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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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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19. 2023

내 마음이 편해야

내 마음이 편해야.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냉동실에 저장했던 것들도 다 먹어치웠다. 아직 창고에 곱게 포장한 배추 몇 포기 남았고, 무도 있다. 김장김치는 그득하다. 날마다 먹는 것에 식상해졌다. 새로운 반찬거리를 사긴 사야겠다. 오일장에 갔다. 시장 공용주차장엔 온갖 종류의 승용차로 꽉 찼는데 시장 골목은 한산하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잠 없는 촌로도 동장군은 무섭나 보다. 썰렁한 시장골목에 들어섰다. 하필이면 생선 전이다.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내 꼬리를 잡는다. 생물이 싱싱하단다. 첫 손님이라며 마수를 해 달란다. 간절한 눈빛이다. 냉동실에 든 조기를 생각한다. 정초에 들어온 선물이었다. 몇 마리 안 남긴 했다. 아주머니는 고등어를 권한다. 얼마냐고 물었다. ‘한 마리 칠천 원인데 세 마리 사면 2만 원에 드릴게.’ 고등어 한 마리에 7천 원이라니. 너무 비싸다. 일본산 고등어는 방사선 덩어리라는데. 다른 생선들을 둘러봤다. 갈치도 조기도 새우도 살 맘이 안 난다. 씩 웃으며 지나쳤다.

 

 다른 생선가게도 둘러본다. 닭 벼슬을 달고 있는 멍게의 노란 주머니가 굵다. 멍게를 살까. 봉지에 까서 담은 멍게가 싱싱하다. 멍게를 살까 말까 망설이는데 주인아저씨가 딴전이다. 그 가게는 마수를 했나 보다. 멍게 가격을 물으려는 찰나 ‘팔아주고 가이소.’ 고등어를 권하던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등에 붙는다. 결국 그 목소리에 끌려 돌아섰다. 살 생각도 없었던 고등어 두 마리를 샀다. 마수 해줘 고맙다며 천 원을 깎아준다. ‘많이 파세요.’ 덕담을 던지며 이웃하던 채소전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 할매 병원에 있어요. 서울 아들을 불러 가게를 맡겼는데. 아들이 장사하지 말라면서 다시 서울로 갔답니다.”

 

 시장골목에서 평생을 바친 할머니, 작은 채소가게지만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가게다. 그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는 할머니 마음을 알 것 같다. 먹고살 길을 찾아 시작한 장삿길, 그 가게를 밑천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를 했을 것이다. 늙고 병들어도 채소전을 접을 수 없는 애착을 그 자식은 알 수 없겠지. 썰렁한 시장골목을 나와 또 다른 채소전 할머니를 찾았다. 아직도 오일장을 돌며 길거리에서 좌판장사를 하는 등 굽은 할머니, 여전히 ‘동상 왔나? 요새 와 그리 안 보이노? 오데 아팠나?’ 살갑게 반겨준다. ‘건강해 보여 좋네예. 대파 두 단, 콩나물, 손 두부 한 모 주이소.’ 할아버지는 대파를 봉지에 담고 할머니는 동이에서 콩나물을 뽑는다. ‘두부는 인자 해 온 기다. 따끈해서 바로 무도 맛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늘었다. 

 

 손잡이가 있는 시장구루마(플라스틱으로 만든 수레, 손잡이를 빼서 길게 끌 수 있는 바퀴가 달린 작은 수레)가 가득 찼다. 다리가 아프다. 시장 돌아다니는 것도 힘에 부친다. 마트에 들렀다. 계란 한 판, 생닭과 삼계탕 거리를 샀다. 부드러운 빵과 두유 한 박스도 샀다.  시장구루마가 넘친다. 승용차를 너무 멀리 세웠다. 운동 삼아 걸을 생각을 한 내가 어리석다. 척추협착증과 무릎 관절염은 아파도 걸어야 한다던가.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지만 가정주부가 무거운 것을 안 들 수 있나. 

 

 지친 걸음이다. 시장 입구에 세워둔 승용차까지 멀기만 하다. 어쩌랴. 가야지. 덜커덩 덜커덩 시끄러웠던 빈 수레가 짐을 꽉 채우자 안정적이고 조용하다. 역시 빈 수레가 요란하군.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어디선가 펑 터지는 소리가 난다. 금세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펑 튀기를 하는 방앗간이다. 살짝 찢어진 푸른 눈이 보이는 검은콩이다.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할배, 이거 언제 튀겼어요?’ 꾀죄죄한 몰골의 촌로가 ‘어제 튀긴 거요.’ 투박한 대답이다. ‘한 개 먹어보고 사면 안 될까요?’ 그러라고 한다. 봉지를 열고 하나를 먹어봤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한 봉지 달라했는데 낭패다. 현금이 바닥난 것이다. 카드결제는 안 한다며 다음에 사러 오란다. 미안했지만 어쩌겠나. 

 

 승용차에 짐을 싣고 운전석에 앉아도 뭔가 찜찜하다. 아직 아침나절이라 그 할아버지도 마수를 못했을 수도 있는데.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편하려면 그 검정콩 튀긴 것을 사는 게 났다. 승용차를 빼 농협을 찾았다. 현금을 찾아 시장골목으로 다시 들어갔다. 펑 튀기 방앗간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내가 풀었던 검정콩 봉지를 달라고 했다. ‘맴이 안 편하던가베.’촌로의 눈치가 백 단이다. ‘예, 아저씨 많이 파세요.’ 인사를 하고 시장골목을 빠져나왔다. 내 마음에 켕기는 것 없이 사는 게 좋다. 장돌뱅이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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