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있소

<처음>

by 박래여

<단편소설>

주인 있소


손님이 뜸한 시간이다. 정녀는 좌판 옆의 들돌에 앉았다. 들돌이 차다. 궁둥이에 전해오는 돌의 찬 기운을 떨칠 요량으로 일어섰다가 다시 들돌에 앉았다. 찬기는 서서히 사라지고 그녀의 눈은 멍하니 시장 건너편 산으로 간다. 바람이 휙 지날 때마다 알록달록한 옷을 벗어젖히는 산이다. 여름 내내 칭칭 감고 있던 푸른 옷에 오색 물감을 찍는가 했더니 어느새 가볍게 벗어던지는 산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언제쯤 저 숲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내가 진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을까. 산을 닮고 싶다. 산의 무소유를 배우고 싶다. 아니, 산처럼 될 수 없다면 흉내라도 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다시 숲을 본다. 오색으로 물들었던 숲이 허전하다. 숲이 벗어 바닥에 깐 것을 본다. 저 가랑잎은 누구를 위한 배려일까. 바삭거리는 가랑잎으로 도톰하게 만든 요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알록달록한 가랑잎 이불을 덮고 누울 줄 아는. 그는 누구일까, 아니, 그녀는 누구일까. 그가, 아니, 그녀가 부럽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말뚝 하나 실하게 박아놓고 사는 사람들, 그가, 아니, 그녀가 부럽다.

엄마, 돈 언제 보내 줄 거야?

귀청을 때리는 아들의 목소리 ‘돈 없다.’란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려도 정녀는 늘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언제 철이 들까. 서른둘이면 제 앞가림하고도 남을 나인데 아직도 어미 젖줄을 놓지 못하고 있는 아들이다. 매달 백여만 원을 송금하자니 그녀는 숨이 찬다. 기껏 하루 일이십만 원 버는 좌판 장사로 물건 값 제하고 남는 돈 몇 푼 모아 목돈을 만들어내려면 허리가 휜다.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도 근근이 아들의 생활비를 보낼 수 있다.

엄마, 미안해, 빨래 취직해서 우리 엄마 호강시켜 줄게.

그런 말이라도 했던 때가 그립다. 이십 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말하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삼십 대에 들어서자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 돈’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들에게 엄마=돈으로 점철된 존재 같다. 아들이 서울에서 무슨 짓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고시원에서 취직공부를 한다는데. 어떤 공부를 하는지, 고시원이 어떤 곳인지 정녀는 모른다. 아들이 사는 집에 가 본 적도 없다.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아들은 꿈이 컸다. 대기업에 취직하면 제 어미 호강시켜 주겠다고 호언했다. 입에 발린 말이라도 그녀는 듣기 좋았다.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면제받는 아들은 진짜 뭐가 돼도 될 것 같았다. ‘쓸데없이 아르바이트할 생각 말고 너하고 싶은 공부 해라. 생활비는 내가 어떻게든지 대 주마.’ 그렇게 대견해하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대학졸업한 지 수 삼 년이 지나자 그 밝고 활기차던 아들의 얼굴이 몰라보게 어두워졌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구나. 한 번 올라가랴?

아니, 바쁜데 오실 필요 없어요.

아들은 냉정하게 그녀를 내쳤다. 매달 돈만 보내주면 된다는 식이다. 아들이 원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서울 나들이가 그녀에겐 쉽지 않다. 하루 장사를 접으면 그만큼 손해니까 주야장청 갓길에 작은 파라솔을 치고 그 아래 좌판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팔리거나 적게 팔리거나 거리에 나앉아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거리에 인이 박혀서. 거리 귀신에 들려서. 돈에 목을 매달아야 하니까. 이유를 대라면 끝도 없다. 아들은 그녀가 보고 싶다면 내려왔다가 잠깐 얼굴 보여주고 쌈짓돈 챙겨 떠났다. 이제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지 않다. 원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취직했다는 소식 들었으면 좋겠고, 제 밥벌이한다는 소식 듣고 싶을 뿐이다. 그 속내는 삶에 지친 영혼을 쉬고 싶기도 하고, 아들에게서 자유롭고 싶고, 돈에서도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정녀는 젊지 않다. 오십 고개 중반을 넘었다. 밤이 되면 뼈마디가 휘파람을 분다. 어깨를 주물러 줄 손도 없고, 고생한다고 다독여 줄 남정네도 없다. 오직 아들 한 명 건사하며 살아온 삼십 수년이 새삼스럽게 억울해지는 이즈음이다. 아들만 품에 안으면 좋은 시절이 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 아들이 잘 되면 힘든 과정은 보상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소망이 아닐까. 이혼녀든 미망인이든 어린 자식 매몰차게 떼어내고 내 인생 찾겠다고 떠나는 어미도 많은 세상이다. 정녀는 그런 여자를 보면 참 모지고 독한 여자라고 혀를 찼었다.

달포쯤 되었을까. 아들이 다녀갔었다. 아들은 몇 달 만에 불쑥 나타났다 하룻밤 겨우 자고 떠나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유는 이랬다.

엄마, 행숙이가 겨울옷이 필요하대. 한 벌 사 주고 싶은데 돈 있어?

이놈아, 니 눈에는 에미가 돈으로 밖에 안 보이남? 요새 장사가 영 시원찮다. 지난달 니 생활비 보내는 것도 할머니 덕이었다. 며칠 됐다고 또 돈타령이냐?

그 돈은 생활비잖아. 행숙이 옷 사줄 돈은 따로 있어야 한다니까.

행숙이, 아들의 여자 친구다. 딱 한 번 인사를 온 적이 있다. 정녀는 첫인상이 좋은 수더분한 아가씨를 기대했는데 얼마나 뜯어고쳤는지 모르지만 겉치레가 요란한 아가씨였다. 무슨 무역회사 경리를 본다고 했는데 경리 보는 아가씨 같지 않았지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남녀가 만나 저거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녀 자신도 부모 반대 무릅쓰고 살림부터 차리지 않았던가. 겨우 아들 하나 남겨놓고 떠날 줄 알았으면 부모 가슴에 대못을 치면서 가출하지도 않았으리라. 가출해서 남자와 살림 차리고, 아들 낳아 방긋방긋 웃을 때 남편은 떠났지 않았던가. 이제 그 아들이, 서른 넘은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마음을 놓았다. 결혼이라도 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결혼식을 올려줄 생각이다. 하지만 아들은 결혼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둘이 살려니 생활비가 더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래, 너의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어떤 집 처녀인지 몰라도 혼기가 꽉 찬 것 같은데 가능하면 빨리 합쳐서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게 어미 바람이다.

직장도 없는데 무슨 가정을 꾸려요. 말 되는 소릴 하세요.

그러니까 어디든 취직자리 알아보라니까. 언제까지 어미에게 손 벌리고 살래?

엄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굶어 죽었으면 좋겠어? 생활비 보내주기 싫다는 말이지?

그래, 어미도 힘들다. 좀 쉬고 싶구나.

그럼 쉬어. 돈 모아 둔 것 있으면 나에게 넘겨주고 푹 쉬면 되겠네.

저 썩을 놈, 말하는 것 좀 보소. 철 좀 들어라 이놈아.

정녀는 아들의 등짝을 매섭게 후려쳤다.

요즘 삼사십 대 처녀, 총각이 얼마나 많은가. 어느 집이나 기껏 남매, 혹은 자매, 혹은 외딸, 외아들인 세상이다. 좋은 직장을 가졌거나 백수이거나 혼기를 놓친 자식을 가진 부모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그런 자식을 캥거루족이라 부른다던가. 아니 더 심한 말로 투브족이라 부른단다. 캥거루족이나 투브족이나 비슷한 의미지만 투브족은 섬뜩하다. 배울 만큼 배운 성인이 된 자식이 제 밥벌이는 아예 할 생각도 없이 부모에게 빌붙어 부모 등골 쏙쏙 빼먹고살면서도 미안한 구석조차 없는 자식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니까. 그녀의 아들도 그중 한 명이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지.

정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물건 떨어진 거 있어?

정신을 놓고 있던 정녀는 불쑥 말을 거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좌판에 물건을 대 주는 할머니가 바로 앞에 1톤 트럭을 세워놓고 운전석에서 내려 파라솔 안으로 쑥 들어왔다.

성님 언제 오셨소?

뭘 그렇게 넋을 빼고 있나? 오늘 채소나 단감이 물이 좋아. 얼마나 내려놓을까?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손님이 통 없어요. 얼마나 받아야 다 팔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정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녀의 좌판을 쭉 훑어보고 양파, 사과박스, 단감 박스, 시금치, 풋고추, 참깨 등 몇 박스, 혹은 한두 봉지를 내려놓는다.

이건 단감 파지야. 사람들 오면 맛보기로 깎아 주면 될 거야.

어제 갖다 준 단감이 아직 좀 남았는데. 또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경매장에서 받은 물건하고 맛이 달라. 나도 먹어보고 놀랐어. 이렇게 맛있는 단감은 처음이야.

어디서 가져왔어요?

고향에 갔다 왔어. 새벽에 경매보고 그 길로 바로 갔지. 시제 모신다고 하기에 친척들 얼굴이나 보고 올까 하고 갔는데. 장사꾼이라고 이 집 저 집에서 팔아달라고 막 내놓데. 값은 달라는 대로 주고 왔어. 그래봤자 돈으로 치면 몇 푼 안 되는 헐값이야. 무와 배추가 어찌나 실하고 좋은지. 그 좋은 놈을 제 값도 못 받고 헐값에 처분하는 농사꾼 보면 가슴이 아파. 그리고 이 단감은 말이야. 우리 동생이 농사지은 건데 맛이 끝내 주더라. 소매로 팔 수 있으면 좀 팔아달라고 하데. 해마다 단감저장고에 넣었다가 겨울에 서울 도매상으로 바로 올리더니 올해는 돈이 아쉬운 모양이야 나에게 부탁하는 것을 보니. 지금 자네에게 대 주는 단감보다 나아. 아삭아삭한 맛도 맛이지만 당도가 확실히 달라. 한 번 팔아 봐. 잘 팔리면 우리 동생네 단감을 몽땅 사 올까 싶어. 오늘 딴 것 중에 젤 좋은 단감으로 가져왔으니 한 박스에 5만 원은 받아야 할 게야.

그렇게 비싸면 누가 살까요?

비싼 것 찾는 사람은 따로 있어. 소매로 팔면 이문이야 더 남겠지만 박스 띠로 파는 게 수월하잖아. 그러니까 내 말대로 팔아 봐. 자네는 왜 그렇게 마음이 약해. 그러니까 늘 요 모양 요 꼴이지. 이문을 남기려고 장사하는 거잖아.

그러지요. 다들 살기 팍팍해서 걱정인데 그래도 산목숨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다는데.

참으로 걱정이야, 앞으로 나라꼴이 어찌 될지. 한미에프티에인가 뭔가가 통과 됐다고 하잖아. 농민들이 어떻게 살지 참 걱정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작자가 미국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친 꼴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데. 정치하는 것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빠듯한 우리네 사정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배부른 자들의 농간에 죽어나는 것은 우리 겉은 가난뱅이들이란 걸 저거들이 우찌 알꼬.

그래요. 길거리 장사도 못해 먹겠어요. 중국산 무와 배추가 판을 치니 좌판에 펼친 것도 중국산 아니냐고 묻기 일쑤거든요. 제 아무리 국산이라 해도 도통 안 믿는다니까요. 모두 속고만 살았는지. 단골이야 믿고 사 가지만 뜨내기손님은 수입 산이 국산으로 둔갑한 것 아닌가 의심부터 한다니까요. 장사하는 사람도 문제긴 해요. 양심 없는 짓거리를 하니까 그런 소릴 듣는 거잖아요. 우리같이 좌판 장사하는 할머니 중에도 그런 장사꾼이 있다니까 문제지요. 농사지은 것에 싸구려 수입 산을 섞어서 가지고 나와 판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그러니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도 덤터기 쓰고 같은 부류로 취급받는 거지요.

그렇지. 돈 되는 일이라면 양심은 걸레짝처럼 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인종이 판을 치는 세상이야. 그래도 자네는 안 그렇잖아. 워낙 꼼꼼해서 물건은 좋은 걸 갖다 놓고 이문은 적게 남기고 싸게 파니까 이 정도 장사라도 되는 거야.

다 성님 덕이죠. 성님이 이문 안 남기고 좋은 물건 대 주니까. 추울 텐데. 모과차 한 잔 드려요?

그럴까? 목이 칼칼한데. 어째 감기 기운이 있어. 찬물에 손 넣기가 겁나는 것을 보니 몸 조시가 안 좋아. 새벽바람이 엔간히 차야지.

성님도 몸살 나면 간호해 줄 가족도 없는데. 몸 아껴가며 해요. 그렇게 돈 모아 다 뭐 하게요. 나야 뜯어가는 아들놈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만 혈혈단신 형님이야 하루 쉰다고 달라지는 것 없잖아요.

왜 없어. 내 물건을 기다리는 동상 같은 사람 때문에 쉴 수가 없어. 약속은 천금 같은 거니까. 우리 겉은 무지렁이 장사꾼이 가장 귀히 여기는 게 뭐겠어. 의리와 정이야. 그것 빼면 시쳇말로 시체지.

무지렁이라! 정녀는 할머니의 무지렁이란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싸하게 아파왔다. 아들에게조차 학력을 말한 적이 없다. 비밀문서 보관하듯이 옷장 깊숙이 넣어 둔 대학 졸업장, 억척스럽게 야간대학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뭔가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위해서라면 몸이 부서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대학교수가 되는 꿈, 시인이 되는 꿈, 화가가 되는 꿈, 그 꿈의 기착지가 어쩌다 한 남자가 되었을까. 불나방이 불을 보자 죽을 줄도 모르고 뛰어든 형국이었지. 정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는 어찌 알았겠는가. 혼례식도 치른 적 없이 한 아이의 어미이자 난전의 장사꾼으로 살아갈 줄이야. 이제 세상에 없는 친정 부모님이지만 그녀는 부모님 생각만 하면 죄스러워서 가슴이 아팠다.

또 돌아가신 부모 생각하지? 그러게 살아계실 때 잘하지.

할머니는 어찌 알았는지 정녀의 표정을 살피며 짓궂게 웃는다. 정녀도 할머니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의리와 정을 빼면 시체라는 할머니가 오늘따라 친정어머니처럼 정겹고 눈부셨다.

성님도 참, 남의 속 짚어내는 것에는 도사라니까.

그러니까 아들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저도 생각이 왜 없겠어.

그러게요. 마음은 안 그래야지 하는데도 ‘엄마 돈’ 소리만 나오면 피가 치솟아요.

다 자네가 뿌린 업이야. 그래도 자네는 행복한 사람이네. 든든한 아들이 있으니. 아들이 백수라서 속은 타지만 그 아들 때문에 힘이 나는 것도 사실이잖아. 그런데 말이야. 내 애인이 자꾸 아파. 병원에 입원시켜도 잘 낫지를 않네. 저걸 죽게 내비 둘 수도 없고. 정이 들어서 떼어버릴 수가 통 없네. 어째야 할지.

정녀는 웃었다. 할머니의 애인은 1톤 트럭이다. 트럭이 고물이 되어 심심찮게 정비소를 들락거리게 만들지만 할머니는 그 트럭을 바꿀 생각이 통 없는 눈치다. 이참에 바른말 좀 해야지.

성님은 우리 장꾼들 사이에서 부자라고 소문이 자자하데요. 모아 둔 돈 다 어디에 쓰려고 그래요. 이참에 애인부터 바꾸시라고요. 말쑥하고 젊은 애인 두면 어깨가 으쓱해질 텐데. 망설이지 말고 젊은 애인 두세요.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데. 그렇게 번 돈 한 푼도 안 쓰고 놔두고 가면 엉뚱한 사람만 호강시키잖아요. 얼굴도 모르는 사돈의 팔촌이 찾아와서 챙겨갈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젠 좀 편하게 사시라고요.

그래, 자네 말도 맞아. 하지만 일을 놓으면 그 길로 나는 저승사자 따라가게 될 거야. 그게 내 팔자라는 걸 알아.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할 팔자야.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지. 17년을 나를 위해 살아준 이 녀석 끌고 천지사방 안 가는 곳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팔자. 자네 말처럼 나는 부자야. 평생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만큼 돈이 많을지 모르지만 그 돈 내 거 아니야. 잠깐 보관했다 주고 갈 물건이지. 나에게 돈은 자네 아들 같은 거야. 자네는 아들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듯이 나는 그놈의 돈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거든. 그러니 어쩌겠어. 그 돈 끌어안고 길 따라 댕기다 길에서 죽을 팔자지.

참 성님도 죽긴 왜 죽어요. 아직 20년은 더 살겠거마. 젊은 애인으로 바꾸기만 하면 신수가 훤하게 될 텐데. 그때 저보고 모른 척할까 두렵네. 그럴 리는 없지만.

정녀가 농담을 하자 할머니도 씩 웃었다. 올해 일흔다섯의 할머니는 누가 봐도 육십 대 초반으로 보일만큼 정정하고 아름답다. 후덕한 얼굴이며 적당히 살이 붙은 몸매는 입성만 깨끗하게 바꾸고 나서면 영락없이 부잣집 마나님이다. 할머니는 알부자라고 소문이 났다. 상가 건물이 몇 채가 된다고 했다. 건물 세만 받고도 돈 아쉬운 줄 모를 할머니라는데 입성은 어느 구석을 봐도 부자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으면 저런 고물 차 끌고 다니겠느냐고, 날마다 경매장 드나들며 저리 힘들게 살겠느냐고 의심했다. 소문은 구구하기 마련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정녀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그녀의 삶 어디에서 저런 활기가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그게 진짜 돈일까. 할머니 말이 진실일까. 돈이 할머니를 저렇듯 자신감 있고 활기차게 만드는 것일까. 다른 무엇은 없는 것일까. 할머니를 저토록 젊어 보이게 하는 것이. 어째서 할머니는 삶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초연한 얼굴일까. 저것도 다 가진 돈이 많아서일까.

정녀가 다시 자기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할머니가 툭 쳐서 그녀를 깨웠다.

무슨 일 있어?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눈치라서.

별일 아니에요.

또 아들 때문이지? 돈 떨어졌다지?

정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서 불안하고, 숨이 차요.

생각이 있겠지. 자네 힘닿는 만큼만 해. 이젠 그럴 나이도 됐어. 모질게 끊는 방법도 있어.

정녀는 울컥 목이 메었다.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그 고비를 넘기게 해 주는 미륵보살 같은 분, 비록 한 솥밥은 먹지 않아도 어머니나 진배없는 분. 정녀는 할머니를 어머니라 부르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싫다고 했다. 자매가 낫다고 의자매를 맺었다. 그들이 함께 있으면 할머니께 ‘딸이냐’고 묻는 손님도 있다. 둘이 참 많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타인끼리도 오랜 세월 함께 해도 서로 닮는 모양인지.

그게 참 어려워요. 자식이 뭔지.

그 녀석 진짜 어미그늘 벗어날 때도 됐는데.

그러게요.

자네 마음을 그 아이가 모를 리 없겠지. 얼마나 필요 한가? 내가 융통해 주지.

자꾸 성님 신세를 질 수가 없어요. 저번에 빌린 것도 아직 다 못 갚았는데.

돈은 쓰려고 버는 거야. 은행에 넣어 두면 그게 돈이야? 종이 쪼가리지.

아니요. 이번에는 안 해 줄 겁니다. 노가다를 해서라도 제 밥벌이하라고 할 생각입니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야. 진작 모지게 맘먹었어야지. 잘 생각했어. 자네 아들이 정신 차리면 내가 선물 하나 하지. 자네처럼 장삿길을 열어보겠다면 점포 하나 빼 주지. 자네한테 점포 하나 준다 해도 자네가 싫다니 어쩌겠나. 세상에 공짜는 없어. 장사치는 십 원 한 장도 허술하게 대접하면 돈 신이 노하는 법이거든.

성님,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말만 아니니까 생각도 좀 해 보라고. 자네 말처럼 돈 놔뒀다 남 좋은 일 시킬 거 없잖아. 좋은 일이라도 하고 죽어야지. 안 그래? 인자 가야겠다. 여기만 오면 지남철이 있는지 딱 붙어 안 떨어져 탈이야.

점심때가 됐는데 짜장면이라도 시켜 같이 먹고 가세요. 저도 아직 점심 전인데.

일 없다. 오다가 휴게소에서 요기했다. 장사나 잘하라고.

참, 성님, 낼이 제 귀빠진 날인데. 밥이나 같이 먹었으면 싶은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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