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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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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07. 2023

낮달

낮달    

 

 우리는 누구나 기다리는 삶을 산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미래를 꿈꾼다. 미래는 희망을 품고 자라는 이름이다. 미래는 기다리는 삶이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권력욕에 잡히기도 한다. 보통 사람의 꿈도 비슷하다. 현재보다 나은 삶, 부자로 사는 삶, 남들 눈에 성공한 삶으로 비치길 바라는 삶이다. 과거를 반추하는 것도 중년을 넘어섰을 때가 아닐까. 중년을 넘어 노인의 반열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되돌아보는 일이 잦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 순탄하거나 순탄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주말이다. 온종일 집안에서 종종걸음 치자 햇살이 손을 내민다. 햇볕을 따라 마당을 거닌다. 마른 잔디는 여전히 겨울 빛이다. 길섶에는 매화가 만개를 했지만 아직 봄맛을 보이기 싫은가 보다. 납작 펴진 냉이가 눈길을 잡는다. 엎드려서 손으로 호비작호비작 파다가 툭 털어버리고 허리를 편다. 호미와 소쿠리를 챙기려다 그만둔다. 내 입맛을 돋우려고 겨우내 움츠렸다 겨우 기지개를 켠 냉이를 캔다면 냉이가 서럽지 않을까. 꽃대가 오르고 하얀 냉이 꽃을 피우는 것을 바라봐야겠다. 기다림의 미학 어쩌고 저쩌고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두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 


 숲을 본다. 사철 푸른 소나무도 추워 보인다. 잎사귀 하나 없이 가녀린 가지만 무성한 나목의 끝에 낮달이 살짝 걸쳐 앉았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푸름이다. 검푸른 하늘을 바탕색으로 깔고 앉은 낮달은 손톱의 흰 반점 같다. 생긋 눈웃음치는 외까풀 눈이다. 낮이니까 구름조각처럼 걸린 달이지만 푸른 바탕을 검회색으로 바꾼 밤이라면 달빛은 은근짜처럼 애교스러울 것 같다. 소박한 촌부의 하루는 조용히 흘러간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지라도 마음속에 이는 바람의 색깔은 한 시도 같은 것이 없다. 무념무상, 텅 비움으로 꽉 찬다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천천히 마당을 돌며 나는 푸른 하늘을 닮고 낮달을 닮는다. 


 어둠과 밝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낮은 환해서 달의 존재를 가리지만 달은 늘 하늘에 있다. 마당에 어둠이 내린다. 아궁이에 마른 솔가리를 넣고 그 위에 장작 대여섯 개 가새지르기로 놓는다. 불땀으로 넣은 솔가리에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인다. 불은 금세 불게 타 오르고 열이 난다. 장작에 불이 붙을 때까지 아궁이 앞에 앉아 있으면 무릎부터 따뜻해 온다. 온몸에 열기가 퍼질 때까지 불꽃을 바라본다. 불이 없던 시절 생고기와 풀만 먹으며 살았던 원시부족을 생각한다. 그들만의 고유한 말은 있어도 글이 없던 시절, 그들은 자연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썼다. 고대 상형문자다. 상형문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문자라고도 한다. 


 현재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문자로 알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훈민정음, 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한문을 썼던 양반가는 공자 왈 맹자 왈 했지만 무지렁이 백성은 한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함으로써 한글이 생겼고 한국어로 통용된 아름다운 모국어다. 그 모국어가 요즘 변질된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봉건시대 때 양반의 문자였던 한자처럼 현대는 영어가 판을 친다. 


 읍내만 나가도 상점의 간판들이 외국어 표기가 많다. 글을 쓰는 작가들도 언론매체도 외국어를 한국어처럼 상용하는 것을 본다. 작가들이 쓰는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러 어려운 낱말을 찾아 문장에 끼워 배운 티를 내거나 유식함을 드러내려 한다. 어려운 한자나 외국어를 삽입해 이해하기 어렵고 어색한 문장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말이 살아야 한글이 산다고 했다. 우리말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 따로 말 따로’가  아닌 ‘말하는 그대로가 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낮달은 어느새 밤 달이 되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조각달을 보면서 글쟁이의 사명감을 생각한다면 너무 거창한가. 말이 글이 되고 글이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널리 읽히고 쓰이는 고사성어도 고유한 우리말로 풀어쓰기 한 것이 나는 좋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신조어가 됐던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사자성어를 생각한다. 각자도생을 풀면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꾀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마스크도 자유화가 됐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안 쓰는 것도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 됐다. 여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만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감기처럼 인식되면서 불안감은 사라졌지만 마스크 쓰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 네 삶 속엔 여전히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창문을 넘겨다보는 달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본다. 밝은 대낮보다 아슴아슴하게 비치는 달밤의 산골 풍경이 더 은근하고 아름답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밤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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