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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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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20. 2023

8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동창을 밝히는 태양은 따스하다. 심호흡을 하고 해를 가슴에 안는다. 요즘 내 화두는 ‘내가 왜 글을 쓰는가.’에 꽂혔다. 글쓰기와 책 읽기가 있어 살아지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깊은 생각 없이 툭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정말 나는 글이 없으면 살 수 없는가. 글을 안 쓸 때가 있었던가. 돈도 안 되는 글쓰기를 줄기차게 해 왔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럴까.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고, 누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글로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내가 쓰는 글의 가치를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글쎄. 그냥 글을 쓰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몰입할 수 있기에 일상을 글로 풀었다. 내가 접하는 세상은 좁다. 내가 접하는 사람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다 갔고, 살고 있는 촌로들이다. 그들의 일상 역시 소소하다. 먹고사는 일에 매어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큰 포부를 가졌던 젊은 날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한탄을 하며 살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걷는 길,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늙어가다 죽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앞으로 십 년쯤 지나면 우리 동네 노인들 몇 명이나 남을까? 귀촌한 사람들 역시 오륙십 대다. 몇 집 안 된다. 전원마을에는 다를까. 그 마을은 기존마을과 동떨어진 마을이다. 동네 행사에도 나오는 사람이 드물다. 귀촌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동네는 여든 노인이 이장을 한다. 그중에 칠십을 앞둔 젊은 노인은 농부를 포함해 서너 명 될까. 농부가 여든이 되면 지금 여든을 사는 노인들 중 살아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요양원으로 저승길로 떠나고 아무도 없을지 모른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젊은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가끔 도시에 살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젊은이가 있긴 하다. 부모의 농사를 이어받아 짓는 젊은 농부도 있다. 귀농한 청년도 있다. 그들이 농촌을 지켜내겠지만 묵정이가 되는 논밭이 늘어난다. 잡풀만 무성한 옥토를 바라볼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젊은 농부가 없는 농촌, 노인들만 남은 농촌, 그 노인들도 시나브로 이승 떠나고 빈 집만 허허로운 농촌, 오늘의 농촌 풍경이다. 골목 옆에 썰렁한 빈집을 바라볼 때면 쓸쓸하다. 나도 노인 대열에 섰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아랫집 단감 과수원을 바라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구천 평이 넘는 단감 과수원이다. 몇 년 사이 3분의 1만 농사를 짓더니 올해는 그 반만 지을 것이란다. 칠순 중반에 들어선 감산 아저씨도 노인이다. 농부는 아랫집 단감 과수원에 애착이 많았다. 처음 산기슭에 터 잡고 들어왔을 때 농부의 일터는 그 감산이었다. 일당벌이라도 해야 먹고살 수 있었던 시절, 우리는 염소 방목을 했었다. 농부는 일철만 되면 그 집 감산을 내 집 감산처럼 가꾸었다. 감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농부의 손이 안 간 나무가 없다. 주인이 그 감산 농사를 포기했을 때 농부는 두고두고 아까워했다. 우리가 임대하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었다. 


 집 앞으로 관광순환도로가 뚫리면서 염소방목을 접어야 했던 시절, 남의 논밭을 빌리고, 남의 산을 빌려 개간해 고사리 농사를 시작하고, 남의 단감과수원을 빌러 농사를 지으면서 애도 많았고 서러움도 많았다. 농부가 워낙 부지런하고 진국이라고 소문난 덕에 여기저기서 소작해 달라고 내놓는 농토 덕에 살아냈다. 이제 농부도 노인이다. 농사도 거의 접었다. 농부는 가끔 ‘국민 연금과 노령연금으로 살아내겠나?’ 한숨을 쉰다. ‘이보다 더 어려울 때도 살아냈어요. 여태 살아온 것처럼 우리 복만큼 살 길은 열립니다. 걱정 마세요.’ 나는 큰소리친다. 


 다시 봄이다. 삶에 정답은 없다. 돈도 눈이 있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만큼 붙여주지 않을까. 큰 욕심부리지 않으면 내가 살아온 길이 내가 살아갈 길이다. 간밤에 이불과 몸이 푹 젖도록 진땀을 흘리며 잠든 그를 바라보며 깨어 있었다. 허한 이 난다는 것은 몸의 균형이 깨어졌다는 뜻이다. ‘당신 보약 한 제 먹읍시다. 식은땀을 많이 흘리던데. 당신 몸이 내 몸이고 내 몸이 내 몸이니 지읍시다. 당신 것만. 나 죽은 뒤에 당신 죽어야 하니까.’ 진담이다. 그는 ‘괜찮다.’ 딱 잘라버리고 단감가지치기를 하러 간다. 


 왜 나는 글을 쓰는가. 일상을 기록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섬주섬 담아놓는 그릇이기 때문은 아닐까. 내 그릇에 찬 글들이 내 삶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기에 끊임없이 글을 쓰는 것인지 모른다. 과거를 줍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생각하는 글쓰기라고 할까. 나를 정화시키고 곧추세우게 하는 발판 역할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 글이 있어 살아지는 삶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내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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