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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오르는 길은 여전히 아나콘다의 뱃속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산줄기마다 잔설처럼 하얀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푸른빛과 흰 빛이 오묘한 대비를 이루며 가풀막을 끝도 없이 이어갔다. 잘 다듬어진 차밭도 있었지만 풀이 무성한 차밭도 많았다. 차밭에 고사리가 너풀대는 것이 새로운 눈요기였다. 하동 하면 녹찬데, 녹차 농사도 한 물 간 것인지. 녹차 연구소도 있었지만 왠지 거리는 을씨년스러워 보였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 피서 철이 끝나서 그럴까. 민박집도 을씨년스럽고, 음식점도 문을 닫은 집이 많았다. 의외로 찻집은 영업 중인 집이 여러 집 있었다. 차를 마시러 오는 손님은 있다는 뜻이다.
그는 그냥 저 곱상하게 지은 찻집에 들어가 하염없이 퍼질러 앉아 빗소리나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게 참 부질없음이다. 중늙은이가 되어 손자손녀보다 더 어린 남매를 데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자신의 인생이 기막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기에 이생에서 이런 모진 고통을 겪나. 저 애들은 무슨 인연으로 내 자식으로 태어났나. 알고 싶다. 꼭 알아야겠다. 죽어 백골이 진토 되는 한이 있어도 이번 생에 알아야겠다. 그는 세 번째 여자를 사랑했다. 첫 여자보다 더 깊이 뜨겁게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오십이 되던 해 딸 순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종합병원에 취직해서 자립을 했다. 가끔 그에게 옷이며, 구두, 화장품 같은 선물을 사 보내기도 하고, 소고기나 젓갈 종류의 맛 집 음식 세트를 사 부쳐주기도 한다. 그가 공장에 다니면서 딸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가끔 외로울 때면 딸을 찾아가고, 딸과 둘이 손잡고 길고 짧은 여행도 하며 살았지만 딸에게 사랑하는 청년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딸 옆이었던 아버지의 자리를 낯선 청년에게 내놓아야 했다. 가슴이 쓰렸다. 다시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그즈음 판이 소개팅을 주선했다.
그는 공장에 다니면서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알게 되었다. 판도 산업근로자로 필리핀에서 온 청년이었다. 보통 키에 까무잡잡하고 두툼한 입술을 가졌지만 미남이었다. 한국말을 곧잘 했다. 어느 봄날 점심시간이었다.
형님, 장개 갔어?
노총각이야.
나, 필리핀 처녀 소개 해 줘?
조오 치.
오케이. 내 사촌 동생 이뻐, 한국 나오고 싶어 해. 결혼해 줘.
판이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했다. 결혼정보회사였다. 판이 사촌동생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진짜 눈에 확 띄게 미인이었다. 첫 째 긴 생머리가 좋았다. 아주 앳돼 보였다. 쌍꺼풀 진 큰 눈, 동그란 얼굴이 참 예뻤다. 딸 순지보다 더 어려 보여서 망설이자 판이 어리지 않다고 했다. 필리핀 여자는 일찍 어른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세 번째 아내를 만났다. 필리핀 여자 찌엔을 만나기 위해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그는 첫눈에 찌엔에게 반했다. 필리핀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속전속결로 결혼을 하고 나왔다. 국제결혼은 현지에서 결혼식을 하고 나와 몇 달을 기다려서 아내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어린 아내였지만 외모만 어렸지 관능적이었다. 얼마나 예쁜지 품에 안고 끼고 다니고 싶었다. 오십이 넘은 남자가 주책없이 어린 여자에게 빠졌다. 그는 한국에 나오자마자 어린 아내에게 러브 레터를 뻔질나게 썼다. 컴퓨터도 샀다. 판이 가르쳐 준 메일로 편지를 보냈다. 판에게 현금을 지불하면서 초고속 개인 교습도 받았다. 따갈로그와 영어 회화를 배우는 일이었다. 신혼의 꿈에 부푼 그는 시골집을 팔아서 시내에 아파트도 샀다.
그에게 다시 훈풍이 부는 봄이 왔다. 봄은 여름으로 치달을 때만 무성할 뿐 가을이 되면 다시 조락을 꿈꾸고, 겨울은 삭막하게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일까. 다시 인생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청바지를 입고, 빨간 티를 입었다. 그는 젊어졌다. 다시 청년의 혈기가 넘쳤다. 봄을 알차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삭막하고 추운 겨울에 나무나 풀뿌리를 잘 다스려놔야 더 풍요로운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도, 무성한 여름을 만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다시 그 옛날 어린 순지만 한 달이와 별이만 그의 품에 떨어졌다. 어린 아내는 떠났다. 판을 사랑한다고 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꾼 것도 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니.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 가능한 것일까.
찌엔이 몇 달 후 한국에 나왔을 때 이미 배가 상당히 부른 상태였다. 그는 필리핀에서 일주일 동안 달이를 찌엔의 뱃속에 심어 놨던 것이다. 이듬해 곧장 아들 별이가 태어났다. 그는 그제야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할 낯을 찾았다. 대를 잇는다는 것이 별것도 아닌 세상이 되었지만 순지를 볼 때마다 저것이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찌엔이 첫애를 임신하고 한국에 나왔을 때도 은근히 아들이길 바랐다. 또 딸이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손녀 같은 어린 딸을 안자니 참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둘째가 또 딸이면 어쩌나 솔직히 겁났다. ‘아들입니다.’ 산파가 전해주는 한 마디에 얼굴을 푹 파묻고 쭈그리고 앉았던 그였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저승에 계신 아버지와 절에 계신 어머님이 도와주셔서 대를 이을 아들을 점지했구나. 처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는 행복했다. 어린 아내랑 살면서 행복하다는 것을 수시로 느끼는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내는 한국 음식도 곧잘 했다. 한국말도 곧잘 했다. 필리핀에 있으면서 한국어학원에 다녔단다. 남편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한국말을 열심히 배웠단다. 기특하고 대견한 어린 아내였다.
판은 자주 집에 놀러 왔다. 저녁을 같이 먹을 때가 많았다. 찌엔은 판을 엄청 챙겼다. 판도 그랬다. 그들 둘이서 자기네 본토박이 말을 해 댈 때면 그로서는 도리 없이 외톨이가 되었다. 사촌이라지만 친남매보다 더 애정이 깊은 것 같았다. 그는 판과 찌엔을 보면 젊음이 마냥 좋아 보였고, 찌엔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자신이 늙었다는 것이. 달이와 별이도 판을 삼촌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
어느새 차는 범왕 골과 의신마을로 가는 기로에 섰다. 그는 범왕 골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거기서부터는 차밭이나 고사리 밭보다 짙은 숲으로 이어졌다. 너무 가팔라서 차나 고사리를 심기에 역부족인 지대였다. 길 아래 계곡 물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칠불사 쪽으로 오르는 길은 물줄기가 오히려 약해져서 졸졸 흐르는 수준이었다.
칠불사 일주문을 지났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느라 차가 빌빌 대는 데 저만치 칠불사 부도 탑이 보인다. 부도 탑 세 기 중 구석 한 기에 하얀 보를 씌워 놨다. 아, 통광 큰 스님! 그는 즉시 알아봤지만 고개를 숙여 외면했다. 아니, 빠르게 하얀 보를 쓴 탑 앞에 우뚝 서서 바라보는 칠불사사적비에 눈을 맞추었다. 머리는 용이요. 몸은 거북이라 거북 등 중앙에 단단하게 박힌 사적비가 묵묵히 바라보는 곳에 둥근못이 있었다. 영지, 그림자 못이었다. 옛날 수로왕 부부가 중이 된 일곱 왕자가 보고 싶어 칠불사에 왔지만 아들 일곱이 모두 수도 중이라 만날 수 없다 하니 슬퍼하는데. 주지승이 왕 부부를 불쌍히 여겨 절 아래 못이 있으니 그 못을 들어다 보면 일곱 왕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했더니 일곱 왕자가 못 물에 비쳤단다. 그래서 영지, 그림자 못으로 불린다는 그 영지는 붉은 황톳물이 넘쳤다. 꼭 우리 딸 달이 얼굴 같구나. 그는 달이의 동그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영지 옆에 차를 세웠다. 창문을 내리고 달이와 별이에게 영지를 바라보게 했다.
저게 영지란 못이란다. 달이와 별이도 다음에 아빠 보고 싶으면 저 못을 보렴. 아빠가 보일 거야.
아빠는 어디 갈 거야?
아니, 여기 있을 거야. 너희들과 같이.
다시 차를 출발시켜 그 위의 공터에 차를 세웠다. 짓다만 건물 두 채가 니은 자로 앉아 있었다. 산이 동그랗게 감싼 좁은 골짜기에 앉은 아담한 절, 지리산 토끼봉 아래 칠불사는 정적에 싸여 있었다. 탐방객이 수시로 드나드는 깊은 산사일 텐데. 평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도 여행객도 별로 없었다.
그는 달이와 별이를 안아 차에서 내렸다. 별이는 금세 길섶으로 내달더니 ‘부르릉 부릉부릉 털 털 털’ 트럭의 불안한 경적을 흉내 내며 바지를 내렸다. ‘어어, 별아 안 돼’ 그가 소리치는 순간 별이는 이미 고추를 내놓고 풀밭에다 기분 좋게 오줌을 갈기는 것이었다.
별아, 너 아빠한테 혼난다.
달이도 한 마디 했지만 별이의 오줌 줄기는 신나게 포물선을 그리며 풀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바지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알밤처럼 까진 까무잡잡한 피부색의 궁둥이가 드러났다.
가서 별이 바지 입혀 데리고 온나.
달이는 싫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잠시라도 한 눈 팔면 아비마저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이 동그랗고 큰 두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달아, 아빠 아무 데도 안 가. 너도 화장실 가고 싶지?
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빠랑 같이 가자. 아빠도 가야 될 것 같네.
별아, 아빠는 누나랑 저기 화장실 간다.
그가 달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 쪽으로 향하자 ‘아빠, 같이 가’하면서 별이가 제대로 챙겨 입지도 않은 바지춤을 잡고 달려왔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별이의 바지를 추슬러 반듯하게 입혀주며 궁둥이를 툭툭 쳤다.
별아, 아무 데나 오줌 싸면 안 돼. 다음부터는 화장실 찾아가서 쉬해야 해. 아무 데나 쉬 하다간 스님께 혼난다. 화장실이 어딘지 모르면 스님이나 할머니께 물어야 해. 혼자 맘대로 돌아다니지 않기 아빠랑 약속할 수 있지?
별이의 눈이 갑자기 동그랗게 변한다. 그 눈 역시 쌍꺼풀이 있고 크고 동그란 눈이다. 그의 가늘고 얇은 홑눈꺼풀을 닮은 아이는 없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랗고 큰 눈, 누가 봐도 토종 한국인의 아이 같지 않다. 필리핀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요즘 말하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어머니는 소녀티를 겨우 벗어난 어린 여자고, 아버지는 중늙은이가 된 사오십 대 남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부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그 아이들도 사랑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우리 달이와 별이는 어쩌란 말인가.
그는 그가 택한 길이 옳은 길이길 바란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실패에 따른 업을 푸는 열쇠는 바로 그 자신이 갖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중이었다. 그는 두 아이를 앞세우고, 두 아이의 옷가방을 어깨에 메고 공양주 보살을 찾아 요사채로 향했다. 감청색 개량 한복 바지에 하얀 윗도리를 입은 여든의 노인이 된 어머니가 아이들 목소리를 먼저 듣고 달려 나오셨다. 달이 돌 때, 별이 돌 때, 딱 두 번 다녀가신 어머닌데도 손자손녀의 모습을 잊지 않으셨던 것일까.
너희들이 달이와 별이 맞지? 너거 할미다. 오, 내 새끼들 이리 온
어머니는 그에게 일별도 주지 않고 두 아이를 당신의 품 안에 품으셨다. 그도 어머니께 아무 말도 안 했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수많은 사연이 모자 사이에 흘렀다. 그는 슬그머니 어깨에 걸쳤던 두 아이의 가방을 마루 끝에 놓고 물러났다. 두 아이가 달려왔다.
아빠 어디 가?
할머니랑 있어. 아빠는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 뵙고 올게.
달이와 별이는 손을 잡고 할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그는 네 모 반듯하지만 깨끗한 마사가 깔리고 장식 없이 깔끔한 마당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 옆의 칠불사 아자방은 외부인 출입금지였다. 아자방의 봉창이 열린 것을 보니 수도 중인 스님이 몇 분 계신 것 같았다. 그는 아자방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드린 후 대웅전에 들었다. 부처님 앞에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른 후 부처님께 아무 염원 없이 절을 올렸다. 대웅전을 나와 바로 옆의 문수보살 전에 들렸다. 간절히, 간절히 빌었다. 문수보살 님, 우리 어머니와 두 아이 부디 지켜주시고 제 갈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그날, 결혼기념일 하루 전이었다. 그는 평상시처럼 회사에 갔다가 판을 찾았다. 의논할 게 있어서였다. 아들을 낳아 준 찌엔이 한없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벌써 그들이 결혼한 지 5년째 접어들고 있었다. 결혼 5주년 기념일인데 뭔가 색다른 것을 해 주고 싶었다. 깜짝 파티 같은 것을. 그러자면 판과 공모를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어려서부터 이웃에서 같이 자랐다는 사촌 남매니 찌엔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오빠인 판이 더 잘 알 것 같았다. 더구나 비슷한 세대 아닌가. 오십이 넘은 그는 젊은이의 감각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판은 자리에 없었다. 다른 직원이 말했다. 판이 외출 계 내놓고 병원에 갔다는 것이다. 그는 나중에라도 판이 나오거든 그가 찾는다는 것을 알려주라고 해 놓고 자신의 부서로 갔다. 그렇지. 전화하면 되는데. 핸드폰을 찾았지만 호주머니 어디에도 없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깜빡 잊은 것이다. 근무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십 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는 집이니 금세 다녀와도 될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조립해서 완성한 승용차의 시운전도 해 볼 겸 차를 끌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깜짝 놀라는 아내 얼굴을 생각했다. 당신 보고 싶어 몰래 왔다고 해야지. 그는 혼자 싱글벙글 웃었다. 그때 아파트 근처의 도로가에 서 있는 달이와 별이를 봤다. 그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두 아이가 달려왔다.
너희들 왜 벌써 나와 있어? 엄마는?
엄마가 삼촌이 왔다고 우리 보고 여기 나가서 기다리다 유치원 차 오면 타고 가래.
삼촌이 언제 왔어?
아까~ 아까~
가끔 오늘처럼 삼촌이 일찍 올 때도 있었어?
응, 오후에 올 때도 있어. 엄마는 삼촌 오면 우리에게 밖에 나가 과자 사 먹으래.
아빠에게 말하지 왜 말 안 했어?
엄마가 그런 말 아빠에게 하면 혼난다고 했어.
그랬구나. 괜찮아. 이건 우리들의 비밀이다. 자 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그는 노련했다. 두 아이와 손가락 걸고 손바닥 도장도 찍었다.
그 사이 노란 유치원 버스가 왔다. 달이와 별이를 태워 보내고 그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조용히 현관 자물통에 열쇠를 끼워 돌렸다. 아내와 그가 각자 가지고 있는 현관열쇠였다. 딸깍, 열렸다.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가만가만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의 풍경은 볼만했다. 발가벗은 판과 찌엔이 열심히 낮거리를 하는 중이었다. 남자는 눕고 여자는 남자 위에 걸터앉아 감창소리를 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땀으로 반질반질했다. 판의 눈과 그의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그는 문수 전에서도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하필이면 내일이 입적하신 통광 큰 스님 일주기란다. 새로 안치된 부도 탑의 하얀 보가 벗겨지면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오금이 저렸다. ‘중 될 놈이 감히 어디서 여자를 취해 사바세계를 어지럽히는고? 고이얀.’ 그는 힁허케 문수 전 앞에서 보설 루 아래 돌계단을 내려와 그대로 트럭에 올랐다. 이젠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칠불사 일주문을 빠르게 내려와 범왕 리 갈래 길에 섰는데. 누가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놈, 가긴 어딜 가? 단천으로 가. 네 업을 씻을 길이나 찾아. 큰 스님의 일갈에 머릿속이 뻥 뚫린다.
단천, 고운 최치원 선생이 득도했다는 바위가 있는 마을, 가자. 그래, 간다고요. 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