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잿골 할머니 이야기.
저녁을 먹고 세 사람은 넓은 거실에 앉았다. 술이 있어야 된다면서 잿골 할머니는 밖에 나갔다 오더니 막걸리와 김치를 얹은 술상을 차려 왔다. 넓은 거실에는 형광등이 파릇이 타고 있고 우리는 묵상하는 사람들처럼 상 앞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내가 성자를 다시 만난 것은 한 십몇 년 전이 거마. 가실이었제. 부산 딸네 집 갔다가 집에 올라꼬 버스 주차장에 서 있다가 만냈제. 삼십여 세월이 흘러도 성자는 변하지 않은 모습이어서 첫눈에 알아봤제. 먹물 옷을 입고 있는데 머리는 싹 끄집어 올린 올림머리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데 그 모색이 어찌나 곱던지 내만 나이를 묵고 성자는 거꾸로 나이를 까묵고 산 사람 거탰제. 둘이 눈이 딱 마주치자 성자가 주춤하더니. ‘니 성자 맞제’ 항께내 ‘순심아’ 안 하나.”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내 어머니의 진짜 이름이 성자라니. 그럼 박말자란 누구인가. 내 어머니의 호적에 있는 이름은 박말자였다.
“제 어머이 이름이 성자라니 예. 그럼 박 말자는 누굽니꺼?”
“말자라꼬? 그거는 큰 집 작은 누야 이름이었다. 성자 누야 보다 두 살인가 작았는데 일곱 살 땐가 돌림병으로 죽었다. 내랑 같이 아팠는데 나는 살고 말자 누야는 죽었다드마. 너거 외할매는 그 누야 이약을 가끔 했다. 인물이 어찌나 곱든지 후제 처니 되모 양귀비 빰치것다꼬 동네 할매들이 입을 모았다더라. 미인박명이라더니 그 아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해샀제.”
외삼촌이 잿골 할머니의 이야기를 거들었다.
“성자는 절에 가는 길이라더마. 그날 나는 성자를 따라 그 절에 갔제. 그냥 헤어질 수가 도저히 없었제. 성자가 하리 쉬다 가라쿠는 소리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제. 에리서부터 정이 든 사인데 세월이 간다꼬 그 정이 오데 가것나. 지 속 내가 알고 내 속 지가 아는 데. 성자는 암자를 찾아 댕김서 건어물을 갖다 주기도 하고 스님들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사다 주기도 한다드마. 사람이 나가 들모 젤로 기리운기 정인기라. 성자도 정이 기립던 참이었던 기제. 그날 밤 우리는 지내온 이야기에 날 새는 줄 몰랐었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함서 날을 밝혔던 기라.”
어머니는 성자라는 이름을 버렸지만 성을 갈 수가 없었나 보다. 죽은 사촌 동생의 이름을 빌려 단독 호주가 되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 때문에?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짐작했다. 나는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사생아였다.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였다. 내 아버지가 어머니의 사촌 오빠란 사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이것이 진실일까?
“자네가 충격이 클 끼다.”
“그다음 이약은 압니더.”
나는 잿골 할머니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자신이 없어 중도에서 토막을 냈다.
“누한테 들었노? 아무도 모를 낀데. 하도 오래전 일이라 상세히 알만한 사람은 세상을 떴거나 이사를 나가 이자 삐고 살 낀데.”
“김 주사라고 저 아랫담이 고향인 사람이 제 밑에 있습니더. 우짜다 큰 집 이야기를 듣게 됐지예. 그때는 그 집과 제가 연관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더.”
나는 짤막하게 김 주사로부터 큰 집 내력에 대해 듣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참말로 희한 하구마. 조상이 불렀던 기라. 그래서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제. 허나 그 소문은 진짜하고 쪼매 다르다. 말 난 김에 다 해삐야 내 속도 좀 풀리고 성자도 그리 하기를 바랬을 끼다. 지난 가실에 자네 옴마를 만냈더이 그러드마. 자네가 언젠가 한분은 내 찾아 올끼라꼬. 세세한 이약 해 주라는 부탁을 진작 받아 놨다. 하도 오래된 이약이라 듬성듬성해도 너무 탓하지 말거라. 내 아들이라 생각해도 될랑가 모르것다.”
“고맙습니더.”
나는 진정 그분이 고마웠다. 처음 만났는데도 처음 만난 것 같지 않은 친근함이 있었다. 내게 어머니는 좋으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엔 망설여지는 분이셨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억세고, 따스한 듯하면서도 차가웠다. 그 벽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잿골 할머니는 간간히 한숨을 섞어가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도시에서 밤새도록 온갖 잡음에 시달려 온 내게는 그 고요함이 오히려 견디기 힘들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합천군 가야면의 산간 오지 마을에 있었다. 해인사에서도 십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벽촌의 여남 가구 중의 한 집이 어머니의 시댁이었다. 다 찌그러진 초가집 문은 허리를 구부려 들고 나야 했고 부엌 살강에는 박 바가지가 가지런히 얹혀 있었다. 두서너 터울의 시누와 시동생이 여섯이나 되었고 막내가 겨우 일곱 살이었다. 중신 어미에게 속은 것을 안 것은 시집온 지 한 달 만이었다.
혼인을 하기 전에 중신 어미는 사돈 맺을 집안이 합천 시내에서 중농이라고 했다. 살림은 먹고 살 정도밖에 안 되고 양반이지만 살림이 기울다 보니 자식 공부를 제대로 못 시킬까 싶어 걱정하는 집안이라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이 씨라면 양반이니 더 물을 것도 없다면서 바깥사돈 될 사람끼리 만나보자 했고 혼인은 어머니의 뜻에 상관없이 정해지고 말았다.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시집 장가를 갔다.
“사람 그만하면 제 식구 밥은 안 굶기고 살겠더라. 머리에 먹물도 들었싱께 공부 마치고 나모 살기가 더 좋아지들 안컷나. 집안도 단출하고 경우 바른 사람이드라.”
외할아버지는 사위 될 사람을 보고 와서 무척 흡족해했다. 혼사 문제는 일사천리로 매듭이 지어졌다. 사성이 오가고 어머니는 사주단자를 받았다. 어머니는 속이 바작바작 탔지만 외할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안 그러면 정신대에 끌려가야 할 형편이었으니 어떤 자리든 혼인을 해야 했다.
순사들은 날마다 처녀들을 잡아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딸 가진 집안은 마땅한 혼처가 아니라도 키를 낮추고 격식도 낮추어서 혼약을 하고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었다.
깊은 밤, 송장산 솔버덩에서 청춘 남녀가 산짐승 무서운 줄도 모르고 뒹굴고 있었다.
“오빠, 우짜모 좋노.”
“작은 아부지가 시키는 대로 해야제 우짜 끼고.”
“거기 말이라꼬 하나. 그라모 말라꼬 내 가슴에 불은 질렀노.”
“성자야 니 없시모 나는 몬산다. 알제?”
총각은 처녀를 끌어안고 가슴에 손을 넣었다. 처녀는 숨을 새근거리며 쫑알댔다.
“우리 도망가 살자.”
“그랬다가는 우리 집안이 우찌 되것노.”
“벼엉신. 그리 집 걱정이 되모 말라꼬 내를 꼬시기는 했노. 아무것도 모리는 가시나를 건디린 오빠가 짐승이다.”
처녀는 가슴 위에 엎드린 총각의 몸뚱이를 야멸치게 밀어내며 상체를 발딱 일으켰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처녀의 풀어헤친 앞가슴은 하늘의 달을 따다가 두 조각으로 나누어 단 것처럼 탐스럽게 출렁거렸다.
“그래 나는 짐승이다. 니 살 냄새만 맡으모 이리 좋은데 우짜 끼고.”
총각이 다시 처녀를 덮치며 씩씩대자 처녀는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애잔한 소리로 물었다.
“남자들은 첫날밤에 처닌지 아닌지를 안담서?”
“몰라. 인자 그런 이약은 고마 하자.”
“아이 간지러. 몰라. 나는 모린다. 오빠가 책임져라.”
“니 시집가서 서방한테는 이라지 마라. 알았제? 잘 살아야 한데이.”
“오빠 보고 싶으모 우짜노?”
“친정에 오모 만낼 수 있다 아이가. 이 자리로 오모 된다.”
처녀는 총각의 가슴팍을 파고들면서 파르르 떨었다.
송장산 아래 펀펀한 언덕에서 밤마다 질펀한 교성이 들렸다. 밤길에 재를 넘던 사람들은 오금이 저려 줄행랑을 놓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시가 운다고 밤마다 문을 닫아걸었다.
그랬다. 성자는 이미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차마 내놓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사촌 오빠였으니 누가 안다면 멍석말이를 당하고 코뚜레를 끼어 동네방네 휘둘리고 다니다 스스로 자결을 해도 집안은 개망신을 당할 판이었으니 혼자 속만 끓일 수밖에 없었다. 큰 집에는 언니 둘에 성자보다 두 살 많은 수백이 오빠가 있었다.
성자는 자라면서 자신의 집보다 모든 것이 풍족한 큰 집 언니들과 어울려 노는 날이 많았고 어려서부터 사촌 오빠를 무척이나 따랐다. 수백이 역시 성자를 친동기간보다 더 애지중지 했다.
“너거 옴마가 그 오빠를 좋아한 기 쬐깬할 때부터라고 말하더라. 올되기도 했제. 그때는 집집마다 자슥들이 줄줄이 있었싱께.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말은 양갓집 여식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기도 했지만 개명한 일본 사람들 물이 들기도 했고 야학이니 학당이니 해서 신식 공부를 갈차 주는 사람들 덕에, 어른들 앞에서야 눈 개리고 아웅 하는 기고 밤마동 동네 머스마 가시나들이 몰려 댕김시로 얄궂은 짓도 많이 했니라. 닭서리 해다 삶아 묵고, 고매나 감자밭에 가 그것들 캐다 삶아 묵었제. 하지 마라 쿠모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맘 아닌가베. 은근히 서로 눈 맞추고 입 맞찼제. 그 시절에는 지지리도 못 묵고 살아서 허덕이면서도 자슥은 우찌 그리 줄줄이 낳는지. 생기는 대로 놓는 수밖에 없었시니 할 말이 없지만서도 요새는 의술이 좋아서 머스마 가스나도 맞차서 놓는다쿠드마. 그때는 묵을 것도 없는데 삼시랑이 아도 잘 맹글었어. 삼시랑이 점지해 준 이상, 아는지 묵을 거는 타고 나는 기라 캤지. 성자는 내한테꺼정 비밀로 한기라. 내야 오빠 동생 사잉께내 저리 잘 지내는 갑다꼬만 생각했제. 나도 은근히 그 수백이 오빠를 좋아하고 있었제. 참 잘 생긴 남자였어. 진주서 핵교 댕길 때 성자하고 그 오빠가 나란히 교복을 입고 마을에 들어 서모 사람들이 다 치다 봤디라. 촌구석에서 보통학교도 못 댕기는 알라들이 수두룩 했싱께 그 교복 입은 모습만 보아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어. 거기다 부잣집 외아들이제. 성자를 만내로 댕긴 것도 수백이 오빠를 보고 잡은 맘이 더 많았던 기라. 인자사 하는 말이지만 성자는 내만 가모 큰 집에 가자했거든 지한테도 내가 가리개였든 기라.”
“내가 누야 좋아한 거는 기억 안 나요?”
외삼촌이 술잔을 비우고 무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지랄한다. 니가 총각 겉이 뷜 때는 나는 간난아 옴마였제. 군에 가더이 전라도 여자 하나를 달고 와 놓고 흰소리는. 참 전주 띠는 우떻노? 행인물이 아니었는데.”
“할매가 무슨 인물이 있을 끼요. 늙으모 다 쪼그랑 바가치제.”
“자네도 바람둥이었거 마. 빨갱이 몰아낼 생각은 안 하고 연애질만 했제? 순사질이나 착실히 하제. 그랬시모 너거 집안도 훤히 피었을 낀데.”
“그랬다가는 뉘한테 맞아 죽었시끼요. 순사라쿠모 울던 아도 뚝 그친다 캤는데. 일본 순사들한테 올매나 호되게 당하고 산 세월인데. 동란 끝나고 집에 온께 아부지가 한사코 못하고로 해서 옷 벗었다 아이요.”
“순사질 할라꼬 뇌물 갖다 바치는 사람도 쌨든 긴데. 자네 아부지도 참 외골수였어.”
“누야, 성자 누야 이약하다 삼천포로 빠지는 법도 있는 가베. 권섭이가 뚱해졌소.�
“내 정신 좀 보소.”
두 사람이 나를 바라봤다. 내 얼굴에 갑자기 술기가 확 도는 것 같았다. 내가 알 수 없는 외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처지가 기막혔다.
“외숙모님을 전주 띠라 합니꺼?”
“하모. 촌에 사는 여자들은 다 택호라는 기 있제. 집안 어른이 붙여주기도 하고 동네 어른이 지어 주기도 하는데 친정 동네 이름을 따서 택호를 많이 지었제.”
“자네 안사람 택호는 머꼬?”
“도시에 산 사람이 택호를 알것나.”
“담에 촌에 오모 지 주이소. 듣기 좋네예.”
“그라제 인자 고향 찾았싱께.”
아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영덕이가 할머니를 찾는 것은 아닐까. 다음에 이곳에 와 살게 되면 아내의 택호는 부산 댁이 되겠지. 나는 부산 양반이라 불릴 테고. 어머니의 택호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어머이 택호는 무엇이었지예?”
“자네 옴마? 택호나 얻었것나. 새내기일 때 친정으로 도로 온 걸.”
“누야가 중신에미한테 속아서 우쨌소? 나도 첨 듣는 이약인데.”
“성자는 부모가 정해 준 혼처 자리로 시집을 갔제. 합천 시내의 반듯한 농가에 신접살림을 채리고 친정에서 갖추갖추 싸 간 물건을 부릴라 항께, 서방이 공부 하로 가모 따라가야 할지도 모린께 짐은 차차로 정리하자고 시에미가 말 하드란다.”
“어머이 남편 되는 사람은 어떤 분이셨습니꺼?”
“장개 왔실 때 담 너머로 귀경을 했는데 사람은 멀쑥하게 생깃더마. 악의는 없어 뵈는 인물이었제. 성자도 울고불고 함서 시집 안 가것다 샀더니 첫날밤 지내고 나서는 그 말이 쏙 들어간 기라. 신랑 좋다고 동네가 후끈했는 데다 그 신랑이 색시한테 쏙 빠져 삔 거라 너거 옴마가 소싯적에는 예뻤니라. 뜯어볼수록 오목조목하니 생깃제. 열일 곱이모 뽕곳이 필라는 꽃 아닌가베.”
“그 자형 이름이 이 진구였제 아매.”
성자는 자신의 팔자려니 체념하면서 혼약하고 이듬해, 열일곱 춘 삼월에 시집을 갔다. 이루어질 수 없는 풋정에 몸 달아 하기엔 그 시절이 너무도 암담했었는지 모른다. 가슴 안에 열정을 품고 살면서도 여자라는 굴레 때문에 안으로 꼭꼭 다지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여자의 미덕이라 했다. 귀밑머리 마주 푼 사람과 백년해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온 탓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순간 여자 팔자는 그 남자의 것이었다. 성자는 신식 공부를 한 여자였고 자유연애를 구사한 여자였지만 어려서부터 몸에 밴 내훈을 벗어 버릴 용기는 없었다. 이미 목숨 같이 간직해야 한다는 정조조차 헌신짝 벗어던지듯 던져버린 여자였지만 괴로웠다. 자살을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큰 딸이라는 책임감도 있었다. 장녀든, 장자든, 아래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배워 왔고, 그만큼 첫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성자는 첫날밤 소박이라도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아내가 마음에 들어 싱글벙글 좋아하는 것 같았다.
첫날밤, 성자는 신랑과 몸을 섞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기가 막혔다. 오빠를 떠나서 정도 없는 남자의 아내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신랑이라는 남자에게 미안했다.
“많이 아팠소? 미안하오.”
신랑은 신부의 귓불에 화끈거리는 숨결을 토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바보 같은 사람. 헛나이만 먹은 사람. 성자는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는 그 사람이 그렇게 바보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사람이 세련미도 없고 여자 다루기도 서툴기만 했다. 다행인 것은 그 남자의 체취가 그다지 싫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성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성자는 어쩐지 그 남자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첫날밤을 하얗게 밝혔다.
성자는 합천 시댁으로 들어갔다. 신식 공부한 며느리에 친정이 부자라는 소문이 난 탓인지 시부모의 환대가 그리 극진할 수가 없었다. 성자는 시집온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합천에서 한 달여를 살았을 때다. 남편은 공부하려 간다며 서울로 간지 이레 만에, 하루는 시어머니가 이사를 가게 생겼다고 하드란다. 집안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집을 팔았다면서. 고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성자는 이삿짐을 꾸렸다. 시댁 고향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친정과 멀어지는 것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는 오빠 생각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었지만 남편도 없이 혼자 있는 밤은 그렇게 오빠의 손길이 그리웠다. 성자는 자신의 몸속에 창녀의 피가 흐르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책하면서 시댁 가풍에 따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삿짐이라야 달구지 하나면 족할 살림살이였다.
달구지에다 살림을 싣고 시부모와 성자는 짐 옆에 올라앉아 타고 가는데 고개를 넘고 산을 넘었다. 산은 겹겹이 깊어만 갔고 나중에는 들도 없고 인가도 없는 산길을 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높디높은 산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월인데도 나무마다 연둣빛 새 잎이 겨우 나풀거렸고 소나무는 푸르다 못해 거무죽죽해 보였다. 골짜기를 타고 층층이 만들어졌던 다랑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산길은 좁아져 달구지가 겨우 다닐 만큼 넓었고 길은 가팔랐다. 비탈을 힘겹게 올라 펀펀한 언덕배기 지점에 오자 시아버지는 달구지 주인에게 다리 쉼을 하고 가자고 했다. 그 등을 넘으면 내리막이라 했다.
성자는 달구지에서 내려 앞이 툭 틔인 언덕배기 위쪽으로 올라가 나무 아래 앉았다. 나무 사이로 멀리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그마한 마을이 그 아래 앉아 있었다. 마을 앞에는 편편한 논이 자리 잡고 있었고 마을 뒤편으로는 밭이 소꿉질 차린 것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저곳이 남편의 고향일까. 성자는 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세상에 이런 오지도 있구나. 신기해했다.
그때였다. 언덕 아래 길에서 어떤 사람 둘이 급하게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성자는 무심히 멀리 들과 마을을 바라보며 친정에서는 자신이 이 먼 곳으로 떠난 것을 알기나 하는지 인편으로라도 소식 한 장이라도 전하고 올 것을 후회스러운데.
“아가! 이리 오너라. 거는 말라꼬 올라가 있노.”
달구지 있는 곳에서 시어머님이 불렀다.
성자가 달구지 있는 곳으로 내려오다 말고 그 자리에 말뚝처럼 우뚝 서 버렸다.
“놀랬소?”
씩 웃으며 성자 앞으로 걸어오는 사람은 뜻밖에도 남편이었다. 서울 공부하러 갔다는 남편이 이 산중에 어찌 있을까 꿈인가 생신가 하는데. 또 한 남자가 남편 뒤에서 쓱 나서며 ‘형수 님 잘 오셨습니더.’ 인사를 했다. 남편을 많이 닮았지만 성자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성자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사하기 전 날 밤에 들은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서둘러 들어갑시다. 세상인심이 확 뒤비질랑가도 모링께.”
“새아한테는 우찌 말하꼬요?”
“첨부터 말라그리 했더노.”
“우리가 섹일라꼬 그랬디요. 그 중신에미가 있는 대로 말했다가는 안된다 쿠는데.”
“인자 알아도 소양 없다. 내 집 식구 된 이상 빼도 박도 못하는 기다. 그 집안도 뼈대 있는 집안이랑께 출가외인인 딸 자석 다시 데리고 가것다 소리는 못하것제.”
“새 애기 친정에 기별하고 가야 안 되것십니꺼?”
“중신에미한테나 말해 놓고 가라모. 갸하고는 이약이 다 된 기가?”
“사내 자석이 누를 닮아서 그 모냥인지 원, 더 있다가는 병 나것디요. 상사병 들어 앓을 때는 우떻케든지 장개나 들이고 보자 싶더마. 막상 원대로 되고난께 새 애기 치다 볼 염치가 없소.”
이삿짐을 싸기 전 날 밤에 두 어른이 나누는 이야기를 문 밖에서 들었었다. 뒷간에 다녀오다가 사랑방에서 도란거리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 가 듣게 되었지만 성자는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중매쟁이는 두 사람이었다. 남자 쪽과 여자 쪽 중매쟁이가 있어서 서로 처녀 총각 신상파악을 해 놓고 비슷한 집안끼리 연분을 맞추어 주고 중신 채를 받았다. 한 고장에서야 중매쟁이 한 사람이 오가며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먼 지방 사람이거나 서로 모르는 집안끼리는 양가에 다리 역할을 두 중매쟁이가 했다. 그러다 보니 중매쟁이 수완 것 살림이라든가, 집안 내력, 학력, 나이나 생김새까지 부풀리기도 하고, 없는 이야기도 지어내서 펑 튀기도 했다. 일단 혼인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다 제복이라 했고 한번 맺은 부부 연을 끊는다는 것은 죄악시했기 때문에 좋으나 싫으나 평생 해로를 해야 했다. 개화 바람이 불고 신식 공부 덕에 머리가 굵어진 자식들이 부모 말을 거역하고 자신의 배필은 자신이 찾겠다고 하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식들은 부모가 정해준 혼처 자리에 만족했다. 만약 거짓말이 들통 나도 중매쟁이는 할 말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거짓말을 해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니면 동티가 나서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부 연은 하늘이 정해 주는 것이라 했고 중매쟁이는 다리만 놓아줄 뿐이라는 것이다. 부부 연을 맺게 되는 것도 여러 억겁 동안 공을 들여야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니 우연 아니라 필연인 셈이었다.
성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게 서 있자 시어머님이
“자가 니 시동상이다. 마중 나왔니라. 집은 인자 올매 안 남았다. 이약은 차차로 집에 가서 하자.”
성자는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성자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배지를 단 감색 학생복은 어디로 가고 무르팍이 툭 불거진 무명 바지에 풀물이 들어 얼룩덜룩한 무명 저고리 차림인 그는 전혀 딴 사람 같았다. 그 등에 지게를 걸치면 영락없는 농사꾼이었다. 우직해서 바보라고 놀리던 큰 집 머슴 복동이 같았다.
“가자. 해 떨어지것다. 얼라들이 기다리것다. 진구야 니는 새아기 데리고 천천히 오니라.”
시아버님이 달구지 주인을 재촉하자.
“형님은 형수님 모시고 천천히 옴서 그동안 못 본 회포나 푸시고 오이소.”
시동생이 훌쩍 뛰어 달구지에 올라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시부모님도 시동생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남편도 성자를 쳐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성자도 웃었다. 하도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나온다고나 할까. 자신의 신세가 하도 처량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냥 웃었다. 웃으면서 달구지를 따라잡으려고 하자 남편이 다가와 와락 팔을 잡았다.
“보고 싶었소.”
남편의 손은 뜨거웠다. 씩씩거리는 숨결을 들으니 성자의 가슴도 두 근 반, 세근 반하면서 가슴이 떨렸다. 성자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잔데도 손을 잡히자 가슴까지 마구 달구어지는 것이 이상했다. 겨우 한 달을 산 부부였다. 그 한 달 동안 밤마다 몇 번씩이나 그 일을 겪었다. 처음엔 오빠 생각에 피곤하고 귀찮고 싫었지만 남편이 없던 이레 동안 밤이면 허전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남편은 밤새도록 팔베개를 풀지 않으며 아내를 안고 잤고 자다가 뒷간이라도 갈려고 일어나면 따라 나와 멀찍이 마당에 서 있곤 했다.
일행이 언덕 아래로 내려서 보이지 않자 남편은 성자의 손을 끌고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그새 야윈 것 같았다. 허겁지겁 성자의 젖가슴을 훔치고 치마를 들치더니 서슴없이 고쟁이 속으로 손이 들어왔다. 성자는 정신이 아득아득 해 지는 것을 느끼며 다급하게 외쳤다.
“누가 오모 우짤라꼬 이랍니꺼. 집에 가입시더. 아 아 흐.......”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았데이. 아아고우.”
남편의 허리가 진퇴를 거듭할수록 성자의 입에선 신음 소리가 거세어졌다. 성자는 지금까지 와는 전혀 새로운 느낌을 받으며 입술을 깨물고 남편의 등을 꽉 잡았다. 저녁 하늘이 오색 무지개를 피워내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