑 영희는 내 뺐다.
“아, 고마 잡아라. 너머 아 잡것다.”
험상궂게 생긴 인산 아재가 나타났다.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내 팔을 놓았고, 나는 손쌀 같이 달려 우리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달려가는 내 등 뒤에 사정없이 날아와 꽂히는 화살이 있었다.
“저걸 그냥! 당신이 저 가스나 역성을 든께 저기 버르장머리가 없이 또 우리 집에 들락날락 안 하요. 아를 우찌 키우길래 저 모양인지. 우리 아를 자가 밀었다는 거 당신 잊었소. 내가 저 가스나만 보모 가심이 갈갈이 찢어지는데. 차라리 이사를 나가든지 풍개 낭구를 베삐든지 해야지. 이라다가 나도 내 명대로 몬 살고 죽것소. 내 자슥 생각하면 지금도 간이 벌렁벌렁한데. 저 가스나 커는 거 보모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됐다 고마. 저 집도 마찬가지다. 니 새끼나 저 집 새끼나 귀한 새끼다. 함부레 씰데없는 말하지 마라. 저 아가 미는 거 본 사람 없다 캐도. 별일 없시모 됐제. 저 낭구가 문제다. 내가 저 낭구를 베삐야 탈이 없제.”
“아이가, 저 낭구 베모 클 난다는 말 못 들었소. 함부레 벨 생각 마소. 목신이 또 한 번 더 노하모 우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요. 올 가실에는 푸닥거리를 좀 크게 해야겠소.”
나는 눈물 자국을 없애고 집으로 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후 내내 만화책을 보며 방안에 있었다.
저녁에 집에 오신 어머니께서 나를 불렀다.
“아까 올매나 놀랬노. 인산 띠도 성이 많이 났는 갑다. 매 맞을 짓 했다. 새미가 안 짚어서 다행이지 전에 맹키로 짚었시모 우짤뿐 했노. 거게는 가지 마라 쿵께 말라 갔더노?”
“숙이랑 영이가 와서 자꾸 가자캐서 예.”
“그 아아들이 가자캐도 니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기다. 알것제?”
어머니는 내 이마를 짚어보고,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다. 인산 아주머니께 맞은 자리가 아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밤에 작은 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도란도란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
“내사 마 그때 생각 하모 또옥 인산 띠 보기 미안해서. 그란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질 뿐 했으니 인산 띠도 많이 놀랬을 끼요. 얼라가 올매나 놀랬는지 얼굴이 잘 익은 탱자 같소. 너머 귀한 가스나를 그래 패모 우짤 끼고.”
“괘한타. 우리가 죄인이제. 뭔 말을 하것노. 가스나가 맞을 짓 했제.”
“우리 경자는요”? 다 지 자슥은 귀한 벱이요. 인산 띠는 저 풍개 낭구를 베삐든지 새미를 메카든지 하제 와 저대로 두고 속을 써카꼬. 저 풍개 낭구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데. 이라다가 또 생떼 겉은 아 잡을까 겁납니더. 저거 아만 빠져 죽은 기 아니지만도 우리 선이 볼 때마다 내 가심도 먹먹한데. 선이를 보는 인산 띠 맘도 내 모를 바는 아니지만 너무 하요. 아무리 우리 아 잘못이 아니라지만 사람 맘이 그런 기 아인기라 예.”
“우리한테 맺힌 기 많다는 뜻이제. 그 맴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서럽게, 서럽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 일 후 그 집의 새미 바닥은 더 얕아졌다. 동네 장정 서넛이 힘을 모아 황토와 잔돌을 져다 섞어 매웠다고 했다. 도랑과 비슷하게 반반해졌다고 했다. 바가지로 살살 물을 퍼내야 흙탕물이 안 일어날 정도로 그렇게 메워버렸던 것이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그 뒤로는 아이들은 물론 나도 그 집 뒤란의 새미에 가서 노는 일은 없었다. 대나무 숲이 우우 우는 날은 새미에 빠져 죽은 두 아이의 울음소리 같았고,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푼 여자가 내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서 후닥닥 방으로 뛰어들곤 했다. 밤마다 가위눌림에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기도 했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언니를 따라 도시로 나가 살면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그 집 뒤란의 풍개 나무와 샘을 생각하면 얼굴 윤곽도 떠오르지 않는 두 아이의 희미한 모습이 기억나고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애써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다. 다행히 지우고 살 수 있었다. 농촌에 시집오기 전까지. 시댁 마당의 우물에 드리운 두충나무를 보기 전까지 잊고 살았다. 새삼스럽게 나는 궁금하다.
“옴마, 인산 아주머니는 우찌 사는고?”
“딸네 집에 간지 오래됐지. 조만간 여게 와 살것다더라. 저거 사우가 집 지어 준다 캤단다.”
“옴마, 그때 죽은 아이가 둘이라 했지? 내 동생과 인산아지매 집 아들이라 했지? 내가 왜 그 애들의 죽음과 얽혀 있는지 이해가 안 돼. 나도 어렸다는데. 내가 우물과 샘을 무서워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이야기는 아무도 해 주지 않아서 몰라.”
“모르것제. 모두 쉬쉬 했으니. 머 좋은 일이라꼬 미주알고주알 말하것노. 모를수록 좋은 긴데. 그 아 이름이 석이였제. 4대 독자였어. 니보다 두 살이 아래였다. 니 동생하고 동갑이었제. 인물이 참 좋았니라. 대장부 감이었제. 인산 양반이랑 너거 아부지랑 우스갯말로 사돈 사돈 함서 친했던 기라. 머스마가 또옥 쌀강아지 같앴건마. 아가 너무 잘생겨도 귀신이 시샘을 한다더니 그랬는지도 모르제. 그래서 애기들 보고 ‘허 고놈 밉상이네.’이래야 귀신이 안 잡아간다 안 하나. 니가 대여섯 묵었을랑가. 인산 띠가 좀 모진 데가 있니라. 그날이 오일장이었단다. 장에 간다고 니한테 석이를 보라 캤단다. 그 아는 울고불고함서 지 에미 따라갈라 쿠다가 골목에서 매차리로 맞고 우는 걸 니가 데리고 온기라. 니는 석이를 달래서 니 동생 경자랑 석이 저거 집에 간기라. 내 잘못도 있제. 얼라 셋을 두고 나도 등 너머 밭에 갔으니. 너거 큰 엉가 핵교 파하고 올 때가 되서 탐탐 믿었던 기 화근이었제. 그 집 뒤란이 따시거든. 새미에 물도 있으니 반주깨미 살기도 좋고.......”
어머니는 그 대목에서 긴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이 흘러도 엊그제 일처럼 선명한지. 흐릿한 눈자위가 불그스름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괜한 말을 꺼냈다 싶어 후회하면서도 겉으로는 멀쩡한 척, 너스레를 풀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나도 알았어. 나 때문이란 거. 석이 할매가 나만 보면 ‘저년이 우리 집 대 끊었다.’고 했었어. 그 집 할매 참 무서웠어. 인산 아주머니가 그 할매한테 오지게 구박받고 살았다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그게 다 나 때문이었다니. 인산아지매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그랬것제. 너거 아부지가 그러데. 죽은 자슥보다 산 자슥이 낫다고. 니랑 경자가 둘 다 새미에 빠져 죽었다모 우리 심정이 우떻것느냐고. 니 많이 예뻐하라 쿠데. 너거 아부지가 니를 애지중지 한 것도 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던 기 아닌가 싶다. 너거 엉가들한테도 입단속을 단디 시켰제.”
울컥 목젖이 아파왔다. 그랬었구나. 행여나 어린 내가 상처받을까 봐 쉬쉬하셨구나. 그래서 더 애지중지 하셨구나. 아버지의 너른 가슴을 진작 느낄 수 없었던 것이 한스럽다. 가정 형편도 어려운데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도시로 보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도시 삶에 길들면서 그 집 우물과 풍개 나무를 잊고 어른이 되었고 시집을 왔다. 시댁 우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희미한 얼굴, 죽은 내 동생인 줄 알았던 그 얼굴이 석이였던가. 우물과 풍개 나무를 떠올리면 오금이 저렸던 것도 어린 내 가슴 깊숙이 난 상흔 자국이었나 보다.
“근데 엄마, 정말 어쩌다 그렇게 됐다는 거 아는 사람 있어?”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나를 아무리 다그쳐도 경자를 그네 태워줬다는 말만 했단다. 다만 추론을 했을 뿐이다. 석이가 풍개를 따 먹으려다 물에 빠지게 되었고, 경자를 그네에 앉히고 밀어주던 내가 석이를 건지러 간다고 그네를 놓치는 바람에 경자가 그네에서 떨어져 새미에 빠졌고 두 아이가 허우적거리자 무서워진 내가 어른들을 부르러 뛰어갔을 것이라고.
“왜냐면 말이다. 니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밭으로 달려온 거야. ‘옴마 경자가, 석이가 새미에 빠졌어. 새미에 빠졌어.’ 하더니 그 자리에 픽 자빠졌제. 나는 부랴부랴 니를 업고 달려왔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 아이는 가 삤더라. 나들이 갔던 인산 양반이 돌아와 발견한 모양이야. 인산 양반이 건져놓고 넋이 빠져 있더마. 그라고 니는 한동안 말을 못 했어. 나는 니까정 잃는 줄 알고 올매나 겁났는지.”
4.
세월이 흘렀다. 나도 오십 대에 접어들었다. 친정엄마도 아흔을 바라봤다.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곰국이며 밑반찬을 바리바리 만들어 쌌다. 오랜만에 가는 친정이다. 석이와 경자의 아픔이 담긴 고향마을, 나는 아직도 그 빈 집을 지나치기 힘들다.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하기에 내 삶이 고단한 것은 아닐까. 과거의 한 시점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절망감도 들 때가 있다. 두 목숨 값을 못하고 사는 것 같을 때 있다. 이젠 털어내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여전히 고향은 아픔이다.
고향집 골목을 오른다. 내 눈은 자연스럽게 그 집을 향한다. ‘어, 없네?’ 그 집이 사라져 버렸다. 기울어서 썩어가던 울타리도 치워지고 나직한 돌담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집 뒤란에 있던 풍개 나무도, 샘도 사라져 버렸다. 움푹 꺼져서 굼티 집이라 불리던 빈 집도 온데간데없다. 너른 마당으로 바뀌어 있다. 풍개 나무와 샘이 있던 뒤란은 아담한 장독간이 되어 있었다. 그 옆에 깔끔한 양옥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 그 집이 없어졌네. 새 집이 들어섰는데. 누가 들어와 살아?”
“인산 띠가 도로 왔단다.”
“그 귀신 붙은 풍개 나무랑 새미는 어떻게 치우고?”
“시님을 모시다가 굿을 크게 했니라. 그라고 굴착기로 풍개 낭구는 뿌리째 빼 삐고 새미는 큰 관을 땅 밑으로 짚이 묻어서 집 밖으로 빼 내고, 그 위에 흙과 돌을 몇 차 갖다 부 돋았다. 그라고 공골을 뚜껍고로 쳤다. 인산 띠도 인자 편할 끼다.”
“진작 그리 만들지. 내 속도 후련하네. 빈집으로 있을 때는 늘 찝찝했거든.”
한참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심 준비를 하는데 손님이 오셨다.
“나도 밥 한 숟가락 주나. 혼자 밥 묵기 싫어서 밥 내 맡고 왔다. 밥 있나?”
하면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인산 아주머니였다. 이십 수년 만에 처음 보는데도 늙지도 않으셨다. 아흔 이 넘었다는데 너무 정정하셔서 놀랐다. 친정엄마보다 젊어 보였다. 잘 오셨다고, 어머니와 함께 겸상을 봐 드렸다.
그 뒤부터 밥때만 되면 찾아오셨다. 밥 잘 드시고 돌아가면서 하는 말은 늘 이랬다.
“사돈, 너거 선이 덕분에 한 끼 잘 묵고 간다. 내가 안 죽고 이리 오래 정정하게 사는 것도 알고보모 다 업인기라. 선이 니는 내한테 밥 좀 해 조도 된다. 내가 니 커는 거 봄서 참 많이 아팠니라. 인자 니도 늙는 갑다. 머리가 하얀 것을 보니. 너거 옴마한테 잘 해려이. 너거 옴마가 내한테 참 잘했니라. 그 속 우찌 모르 것노. 그렇제 사둔.”
“하모, 선아, 우리 사돈 맺은 거 니는 모르끼다만 우리는 사돈이다. 니도 인자 아지매라 쿠지 말고 사돈어른이라 캐라. 뭔 말인고 하니 석이랑 경자를 영가 혼례 치라 준 지도 꽤 오래 됐다. 우리 둘이서 그렇게 해 준 기라. 인산 양반 가고 나서.”
이젠 나도 털어버리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우물 속의 아이도 내 마음에서 보내버리자. 그 아이가 석이든 경자든 아이에게서 가벼워지는 길이 남은 내 인생을 편하게 해 주는 길이리라.
집에 돌아오는 즉시 눈 딱 감고 우물의 뚜껑을 열었다. 우물 속을 들여다봤다. 우물 속에는 여전히 두 아이가 웃고 있었다. 두충나무 잎 하나 떨어진다. 두충나무 잎은 작은 주낙배로 변해 두 아이를 태우고 하늘로 오른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아이도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다음 생에 우리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