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소나무

<끝>

by 박래여

아내 생각이 났으니 말이지만 상섭은 늘 장가 하나는 기차게 잘 갔다고 생각한다. 농촌에 시집오려는 여자가 없어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록 장가를 못 간 그였다.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큰 걸림돌이었다. 살림이라도 풍족하면 모르나 겨우 밥 치레 면할 정도에 남의 논밭 빌려 소작하는 입장이니 재산 있다고 설레발도 못 쳤다. 성격이라도 털털하면 모르나 꼼꼼하고 조용한 사람이라 이웃집 할머니도 말 붙이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각산 띠 집은 청와대 가기보다 더 무섭다니께. 어찌나 사람들이 꼬장꼬장하던지. 집안에 들어가 보소. 촌 집 같은가.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해. 안팎으로 어찌나 야무친지 먼지 한 톨 없다니까. 사람이 너무 그러면 정이 안 붙는 법이제. 그 집 사람들, 헛말이라고는 할 줄 모르고, 법 없어도 살 사람들이지만서도 정이 안 붙어. 그 집 총각 역시 사람은 참 진국이제. 보지란하고, 뚝심도 있는데 꿔다 논 보릿자리 같으니 여자가 붙기를 하것어? 각산양반이 양반은 양반이지만 그 양반가문에 누가 며느리로 들어갈라 캐야제. 누가 시집올지 몰라도 시집살이는 따 논 당상이야. 농사일이고 집안일이고 손끝 야물기로 치모 우리 동네에서 각산 띠 따라 갈 사람 없싱께.

그 꼬장꼬장한 각산 양반과 각산 띠를 쥐락펴락 하는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상섭으로서는 흥감스러운 일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자는 처음부터 기를 팍 죽여 놔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한 치 벗어나지 못한 그는 아내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못마땅해 했다. 마치 여자 말을 들으면 자기 위신이 깎이는 것처럼 언제나 아내 위에 왕처럼 군림하기를 원했다. 그것은 싹 까놓은 밤톨 같은 서울내기 형수의 영향인지도 몰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여자를 얕잡아하는 말에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다. 형수가 딱 그 본보기였다. 그는 서울에서 십여 년 살았지만 서울 여자에게 장가 들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삼십 년 전, 그 해 가을은 유난히 단풍이 고왔다. 천지가 알록달록 변하는 것을 보며 타작을 하고, 보리를 갈고 마늘을 심었지만 상섭의 마음은 마냥 허전하기만 했다. 장가를 가고 싶기는 한데. 맞선 본 여자마다 농촌에서 살 생각이 없다하고, 시부모와 따로 살 생각은 없느냐고 하고, 도시에 나가 살 생각은 없느냐 하니 선 보기조차 지겨웠다. 혼자 살지 뭐. 상섭은 자조하듯이 중얼거리곤 했다. 도시 살이,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중학교 졸업과 함께 청운의 꿈을 안고 형님을 따라 서울로 진학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똘똘했던 덕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집안을 빛낼 큰 그릇이 되라고 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중학교 졸업을 하고 이모를 따라 서울로 올라간 형님은 남대문 시장에서 옷 가게를 꾸렸고 결혼도 했다. 아버지는 그를 형님 댁으로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살이는 고단하고 힘들었다.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신혼살림을 하는 가난한 형님 댁, 손바닥만 한 형님의 전세 방 귀퉁이 방에 빌붙어 살면서 일찌감치 서울 살이 짠 맛도 보았다. 매운 맛, 신 맛, 떫은맛도 보았다. 집에서는 형수의 눈이 무서웠고, 학교에서는 친구들 눈이 무서웠다. 경상도 투박한 사투리가 서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어머니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이 그리웠고, 나오는 대로 말을 해도 잘 통하기만 하는 친구들이 그리웠다. 다행히 형님은 자상해서 그런 동생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었다.

괜찮다. 기죽지 마라. 서울 말씨 배울 필요 없다. 당당해라. 괴롭히는 애 있으면 말해라. 내가 혼내 주마. 대신 너도 운동 한 가지는 제대로 해야 한다. 태권도를 배우든, 복싱을 하든, 한 가지는 해야 눈 뜨고 코 베가는 세상인 이 서울바닥에서 비빌 수 있다.

그는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자 몸에도 힘이 들어갔다. 서울깍쟁이 형수의 눈칫밥에 비쩍 말라 가던 그가 겨우 숨통을 틔운 것은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였다. 독립을 선언했다. 어지간히 서울 지리에도 익숙해졌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우등생이라는 거였다. 그는 배고픔은 책을 달달 외우는 것으로 풀었고, 샌드백을 치는 것으로 풀었다. 물배를 채우면서도 달동네 손바닥만 한 방을 빌려 들어갔다. 형님 댁에 있을 때는 눈칫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동네 코흘리개 서넛 데리고 과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밥을 먹기보다 굶는 것이 다반사였다. 자존심 때문에 형님에게 방세가 밀렸다는 말조차 안했다. 희한하게도 형님은 자존심을 딱 꺾고 싶을 때 소식도 없이 찾아왔다. 반찬 보따리에 돈 봉투를 끼워 넣어놓고 가곤했다. 그는 그 보자기를 안고 퍽퍽 울었었다. 돌아가리라. 내 고향 우묵배미로.

그는 즐겨 정지용의 향수를 웅얼거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결국 그는 소원대로 서른 살을 고비로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을 했다. 군대 제대 후 한동안 형님 댁 점포에서 점원 노릇을 했다. 그가 군대생활을 하는 3년 사이에 형님은 깍쟁이 형수가 어찌나 야무지게 살림을 살았는지 남대문 시장에 제법 번듯한 점포를 얻어 옷가게를 차렸던 것이다. 그는 형님 밑에서 장사를 배웠지만 장사는 그의 체질이 아니었다. 그는 낙향을 결심 했다.

아버지는 촌에 들어와 살겠다는 상섭을 못마땅해 했다. 서울에서 성공한 삶을 살 줄 알았던, 개천에서 용 났다는 칭찬을 듣던 아들이 귀향이라니. 참한 처녀 한 명 꿰 차고 오지 못한 아들이 참으로 못나 보였던 것이다.

그는 고향에 돌아오는 즉시 깔끔한 양복을 벗어 버렸다. 허름한 작업복에 밀짚모자를 썼다. 그제야 사람다워진 것 같았다. 맑은 공기며 푸른 숲과 너른 들에 한껏 기지개를 켰다. 여기서 나는 꿈을 이루어 보리라. 큰 바위 얼굴이 되리라. 나답게 살아보리라.

그러나 현실은 낭만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장가들라고 닦달했다. 친인척 알만한 동네마다 파발을 띄워 중매쟁이를 불러댔다. 상섭은 말없이 순종했다. 사실 농촌에서 살아내려면 아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환갑진갑 다 지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 열심히 맞선을 봤다.

삼십 년 전 그 해 가을, 나뭇잎이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는 것만 봐도 속이 시리던 상섭에게 아버지는 맞선을 보러 가라고 여비를 챙겨 주셨다. 노총각 딱지도 못 떼고 늙어가는 아들이 한심스러워 날마다 아내를 달달 볶아대던 각산양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던 것이다. 부산 사는 큰어머님이셨다. 거두절미하고 이웃에 처녀가 있는데 인물이야 보통이지만 마음 씀씀이가 너른 게 맏며느리 감이라고 선을 보라고 했다. 양쪽 집안 어른이 참석할 필요는 없고 당사자끼리 만났으면 한다고 몇 월 며칠에 부산으로 상섭을 보내라는 전갈이었다.

너거 큰어무이 눈이 예삿눈이 아니다. 척 보면 안다. 니도 이번 참에 무조건 됐다 캐라. 그 처니가 싫다모 할 수 없지만, 니가 지금 똥오줌 가리게 생겼나. 시집 오겠다모 무조건 좋다 캐라. 너거 큰어무이 체면도 있고 하니. 아무래도 간밤 꿈이 좋다. 너거 할매가 꽃 한 쇵이를 갖다 니한테 앵기더라.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치 국부터 마신 아버지의 너스레가 듣기 싫어 상섭은 쏙 빼다 놓은 양복을 걷어차 버리고 흰 고무신에 작업복 차림으로 부산 가는 버스에 올랐었다.

가끔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신세한탄을 할 때가 있다. 주로 첫 선 본 날 이야기였다. 그 날 자기 인생이 새끼줄처럼 꼬이기 시작했다고. 아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렇다.

너거 아부지 선 보러 왔는데 흰 고무신이 유난히 반짝반짝 하더라. 기생 오래비처럼 싹 빼고 오던 총각들과 어딘지 달라보였어. 지금이야 말이지만 너거 아부지 새까만 볼테이가 뺀질뺀질 한 것이 더 신기했었지. 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다방에서 만났는데 커피 한 잔이 다 식도록 말이 없는 거야. 나도 조신하게 군다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 근데 말이다. 슬슬 갑갑해지더라고. 한편으로는 말 없는 너거 아부지가 믿음직해 보이기도 했어.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했지. 제가 맘에 안 드나 보죠? 그럼 우리 없었던 일로 하고 나갑시다. 하면서 발딱 일어났지. 나도 똑 소리 난다는 여자였으니 내 말이 얼마나 쌀쌀 맞았겠냐. 근데 너거 아부지 하는 말에 그만 웃고 말았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아, 글쎄 발딱 일어선 나를 쳐다도 안 보고. ‘난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촌놈이요. 부모님과 평생 살 거요. 내한테 시집 올 맘 있으모 짜장면 무로 갑시다. 일찍 나온다고 아침을 안 묵었더니 배가 고파 죽을 판이오.’ 이러잖아.

두 아이와 깔깔대는 아내는 나이를 어디로 먹는지 철딱서니 없지만 그렇게 만난 아내는 살아갈수록 보배라고 생각했다.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상섭이 살갑게 사랑한다는 말도 해 본 적 없고, 결혼기념일이다. 생일이다 해서 선물 한 조각을 사다 준적도 없지만 그는 마음 깊이 아내를 사랑했다.

아이고, 말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소? 말 좀 하고 삽시다. 말을 해야 알지. 당신 속을 내가 어떻게 알고 알아서 한단 말이오. 입에 강력 본드가 붙었는가. 참말로 경상도 남자 아니랄까봐. 경상도 남자도 세 마디는 한답디다. ‘애들은? 밥 조라. 자자.’ 근데 당신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말이 고작 ‘밥 묵자.’라니, 밥도 당신이 챙겨 묵고 사소. 아이고오 속 터져. 말하는 내 입만 아푸제.

가끔 화가 돋친 아내가 따발총을 쏘아도 그는 눈살만 찌푸리고 귀머거리 행세를 할뿐이었다.

상섭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감았다. 누군가 부채질을 해 주는 것처럼 산들바람이 시원했다. 상섭은 잠이 들었다.

야야, 할미가 왔다. 너거 집에 살라고 왔다. 저것들도 내 따라 올라 캐서 데리고 왔다.

하얀 소복을 입고 쪽진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삽짝을 들어서고 있었다. 할머니 뒤로 역시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에 쪽을 진 여인이 따라 들어왔다. 딸이라 했다. 할머니의 딸이면 고모할머니?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할머니는 상섭의 손을 잡으며 ‘니가 고생이 많다. 아나, 선물이다. 이거 받아라.’ 뭔가를 내미는데 엉겁결에 받고 보니 커다란 지팡이다. 손잡이가 굽어있는 지팡이를 받아 땅을 짚었더니 한 순간 지팡이는 간데없고 그 자리에 소나무 한그루가 비스듬히 누운 것이 아닌가. 바로 상섭이 베고 누운 나무뿌리의 주인이었다. 소나무가 금세 한 아름이나 되어 상섭을 껴안았다. 아이고 숨 막혀, 할매, 이기 내 다리를 슬슬 감아 조입니더. 아이고, 아파라, 할매, 이거 좀, 할매, 이것 좀 우찌 해 주이소. 니가 밉빈 기 있는 갑다. 아입니더. 큰아부지가 베라 캐서예. 이 낭구 건드리지 말란 말입니꺼?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할매, 잠깐 만 있어 보이소. 할매. 하알매.......

상섭은 목이 터져라 할머니를 불렀다. 손을 허우적거렸다. 헌데, 어째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꿈은 꿈인데 분명한 것은 누군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슬슬 쓰다듬는 것 같았다. 아니 슬쩍슬쩍 거시기를 쳤다. 상섭은 사타구니를 내려다봤다. 어라, 거시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푸르죽죽한 귀두가 빙글빙글 웃으며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게 아닌가. 잠결에도 상섭은 부끄러웠다. 바짓가랑이가 탱탱하게 조여 오는 것을 느끼면서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 안전에 이게 무슨 짓이냐,’며 상섭이 제 손으로 툭툭 물건을 건드리니 그것이 성질난다고 더 바짝 고개를 쳐드는 것이 아닌가. 상섭은 눈을 감은 채 거시기를 잡아 사타구니에 처박았다. 순간, 무엇인가가 손등을 톡 쏘았다. 앗 따거! 상섭은 깜짝 놀라 사타구니에서 손을 쑥 빼며 눈을 번쩍 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당신 여기가 안방인 줄 아슈? 새참 챙겨 왔더니 팔자가 늘어졌네. 그거 힘 좀 빼소. 넘세시럽고로 할매 묏등 옆에서.

아내가 눈을 곱게 흘겼다.

무슨 낮잠을 그렇게 깊이 자요? 할매까지 요란하게 부르면서?

어! 당신 언제 왔어?

상섭은 벌떡 일어나 호들갑스럽게 펄떡펄떡 뛰었다.

왜? 개미가 물었어?

그런 모양이야. 뭐가 따끔 무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깼거든

상섭은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어 사타구니 주변을 탐색했다. 아내가 킥킥 웃었다.

내 알밤 맛이 꽤 따끔했던 가베. 어디 좀 볼까? 혹 났는지.

장난기가 발동한 아내가 상섭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어버버, 할매 묏등 앞에서 무슨 짓이야.

상섭은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치다가 발을 헛디뎌 발라당 뒤집어졌다.

아내는 배꼽이 빠지게 웃다가 소나무를 꼭 껴안았다.

이 나무 안 베서 고마워요. 이렇게 멋진 소나무를 왜 베라는지. 참말로 큰아버님이 노망나셨나봐. 할머니가 못 베게 말렸지요? 당신 그렇게 누운 걸 보니 알만해. 안 베길 잘 했어요. 참으로 아름답게 자란 소나무잖아요. 진짜 귀한 소나문데. 이건 베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아.

어른들 말씀은 우짜고? 당신은 찻상 만들어 달라며?

말이 그렇지. 할머니와 소나무는 자연스럽게 서로 의지하며 사는 거야. 우리처럼

상섭은 아내와 나란히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늘을 봤다.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보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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