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단편소설>
할머니와 소나무
상섭은 엔진 톱을 소나무 등걸에 기대 놓고 할머니 산소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집에서 챙겨 간 소주와 육포를 꺼내 상석 앞에 차려놓고 큰 절을 했다. 절을 하고 산소 여기 저기 술잔에 담긴 술을 찔끔찔끔 끼얹고 묏등에 기대어 퍼질러 앉아 소주병에 남은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마른 잔디 사이로 황토가 드러난 낮은 묏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상토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잔디라도 파다 다시 입혀야 할 것 같았다. 시제 때 큰아버지께서 오시면 분명 잔소리 하리라. ‘니가 하는 일이 뭔가. 할무이 산소가 저리 되도록 놔두다니. 산소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문중 유사 노릇 한다고 할 수 있겠나?’라며 불호령이 내릴 것이다. 손자가 한 둘도 아니고 굴비 한 줄 정도는 되는데도 늘 잔소리에 타박을 듣는 손자는 농촌에 뿌리를 박고 사는 자신뿐이란 것이 속상할 따름이다.
할머니, 제가 꾸지람 들어도 싼가요?
상섭은 마치 할머니가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시큰둥하게 한 마디 던졌다. 바람이 휙 지나가면서 마른 지푸라기 한 움큼을 그의 발치에 떨어뜨린다. ‘그래, 믿을 데라곤 너 뿐인데 어쩌겠냐. 니가 너른 마음으로 품어주렴. 오죽하면 그러겠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미풍에 실려와 살랑살랑 그의 꺼칠한 얼굴을 쓰다듬는다.
생전에 본 적도 없는 할머니다. 할머니 품에 안겨 본 적도, 할머니 빈 젖을 만진 적도 없다. 할머니는 오십 중반 젊은 나이에 저 묏등 속에 자리 펴고 누웠다고 들었다. 딸 다섯에 마지막으로 아들 둘을 낳아놓고 막내인 아버지께서 열아홉, 겨우 장가 든 이듬해에 ‘와이리 머리가 아푸꼬?’라며 방에 들어가 누워 그 길로 바삐 황천 길 떠났다고 들었다.
어무이는 만다고 그리 바삐 갔시꼬. 이 존 세상 더 살다 가시제.
술 몇 잔에 취한 아버지는 늘 할머니를 그리워하셨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지만 할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열아홉 청년이었다. 아니, 예닐곱 살 막둥이 같았다. 아버지는 할머니 젖을 일곱 살까지 먹었단다. 골목에 나가 동네 애들과 사방치기를 하고, 나무막대기를 들고 전쟁놀이를 하며 놀다가도 집에 뛰어들어 ‘옴마, 찌찌 조라’며 할머니의 가슴을 헤쳐 젖 한통을 빨아먹고 나갔단다. 할머니를 뵌 적이 없는 나는 이런 저런 자잘한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할머니는 꽤 익살스러우셨나 보다. 열일곱 살 어린 며느리에게 이랬단다.
자~아는 일곱 살 묵도록 에미 젖 묵고 컸니라. 에미 젖 도라고 보채던 기 엊그지 겉은데 벌써 장개를 들다니. 참말로 세월 빠르다. 인자 니가 자~아 젖 믹이 잘 키아 봐라. 앞으로 남편은 하늘 겉은 낭군이기도 하고, 큰 아들 겉기도 할 텡게. 인자 다 니 소관이다.
그 어린 새댁도 이제 팔순이 넘었다. 팔순 노모와 노부는 효부와 효자다. 조상을 신처럼 모신다. 팔순 노모와 노부는 천지가 개벽을 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조상을 하늘같이 받들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조상을 잘 모셔야 집안이 잘 된다는 믿음은 요지부동이다. 윗대 봉제사 모실 때는 갓 쓰고 삼베 도포 입는 것은 필수다.
한 날 저녁이었다. 상섭은 농민회 모임이 있어 나갔지만 농민회도 처음 결성할 때와 달리 회원들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반목과 버석거림이 느껴져 기분이 상했다. 20여 명이던 회원도 차츰 이농이나 탈퇴로 줄어들어 여남 명 남았지만 그 여남 명도 한 마음이 못 되고 버석거린다. 원인이야 많겠지만 세월이 갈수록 단체보다 개인이 먼저였다. 역시 그날 저녁에도 지운이와 명석이만 회의에 나왔다. 셋이서 무슨 회의를 하겠는가. 셋이서 동네 음식점에 앉아 술타령만 하다 왔더니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술 냄새 풍길까 봐 입을 가리고 아버지 앞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아버지는 상섭의 기분이 어떤지 알바 아니라는 듯이 서두부터 꺼냈다.
너도 알다시피 안산에 있는 할매 산소가 많이 낮아졌다 아이가. 상토도 해야 하고, 상토 하는 참에 할매 봉분을 덮어 누르고 있는 소낭구도 베야것다. 너거 큰아베가 소낭구를 베라 쿤다. 할매 산소가 친다꼬.
또 시작이구나. 상섭은 역정이 나려는 것을 꾹 참고 앉았는데 본론이 시작되자 또 그 놈의 조상님 잘 모셔야 한다는 타령에 이어 할머니 산소에 잔디가 다 벗겨졌는데 다시 입히고, 상토를 하는 김에 시조 공 산소도 손을 좀 봤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만 참았던 열이 폭발했다. 상섭은 목구멍까지 차 있던 불만을 확 뱉어버렸다.
아부지, 제발 좀 제 속 긁지 마이소. 그렇게 윗대 조상 잘 모셨으면 복을 받아도 섬으로 받아 떵떵거리며 살아도 과분하지 않을 깁니더. 근데 그 많은 복 누가 다 받아 챙기고 아직도 요 모양 요 꼴로 산답디꺼.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고, 허리 띠 졸라매도 자식들 대학 공부도 못 시킬 판인데 입만 뻥긋했다 하모 조상님 잘 모셔야 한다니. 이보다 더 우찌 잘 모신단 말입니꺼. 제발 좀 그 조상 조상 하지 마이소. 넌덜머리 납니더.
여든이 넘은 노인은 그만 손에 잡고 있던 신문을 아들 앞에 휙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저 불효막심한 놈 말하는 것 보소. 죽은 할매가 벌떡 일어나 정갱이를 걷어찰 판이구나.
할매한테 한 번 차보라 하이소.
그래도 이놈이, 니 오데 가서 술 처 묵고 와 어른 앞에 행패고?
아부지, 말이야 바른 말입니더. 아무리 조상 잘 모셔도 저는 되는 일이 없네예. 저도 잘 살고 싶은데. 저도 두 아이 아부지라예. 애들 공부도 갈차야 하는데. 천 날 만 날 툭하모 문중 일로 이래라 저래라 하니 골 안 나게 생겼습니꺼? 조상 안 돌보는 큰집은 다 잘 묵고 잘 사는데. 왜 맨날 제가 다 해야 합니꺼? 조상은 우리가 모시는데 복은 큰집만 받는 것 같아서 억울합니더. 아부지한테 문중 대소사 다 맡기고 나간 큰집은 저리 잘 묵고 잘 사는데. 우리는 이기 뭡니꺼?
그래도 이놈이. 애비한테 또박또박 말대꾸가?
잘못했습니더. 소나무는 제가 알아서 처리 하겠습니더.
상섭은 그만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대쪽 같은 아버지 성정을 꺾으려 들다가는 큰 낭패 당하겠다 싶어 그만 울컥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다소곳해졌다. 그래야 집안이 편하지 안 그랬다간 아버지 등살에 달달 볶이는 것은 어머니와 아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삶이 소중한 것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삶도 없다. 내가 있다는 것은 조상이 있다는 거다. 아무나 모시면 되는 것, 농촌에 사는 것이 업이지 달리 방도가 없지 않는가. 상섭은 아버지 앞을 떠나 마당에 섰다. 우울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니 하늘도 별 하나 보이지 않고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그의 심정처럼.
상섭은 할머니 묏등에 기대에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하늘을 봤다. 환하게 열려 있어야 할 하늘 반쪽이 거뭇거뭇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더 푸른 것은 왤까. 상섭은 고개를 돌려 우람한 소나무 등걸을 바라봤다. 저걸 베란 말이지.
할머니 산소 옆에는 산소와 뚝 떨어져 있지만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봉분 쪽으로 비스듬히 서 있다. 아버지가 산소 옆의 소나무를 자르라고 명령 한 것이 옳긴 하다. 소나무 뿌리가 땅속으로 뻗어 할머니 산소를 침범 했을 수도 있지만 우선 척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나무그늘이다. 해가 서산으로 비스듬히 넘어갈 즈음이면 소나무의 그늘이 산소를 덮어버린다. 나무그늘 탓인지 산소의 잔디가 자꾸 누렇게 변해 죽어갔다. 햇볕이 고르게 봉분을 쓰다듬어야 잔디가 사는데 소나무 그늘이 햇볕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잔디가 죽는다고 했다. 사실 잔디를 몇 번이나 다시 입혔다. 아름드리 자란 그 소나무를 베어야겠다는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지만 번번이 베지 못했다. 왤까.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 산소에 오면 아버지는 할머니 산소를 지키는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그 소나무가 당신 부부의 관이 될 재목이라고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당신 대신 날마다 보살피고 지켜주는 귀한 소나무라고 했다. 대 여섯 그루 자라던 소나무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저절로 죽거나 누군가 베어가는 바람에 진짜 재목감으로 자란 것은 겨우 그 소나무 한 그루였다. 소나무 가지가 뻗은 주위 반경은 풀 한포기 없이 마른 갈비만 소복소복 쌓였다. 자리를 펼 것도 없이 갈비에 등을 대고 굵은 뿌리가 드러난 곳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따끈한 방바닥에 목침을 베고 큰 대자로 누운 것처럼 편했다.
상섭은 군대 생활을 할 때 휴가를 나오면 일부러 나무 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지게를 지고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곤 했다. 산소 옆에서 참꽃나무나 상수리, 참나무 어린 것, 삭정이 솔가리 등을 베어 대충 한 지게 맞추어 놓고 그 소나무 아래 누워 책을 읽거나 늘어지게 한숨 자고 내려오곤 했다. 소나무 아래 누워있으면 할머니가 부채질을 살살 해 주거나 내 손은 약손, 내 손은 약속 하면서 배를 살살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 좋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머닌데도 어쩐지 할머니와 상섭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긴 끈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할머니 산소 앞에 비문을 적은 비석을 세웠다. 큰아버님과 아버지, 두 형제분이 마음과 뜻을 맞추어 당신 생전에 마지막 효도를 하신 것이다. 큰아버님께서 이리저리 해라 지시하고, 아버지께서 상섭에게 이리저리 해라. 지시했다. 상섭은 속에 천불이 나도 두 노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오랜 세월 그렇게 길들어 왔기 때문이다. 효자 집안의 후손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 뼈에 박히고, 골수에 박혔기 때문이다. 상섭은 두 분의 뜻을 받들어 돌 공장을 찾아다니고, 가격과 규격에 맞는 돌을 찾아 비문을 새겼다. 비문 새긴 것을 큰아버님께 보였더니 글자 한자의 획이 잘못 그어졌다고 다시 하라는 불호령이 내렸다. 상섭은 다시 돌쟁이에게 쓴 소리를 해야 했다.
비석을 세우는 날이었다. 석공장에서 비석을 지고 온 일꾼 세 사람이 할머니 상석 옆에 비석을 세우고 나오는데 소나무의 썩은 가지 한 개가 툭 떨어져 한 사람의 일꾼 머리를 덮쳤다. 소나무가지에 난 옹이가 일꾼의 이마를 때린 것이다. 날카로운 옹이에 찍힌 이마에서 금세 선혈이 주르륵 흘렀다. 빨리 집에 가서 구급약통 가지고 온나. 휴지 가진 사람 없나. 손수건이라도 내 봐라. 우왕좌왕 설왕설래하다가 겨우 데일밴드 붙이고 상황종료는 되었지만 거기 참석한 사람들 누구나 표정이 어두웠다.
상섭은 효도한다고 큰아버님께서 손수 짓고, 쓴 글을 비석에 새겨 손 없는 날을 택해 비석을 세웠지만 할머니께서 썩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꼭 할머니께서 비문 새겨 비석 세운 것을 나무라는 것 같았다. 상섭 역시 언짢아서 누가 듣거나 말거나 툴툴거렸다.
동티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큰아부지는 아무도 와서 읽을 사람도 없는 비문은 뭔다고 새겨 세운다고 난린지. 돈이 쌔비서 가리짐을 놓는 거지. 씰데 없는 짓을 왜 사서 하는지. 이런데 쓸 돈 있으면 차라리 못 사는 동생에게 생활비라도 보태 주지. 살았을 적에 잘 해야지 죽고 나서 저런 거 세운다고 할매가 좋아하실까.
성섭이 잔뜩 부은 얼굴로 땅에 떨어진 소나무 가지를 주워 숲으로 던지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삭이는데 뒷짐을 지고 소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저 소낭구를 베야겠다. 어무이 봉분이 자꾸 낮아지고 떼가 벗거지는 것도 저 소나무 그늘 탓인 것 같다. 소나무 베고 잔디 새로 떠다 심어야 할 것 같다. 온제 날 잡아 봐라.
할매 산소 앞으로 늘어진 가지만 다듬지예. 저걸 우찌 베 넘갈라고예. 잘못 하다가는 할매 봉분이 다 내려 앉겠거마.
니 말도 일리가 있다마는 가지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쓸모도 없는 나문데 너거 큰아부지가 베라 쿠기도 하고, 내 생각에도 베는 기 낫겠다. 온제 날 잡아 땅에 딱 붙여 베 버려라. 베고 나서 밑동에 흙을 퍼 덮어 싹싹 문질러 버려라. 땅 기운을 저 소나무가 다 빨아 댕기는 것 같으니.
몇 년 전부터 아버지의 성화가 심했지만 상섭은 해마다 소나무가지만 다듬었다. 장골 두 아름은 될 정도로 굵은 몸통은 쭉 뻗어 오르다 우산처럼 쫙 퍼진 형탠데 동쪽으로 뻗은 우산대가 찌그러진 모양새다. 가능하면 할머니 산소에 그늘이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동쪽으로 자라는 소나무 가지를 자꾸 잘라주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다듬어 잘라준 동쪽 가지는 볼썽사납고, 제 멋대로 자라도록 놔 둔 서쪽 가지는 울창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의 몸통도 쭉 곧은 게 아니라 약간 동쪽으로 굽었다. 나무는 햇볕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히 소나무 등걸도 구부정하게 자랄 수밖에 없는 이치다.
올해는 꼭 저 낭구 베거라. 산소 가에 있는 큰 낭구는 함부로 베는 게 아니다만 할 수 없다. 너거 조모 묏등이 피해를 보는데 우짜것노. 너거 큰아부지가 올 때마동 저거 안 뱄다고 멜쿤다. 올해는 딴 생각 말고 베라.
아버지께서 소나무를 잘라버리라고 한 말 속에는 이제 당신의 관을 짤 재목이 필요 없다는 뜻도 들어 있지 않을까. 옛날 말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할머니의 산소 옆에 있는 소나무도 굽었으니 선산을 지키는 셈이다. 곧고 바르게 자랐으면 진작 베어질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저 소나무가 반듯하게 자랐다면 아버지께서 진작 소나무를 잘라 제재소에 가져가서 반듯하게 잘라 묵혀두었을 것이다.
어려서 초가집 뒤란에 가면 널빤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먼지를 시커멓게 덮어 쓴 널빤지는 바로 관을 짤 수 있는 나무였다. 오랜 세월 소나무의 결을 삭이고, 고정시켜놔야 관을 짤 수 있는 재목이 된다고 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지금은 돈만 내면 장례식장에서 모든 것을 관장한다. 돈에 따라, 권세에 따라, 집안 가풍에 따라 입맛대로 관이 준비되고, 장례절차에 필요한 의식주가 맞춤으로 해결된다. 촌로는 없는 돈 아껴가며 수의를 장만해 장롱 안에 고이 모시지만 정작 돌아가시면 그 수의는 불에 태워지는 수모만 겪을 뿐 망자의 몸에 걸치기는 쉽지 않다. 좀이 먹고 낡아서 쓸모가 없거나 장례식장에서 자기들 잇속 챙기느라 집에서 만든 수의를 가지고 오는 것을 거부한다는 소문도 있으니 굳이 수의 장만하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어진 세상이다.
할매, 저 소나무 베도 괜찮겠습니꺼? 수 십 년을 동고동락하며 사신 정이 얼만데. 베어내도 안 서운하시겠습니꺼? 할매, 저 소나무가 여름에는 부채가 되어주고, 겨울에는 이불이 되어 드렸을 텐데. 진짜 베도 괜찮겠어예? 큰아버지가 자꾸 베라 하는데. 인자 아부지도 베라고 독촉이고, 나는 베기 싫은데. 참말로.
상섭은 마치 옆에 할머니가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다. 싸늘한 바람이 볼을 스쳤다. 바늘같이 날카로운 솔잎이 우수수 떨어지더니 할머니 묏등 위에도 놓이고 상섭의 머리 위에도 떨어졌다. 소나무를 바라봤다. 큰 둥치는 꼼짝도 않는데 소나무 가지가 휘청휘청 떨고 있었다.
너도 무섭나 보다. 걱정 마, 너를 베어서 멋진 찻상으로 거듭나게 해 줄 테니까.
상섭은 마음을 다잡았다. 상석에 남은 육포를 거두어 질겅질겅 씹으며 소주병을 싹 다 비우고 일어나 엔진 톱을 들었다. 엔진 톱을 들고 다시 늙은 소나무를 바라봤다. 언제 봐도 위풍당당하던 소나무가 어쩐지 왜소해 보였다. 바람은 이미 자는데도 소나무 가지는 누가 흔드는 것처럼 떨었다.
너도 떨고 있구나.
상섭은 엔진 톱을 윙윙 소리 나도록 돌려서 소나무 가까이 갔지만 선뜻 소나무 밑동에 엔진 톱을 대지 못하고 섰다. 이제 나무둥치까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엔진 톱의 손잡이를 끌어당겨 정지시키고 소나무에 손을 댔다. 미세한 떨림이 손바닥을 전율케 했다. 내 기분이겠지. 상섭은 소나무를 올려다봤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파랗기만 한데 소나무 가지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술에 취했나? 빈속에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것이 문젠 것 같았다. 상섭은 엔진 톱을 끄고 소나무 둥치에 등을 기댔다. 도저히 소나무를 못 베겠다. 일꾼 두어 명 대서 벨 수밖에 없겠다. 아내가 그러지 않았던가.
오래 묵은 소나무는 자르는 게 아니랍니다. 특히 당신은 오행에 木이 들어서 소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것은 절대로 베면 안 된답니다. 안 그래도 비실비실 하는 사람이 목신이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꼭 그 나무를 베야 한다면 돈 아낄 생각 말고 일꾼을 대서 하세요.
상섭은 소나무 둥치를 툭툭 두드려주고 할머니 무덤 앞에 가서 엎드려 절을 했다.
할매, 아무래도 저 소낭구 베기는 글렀습니더. 아부지한테 왕창 꾸지람 들어도 할 수 없어예. 수연에미 말대로 일꾼을 대서 베든지 해야지.
상섭은 다시 소나무 곁에 갔다. 소나무 둥치에 기대 퍼질러 앉았다. 등이 따뜻하다. 쿵쿵 등으로 소나무를 때렸지만 소나무는 별 흔들림 없이 상섭을 투정을 받아주었다. 에라, 모르겠다. 상섭은 소나무 뿌리가 굵게 뻗어 땅 위로 드러난 등걸을 베고 누웠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아내의 얼굴이 보일락 말락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