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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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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25. 2023

 산수유나무 한 그루

산수유나무 한 그루


  마당에 산수유나무 한 그루 옮겨 심었다. 아름다운 몸통이다. 시댁 담장 아래 있던 것이다. ‘그 새 저렇게 굵어진 거야?’ 놀라움도 잠깐이다. ‘사십 년도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네.’ 고개를 끄덕인다. 농기계 대여점에서 작은 굴착기를 빌려와 땅을 팠다. 농부는 아랫말 나무지기 두 사람과 온종일 중노동을 했다. ‘일을 만들어서 고생해요.’ 투덜거리면서도 산수유가 제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원래 그 자리는 이팝나무가 멋지게 자리 잡았던 곳이다. 이팝나무는 3년 전 강풍에 밑동이 부러졌다. 이팝나무는 자신의 죽음을 알았던 것일까. 그해 봄은 유난히 매혹적이고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었다. 탐스러워서 들며 나며 감탄했고, 사진에 담았었다. 

 

 그 비어있는 자리가 허전했는데 산수유가 자리를 잡았다. 꽃나무를 즐겨 가꾸던 시아버님 생각이 났다. 시댁 정원에는 목련과 금목서, 은목서, 라일락, 두충나무, 엄나무, 무궁화, 단감나무 등, 고목이 된 나무들이 여러 그루다. 나무들이 굵어지면서 배서 베어낸 것들도 많다. 목련이 피면 온 동네가 환했다. 금목서, 은목서 향기는 또 얼마나 진한지. 시아버님께서 구해다 심어 키운 것도 있지만 금목서나 은목서는 삽목을 해서 직접 키워서 심은 것들이다. 시아버님은 분재에도 소질이 있었다. 귀한 분재가 마당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농부의 손재주도 내림이다. 


 시아버님은 촌로였지만 멋쟁이셨다. 한 여름 내내 모시 한복을 입었고, 죽부인을 안고 주무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경남 일대를 누비기도 했다. 붓글을 썼고, 책을 봤다. 집안 살림에는 관심도 없었다. 농사꾼도 아니었다. 당신 몸보신하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노후에는 게이트볼을 치러 다니셨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무엇이든지 당신 뜻대로 했다. 깔끔하고 빈틈없던 어른이셨다. 외출할 때는 말끔한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 위에 군림하셨다. 당신 말씀이 법이었다. 강직하고 강했던 어른을 모시면서 시어머님도 나도 농부도 참 힘들긴 했다. 

 

 영혼이 있을까. 시아버님의 영혼이 떠돈다면 산수유나무가 우리 집 마당으로 옮겨진 것을 좋아하실까. 작은 시골집이지만 어디 한 곳 빈틈없이 쓸고 닦고 정리한 것은 시어머님이셨다. 아버님은 지시만 했다. 여름, 땀 뻘뻘 흘리며 모시한복을 손빨래해서 풀 끓여 풀 먹여 널었다가 덜 말랐을 때 걷어 다듬이질하고 다리미로 다려 내놓아도 자칫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풀기가 적다면 다시 씻어야 했다. 한 번은 지친 어머님이 ‘한 번 입고 벗을 것 그냥 입으면 되겠거마.’ 구시렁거렸는데 귀 밝은 시아버님이 들었던 것이다. 당장 그 옷이 찢어져 마당에 던져졌었다. 하필이면 그때 마당에 들어서던 나는 창고 뒤에 몸을 숨겼었다. 시어머님은 다시 이웃 동네 모시옷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새 모시옷 한 벌을 지어야 했었다. 시어머님은 남편 시집살이를 모질게 했다. 


  그 세월, 언젠가 끝날 그 길이 지난해로 막을 내렸다. 나는 시아버님을 생각하며 산수유나무에 호스를 대서 물을 준다. 저 덩치 큰 나무가 살아날까. 살아주길 바란다. 잔뿌리 내려 자리 잡기를 기도한다. 농부에게 지지대를 세워줘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무둥치가 워낙 커서 안전하단다. ‘그래도 바람에 흔들리면 뿌리내리기 힘든데.’ 내 말은 귓등으로 넘어갔다. ‘그래,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믿으면서도 불안하다. 나무는 자리만 잘 잡아 심어놓으면 알아서 자란다. 자라다가 저절로 고사하기도 한다. 다른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기 때문일까. 

 

 나무는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본연의 모습을 잃지도 않는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다듬고 가꿀 때도 엇박자 내지 않는다. 잘 다듬어주면 잘 다듬어진 대로 그 자리에 있다. 비좁은 시댁 정원에서 옮겨온 산수유나무는 넓은 마당가에 독불장군처럼 섰다. 늠름한 모습대로 잘 안착하길 바라며 물을 흠뻑 준다. 산수유를 볼 때마다 시아버님을 생각하게 되겠지만 함께 살았던 오랜 세월 어찌 통증만 있겠나. 사랑도 받았고 미움도 받았지만 나는 아직도 시아버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되다. 한동안 시아버님 생각을 하며 산수유나무 돌보는 재미로 지낼 것 같다.  

 

 하필이면 결혼기념일이란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딸의 전화를 받았다.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엄마아빠! 선물로 윗도리와 조끼 보냈어요. 도착하면 문자 주세요.’ 본인들도 잊고 있던 결혼기념일을 챙겨주는 딸이다. 아들은 또 영양주스 두 통을 보냈단다. 학부모 모임에서 하는 무공해 농산물로 만든 것이다. 이래저래 이번 결혼기념일은 푸지다. 아들과 딸이 있어 행복한 결혼기념일이다. 결혼기념일 식수가 된 산수유 한 그루를 바라보며 농부랑 밀면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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