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샘가의 풍개 나무

<처음>

by 박래여

<단편소설>

그 샘가의 풍개 나무


1.

우리 집 장독간 옆에는 깊은 우물이 있다. 우물가에는 두충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두충나무를 처음 봤을 때는 처녀 팔목만 하던 둥치가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아이 한 둘 낳고 두루뭉술해진 아낙네 허리통만큼 굵어졌다. 나뭇가지는 쫙 벌어져 우물가를 시원한 그늘로 만든다.

나는 가끔 우물가에서 푸성귀를 씻거나 빨래를 하다가 두충나무를 올려다보곤 한다. 두충나무를 보면 그 집 뒤란에 있던 풍개 나무가 생각난다. 두충나무와 풍개 나무는 전혀 닮지 않았다. 나무 겉 피나 나뭇잎 생김새도 영 딴판이고 두충나무는 열매도 없지만 내 눈에는 저것이 풍개 나무 아닐까 착각할 때가 있다. 내 기억 속의 풍개 나무는 둥치가 굉장히 컸고 가지도 무성했다. 풍개도 오지게 달리곤 했다. 겉이 매끈한 녹색일 때는 보이지 않던 풍개가 여름부터 가을 즈음까지 검붉게 익어갈 때면 저절로 손이 갈 만큼 탐났고 새콤달콤한 향기가 온 동네를 감쌌다.

그 집은 친정 이웃에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 집 울타리 새에 개구멍을 만들어 놓고 드나들었다. 심술궂게 생긴 인산 아재는 아이들을 몹시 싫어했다. 아이들만 보면 마당 빗자루를 들고 후려치며 풍개 나무를 넘보지 못하게 했지만 아이들은 용케 주인 눈을 피해 풍개를 훔쳐 오곤 했다.

나도 몇 번이나 아이들과 어울려 그 집 개구멍을 드나들다가 어머니께 덜미를 잡혔다. 어머니는 내 앞섶에 불룩하게 주워 온 풍개를 압수해서 돼지 막에 던져 버렸다. 돼지들이 살판났다고 달려들어 풍개를 주워 먹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왜 저걸 못 먹게 하는데? 내가 주운 건데. 옴마가 왜 못 먹게 하는데.”

훌쩍거리며 어머니께 항의를 하자 어머니는 매정하게

“인산 띠 집 새미 가에 한 분만 더 갔다가는 다리 몽디가 뿌러질 줄 알아라. 그 집 풍개는 못 먹는 풍개라니까. 말만 한 가스나가 왜 이리 말귀가 어둡노? 몇 분을 말해야 알아듣것노. 인산 양반한테 붙잡히서 도독년 소리 듣고 볼기 맞아야 정신 차리 것나.”

“다른 애들도 다 따 묵는데. 암시랑토 안더라.”

그렇게 어머니께 혼이 나면서도 번번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개구멍을 드나들었다. 그 집 뒤란은 널찍한 공터여서 아이들이 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뒤란이라고는 하나 본채와 사랑채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었다. 원래 그 집에 딸린 텃밭이었던 것을 밭으로 이용하지 않고 뒷마당으로 사용했다. 낮에는 마구간에 있던 소를 끌어내다 말뚝에 매 놓는 자리고 솔가리나 장작 등, 나뭇단을 해다가 집채만큼 재 놓는 곳이고 가을이면 짚동을 재 놓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은 우리들이 숨바꼭질 놀이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인산 아재만 없으면 그 집 뒤란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더구나 굵은 풍개 나무 아래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샘가에서 소꿉장난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했다.

나는 매번 남쪽으로 뻗어 굵게 자란 우리 집 두충나무 가지에 새끼를 굵게 꼬아 그네를 맸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네를 타고 노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네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 집의 풍개 나무에 걸렸던 그네와 그네를 타는 두 아이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내 기억 창고를 뒤집어보면 늘 그 집 뒤란의 풍개 나무 가지에는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그네에는 서너 살짜리 아이가 앉아 있고 누군가 그네를 밀었다. 그네가 마당 쪽으로 휘익 날아오르면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하늘로 고개를 잔뜩 젖힌다. 아이 얼굴은 보이지 않고 맨살의 다리만 하늘로 솟구친다. 아이는 두 다리를 하늘에 대고 버둥거리며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누구일까. 그네를 미는 아이도, 그네를 타는 아이도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날 듯 말 듯 희미한 기억만 간간히 나를 짓누른다. 뭔가 있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친구인 순이도 아니고 영희도 아니다. 누굴까. 나는 가끔 그 아이가 누군지 참 많이 궁금하다. 아니, 아이만 궁금한 것이 아니라 새미다. 그 집 뒤란의 샘이 우리 집 장독간 앞의 깊은 우물 같은 그런 깊은 우물로 내 기억창고 깊숙한 곳에 아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처녀시절 고향 집에 갔을 때였다. 그 집에 들렀었다. 빈집이었다. 장독간도 세간도 그대로 있었지만 마루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집 뒤란을 바라봤다. 뒤란의 풍개 나무는 여전히 건재했다. 고목이 된 풍개 나무는 볼품이 없었다. 가지를 베어낸 자리마다 굵은 옹이가 박히고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고 울퉁불퉁하게 변해 있었지만 몸통만은 여전히 실했다. 풍개 나무 아래 새미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여전히 맑았다. 풍개 나무 가지에 굵은 풍개가 매달려 발그레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군침이 돌았다. 풍개를 따고 싶어 새미가로 다가가던 나는 돌마다 이끼가 파랗게 돋은 새미가 보이자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아니 꼼짝도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금이 저렸다.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무에 잔뜩 달린 풍개를 보다가 그 아래 새미에서 도랑으로 졸졸 흐르는 물을 보다가 그냥 돌아 나왔다.

“엄마, 그 집이 비었네. 인산 아재 죽었다는 것은 알지만 아지매는 어떻게 됐어?”

어머니께 여쭤 봤다.

“인산 띠 말이가? 인산 양반 죽고 얼매 안 있어 대군가 오데 사는 딸한테 갔제. 가끔 댕기 가기는 한다마는 딸네 집 얹히 사는 기 심든 갑더라.”

“인산 아재가 험하게 죽었다며? 어떻게 죽었는데?”

“점쟁이가 풍개 낭구 베모 죽는다 캤다는데. 풍개 낭구 가지 하나가 축 늘어져서 새미 속에 뿌리를 박는 기라. 저거 아들 클 때 그네를 매달아 주기도 했던 가지란다. 하루는 술이 망깡이 돼 온 인산 양반이 ‘이 놈의 벼락 맞을 풍개 낭구 땜새 집안에 망쪼 들었다. 인자 새미에까지 발을 뻗어’ 함서 벴단다.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제. 인산 양반 죽고 인산 띠가 귀신 붙은 풍개 낭구라고 싹 베 삐고 집도 새로 질라 카더마 거기 안 쉬운 기라. 저 풍개 낭구 벨 사람이 있어야제. 모다 지 목숨 뺐길까 무서버서 손을 몬 대는 기라.”

“진짜 귀신 붙은 풍개 나무 맞는 갑네. 난 이상하게 그 집 풍개 나무와 새미만 보면 무서워. 근데도 이상하게 뭐가 자꾸 끌어당기는 것 같애. 왜 그렇지? 엄마, 혹시 나 어려서 그 집 풍개 나무와 새미에서 무슨 일 있었나? 인산 아지매한테 맞은 적도 있는 것 같아.”

“뭔 소리고? 그래, 맞은 적은 있을 끼다. 밤에 자다 옷에 오좀 쌌다고 아침에 챙이 씌고 소금 얻으로 보냈제. 인산 띠가 주걱으로 빰을 때맀다 카더마. 인산 띠한테 뺨맞고 대성통곡을 함서 왔던 적이 있제. 올매나 무안했는지 그 담부터 인산 띠만 보모 도망 댕깄제.”

“아니야, 뭔가 있어. 난 물은 안 무서운데 새미는 무서워. 물귀신이 빨아 댕기는 것 같아.”

“다 큰 아가 별소리 다 한다. 그 집은 이자삐고 살아도 아무 탈 없다.”

어머니는 더 이상 그 집 이야기는 하기 싫다는 듯이 등을 돌리곤 했다.


2.

아침 일찍 우물가에 앉았다. 김장을 하려고 배추 100포기를 잘 다듬어 배추 한 포기를 반 토막 내고 반 토막의 중간에 칼질을 했다. 큰 고무 통 세 개를 우물가에 놓고 큰 양은 다래기에 소금을 풀었다. 노란 속살을 드러낸 배추를 담갔다가 건져 고무 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속이 꽉 찬 배추 속을 뒤적거리며 굵은소금도 슬슬 뿌렸다. 너무 짜게 절여도 배추가 질기고, 너무 싱거워도 김치 맛이 안 난다. 배추 숨을 고루 죽여야 김치가 맛있다. 물론 온갖 양념이 버무려져 맛을 내지만 일단은 배추 숨이 알맞게 죽어야 한다.

배추 절이는 일은 계속 구부려서 하는 일이라 허리가 아팠다. 허리를 쭉 펴고 두충나무를 올려다봤다. 나뭇잎 하나 팔랑팔랑 떨어져 우물을 덮은 나무 뚜껑 위에 사뿐히 앉는다. 나뭇잎을 쫓던 내 눈이 뚜껑 아래 우물 속으로 빠진다. 우물 속에는 두충나무 가지가 들어가 있다. 우물 속에는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고, 방금 빠진 나뭇잎이 떠 있다. 둥근 화판에 수묵화 한 점 그려졌다. 언뜻 한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가 싱긋 웃는다. 누굴까. ‘너 누구니?’ 아이에게 말을 건다. 우렁우렁 우물 속에 둥근 파문이 인다. 아이가 웃는 소리일까. 그 집 뒤란의 새미 속에 빠졌던 하늘이 우리 집 우물 속에도 있었다.

나는 백일몽을 꾼다.

단발머리 여자애가 샘가에 앉아 뭔가를 찧고 있다. 자세히 봐도 쑥인지 풀인지 잘 모르겠다. 납작한 빨랫돌에 풀을 놓고 몽돌로 콩콩 찧었다. 조막손으로 짓뭉개진 풀을 두 손으로 감싸서 이가 빠진 사발에 대고 짰다. 짙은 녹색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물방울이 안 떨어질 때까지 꼭꼭 눌러 짰다. 아이는 그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댔다. 인상을 쓰면서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그것을 납작한 쑥색 깡통에 담았다. 알맹이는 까먹고 버린 깡통이다. 아이는 풀물이 담긴 깡통을 물 퍼는 박 바가지에 담더니 머리에 이는 시늉을 한다. 바가지에 담긴 깡통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 아이가 바가지를 이고 샘가를 나와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가의 울타리 앞에는 멍석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늘어뜨린 또 한 아이가 누워 있다. 멍석 한쪽에는 납작한 돌이 놓여 있고, 돌 위에는 살림살이가 차려져 있다. 뚝배기와 장독 뚜껑, 사발이나 접시, 항아리, 아주 작은 단지 등 질그릇 깨어진 조각이다. 모서리를 돌로 톡톡 깨어 동글납작하게 만든 크고 작은 그릇과 바가지 깨어진 것 등이다. 부엌 살강에 어머니가 그릇을 씻어 엎어 놓았듯이 가지런하다.

단발머리 여자애가 쑥물이 담긴 깡통을 누워 있는 갈래 머리 여자애 앞에 놓고 쭈그리고 앉았다.

“어무이 약 자실소.”

“치아라 고마, 내가 지금 약 물 처지가? 계집년 잘 못 들어와 대 끊어지게 생겼는데. 넘들은 머스마만 쑥쑥 잘도 놓더마. 논 머스마도 몬 키우는 년이 낯데기는 빤빤해 가지고 나가라 고마 딱 뵈기 싫다. 니만 보모 엊지녁에 묵은 밥도 올라 올라 쿤다. 구엑질이 난다. 썩 꺼지라는데도”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병자 흉내를 내는 여자애가 윗몸을 발딱 일으켰다. 쑥물이 든 깡통을 마당으로 휙 던져버린다. 도끼눈으로 며느리 흉내를 내는 여자애를 잡아먹을 듯이 째려본다. 참 표독스럽다. 금세 ‘아이고 머리야 내 죽것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풀썩 드러눕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며느리인 여자애에게 삿대질을 한다.

“내가 니 년 땜에 내 명 대로 몬 살끼다. 뵈기도 싫으니 썩 나가래두”

고함을 치다가 다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죽는시늉을 하다 다시 발딱 일어나 도끼눈을 뜬다. 며느리 흉내를 내는 여자애를 째려본다. 며느리 여자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쪼그리고 앉아 훌쩍훌쩍 우는 시늉을 한다.

“니 진짜 우는 기가?”

표독스럽게 몰아치던 갈래 머리 여자애가 놀라서 우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다. 내가 진짜 우는 줄 알았더나?”

두 아이가 마주 보며 깔깔깔 웃는다.

백일몽에서 깨어보니 배추 백 포기는 말끔히 소금물에 절여져 통에 담겨 있었다.

처음 시집왔을 때 우리 집 우물은 펌프질로 물을 퍼 올려야 했다. 마중물을 부어 힘차게 손으로 펌프를 저어야 물이 펑펑 쏟아졌다. 팔 힘이 약한 나는 늘 물 길어 올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비지땀을 흘렸다. 펌프질이 맘대로 안 되면 우물의 나무 뚜껑을 열고 두레박으로 퍼 올려 써야 했지만 나는 우물의 나무 뚜껑을 열지 못했다. 무서웠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게 정말 무서웠다. 설령 우물을 덮었던 뚜껑이 열려 있어도, 긴 두레박줄이 우물 속으로 드리워져 있어도 두레박질은 꿈도 못 꾸었다. 허둥지둥 남편을 찾거나 시어른께 도움을 청했다.

“얼라도 아니고 번번이 왜 그러냐? 두레박질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시어른과 남편의 퉁을 먹으면서도 그 버릇은 여전히 고칠 수가 없었다.

대신 얼마 후,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을 받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가 도시 생활에 길든 아내가 안쓰러워 거금을 투자했던 것이다. 수중 모터를 사서 우물 속에 넣었다. 그 뒤 우물의 뚜껑을 열어젖히거나 우물 속을 들여다볼 일은 없었다. 가끔 우물 벽도 말리고 우물 속에도 바람 좀 들락거리게 해야 한다고 우물을 덮었던 뚜껑을 열어놓기도 하지만 그때는 나 스스로 우물을 외면했다. 뚜껑이 덮일 때까지 우물가 쪽으로 눈을 안 돌렸다. 우물과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빨려 들 것 같은 위기감을 벗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십 년을 살면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나는 여전히 우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심히 지나치다가도 은연중에 기피하는 현상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우물은 내게 늘 풀리지 않는 숙제 같다. 이젠 어떤 이야기든지 털어놔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나절부터 배추를 씻기 시작했다. 100포기의 절임 배추를 맑게 씻어내려면 물이 한정 없이 필요했다. 수도꼭지를 있는 대로 틀어놓고 철철 흐르는 물에 배추를 씻어 헹구는데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물줄기가 가늘어진다 싶더니 뚝 끊어졌다. 수중 모터는 계속 도는데 물이 안 나왔다. 겨우 재벌 씻기에 돌입했을 뿐인데 우물 바닥이 드러났다는 것은 심각했다. 물이 찰 때까지 기다리든가 개울에 가지고 나가서 씻든가 결정을 내려야 할 사항이 된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새된 소리로 시어머니를 불렀다.

방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놀라 마루로 나왔다.

“와 그라노?”

“새미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데 예”

“와? 새미 뚜껑만 열모 걸음아 날 살려라 캄서 도망치던 아가 우짠 일이고?”

“물이 바닥났어 예. 모다는 잘 도는 것 같은데. 새미에 물이 없나 봐 예.”

“야가 시방 뭔 소리 하는 기고? 새미에 물이 없다니? 올매나 짚은 새민데.”

어머님이 슬리퍼를 찔찔 끌고 우물가로 오셨다.

“띠비 함 열어봐라.”

“어머님이 열어 보세요. 저는 싫어 예.”

“니 참말로 오데가 이상한 거 아이가. 새미 띠비만 열모 난리니 말이다. 그라지 말고 일로 와서 새미 속이나 딜다 봐라. 저 새미 판다고 너거 시아베랑 이웃 아재 몇이서 몇 날 며칠을 올매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무서워서 들어다 보는 것은 싫어 예. 물이 있습니꺼?”

“니 나가 올해 몇이고? 우리 집에 시집온 지 올매나 됐노? 인자 철 날 때도 됐건만 하는 기 와 그 모양이고. 서너 살짜리 얼라도 아니고.”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어머님의 꾸지람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우물이라면 진저리를 친다. 철철 흐르는 개울에 가서는 빨래도 하고, 수영도 하고 잘도 노는데 동네 우물이건, 동네 샘이건 깊은 곳을 내려다보는 것에는 자신 없다. 꼭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아끌고 들어갈 것 같다. 그 아이만이 아닌 듯한 느낌만으로도 오싹하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다.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기억창고에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두려움은 자기 자신 속에서 생기고, 소멸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내 속에 있는 두려움은 내가 만든 허상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장골 서너 질은 족히 될 깊은 우물인데 몇 달 동안 아무리 가물었기로서니 벌써 바닥이 날 리 없다고 하셨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전기 코드를 뺐다. 어머님이 우물을 덮었던 나무 뚜껑을 열고 속을 들여다봤다.

“니 눈으로 직접 봐라. 나는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인다.”

끝내 나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대신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고집이라면 한 고집하는 줄 익히 아는 시어머니는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을까. 발이 저려왔다.

“야가,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나. 참 별스런 아도 다 보것다. 인자 물 찼을 끼다. 꼭지 틀어봐라. 배추를 어서 씨꺼 놔야 물이 빠지제. 올 가실에는 하도 가물어서 새미 물이 많이 줄었던 기라. 배추 몇 피 씻고 바닥을 드러내는 걸 보니 엔간히 가물긴 했는 갑다. 우리 집 새미는 하도 짚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 떨어진 일은 없다. 쪼매 줄다가 다시 항거석 차 오리니라.”

시어머님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야 부스스 일어났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맑고 하얀 물줄기가 거침없이 콸콸 쏟아졌다. 헐렁헐렁 배추를 씻어 소쿠리에 건지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김장해 놓고 김장김치 몇 포기 담아 친정에 다녀와야겠다고. 가는 길에 이번에는 확실하게 그 집 뒤란에 들려봐야겠다고.

다음날 김장을 끝냈다. 김장은 사흘이 걸린다. 물을 뺀 절임배추에 양념을 버무려 넣는 날은 시동생도 왔다. 삼겹살 두둑이 사서. 시어머님의 진두지휘에 남편과 시동생이 팔을 걷어붙였다. 앞치마도 소맷부리도 벌겋게 고춧가루 물을 들이며 100포기의 김장을 끝냈다. 삭신이 쑤셨지만 한 해 마무리를 했다. 홀가분하다. 친정에 가져갈 김치 한 통을 따로 챙겨 놨다. 이번에 고향에 가면 그 집과 풍개 나무와 샘의 안부를 묻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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