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 13

by 박래여

13. 시집살이


시댁 마을에 닿았다. 동네에 들어와 보니 멀리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제법 아담했다. 논농사보다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 밭작물과 약초를 재배하기도 하고 산에 다니며 약초도 캐고 짐승을 잡아서 팔아먹고 사는 화전민의 마을 같았다. 사람보다 짐승이 살기에 족한 마을이었다. 시동생 말에 의하면 밤이면 호랑이가 마을까지 내려와 개를 물고 간다고도 했고 소도 물어 죽인다고도 했다. 산마루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집마다 방문을 걸어 잠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댁은 그 마을 길 옆에 있는 오두막집이었다. 싸리나무 울타리에 산죽 나무로 만든 사립 앞에는 고욤나무 한 그루가 연두 빛 잎사귀를 나풀거리며 반겼다.

“다 왔니라. 정자야!”

시어머니가 사립짝 앞에서 이름을 부르자 지게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구구구 하고 부르면 닭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처럼 여자 아이 셋에 남자아이 한 명이서 마당에 나서는데 성자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옴마. 와 인자 옵니꺼.”

“오빠 색시가 저 엉가가?”

“눈깔사탕 사 왔어?”

“오냐. 오냐. 내 새끼들 에미 없는 여게 별일 없었제?”

일곱 살짜리 시동생이 코를 훌쩍거리며 시어머니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날 밤 성자는 관솔 불 밑에서 시어머니의 훈시를 들었다.

“놀랬시끼다. 이것도 다 니 복이라 생각하고 너무 서럽다 생각 마라.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꼬 너거 친정이 부자라꼬 니까지 부자는 아니다. 인자 내 집 식구 됐싱께 우리 집 가풍에 따르는 기 도리다. 예부터 전주 이 씨는 양반이었다. 시절을 잘 못 만내서 이 벽촌에 들어와 숨어 살지만 행세깨나 했던 집이었다. 조부님께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하고 너거 시아배가 더런 세상 보기 싫담서 화전이나 일굼서 살란다꼬 숨어들어온 자리가 여게다. 옛날 겉으모 중인인 데다 친일 하는 너거 큰 집을 생각 하모 우리 집하고는 지체가 달라서 혼인은 꿈도 못 꿀 처지다. 세상이 지랄 겉이 변해서 반상 차별이 없어졌다 하나 엄연히 지켜지는 것이 세상 이치다. 대충 짐작은 했시 끼다. 속았다 생각 말고 니 팔자려니 생각하고 이 씨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몸가짐을 각별히 하도록 하거라.”

성자의 시집살이는 그 이튼 날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야야 일어나거라.’ 소리에 소스라쳐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희뿌연 한 샛별이 하늘에 총총했다. 그 별빛에 의지해 시어머니가 떠 주는 쌀 한 줌을 푹 고아 퍼 논 보리쌀에 얹어 밥을 지었다.

“니가 시집 온 첫날인께 쌀 한 줌을 밥에 얹었다. 낼 아침부터는 보리쌀만으로 밥을 해라. 저녁은 풀데 죽을 쑤든지 나물죽을 끓이든지 해서 양식을 비축해야 하니라. 장골들이 죽 묵고는 힘을 몬 쓴께 아침밥은 잡곡을 섞어서라도 밥을 디리야 한다. 그라고 오늘 낮에 동네 사람들을 청해 막걸리 한잔은 돌려야 항께 부침개도 좀 부치고 음석을 준비해라. 장거리는 어제 큰 아가 대충 봐 놨실 끼다. 모르는 거는 정자한테 물어서 하거라.”

열네 살짜리 시누이는 못 얻어먹은 탓인지 제 나이 또래보다 몸집이 작아 여남 살짜리로 보였지만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이 있었다.

“새 엉가는 신식 공부를 해서 좋것다.”

“애기 씨도 학교 가고 싶습니꺼?”

“사십 리 길인 걸예. 큰 오빠는 기를 쓰고 공부를 할라 캤어예. 아부지한테 한문을 어려서부터 배워서 아는 기 많은 오빠라 예. 보통학교만 나오고 말았지만 오빠 꿈은 고등 보통학교에 가는기라예. 학교 선생님이 되고 잡다 쿠는데 아부지가 허락을 안 해예. 세상이 조석지변이라꼬 바깥세상 싹 이자 뿔고 무지랭이로 사는 기 낫다캐예. 글은 읽고 쓸 정도만 되모 된다쿰서. 작은 오빠는 지가 공부하는 기 싫다 캐서 보통학교 쪼맨 댕기다 말았지 예.”

“지는 애기 씨 오빠가 서울 보성 고보에 댕기는 줄 알았던 기라예.”

“팍삭 속았지예? 엉가한테는 미안시럽지만 오빠는 그 중매쟁이를 은인이라 생각하낍니더. 엉가는 모르것지만 오빠가 엉가 땜세 상사병을 앓아 다 죽게 생겼던 기라예.”

“지 때문에 예?”

“오빠한테는 비밀입니더. 내가 이약 했다는 말은 하지 마이소.”

“알았어예. 말해 보이소.”

“오빠가 엉가를 본 거는 장함산에 약초 캐로 갔다가 먼발치에서 봤다쿠데예. 그 산에 귀한 약초가 그리 많다꼬 소문이 났다데 예. 오빠가 그쪽 산에 들어갔는데 산을 헤매다 길을 잘못 들어 그 골짝으로 내려가게 됐다데 예. 엉가가 어떤 친구 캉 논두렁에 앉아 쑥을 캤다니까 아마 이맘때쯤은 될끼 거마. 첫눈에 뽕 가삔기라예. 오래비는 열불 나게 장함 산에 댕기서예. 우리는 그것도 모리고 만다꼬 가차운 산 나 두고 그 먼 산에 가느냐고 나무래기도 했지예. 알고봉께 엉가한테 흑심이 있어선 줄 모리고.”

이 진구는 마을에 가서 뉘 집 딸인지를 수소문했고 그 처녀가 그 동네 부잣집 조카딸인 데다 신식 공부까지 한 처녀라는 것을 알았다. 진주 여자 고보를 다니다가 처녀의 아버지에게 억지로 끌려 와 혼처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고, 조만간에 혼처가 정해질지 모른다고도 했고, 중매쟁이가 줄을 잇는다고도 했고, 눈독 들이는 총각들도 여럿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진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에게 장가 들 형편이 아니었다. 재산도 없었고, 학벌도 떨어진 데다 비록 약초를 캐며 살지만 양반의 체통을 중시하는 자기 부모님을 설득시킬 자신도 없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머리를 싸매고 자리보전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피골이 상접하게 된 자식의 속내를 부모는 어린 딸 정자를 시켜 알아본 결과 부부는 중매쟁이를 불러 그 집과의 혼사를 부탁했고 중매쟁이는 수완을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합천에 사는 친척 집을 빌려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진구는 서울 보성 고보에 다니는 학생으로 둔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자는 손톱 밑에 흙 하나 안 묻히고 살다가 시집을 와서 고생이 어떤 것인가를 알았다. 몸 고생이야 참아낸다지만 마음고생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밥을 짓고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나면 시어머니랑 같이 온종일 산기슭 밭에서 호미질을 했지만 마음은 끝없이 친정 동네로 달려갔다. 남편의 얼굴 위에 겹치는 것은 수백이 오빠였다. 비록 남편의 사랑이 극진했지만 자신과 자기 부모를 속인 것이 용서되지 않아 더 힘들게 했다. 성자는 자꾸만 시집살이가 힘들다 느끼게 되었고 마음이 지쳐갔다. 죽도 배부르게 못 먹는 보릿고개에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나를 데려 왔는가. 남편이 미워 죽겠다가도 약초를 팔려 읍내에 나갔다 오면서 떡이나 풀빵을 사 와 숨겨 두었다가 잠자리에서 슬그머니 내밀 때, 차마 속에 든 원망을 할 수 없었다.

성자는 날마다 감자와 고구마에 꽁보리밥에 쌀 한 줌으로 밥을 지었고, 시래기나 쑥, 나물죽을 쑤었다. 그렇게 해도 여덟 식구의 배를 채우기엔 턱 없이 모자라는 양식이었다. 산골에 들어온지 얼마간은 꽁보리밥일망정 아침밥은 먹을 수 있었지만 비축했던 양식이 동나자 죽조차 배부르게 먹을 수가 없었다.

성자는 배가 고팠다. 친정에서는 배 곪은 적은 없었다. 하얀 쌀밥은 아닐지라도 쌀이 반은 섞인 밥을 삼시 세끼 먹을 수 있어서 배고픈 설움은 모르고 살았다. 시아버지와 남편, 시동생은 날만 새면 산을 헤맸다. 약초를 뜯어다 합천 한약방에 대 주고 그 돈으로 보리쌀 한 됫박을 구해 왔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 오곤 했다. 성자는 시집올 때 어머니가 해 준 혼수품을 하나 둘 남편 편으로 내다 팔기 시작했다. 금가락지는 일 년 양식이 되기도 했다.

성자가 시집온 지 반년 만에 해방이 되었다. 방물장수나 봇짐장수들이 가끔 다녀가면 세상 소식을 들려주곤 했다. 성자는 그 사람들 편으로 친정 소식을 알고 싶었지만 차마 자신의 처지를 알릴 수는 없었다. 여자는 출가외인이지 않는가.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친정어머니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 염려되어 속앓이만 했다. 더 알고 싶은 것은 수백이 오빠 소식이었다. 오빠는 어찌 지낼까. 내 생각이나 할까.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생각은 자꾸만 친정으로 줄달음 쳤다.

성자는 친정에 가고 싶었다. 남편에게 친정 소식을 물으면 잘 산다는 말만 했다. 시어머니는 아예 친정 나들이는 꿈도 못 꾸게 했다. 여자에게 친정은 멀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성자는 시집와 얼마 안 돼 또 한 가지를 알았다. 자신에게 장가들기 위해서 한약방 주인에게 장리 빚을 얻은 사실이었다. 중농이라 했으니 입성도 다듬어야 하고 처가 쪽에 걸맞지는 못할망정 예물도 준비해야 했던 것이 전부다 빚이었다. 그 빚은 시댁 식구들이 안 입고, 안 먹고 모아도 삼사 년은 모아야 할 거금이었다.

그러나 여덟 식구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판에 빚 갚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니 시어머니의 눈이 고울 수 없었다. 거기다 큰 아들에 대한 시어머니의 사랑은 심하다 싶을 만큼 진했다. 그 아들을 빼앗아간 며느리가 눈에 찰리도 없었고 거기다 빚까지 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며느리가 밉겠는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성자는 죄인이었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로 살면서 이미 반상의 벽은 무너졌다 하나 그건 소수에 불과했고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반상이 있었다. 벽촌에서 촌부로 살아가는 시어머니였지만 태생은 어쩔 수 없는지 사사건건 격식 따지기 좋아하고 예의범절을 따졌다.

“신식 공부 한 년은 시에미 우습게 알아도 된다더나? 막둥이가 니 눈에는 아로 뵐란지 모르지만 엄연히 시동생이다. 시동생을 때리는 법이 조선 천지에는 없다. 너거 집에서 그리 갈차더냐?”

막내 시동생을 혼내 준 날 시어머니는 파랗게 질려 마룻바닥을 치며 삿대질을 해댔다. 아마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이년 저년 소리를 하게 된 것이 그즈음이 아니었나 싶었다. 시집살이를 한 일 년쯤 되었을 것이다.

막내 시동생은 장난이 심했다. 샘터에서 항아리에다 물을 담아 이고 오면 뒤에서 돌멩이를 주워 던져 항아리 깨트리기 일쑤고, 배고파 죽겠는데 밥 빨리 안 준다고 밥솥에 흙 한 줌 던지기는 예사였다. 긴 간짓대로 치마 들치기, 화롯불 쑤셔 끄기 등, 그럴 때마다 성자는 칠칠찮다고 시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바가지로 들어야 했다. 그날도 사구 하나를 박살내고 속에 열불이 나서 시동생을 잡아 궁둥이를 두어 대 때렸던 것이다.

시동생은 엉엉 울면서 시어머니에게 일렀다.

“어머이 거기 아니고예. 되련님이 또 아까운 사구 깼어예.”

“시에미한테 말대꾸하는 거 보소. 본데없이 자란 년은 포가 나는 기다. 니가 그리 잘났시모 말라꼬 우리 집에 사노. 당장 보따리 싸서 너거 친정으로 가제. 니가 제대로 하는 기 머꼬?”

한두 번 들은 소리가 아니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없으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시어머니에게 넌덜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더구나 시집온 지 일 년이 넘어도 태기가 없자 시어머니는 몸에 병이 있느냐고도 묻고, 몸이 너무 약해 빠져서 애가 안 들어서는 것 아니냐고도 했고 이태가 지나자 도화 살이 끼여서 애가 생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여자가 색을 너무 밝혀도 애가 안 들어선다더라.’ 하며 아들과의 동침을 은근히 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집안에 대를 끊을 년.”

성자는 그 소리만은 진짜 듣기 싫었다. 자식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식이라도 생기면 자식에게 정 붙이고 살만도 한데 어쩐 일인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 금실이 너무 좋아도 자식이 귀하다는 말을 쑥덕거릴 정도였다.

성자는 친정에 가고 싶어도 길을 몰랐다. 그 산속에 들어가고는 해가 바뀌어도 그 아랫마을까지도 나와 본 적이 없었다. 수중에 돈이 있을 리 없었다. 혼수품도 다 물물교환을 해서 살림에 보탰고 이젠 더 이상 내놓을 물건도 없었다. 친정어머니가 친정아버지 몰래 만들어 준 돈도 우리 구멍에 논바닥 마르듯 다 말라버리고 없었다. 수중에 돈이 빈 줄을 알자 맨몸으로 뛰어봤자 독 안에 든 쥐라는 심산 지 시어머니의 학대는 더 모질어졌다. 차라리 무식한 팔순 노인이라면 이해라도 하련만 겨우 사십을 넘긴 시어머니였다.

성자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여자가 성질이 강하면 팔자가 세다고 그 성질 죽이고 살아야 한다고 친정어머니는 귀에 못 따가리 앉도록 이르곤 했었다. 성자는 그 성질을 죽이며 살려고 했다. 자기 때문에 상사병까지 들었을 정도로 극진한 남편의 사랑을 믿었고, 그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사랑을 태워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람의 한평생에 그때처럼 절망한 적도 없었다.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 산골에 찾아든 손님이 한 사람 있었다. 남편과 같이 산에서 만났다지만 아무리 보아도 약초 캐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사람을 마을 사람들은 서울 손님이라 불렀다. 그 사람은 저녁마다 동네 사랑방에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도 가르치고 글도 가르쳤다.

“동무들, 우리는 독립을 했소. 이젠 우리 농민이 이 땅의 주인이오.”

남편은 서울 사람과 무척 친하게 지냈다. 만인 평등사상을 가르치던 그 사람은 달포를 머물다 서울로 간다며 떠났다. 성자는 남편에게 어떤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별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과묵한 사람이긴 했지만 남편은 말수가 더 없어졌다.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일이 많아졌고, 말없이 집을 비우는 일도 잦아졌다. 지리산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삼일은 머물다 와야 한다고도 했고 주왕산이나 내장산 등 멀리까지 가기 때문에 부득이 한동안은 집에 돌아올 수 없는 형편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떠났다 집에 온 남편은 시부모가 있거나 말거나 온종일 성자를 옆에 누이고 꼼짝도 못 하게 했다. 그렇게 있다가 남편이 떠나고 나면 시어머니 시집살이는 더 혹독 해지는 것도 모르고.

그 이듬해 봄이었다.

온 산이 싱그러운 푸른색으로 나풀거리면서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을 때였다. 그때쯤 되면 산간 지방에도 밭마다 산두라는 밭 나락을 심고, 호박이며 박 등 씨앗을 심고 감자를 캐내고 고구마를 심었다.

“순사가 온다. 순사가......”

비 온 뒷날 아침 녘이었다. 성자와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고구마 모종을 밭두둑에 심고 있는데 마을의 조무래기 아이들이 골목으로 달아나면서 외치는 소리가 마을 뒤편의 언덕배기 밭에까지 들렸다.

“이기 무신 소린고?”

“순사가 우짠일이까예?”

“설마 일본 순사 맹키로 집뒤짐 하로 오는 거는 아니것제.”

일본 순사들은 가끔가다 마을에 나타나 집 안팎을 뒤졌다. 특히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더 심했다. 숨겨 둔 나락을 찾아내려 혈안이 되었었다. 밭 나락도 공출을 받았다. 산두라 해서 물이 없어도 잘 자라는 나락 품종을 개량하여 산간벽지에다 강제로 경작케 했었다.

“보소? 순사들이 우리 집에 들어갔소. 얼렁 가 보소.”

시어머니가 채근을 하자 시아버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을로 내려갔다. 시어머니와 성자는 일손을 놓고 마을을 바라보고 섰으려니 시간이 꽤 흘렀는가 싶은데 시아버지를 앞세워 경찰 셋이 삽짝을 빠져나왔다. 시어머니와 성자는 부리나케 언덕을 달려 내려왔다.

“무슨 일이요?”

“읍내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야 한단다. 진구가 무슨 잘 못을 저질렀는 갑다.”

시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빨갱이 짓을 하는 놈인 줄 식구들이 몰랐다는 거는 말이 안 돼요. 자슥 놈이 빨갱이 물이 들어서 연락책을 하고 댕기는 줄 몰랐소?”

“무슨 씨도 안 멕이는 소리요? 우리 아는 약초 캐로 댕기는 거밖에 모리는 아이요.”

시어머니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약초 좋아하네. 방안에 떠억하니 사상 교육 책이 있는데 그래도 발뺌을 할라꼬. 여러 말 하모 잔소리요. 우리도 다 정보를 입수하고 왔소. 가 보모 알까 아이요. 갑시다.”

“작은 아들은 오데 숨었소?”

“너머 집에 함부로 들어가 집뒤짐을 해도 된다꼬 누가 그랬소? 우리 작은 아는 말라꼬 찾소? 그 아는 안직 알라요. 법 없이도 사는 앤 깨 건디리지 마소.”

둘째 시동생은 다행히 집을 떠나 있었다.

성자는 언젠가 남편이 그 책을 다락에 넣으며 이런 책은 남의 눈에 띄면 안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 책은 성자가 가지고 온 고리끼의 <어머니>였다. 수백이 오빠가 빌려 주었던 책을 돌려주지 않고 가지고 왔는데 남편이 그 책을 읽었는지 모르지만 그 책이 금서라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시아버지는 포승줄에 두 손이 묶인 채 마을을 떠났다. 시어머니는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넋 나간 사람처럼 있다가 삽짝 옆에 멍청히 서 있는 성자를 표독스럽게 쳐다보더니

“니년이 들어오고 우리 집안이 되는 기 없다. 일본 놈들 설칠 적에도 우리 집은 편안했다. 큰 아가 일 저질렀다모 니가 바램을 너실끼다. 신식 공부했다고 올매나 내 자석을 하술리 봤시모 나라에서 금하는 빨갱이 짓을 하고 댕기것노. 집안이 잘 될라쿠모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 딱 맞는 기라. 이 일을 우짜모 좋노.”

성자는 시어머니가 자기를 또 물고 늘어지자 속에서 천불이 났다.

“와 거기 지 잘못입니꺼? 지가 좋다 캐서 시집왔십니꺼? 와 거짓말까정 함서 내를 데꼬 와서 이리 구박입니꺼? 내가 뭘 그리 잘못해서예. 어머님은 아직도 들님이가 며누리 됐시모 좋것제예? 아부님 돌아오시모 우리 집에 가낑께 걱정 마이소.”

성자는 시어머니의 가슴에 못 하나를 박았다.

시집오고 보니 이웃집에 열일곱 살짜리 처녀가 있었다. 인물은 볼품이 없었지만 지게를 지고 다닐 정도로 억척스러운 농사꾼 처녀였다. 그 처녀는 은근히 남편을 좋아하는 눈치였고 시어머니는 진작 며느리 삼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들님이도 성자가 들어온지 얼마 안 돼 시집을 갔다. 아랫마을에 사는 사십 넘은 홀아비에게 세 번째 후처로 시집을 갔는데 사흘이 멀다 하고 친정에 와 살았다. 본처 자식들이 줄줄이 있으니 어린 어머니를 탐탁잖게 여기는 눈 친데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이 핑계 저 핑계로 친정살이를 하다시피 하는 것 같았다. 들님이는 이웃 간에 살면서도 한 번도 성자에게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시어머니에겐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성자가 없는 여가엔 깔축없이 시어머니와 죽이 맞아 노닥거리곤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년 말하는 것 좀 보소. 시애비 잽히 가는 거 봄서로 말대꾸하는 거 보소.”

성자는 더 말했다가는 시어머니 성깔에 뒤로 발딱 넘어져 악을 써 댈 것 같아서 돌아섰다. 밭에 올라가 고구마 모종을 하면서 이를 앙다물었다. 남편 정 하나 믿고 사는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한심했다. 만약 남편까지 시어머니 역성을 들어 자신을 구박했으면 진작 야반도주를 했을 것이다.

사흘 뒤 시아버지는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문중 어른들이 말을 잘해서 풀려났지만 아들의 앞날이 걱정이라 했다. 알고 보니 아들은 사회주의 물이 들어서 산사람 따라다닌다고 했다. 전에 왔던 서울 손님이 거물이라 했다. 그때도 서울 손님은 검거를 피해 산간벽지에 피신 와 있다가 그 낌새를 눈치챈 아들이 서둘러 피신을 시켰다고 했다. 경찰은 아들의 거처를 알거나 연락이 오면 자수를 시키라 했다. 자수하면 감옥살이는 면한다지만 거짓말이 분명하다며 시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순사 놈들은 다 친일파 아닌가베. 1919년 3.1 만세 사건에도 무고한 농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가 온갖 악독한 짓은 다했슴시로. 사람 목심을 포리 목심보다 더 하찮게 생각하는 것이 그들이제. 해방이 됐다고는 하나 순사 끄나풀들은 그 자리에 앉아 희희낙락하고 있으니 세상이 말세제. 배짱 있는 젊은것은 배 창시가 안 꼬이고 살것나.”

시아버지에겐 강직한 선비 기질이 남아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싫다고 벽촌에 들어와 책과는 담을 쌓고 한갓 무지렁이로 살고자 했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았고, 커가는 자식들의 생각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들 입조심해라.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말까 할 때 일개 소대는 됨직한 경찰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이 진구는 마을에 돌아와 있었다. 이삼일 전에 서울 손님과 같이 왔다가 서울 손님이 떠나고 나서 고구마 밭에 거름을 내던 중이었다. 똥장군을 지고 가 너풀거리는 고구마 두둑에다 똥오줌을 한 바가지씩 포기마다 붓고 있다가 경찰이 마을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산으로 내 뺐다. 경찰은 이 진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가야산이며 황매산을 뒤졌다. 총소리가 연일 났다.

성자는 그 총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편이 피를 흘리며 퍽퍽 쓰러지는 환영에 시달렸다. 남편의 소식은 두절되었다. 지리산 깊숙이 들어갔다고도 하고 총에 맞아 어느 산골짝에서 죽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시아버지와 동네 청년들이 무더기로 다시 잡혀 들어갔다가 일주 일만에 풀려났다.

잿골 할머니는 밖에 나가더니 잘 익은 홍시 몇 개를 꼬소쿠리(대로 만든 작은 바구니)에 담아 왔다.

“묵을 끼 변변찮애서 우짜노? 막걸리도 떨어졌고 점방도 문을 닫았시끼고.”

“이약하다 말고 또 멀 가지고 온다고. 그 뒷 이약은 우찌 됐소?”

외삼촌이 재촉을 했다.

“성자 시아부지는 무슨 고문을 당했는지 그 질로 집에 와 앓다가 죽었다드마.”

“어머니는 그 길로 시댁을 나온 겁니꺼?”

“시아배 초상치고난께 살기가 싫더란다. 서방은 연락도 없제. 시에미가 잡아 묵을라 캐서 한 날 새복에 도망을 했단다. 무작정 집을 나섰삔기제. 인자는 더 몬살것다 생각항께 용기가 나더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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