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있소

<끝>

by 박래여

그래, 맞다. 이맘때지. 참 좋을 때 태어났어. 식복은 타고났는데 말이야. 새벽에 경매장에 갔다 와서 자네 집으로 감세. 자네 생일인데. 내일 우리 어디로 단풍 구경이라도 갈까?

일은 어쩌고요. 배달은요? 물건 기다리는 사람들이 난리를 칠 텐데.

우리 집에 기사가 한 두 명이야? 그들에게 시키면 되지. 일단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낡은 1톤 트럭을 몰고 떠났다. 시커먼 매연을 한 덩어리 던져놓고 떠났지만 정녀는 그 매연냄새조차 좋았다. 할머니가 정녀에게 난전에서 고생하지 말고 점포를 하나 줄 테니 부식가게를 해 보라고 종용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정녀는 싫었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 돈이 얽히면 좋은 감정도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랑한다던 남자도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끼리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란 보장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물건을 대 주고받아 파는 입장에서. 안 될 일이었다. 차라리 각자 자기 좋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정녀는 할머니가 내려놓고 간 물건을 햇빛 가리개 용도로 세워 둔 파라솔 뒤편에 있는 리어카에 정리했다. 리어카에 있는 물건 중에 필요한 만큼을 앞으로 꺼내 박스를 깔아 만든 좌판 위에 놓았다. 좌판 위에 놓인 물건을 쭉 훑어봤다. 풋고추, 양파, 시금치, 사과, 단감, 참깨. 오늘은 풋고추와 단감이 잘 팔렸다. 다섯 개, 열 개씩 담은 소쿠리는 금세 비었다. 작은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긴 물건을 손님이 사면 물건을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고 빈 소쿠리에 물건을 다시 담아 전을 차렸다.

갓길이 시작되는 도로 끝이 왁자했다. 또 시작인 게야. 정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까지 지울 수 없었다. 복잡한 도로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소음이었다. 승용차와 짐차가 갓길에 난전을 벌인 장사꾼과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하는 풍경이다. 갓길을 차지한 장사꾼은 전을 벌이다 보면 자꾸 갓길 바깥쪽으로 나가고, 길을 오가는 승용차 두 대가 서로 비끼려면 자연스럽게 한 운전자는 차를 갓길 쪽으로 붙여야 하는데. 백미러를 보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좌판이 차바퀴에 물리는 수가 있었다. 난전에서 잔뼈가 굵은 성질 더러운 장사꾼을 만나면 운전자는 그날 욕 복은 왕창 받고 만다. 만약 운전자 역시 한 성깔 하면 서로 멱살잡이 하며 죽일 놈, 살릴 놈, 하다가 경찰이라도 부른다는 말이 나오면 슬그머니 꽁지를 내리는 장사꾼이다. 갓길 좌판 장사는 불법이니까.

아지매, 차가 댕기고로 물건 좀 빨리 치우소. 이 길 아지매가 전세 냈소?

갓길 시작점에서 열을 받은 운전자는 정녀의 가판대 옆을 지나가면서도 신경질을 부렸다. 갓길을 점령하고 앉은 좌판 장사들 때문에 운전도 못하겠다고 성질을 버럭버럭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쌍스런 욕을 예사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고생한다고, 먹고살기 힘들어 어떻게 하느냐고 위로하면서 일부러 찾아와 필요한 물건을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 정녀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 이 세상 삶이 유지되는 것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우리 같은 사람도 행복하게 사는 거요. 고맙소.

까만 승용차 한 대가 정녀의 가판대 앞에 섰다. 정녀는 차 옆으로 다가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승용차 운전석에는 승복을 입은 노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더니 그녀 쪽의 앞차 유리문을 내렸다.

뭐가 있어요?

스님, 반갑습니다. 필요하신 게 무엇이지요?

단감을 한 박스 사고 싶은데. 부처님 앞에 올릴 거라 굵고 좋은 것이 필요한데.

있어요. 조금 전에 갖다 놓은 건데요.

한 박스에 얼마요?

일단 내려서 구경하시면서 맛을 보십시오.

정녀는 부리나케 파지 상자에서 단감 하나를 꺼내 깎았다. 까치가 쪼아 못쓰게 만든 단감이었지만 굵고 싱싱했다. 정녀는 단감을 깎아 반으로 쪼개 아직도 승용차 운전석에서 내릴 생각을 않는 스님에게 드렸다. 스님은 단감을 먹어보더니

맛있네. 젤 좋은 걸로 한 상자 뒷좌석에 넣어 보소.

이건 오늘 처음 따 나온 건데 값이 좀 비싸요. 한 박스에 5만 원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값이 좀 쎄지요? 단감 좋은 거라 그래요. 그래도 드릴까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녀는 할머니가 놓고 간 단감 중 한 박스를 승용차의 뒷좌석에 넣었다. 스님은 오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주며 자꾸 정녀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폈다.

고맙습니다.

정녀가 인사를 하자 스님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으로 시늉을 했다.

보살님, 좌판 장사 올매나 했소?

꽤 오래됩니다.

그렇게 오래 거리장사를 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니 어쩌겠나.

노스님은 혀를 쯧쯧 차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말인데도 정녀의 귀에 속속 들어와 박혔다. 정녀는 정색을 하며 새삼스럽게 스님을 눈여겨봤다. 박박 깎은 민머리지만 머리통 전체가 하얗다. 비록 피부는 잔주름 없이 맑고 투명해도 연세가 꽤 높다는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칠팔십은 되지 않았을까.

스님, 어떻게 하면 밑 빠진 독을 메울 수 있을까요?

업이야. 우리 절에 한번 오소. 저 단감도 두 박스 더 넣어주고.

스님은 부스럭거리며 승복 자락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다시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과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정녀는 단감 두 박스를 트렁크에 넣어주고 스님이 내미는 지폐와 명함을 받았다. 스님은 차 문을 올리며 손을 흔들더니 그대로 힁허케 날아가 버렸다. 정녀는 멍하니 사라져 가는 스님의 차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꼭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단숨에 단감 세 박스를 팔아버렸다. 그것도 가장 비싼 값에. 덤도 드리지 못했는데. 어쩌지? 황당했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정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손에 쥔 명함을 내려다봤다. 작은 글씨로 주소가 적혀 있었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하리 산 38번지 영천암 주지 상허 합장

어디선가 들은 듯한 주소, 귀에 익은 듯한 절 이름이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부처님을 마음에 품고 살지만 살기 바빠서 초파일 외에는 절에 가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아들 때문에 속이 썩을 때면 저도 모르게 ‘나무관세음보살, 부처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아들놈이 정신을 차려 제 밥그릇이나마 차고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으로 간절히 부처님을 찾지만 정작 몸은 하루도 쉬지 않고 길거리에 나 앉아 있었다.

정녀는 다시 정신을 곧추세우고 좌판으로 돌아와 손님을 기다렸다.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 젊은 사람보다 늙은 사람이 더 많은 거리, 빽빽 경적을 울리고 악을 쓰면서 달려가는 차량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잰걸음 치며 가는 사람과 차량의 소음에 정녀는 새삼스럽게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활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추레한 차림의 저잣거리 좌판 앞에 앉은 노인이나 아낙들 얼굴에 하나같이 간절한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돈을 기다리는 눈빛이 너무나 간절해서 소름이 돋았다. 내 얼굴도 저 얼굴과 같을 게야. 정녀는 가방 안에서 거울을 꺼냈다. 거울 속의 얼굴은 약간 파리하고, 혈색이 없으며 푸른빛이 도는 눈은 텅 비어 있다.

당신 눈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에 아침 햇살이 비칠 때 파랗게 빛나는 물방울 같아.

그러던 남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좋아서 또옥 좋아서 죽겠다. 자네가 말이내.

그러던 남자는 어디에도 없다.

죽었냐? 차라리 죽었다면 추억이나 간직하고 살지. 이 나쁜 놈!

정녀는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며 독기를 품어본다. 그는 아들이 세 살 때 떠났다. 달나라 여행을 가듯이 가볍게 그녀 곁을 떠났다. 딸랑 피붙이 하나 남겨놓고 무심초 박박 밀어버리고 달나라로 떠날 준비를 마친 그가 울며불며 매달리는 그녀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너의 살 냄새 어이 잊을까. 날마다 육덕 푸짐한 절구질 어이 잊을까.

안 가면 되잖아. 이 등신아, 가지 마. 애 새끼 놔두고 어딜 간다고 그래. 내 인생 책임진다고 하던 너는 어디로 간 거야.

가야 돼.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야. 운명은 절대로 피할 수 없어.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며? 그렇게 날 꼬셨잖아. 집에서 뛰쳐나오게 했잖아. 그럼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책임져, 내 인생 책임지란 말이야. 저 아이 인생도 책임지란 말이야.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필연이라 했다. 간다. 잘 살아.

그는 로켓 대신 두 발로 터벅터벅 걸어 떠났다. 인도, 파키스탄, 독일, 아프리카, 몽고, 티벳, 지금 어디에 있을까.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죽을 운명이라던 그는 거리에서 죽었을까. 삼십 년을 하루 같이 거리에서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낯선 나라의 소인이 찍힌 엽서 한 장이 날아들곤 했지만 그것도 처음 몇 달간이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던 살아만 있어라. 언젠가 내 이 아픔을 배로 쳐서 돌려주마. 그래, 네가 준 씨앗 한 알 잘 키워 옛말 하며 살 거다. 정녀는 아들을 믿고, 아들에게 의지해 살았다. 아들은 그녀에게 남편이자 자식이었고, 어버이 같은 존재였다. 아들이 성년이 되자 진짜 늙지 않은 그가 돌아온 것 같았다. 어찌 그리도 판박이든지. ‘빼다 박아도 너무 박았어. 어쩜 하는 짓거리조차 니 아부지냐.’ 그녀는 살아오면서 수시로 그리움과 한숨을 반죽해서 남편의 형상을 빚어 놓은 것 같은 아들을 보며 중얼거리곤 했다.

날 더러 어찌 살라고, 세월이 팍팍 가버렸으면 좋겠어. 빨리 파파 할미가 되었으면 좋겠어.

어린 아들을 껴안고 몸부림치던 젊은 날도 있었다. 숨 막혀 죽겠다는 아들에게 너 때문에 내가 산다고 조금만, 조금만 참자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비록 단칸 셋방에 세 들어 사는 모자였지만 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녀였다. 공부 잘하는 아들, 잘 생긴 아들, 착한 아들, 아들만 생각하면 힘이 났었다. 아들은 그녀의 인생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가슴을 치며 후회할 때가 있다. 내가 자식을 잘 못 키웠다고 부잣집 아이들 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치마폭에 폭 싸고 키운 것이 한이었다. 반듯한 부모 밑에서 반듯한 자식이 나온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어 행동거지 하나 허술하게 하지 않았다. 어미가 거리 장사한다고 아들이 부끄러워할까 봐 좌판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고, 집 역시 저잣거리에서 뚝 떨어진 동네에 얻었었다. 처음엔 남의 빈 집을 공짜로 빌려 들었다가 집주인이 판다기에 사정사정해서 시세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그 집을 샀던 것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까지 딸린 그 집을 산 날, 모자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집에서 저녁이면 아이와 같이 공부를 하고, 닥치는 대로 책을 탐독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던가. 머릿속에 지식이 깃들수록 막돼먹은 행동거지를 할 수 없게 자신을 담금질할 수 있었다. 아니,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떠난 남자를 잊을 수 있었다.

허나, 그 아들 역시 그 아버지의 아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대학 졸업만 하면 취직해서 엄마 호강시켜 드릴게요.’하던 아들이 대학 1학년 가을학기였다. 어느 날 불쑥 찾아와 한다는 말이 이랬다.

왜 남들처럼 살아야 해? 내가 없어도 엄마는 잘 살잖아. 내가 돈 안 벌어다줘도 엄마는 살잖아. 왜 날 낳았어? 왜 혼자 살았어? 부담스러워. 엄마가 부담스럽다고. 엄마가 내 앞길을 막는다고. 나는 자유롭고 싶은데. 나는 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떠돌고 싶은데. 엄마가 나를 잡잖아. 남들과 똑 같이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잖아.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어릴 때는 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정녀는 기가 막혔다. 삶의 의문에 사로잡혔을 때는 어떤 말을 해도 아들 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자아를 찾기 시작한 아들이 스스로 답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격언도, 채벌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정녀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간단했다.

학교 휴학하고 군대 다녀오너라. 군대 갔다 오면 또 생각이 바뀐다.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군대 생활 하면서 너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은 하나다.

그 아들은 공군에 지원해서 갔다가 왔지만 군대 갈 때보다 더 정신적 공황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시간만 죽이고 있다. 서른이 넘은 아들, 이제 아들에게 무엇 하나 강요할 것도, 지시하고 달랠 것도 없다. 이제 너도 성인이니 너의 인생을 살아라. 그랬지만 아들은 아직도 자립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캥거루족이 아니라 튜브 족이다.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단계를 지나 아예 어미에게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튜브를 끼워 놓고 사는 아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튜브를 가차 없이 잘라버리고 싶지만 어느 어미가 그리 모질 수 있겠는가. 천인공로 할 죄인이라도 자식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어미다.

스님이 단감을 사 간 후 손님이 끊이지 않아 아들 생각을 잠시 접었다. 좌판에 놓았던 물건도, 리어카에 담겨 있던 물건도 바닥났다. 물건이 없어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아 서산을 봤다. 산마루에 걸린 해도 한 뼘쯤 남았다. 해가 진다. 해는 마지막 빛을 찬란하게 쏟아냈다. 불그레하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정녀는 좌판을 걷었다. 물건을 널어놨던 박스는 모아서 끈으로 묶고 남은 물건은 리어카에 담았다. 그 위에 박스 묶음을 얹고 작은 야외용 파라솔을 걷어 리어카에 실었다. 짐을 다 실은 후 리어카를 밀어내자 리어카 옆에 있던 들돌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타원형의 청석에는 페인트로 <주인 있소>라고 쓴 글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인 있소.’ 들돌의 이름이다. 들돌이 그 자리의 주인이란 뜻인지 들돌을 놓은 사람이 주인이란 뜻인지 모르겠지만 거리에는 주인이 있었다. 좌판 장사도 아무 곳에나 할 수 없다. 시장 번영회에 가입해서 정기적으로 번영회 회비를 내야 한다. 뜨내기장사는 어떤 자리를 차고앉으면 그날 하루치 회비를 내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정녀는 들돌을 쓰다듬었다. ‘주인 있소’란 글자를 따라 써 본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주인 있지. 젊어서는 한 아름 되는 그 들돌을 낑낑 대며 들었다 놨다 했지만 이젠 혼자 힘으로 들 수가 없어 길 가장자리에 붙박이로 있다. 붙박이로 있지만 들돌은 그녀의 쉼터였다. 아들이 어릴 때는 아들을 데리고 와서 의자 겸해서 앉혔고, 아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어미 마중을 오면 그 돌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 돌은 모자의 팔 힘을 기르는 운동 기구가 되었었다. 이젠 움직일 수가 없어 한쪽 곁으로 밀쳐 두고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그녀가 궁둥이를 걸치고 앉아 쉴 수 있는 돌, ‘주인 있소.’란 이름을 달고 참 오랜 세월 붙박이로 그녀 곁을 지킨 들돌이 어찌 정겹지 아니할까.

돌아, 내일은 너 혼자 자리 좀 지켜줘야겠다. 내 귀빠진 날이란다. 장사 탁 접고 성님이랑 영천암 부처님이나 뵙고 와야겠다. 그래도 되겠지? 혹 아니, 부처님이 우리 아들 직장 운이 있는지 봐주실지. 아니면 행숙이란 처녀와 집에 들어와 부식가게라도 차려보겠다 할지. 나도 이젠 나이 탓인지 좌판 장사가 힘들어지네. 너처럼 <주인 있소>하며 쉬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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