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Mar 21. 2023

 가재가 노래하는 곳

<소설을 읽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     


 넷플릭스에 올라있는 영화의 제목을 봤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별 흥미를 끌지 못했다. 딸의 책상 위에 그 책이 없었다면 나는 델리아 오언스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습지에 대해서도, 그녀의 첫 장편소설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갈 뻔했다. ‘이 책 읽었어? 괜찮아?’ 내 말에 딸은 ‘응, 엄마 안 읽었으면 읽어보세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우선 내가 매혹됐던 책 헤르타 밀러의 <저지대>를 서가에서 찾았다. <저지대>는 연작소설이다. 표현력이 독특해서 빠졌던 작품이다. 저지대는 강의 하류에 있는 낮은 지역을 일컫는다. 습지와 완전히 다른데도 왜 저지대가 떠올랐던가. 저지대 다음에 사막이 떠올랐다. 르 끌레지오의 <사막>, 사막과 습지는 닮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일단 영화부터 봤다. 습지를 찍은 영상미에 반했다. 영화를 보면서 습지에도 가재가 있나? 의문이었다. 영화에는 가재를 잡는 모습이 없었다. 습지에서 홍합을 따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만 담겼다.


 그리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수준에서 보면 가재는 바닷가재와 골짝의 민물가재가 전부였다. 바다와 인접한 습지에 사는 가재는 어떻게 생겼을까. 민물가재라고 해야 할까. 바닷가재라고 해야 할까. 번역자가 잘못 번역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징적인 의미일 것이라 생각했다. 맞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 소녀 카야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숨을 수 있는 곳, 습지 깊은 곳,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 낡은 통나무집, 그녀의 은신처였다. 습지는 사막만큼 나를 매혹시켰다. 


 일흔이 다 된 동물학을 전공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란다. 책장을 넘겼다. 첫 장부터 나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온종일 책 한 권에 집중했다.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밥상을 차리면서도 습지 소녀 카야를 생각했고 수영을 하면서도 마시 걸 카야를 생각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고아 소녀 카야의 성장기며 외로움, 사랑과 애정, 살인에 대한 법정 공방까지 시대별로 구분한 소설이다. 한 소설 속에 두 개의 축을 세워 지그재그로 썼다. 영화에서는 살인자로 잡힌 카야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과거를 반추하는 형식을 취했다. 체이스의 살인자는 누구일까. 독자는 미루어 알게 된다. 사람 속에 같이 어울리고 싶은 외로운 카야,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카야, 습지 소녀 카야는 멋진 반전을 준비했다.  습지, 얼마나 매혹적인가. 르 클레지오의 사막과 함께 델리아 오언스의 습지는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트뱅크 습지에 혼자 사는 카야, 습지라면 늘 축축하고 습한 느낌, 안개가 자욱한 숲이 연상된다. 여섯 살 때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간 엄마, 오빠와 언니들을 기다리며 혼자 살아야 했던 소녀, 가장 무서운 것은 복지과에서 나온 낯선 사람이었다. 카야는 사람들을 피해 습지로 숨는다. 카야의 친구는 습지 식물과 생물이다. 조개, 나비, 새, 바다, 하늘, 풀, 그녀는 습지 생태계의 본능에 눈 뜬다. 습지에 사는 온갖 것, 깃털, 조개, 나비, 버섯 등, 카야는 습지에서 채집하거나 본 것을 그림으로 남긴다. 외로움을 잊는 방법 중 하나였다. 동물적인 감각, 그림을 그리고 문학적 소양을 가졌던 엄마로부터 받은 물려받은 소질이었다. 폭군 아버지가 없을 때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살던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미움받고 따돌림받았다. 마시 걸, 습지 소녀, 더러운 아이, 그녀는 딱 하루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 갔었다.


 그래도 그녀를 보살펴 준 주유소와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흑인 부부가 있었다. 카야가 자라는 과정, 혼자서 삶을 헤쳐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움을 준다. 말없고 수줍은 카야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녀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어려울 때마다 도와준다. 카야는 습지에서 낚시하는 오빠 친구 데이트를 만난다. 생물학자를 꿈꾸는 데이트는 글을 모르는 그녀에게 글을 가르치고 책을 갖다 준다. 그녀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습지처럼 책에서 지식을 빨아들이고 시를 읽는다. 또 시를 쓴다. 


 데이트가 대학을 가고 또 혼자가 된 카야, 그녀에게 찾아온 체이스, 습지 밖 마을의 잘 사는 유지의 아들, 어려서부터 말썽장이에 멋쟁이, 여자 편력이 심한 남자, 체이스는 어린 카야를 봤었고, 처녀가 된 카야를 봤을 때 그 신비로움에 매혹당한다. 따뜻한 가정, 가족의 일환이 되기를 꿈꾼 카야의 소망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린 남자, 딴 여자와 결혼을 하면서도 카야를 자기 것이라며 놓아주지 않으려는 남자, 체이스는 결혼을 한다. 카야는 숨는다. 그 카야를 찾아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 그때 카야는 안다. 엄마가 집을 나가야 했던 이유,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를. 두려움에 떨며 평생을 살 수 없었던 카야, 체이스는 살해당한다. 습지가 발아래 펼쳐지는 조망대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리고 두 달 뒤 체이스의 살해범으로 카야는 수인이 된다. 1년이 넘도록 지루한 법정 공방이 시작된다. 편견, 인종차별의 장에서 카야는 습지만 생각한다. 헌신적인 변호사의 변론으로 카야는 무죄 석방되어 습지로 돌아온다. 그 후 카야는 습지를 떠나본 적이 없다. 습지 생물학자로 인정받으며 예닐곱 권의 책을 낸다. 이제 마시 걸, 습지 소녀 카야는 그 지역 전설이 되고 위대한 인물로 부각되지만 그녀는 습지를 떠난 적이 없다. 첫사랑 데이트와 가정을 이루고 함께 습지 생태학 연구를 하면서 늙어간다. 예순여섯에 숨을 거둘 때까지 그녀는 조디 오빠 가족과 평생 원하던 가족을 구성하고 행복하게 살다 간다. 카야와 데이트는 아이를 원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카야의 죽음 후, 데이트는 카야의 물건을 정리하다 꼭꼭 숨겨둔 노트와 습작시 뭉치를 발견한다. 그 지역 신문에 예명으로 시를 썼던 시인이 바로 카야였다. 그리고 체이스의 목에서 사라졌던 조개껍데기를 발견한다. 완전범죄, 데이트는 카야를 이해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소설의 첫 장을 넘기면 손에서 떼어낼 수 없게 만드는 소설, 습지라는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매혹이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마음이 편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