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친구따라 강남 가기
이웃에 사는 행운 언니가 전화를 했다.
점심 먹었어? 우리 쇼핑 갈래?
살 것도 없는데. 안 갈래요. 나가면 돈만 쓰고, 그냥 집에 있을래요.
왜에? 같이 가자. Y시에 대형 마트가 생겼대. 거기 오늘 신장개업한대. 개업 첫날은 선물도 푸짐하고 엄청 싸다. 이럴 때 안 사면 손해야. 나도 살 건 별로 없지만 바람도 쐴 겸 나갔다 오고 싶어서. 같이 가자. 아이쇼핑이란 것도 있잖아. 짝지가 수영복 사라 했다며? 수영복 없다면서 왜 안 사? 이럴 때 싸게 사 둬야 되는 거야.
수영 안 다닐래요. 수영복 입을 자신 없어요.
몇 년 전부터 우리 마을에 국민체육 센터를 짓기 시작하여 올여름에 개장을 했다. 국민체육센터를 짓는다는 소문이 들릴 때부터 은근히 기다렸었다. 나도 수영을 해 봐? 허리 요통과 관절염에 제일 좋은 운동이 수영이라는데. 행운 언니가 수영장 개장하면 같이 다니자고 했었다. 그럴 계획이었다. 물론 지역주민을 위한 복지관이니 입장료도 쌀 것이고 달 목욕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 싶어 기대했었다.
그러나 막상 수영장이 개장되었지만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물론 돈도 아깝고, 시간도 없고, 더한 것은 수영복 입을 자신이 없었다. 용기를 내서 수영장까지는 어떻게든 간다 해도 그다음이 문제다. 남의눈이 두렵다. 내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을 자신이 없다. 사람들 시선이 두렵다. 내 속에 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다는데. 이럴 때 살찐 내가 한심하다. 날씬하고 예쁜 여자들만 눈에 들어온다. 저런 여자들은 어떻게 몸 관리를 해서 저런 몸매를 유지하는 거야. 은근히 시샘도 나고, 나 자신을 푹 퍼지게 방치하고 산 것이 억울하다. 그런데도 다이어트는 번번이 입으로만 하니 남편에게 구제불능이란 말을 듣는다.
행운 언니는 틈만 나면 살살 꾀었다.
처음이 힘들지 해 봐. 수영장 가면 너는 뚱뚱한 편도 아냐. 오십 대 여자들이 몸매 자랑 할 일 있어? 난 즉각 갈 거야. 우리 건강만 생각해.
아무리 살살 꾀어도 내가 마이동풍이자 기다리다 못한 언니는 혼자 수영장에 갔다. 행운 언니는 약을 올린다. 며칠 다니지도 않았는데. 살이 솔솔 내리는 것 같단다. 물에 가면 딴 세상이야. 가자. 틈만 나면 수영 가자고 나를 꾀는 중인데 마침 인근 도시에 대형 마트가 개장을 한단다. 내가 쇼핑 갈 맘이 없다고 심드렁해하자 또 시작이다.
수영하니까 진짜 좋더라. 내가 내 몸 챙겨야지. 아파 봐라.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다. 나만 서러워. 그리고 우리 나이에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수영하러 댕기나? 운동하려고 다니지. 그대나 나나 건강 챙겨야 해. 퇴행성 관절이나 심장 나쁜 데는 수영만큼 좋은 운동이 없어. 이참에 수영복 사서 너도 같이 하자. 대형 마트는 수영복도 쌀 거야. 개장할 때 며칠은 뭐든지 반값이거든. 정가 주고 사면 나만 손해 본 것 같잖아. 이럴 때 싸게 구입해 두는 것도 돈 버는 거야.
혼자 다녀오세요. 아무래도 저는 안 되겠어요.
나가기 싫다고 해도 행운 언니가 자꾸 조른다. 집에 있어 봤자 기분만 우울해지니 이럴 때 기분 전환 할 필요도 있다면서 가자하고 나는 안 가겠다 하고.
전화에 대고 입씨름을 하는 중인데 느닷없이 ‘간다더니 왜 안 가?’ 하면서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현관에 들어 선 남편이 떫은 감이나 소태 씹은 얼굴로 나를 째려본다. 손에 끼었던 목장갑을 벗어던지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당신 수영 복 사러 안 갈 거야? 사라면 살 일이지 무슨 여자가 고집이 그렇게 세.
하도 어이가 없어 남편을 멀뚱히 쳐다보는데 귀에 댄 전화기에서는 더 난리다.
너의 신랑 들어온 거야? 왜 화내? 나 때문이야? 전화 잘 못 한 거야?
언니 아니야. 나보고 수영복 사러 안 간다고 그러는 거야.
잘 됐네. 그럼 빨리 챙겨서 나와.
아니 안 갈래. 여자들만 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 차라리 달 목욕이나 다닐래.
전화 내용이 다 들리는 것인지 옆에서 내 전화하는 양을 못마땅한 얼굴로 지켜보던 그가 사정없이 두 번째 입 화살을 날린다.
도대체 당신 몇 살이야? 사라면 살 것이지. 당신 자신이 당당하면 됐지. 남의눈은 왜 의식해? 어떤 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남편의 화난 목소리에 그만 고무줄처럼 쭉쭉 늘어지기만 하던 내 대답이 두말없이 ‘언니 바로 출발할게요. 같이 가요.’ 쪽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곤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오금을 박았다.
좋아, 나 돈 왕창 쓰고 올 거야. 카드를 찍찍 긁어놓고 올 테니까. 수영복도 젤 비싼 걸로 중요한 곳만 살짝 가린 진짜 야한 것 살 거니까 알아서 해. 나중에 딴 남자 앞에서 몸매 자랑할 일 있느냐는 소리만 해 봐라 가만 안 둬. 또 돈을 많이 썼니 어쨌니 하면서 무슨 여자가 있는 대로가 한정이냐고 하기만 해 봐라. 이참에 나도 돈 쓸 줄 안다는 것 보여주겠어. 내가 하기 싫어서 싫다는 줄 알아? 당신 호주머니 생각해서 그러지. 나도 돈 펑펑 쓸 줄 안다고. 나도 좋은 것 사고 싶다고. 누굴 바보로 아나.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성질을 버럭 내고 집을 나서긴 했지만 지갑에는 몇 만 원이 고작이었다. 수영복이 비쌀 텐데. 이걸로 되려나 모르겠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며 행운 언니 네로 향했다.
가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굽 높은 구두를 신은 행운 언니는 일류 멋쟁이다. 공들여 말아 올린 머리며, 반짝이는 보석 귀걸이며, 굵은 비치 반지에 두툼한 금 목걸이를 걸친 언니는 아무리 봐도 부잣집 마나님이다.
겨우 거기 가는데. 언니 차림새가 어째 그리 휘황찬란하우? 안 하던 보석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다 이유가 있지. 속이 텅텅 빈 것들은 이렇게 치장을 해야 알아 모시거든.
행운언니는 자신의 소형 승용차는 세워두고 최근에 뽑은 최신 중형 승합차에 올랐다.
Y시의 신장개업 한다는 대형 마트를 찾아갔다.
나는 대형 마트 신장개업에 가 본 적이 없다. 남편에게 지청구 듣고 욱하는 성질에 구경삼아 나서긴 했지만 어째 빈 지갑이 자꾸 걸린다. 수영복이나 살 수 있을지. 결혼 생활 25주년이 되도록 근교 도시에 온갖 대형 마트, 백화점이 들어서도, 물건이 기차게 싸다 해도 싸면 얼마나 쌀까 싶어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 이면에는 도깨비 시장도 아니고 살판났다는 듯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기가 질려버렸는지 모른다. 그 많은 인파 속에 나까지 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여태 살았었다.
Y시의 대형 마트에 금세 도착했다.
정말 기막히게 우람했고 화려한 대형 건물이다. 정문에서부터 줄을 선 승용차며 빽빽하게 도로를 메우고 있는 사람들, 한 마디로 대단한 사람 물결이다. Y시의 젊거나 늙거나 사람들이 몽땅 출동한 것 같다. 주차 혼란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건물 주차장을 찾아들었다. 5층이었다. 행운 언니는 그 좁은 공간도 대형 승합차를 부드럽게 후진하여 사르르 밀어 넣는데 운전 실력이 저 정도는 되어야 도심 속을 헤엄치고 다닐 수 있겠다고 감탄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자리 쟁탈전은 벌어졌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밀려 나가고 물건을 바리바리 든 사람들이 밀려 나왔다. 매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때부터는 아예 사람에게 떠밀러 다니는 형국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여차하면 간 빼 묵힌다. 내 뒤만 빠짝 따라붙어.
쇼핑카를 챙겨 끌며 행운 언니가 속삭였다. 그때부터 돌진이다. 말 그대로 쇼핑카로 밀어붙이기 작전이다. ‘곧 품절입니다. 품절, 싸게 싸게’ 외치는 곳마다 서로 많이 사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데 이건 전쟁이 따로 없다.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매장마다 화려하고 예쁜 물건이 즐비했지만 물건 구경은 고사하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매장으로 쇼핑카트를 끌고 돌진하는 행운 언니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언니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따라가느라 허덕허덕했다. 손 전화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행운 언니 손 전화번호를 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헤어져버리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지하에서 지상까지 적어도 10층은 될 것 같다. 매장만 해도 대여섯 곳은 넘을 것 같다. 완전 시골뜨기 서울 한 복판에 부려 놓은 꼴이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깜빡 한 눈 팔다가는 서로 찾다가 볼일 다 볼 것 같아서 구경이고 나발이고 언니의 뒷모습만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런데도 한순간 놓쳐버리고 멍하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언니가 나를 찾는 게 빠를 것 같아서 그냥 그 자리에 오뚝이처럼 섰다. 혼이 쏙 빠져 달아난 느낌이랄까. 공항 상태가 찾아왔다.
잘 따라다니라니까 거기서 뭐 해.
역시 언니가 되돌아와서 내 팔을 끌었다.
저기 우리 아들에게 딱 어울릴 남방을 봐 놨어. 가자.
그 코너는 좀 덜 복잡했다. 언니가 옷을 고르는 사이 옆 가게를 쭉 둘러봤다. 저 옷은 우리 아들 입으면 멋지겠고, 저것은 내 남자 입으면 멋질 것 같고, 저 옷은 우리 딸 입히면 정말 예쁘겠다. 어찌 내가 입고 싶은 옷은 보이지 않는지. 이러면서 구경을 하는데 아무래도 여자들 옷에 더 관심이 간다. 옷이 하도 고상하고 고급스러워 보여서 가격표를 봤더니 숨이 멎었다. 반값이라는 데도 내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가격이었다. 눈이 똥그래진 나를 보고 행운 언니가 웃었다.
여긴 유명 브랜드 매장이야. 그래도 엄청 싼 거야. 3,4십 퍼센트는 세일한 가격이야. 여긴 코너마다 바로 결재를 하잖아. 사고 싶은 거 있어? 눈 딱 감고 한 벌 마련해 버려.
그랬었구나. 어쩐지 진열된 물건들이 괜찮다 싶더라니. 이런 고급 사 봤자 입을 일도 없는걸요.
요즘 유행하는 유명 브랜드 이름 하나 알지 못하는 내가 만약 그곳에 있는 상품을 입는다면 개발의 편자 같겠다며 웃었다.
일단 수영복 파는 매장에 가 보자. 너 수영복 사야지. 그리고 돼지고기 삼겹살이 엄청 싸더라. 저녁에 주물럭이나 해 먹게 돼지고기나 몇 근 살까 해. 가격 봐서.
몇 층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에게 떠밀리고, 도우미들에게 떠밀러 수영복 매장을 찾긴 찾았다. 사이즈를 묻는데. 알아야 말이지. 그리고 왜 수영복이 모두 그 모양인지. 손바닥만 한 천 조각으로 만든 것이 비싸기는 왜 그렇게 비싼지. 맘에 드는 걸 잡으니 십몇 만 원이다. 비싸다. 반액 할인이라는 데도 뭐가 이리 비싸. 자투리 천으로 만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생긴 것을 뒤적이면서 툴툴거리는데. 도저히 내 몸에 입힐 자신이 없다.
정 안 되면 원피스 형으로 사. 근데 그게 참 불편하다. 그냥 쫙 붙는 게 나은데.
행운언니가 훈수를 둔다. 무난한 것, 튀는 색깔이 아닌 것, 그런 것을 골라 괜찮다 싶어 가격표를 보면 이건 아니다. 결국 그중에서 제일 싸고 무난한 원피스 형을 골랐다 .몇십만 원 쓰겠다고 큰소리쳤는데 겨우 몇 만 원짜리 밖에 못 고른 내가 한심했지만 어찌하겠는가. 그게 내 그릇인 걸.
일단 수영복은 샀으니 구경만 할 생각으로 매장에서 매장으로 돌아다닌 것이 화근이다.
5층에서 내려와 지하 매장까지 돌아다니며 느낀 것은 그곳에서는 돈이 주인이었다. 돈이 사람을 지배했다. 물건도 쌌다. 정상 품인지 매장용으로 따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값이 시중보다 저렴했다. 예를 들면 시중에서 두루마리 휴지 24개 한 묶음에 만원이라면 그곳에서는 두 묶음에 만원이었다. 돼지고기도 일반 식육점에서 한 근 가격에 두 권을 살 수 있었다. 닭고기도 그랬다.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 쌌다. 정말 싸도 너무 쌌다. 사고 싶었다. 사다 놔도 썩는 게 아닌 생필품은 일 년 치를 몽땅 사다 놔도 손해 날 장사는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그랬다. 옷도 쌌고, 식품도 쌌고, 가전제품도 쌌다. 물건으로 꽉꽉 채워진 쇼핑카트를 끌고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카드를 긁었다. 물건을 많이 사면 선물도 팍팍 주고, 상품권도 주었다. 상품권과 좀 큰 개업선물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물건을 사 쟀다. 싸니까. 하나 살 걸 두세 개 샀다.
바람이나 쐬고 물건 구경이나 하고 가겠다던 행운 언니는 벌써 카트기가 차고 넘친다. 가는 곳마다 20대의 싱싱한 처녀총각들이 ‘사모님, 사모님,’ 하면서 눈웃음친다. ‘이것 어때요? 언니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 이럴 때 왕창 쓰세요. 평소에 이런 물건 이 가격 주고는 어림없어요. 안 사도 좋으니까 구경이나 해 보세요.’ 하면서 팔을 끌어당긴다. 욕심이 생긴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파격 세일이라잖아. 이 기간 아니면 비싸서 살 수도 없는 물건이라잖아. 욕심이 났다. 사고 싶었다. 안 돼. 충동구매잖아. 하면서 손은 계속 이건 싸니까. 한 개 저것도 싸니까. 한 개 집어 쇼핑카트에 담았다. 쇼핑카트에 담긴 물건을 챙겨보니 모두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편 것, 아이들 것, 먹을 것이다. 더 이상 안 사야지. 하면서 또 다른 매장을 돌아다니며 주워 담고 있었다.
현금도 없으면서 내가 왜 이렇지. 그래, 카드 있잖아. 카드 쓰지 뭐. 카드 쓴다고 큰소리쳤으니 왕창 쓰고 가지 뭐.
그랬다. 아무리 물건이 싸고 욕심이 나도 돈이 없으면 군침만 흘리다가 갈 것을 내 지갑에는 비시 카드가 있었다. 남편이 비시 카드 하나 장만하라고 했었다. 몇 달 전이지만 카드를 쓴 것도 최근이다. 주말에 아이들 친구들이 왕창 온 날이었다. 시장이라도 봐야 아이들을 대접할 텐데 하필이면 지갑에 땡전 한 푼도 없었다. 결국 농협 마트에 가서 카드를 사용했다. 처음 사인을 하는데 손이 달달 떨렸다. 누가 봤으면 남의 카드 슬쩍 한 사람으로 오인할 수도 있었으리라. 무슨 일이든지 처음 길 내기가 어렵지 일단 길이 나면 닦여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잘 닦였다. 카드도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매장 어디에도 시계가 보이지 않으니 몇 시가 됐는지도 알 수 없지만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떠밀러 매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의자가 있으면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행운 언니답게 눈치가 10단이다.
피곤하지? 쉬었다 가자. 이참에 저녁까지 먹고 가지 뭐. 나 배고파 죽겠다. 돌아다녔더니 배가 엄청 고프네. 오늘 먹는 거는 내가 쏜다. 그나저나 나도 엄청 샀다. 안 사야지 해도 와 보면 이렇게 사게 되니 어쩌겠어. 여자들 충동구매는 욕구불만과 통한다고 해. 이럴 때 욕구불만 해소하는 것도 좋잖아. 싼 값에 푸짐하게 사니 기분도 좋고. 저기 가서 밥 먹고 가자.
그렇게 하여 무거운 쇼핑카트를 끌고 매장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갔다.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푸짐하게 먹고 계산대로 갔다. 몇 개 안 산 것 같은데 금액을 보니 입이 짝 벌어진다. 카드를 꺼냈다. 카드결제를 하면서 내가 나에게 놀랐다. 카드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가슴이 툭 떨어졌다. 아니,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 카드 찍찍 긁은 것이다. 현금이 나가지 않으니 꼭 공짜로 물건을 산 것 같다. 다음에 통장 확인을 해 봐야 카드결제의 허점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나 있을지. 일단은 돈 쓴다는 실감이 안 났다. 현금 결제가 아니라서 그럴까.
어쨌든 승합차 뒷좌석을 꽉꽉 채우고 대형마트를 빠져나오니 서산에 해가 걸렸다. 집에서 점심 먹고 바로 출발했으니 자그마치 너덧 시간은 쇼핑을 했다. 대형 매장에는 어디서나 시간 까먹는 기계, 돈 까먹는 기계, 허영심 부추기는 기계가 숨어 있는 모양이다.
겨우 시내를 벗어나 집으로 오는 길에 행운 언니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또 미친 짓 했네. 다음 달에 카드 결제 어떻게 메우려고 이런 짓을 했는지.
저도 수영복만 사려고 했는데.
행운 언니처럼 나 역시 묵직한 가방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한 달 생활비를 하루에 날렸다는 생각을 하자 맛있게 먹었던 자장면이 역주행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