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이야기

<끝>

by 박래여

지소장의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를 들고 도청 인사계에 전화를 했다. 인사과장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 내 근무처가 바뀐데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인사과장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하더니 조무송을 바꾸라고 했다. 나는 조무송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조무송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나는 능청스럽게 딴청을 피웠다.

예, 예, 바로 돌려놓겠습니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몇 시간 만에 하동의 모 관청으로 돌아왔다. 내 자리에 앉았던 여자는 다시 묵계 지소로 옮겨갔을 것이다. 조무송은 우리를 태우고 갔던 택시를 다시 불러 관청으로 돌아왔지만 내게 일별도 주지 않았다. 조무송은 그날 굉장히 화가 났지만 꾹꾹 참는 내색이 완연했다. 동행했던 우리는 묵계로 갈 때와 묵계에서 돌아 나올 때의 표정이 판이하게 달랐다. 묵계 리에서 나올 때는 택시를 따로 잡아 탄 생면부지의 승객처럼 각자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만 뚫어지게 봐라봤다. 고소했다. 아니, 그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인 것 같아 통쾌했다. 연아, 두고 봐. 저 자식 모가지 끊어 놓을 테니까. 그는 내가 던진 낚시 바늘에 코를 꿰었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다음 날, 어떤 남자가 찾아와 조무송에게 삿대질을 해 댔다. 니가 내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 한 입에 두말 하면 좆도 아니라던 놈이 너 아니냐. 이제 어쩔 거냐. 계산은 정확하게 하자고 조무송의 책상을 탕탕 쳤다.

이것 봐, 김 형 나가서 말로 하세.

조무송이 그를 데리고 나갔다. 사건은 소리 소문 없이 가라앉았다.

관청에 근무하면서 내가 가장 세밀하게 신경 쓴 부분이 은진이를 꼬시는 일이었다. 가장 남자답게, 가장 자상하게, 가장 은근하게, 가장 진실한 몸짓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아니, 조무송 앞에서는 노골적으로 은진에게 관심을 표했다. 직장생활을 하면 회식 자리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회식 후의 시간도 십분 활용했다. 여자의 마음 잡기였다. 은진의 자리는 늘 조무송 옆이었다. 조무송의 강권에 의해 정해진 자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았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아는 척 하지 않았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이런 식이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조무송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던지 말든지 은진의 젓가락에 내 젓가락을 부딪치며 장난을 걸었고, 먹음직한 것은 은진의 접시에 놔주곤 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내가 은진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조무송에게 나는 눈엣가시였다. 결재를 받으러 가면 이런 저런 항목을 들어 잘못을 지적하려고 안달이지만 나의 서류작성은 완벽했다. 도에서 내려오는 과제 역시 빈틈없이 해 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에게 책잡히지 않으려면 완벽해야 한다.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서너 달이 지나자 조무송이 손을 내밀었다.

이층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면서 송림을 바라보고 섰는데 그가 옆에 와 섰다. 담배를 한 대 달라고 해서 입에 물더니 느릿느릿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가방 끈이 짧아서 이 주사에겐 못 당하겠는 걸. 남자가 일을 너무 그렇게 빈틈을 안 보이는 것도 별로 좋지 않아요. 나처럼 술도 좀 마시고, 허풍도 까고, 그래야 사람답지. 싹 까놓은 알밤 같으면 겁나서 사람이 붙나. 언제 우리 술 한 잔 하세. 요즘 진도가 제법 나간다며? 콧대 높은 은진이를 얼라 주물 듯 한다던데. 은진이는 손대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이건 협박이 아니라 선배로서 충고일세.

은진이가 계장님 소유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자네가 김연이 뒤를 캔다는 소문도 있던데. 연이가 살던 자취집에도 찾아간 줄 아는데. 밥집에 가서도 알아보고. 왜지? 연이랑 모텔도 드나들던 사이라던데.

조무송의 입에서 김연이가 거론되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실종에는 분명 조무송이 연류 되어 있지만 감일 뿐,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이유는 없습니다. 입사 초부터 함께 했던 친구가 갑자기 여기서 사표를 내고 잠적했기에 호기심이 동했다고나 할까. 계장님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김연이에 대해서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별 이야기를 들을 게 없었으니. 계장님과 개인적으로 꽤 친했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지만요.

개인적으로 친했다? 맞는 말이지. 하지만 나도 알 수 없는 것이 그녀에 대한 진실이야. 자네처럼 속을 내 보이지 않았어.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사라졌지. 마치 처음부터 없던 여자처럼.

하동에서 알게 된 김연이는 다른 여자 같았다. 물론 거칠 것 없이 화끈한 여자였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읍이라고는 하나 시골구석인 하동에서 얻은 그녀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헤픈 여자라는 것이다. 은진과 조무송에게 강한 집착을 보였다는 것이다.

연이가 계장님을 사랑했다는데 계장님도 연이를 사랑했습니까?

우리 나이에 사랑이라. 나는 연이의 그 점이 겁나서 곁을 줄 수가 없었지. 집요했거든. 특히 은진을 괴롭히는 것에 화가 났어. 내게 은진은 특별한 아이야.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아이지. 은진이를 괴롭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어.

그래서 사라지게 했습니까? 김연이 어디 있지요? 계장님은 아실 것 같은데.

조무송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 한 번 붙지.

언제든 좋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그 해, 11월 중순 쯤 되었을 게다. 하현달이 희미하게 나온 날 밤이었다. 인적이 끊어진 밤이면 송림 숲은 우범지대가 된다. 그때만 해도 가로등도 없는 숲이었다. 밤이면 껄렁한 친구들이 모여 술 파티를 하거나 고성방가를 해도 아무도 관심 두는 사람이 없었다. 전라도에서 넘어온 청년들과 하동 인근에 사는 청년들이 모여 패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모래사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경찰이 단속을 나가도 그때뿐이었다. 나는 은진의 손을 잡고 그 숲길을 걸었다. 조무송이 못 만나게 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은진은 내게 푹 빠졌으니까. 쪽지 한 장만 건네면 언제든 내게 달려와 주는 여자였다. 은진을 알수록 때 묻지 않은 여자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이에게 품었던 내 감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 고스란히 은진에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그렇게. 우리는 어깨를 껴안은 자세로 가끔 진하게 입을 맞추며 송림 둑에 앉아 강물소리를 들으며 모래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조용조용 숲으로 들어왔다. 그 길은 숲으로 차가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차가 멈추자 검은 옷을 입은 너덧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한 남자를 두 사람이 부축을 하여 가운데 세우더니 모래밭을 가로질러 강물이 흐르는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운동선수의 직감이었다.

은진아, 소나무 뒤에 가서 숨어 있어. 무슨 일인가 벌어졌어.

은진은 무서운지 내 허리를 꽉 껴안았지만 나는 그들이 눈치 채지 않게 은진을 껴안고 뒷걸음 쳐서 어두운 숲으로 몸을 숨기고 그들을 주시했다. 그들은 한 남자를 공 굴리듯 패고 있었다. 이미 초죽음이 된 남자를 사정없이 패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질질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물속에 한 남자를 처박고 네 남자가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물속에 들어간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아 떠내려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은진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 조용히 하라 이르고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뜻밖의 불청객에 놀란 네 남자가 금세 자세를 바로잡고 달려들었다. 나는 사정없이 발차기를 날려 네 놈을 걷어찼다. 한 녀석이 유도 자세로 내 가슴을 잡을 태세로 쳐들어왔다. 얼굴이 마주쳤다. 희미한 달빛 속에 드러난 그 자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상범 선배!

어, 너!

네 사람은 금세 맥이 빠졌다.

조무송이야. 연이가 손 좀 봐주라고 해서.

형, 연이는?

연이는 걱정마라. 내가 챙긴다.

형, 가버려. 우린 만난 적 없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야. 빨리 가.

나는 이상범의 가슴을 거칠게 밀고 물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의식을 잃은 조무송은 본래 있던 자리에서 제법 아래쪽으로 떠밀려가고 있었다. 내가 조무송을 끌어내는 사이 그들은 서둘러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나는 그를 모랫바닥에 눕히고 인공호흡을 했다. 숲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은진이 달려왔다. 그녀는 모랫바닥에 누워있는 조무송을 보고 경악했다. 그녀의 입에서 틔어 나온 한 마디에 나는 더 경악했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야. 어떻게 해.

은진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조무송은 저승길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조무송을 납치했던 것이다. 조무송은 일주일 간 병원신세를 졌지만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 됐다. 은진은 묵계 지소장 하정숙의 딸이었다. 하정숙과 조무송은 하동 청암 면의 청암 중학교 동창생이었다. 하정숙이 아버지의 강권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을 때 이미 그녀의 뱃속에는 은진이란 씨앗 한 알 자라고 있었다. 하정숙이 공무원이 되어 하동으로 발령을 받아 왔을 때 그들은 다시 만났고 은진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지만 아버지 옆에 앉을 수 있었다. 그들이 현재까지 연인관계라는 것을 연이가 눈치 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조무송을 죽이고 싶었겠지.

연아,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네가 변한 거니? 네게 나는 무엇이었니?

나는 허무했다.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애증의 관계일까. 연이에게 나는 그저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상범 선배에게 연이가 찾아갔었냐고 물을 때 아니라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이미 상범 선배는 연이랑 살림을 차렸고, 연이는 내게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이다. 내 사랑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다. 자신 밖에 모른다고 욕을 해도 할 수 없다. 연이에 대한 내 감정을 섬진강 물에 흘러 보내야 했다. 아니면 조무송이 소태 씹은 표정으로 입을 쩝쩝 다시며 말끝마다 ‘이 도홍, 너 주기 진짜 아까워 죽겠다. 우리 은진이를’하는 말 때문이었는지.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아내의 손에서도 힘이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것을 아내도 느낀다는 것을 안다. 결혼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떠난 여행길, 우리를 힘들게 했던 곳, 우리를 맺어지게 했던 곳, 쌍둥이 아들딸이 생긴 곳, 애증이 함께 했던 곳을 찾아 떠나 보기로 했을 때 갈 곳은 딱 한 곳, 하동이었다. 하동 포구, 송림 숲.

우리가 가장 먼저 들렸던 곳은 다름 아닌 송림 숲이었다. 숲은 옛날보다 더 잘 정돈 되어 있었다. 숲 아래 모래사장은 더 넓어 보였다. 아내와 같이 맨발로 모래밭을 걸어 물가에 다가갔다. 수량은 확 줄어든 느낌이고 바닥도 얕아진 것이 눈에 보였지만 물은 짰다. 아내도 한 손에 신발을 들고 한 손은 물에 담근 채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아내 옆에 서서 건너편 대숲의 흔적을 찾았다. 횟집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위로 2차선 도로가 생겨 차들이 쌩쌩 달렸다. 다만 손님을 나르던 나룻배를 묶었던 바위만 그 자세대로 우뚝 서 있었다.

아내가 내 손을 끌어당겼다. 촉촉한 모래바닥에 글을 썼다.

저기지요? 당신이 아버지를 구한 곳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양심의 가책은 여전히 내 가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상범 선배를 연이에게 소개시켰던 것이 잘 한 것인지 잘 못한 것인지. 어쨌거나 연이와 상범 선배도 부부가 되어 잘 살고 있으니 결말은 행복이지만 어째서 쓸쓸한 것인지.<끝>



*작가노트

작가의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부터 하동은 내게 낯설지 않은 곳이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하동은 지금보다 초라하고 작은 읍이었지만 아름답고 정다운 곳이었다. 여학교 시절 모 문학지에 개재되던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 반해 배낭을 메고 화개 장터를 찾았었다. 기차를 타고 하동 역에 내렸을 때의 설레던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첫 길에 대한 각인은 쉽게 지워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동에서 길을 묻고 또 물어 찾아 갔던 곳, 낡고 소박한 화개 장터에서 먹은 국수 한 그릇, 개천가에서 펑 튀기 장사를 하던 할아버지, 화톳불을 피워놓고 언 손을 녹이게 해 주셨던, 그 아래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탔었다. 섬진강을 가로질러 광양과 화개를 잇던 나룻배, 뱃전에 앉아 손을 강물에 담그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결에 신비로움을 느꼈었다. 그때부터 하동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처녀시절, 직장생활을 할 때, 뜻밖에 하동으로 발령이 났었다. 송림 숲 옆에 자취방을 마련하고 틈만 나면 공책과 책 한 권을 끼고 송림과 그 앞에 펼쳐진 모래사장에 나가 앉았거나 하동 팔경을 찾아 배낭을 메고 자취집을 나서곤 했다. 단편 <하동이야기>는 그 때 그 시절을 배경으로 엮어 보았다. 소설을 완성했지만 생각만큼 탄탄하지 않은 미흡한 작품이라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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