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 14

by 박래여

14. 떠나가는 정


성자는 옷가지 몇 개를 쌌다. 물어서, 물어서라도 친정 동네로 갈 작정을 하고 집을 나섰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방도가 있다던데 싶은 마음도 있었고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오기가 되어 마을을 빠져나왔다.

마을 입구에서 돌아다보니 가야산의 작은 봉우리들이 둥그스름하게 둘러쳐진 신록이 푸른 마을은 조롱박 같이 생겼다. 그 안에 올망졸망한 초가가 누르스름한 지붕을 이고 안개에 반쯤 가려 졸고 있고 새벽밥을 짓는 연기가 새어 나오는 집도 있었다. 성자는 코끝이 찡해와 무명치마를 뒤집어 코를 풀었다. ‘나도 참 같잖은 여편네다. 머가 그리 정들었다고.’ 하면서 돌아섰지만 뭔가 뒤 꼭지의 쪽진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성자는 남편을 생각했다.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말이 없는 대신 행동으로 성자를 사랑해 주었다. 성자도 남편의 품이 좋아서 살았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마음은 수백이 오빠를 생각하면서도 육체는 남편의 손만 오면 뜨거워졌다. 수백이 오빠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육정이었다. 남편은 약초를 캐지 않는 날은 나무를 하려 다녔다. 성자를 앞세우고 산에 가면 갈비 단을 먼저 만들어 놓고 쉬라 일렀고, 나물을 뜯으려 가면 길목에서 지키고 섰다가 지게에 받아지고 갔다. 시어머니랑 밤늦도록 길쌈을 하고 있으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안방에서 나오게 했다. 아들이 그럴수록 시어머니 심사가 꼬여 성자를 힘들게 했지만 성자는 또 그 사랑으로 살았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캐온 약초를 종류별로 가려서 삶을 것은 삶고, 칼로 썰어서 말릴 것은 도마나 작은 작두로 썰어서 몇 날 며칠을 멍석에서 빛깔 좋게 말렸다가 타래를 역기도 하고 가마니에 담아 놓기도 했다. 만약 빛깔이 좋지 않거나 비가 와서 곰팡이가 피거나 하면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시애비랑 지 서방이 올매나 고생 고생하면서 캐고 뜯어온 것들인데 딴 데 정신을 팔고 사니 이 꼴로 맹글었제. 니가 정신이 있는 아가? 없는 아가?”

하면서 닦달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남편에겐 딱 한 가지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있었다. 무슨 일이건 수월하게 넘어가고 이해해주는 편이었지만 친정에 보내달라는 말은 허락을 하지 않았다. 신혼 초, 성자가 밤마다 찔찔 짜면서 보채도 그것만은 죽어도 안 된다고 했다. 성자는 그런 남편이 야속하고 미워서 몸 섞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고, 말도 안 하고 아프다는 핑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도 보고, 악다구니를 하면서 달려들어도 보고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서 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에게 붙들려 돌아오곤 했다. 성자가 남편에게 손목을 잡혀 삽짝을 들어서면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아가 우짜것노. 이것도 다 연분인데 고상시럽드라도 쬐깸만 참거라. 어서 떡뚜꺼비 겉은 머스마만 쑥 낳아 보거라. 그라모 친정에 보란 듯이 보내 줄 끼다. 저 아가 니가 가모 안 올끼라꼬 지레 겁을 묵고 그라는 거 같으이 쪼깬만 참거라. 니는 인자 우리 집 사람잉기라.’ 하더니 성자가 제 남편에게 정이 드는 눈치에다 시집올 때 해온 혼수를 팔아 살림에 보태고, 아이가 생기지 않자 조금씩 까탈이 늘고 험담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간사한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넘새스러버서 몬 살것다.”

시어머니는 눈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가며 한마디 툭 던지고는 곱지 않은 눈으로 성자의 모색을 쫙 흩어보고는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가곤 했다.

성자는 그렇게 산골 살림에 익숙해져 갔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요상시럽기도 해서 남편과 살을 섞고 살다 보니 그토록 못 견디게 보고 싶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도 무디어지고 체념도 되었다. 어차피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 할 사람은 남편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서어서 아이가 생겨서 튼튼한 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한데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성자는 달거리를 할 적마다 남편에게 죄인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아직 나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고.”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성자보다 더 아이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자는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죄스러웠다. 여자가 남의 집에 들어가 대를 이을 아이를 못 낳아 주는 것은 칠거지악에 속한다고 배워왔다. 그것을 빌미로 친정으로 쫓아 보내도 할 말이 없었고, 씨앗을 보든지, 바람을 피워도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들님이한테 장개 들었시모 됐을 낀데. 어머이가 며누리 삼을라꼬 그리 애썼다면서 예?”

“씨잘데기 없는 소리 마라.”

남편에게 투정도 부려 보았다.

시집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성자는 꿈을 꾸었다. 꿈에 수백이 오빠를 만났는데 오빠가 아무 말도 없이 멀어져 갔다. 성자는 안타까워서 목이 터지게 오빠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오빠의 모습은 자꾸만 멀어져 갔다. 오라바이. 오라바이 하면서 부르다가 누군가가 흔들어 깨어보니 남편이 잠자리 옷으로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길래 그리 우노?”

“지가 울었어예? 아무것도 아입니더.”

“니가 힘든 갑다. 잠꼬대도 다 하고. 니한테도 오라비가 있었나?”

성자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잠꼬대를 심하게 하면서 오빠를 불렀던 모양이었다. 성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남편은 ‘니가 많이 피곤했는 갑다.’ 하면서 다시 잠자리에 누워 성자를 끌어당겨 안았다. 성자는 죄의식을 느꼈다. 평생을 같이 살 남자를 위해 정조를 하늘 같이 지켜야 한다고 배워온 여자로서 남편에게 그 순결을 주지 못한 여자가 지녀야 하는 아픔을 당사자 외에 누가 알까. 남편이 사랑해 주는 여자일수록 그 고통은 두께를 더하면서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성자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왜 친정어머니가 시집가기 전의 처녀 몸가짐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썼는지, 같은 여자이기 이전에 그것은 남편에게 아내로서 떳떳한 명분이란 것을 알았다. 여자 팔자는 남편 잘 만나기 나름이라 하지 않든가.

또한 성자는 산골 살림에 서툴렀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도 농촌이지만 약초를 캐다가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고 나락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풀잎이나 풀뿌리, 나무껍질이 약초가 된다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성자의 눈에도 약이 되는 식물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근 일 년을 약초와 씨름을 하고 나서였다. 지우초, 왕벌, 더덕, 세심, 상출, 백출, 봉령, 시호, 느릅나무, 엄나무, 옻나무, 작약, 오미자, 오가피. 오베자, 하고초, 등 이름에 조금 익숙해지려는데 이별이구나 싶어 가슴이 아렸다.

성자는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저런 색시가 이 산간벽지에서 얼매나 버틸랑고.”

“친정이 부자람서 그대로 속은 걸 알고 가마이 있것나. 누가 와서 데려가지.”

“진주 고보에꺼정 댕깃담서?”

“합천댁이 며누리한테 꽉 잽히 살것구마.”

“저리 인물이 좋은께 인물값 하것구마.”

마을 사람들의 숙덕공론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바람을 타고 다니다 성자의 귀에 와 앉곤 했다. 사람이 마지막이다 싶으면 자잘한 것에도 정이 생기는지 산과 마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자꾸만 뒤가 돌아 보였다.

“이년아 인자 누 잡아 묵을래? 백 여시가 둔갑해서 들어온 기 틀림없는 기라. 꼴도 뵈기 싫다. 영감, 우리는 우찌 살라꼬 그리 수월케 혼자 갔소.”

성자는 날이면 날마다 들어야 하는 시어머니의 사설 섞인 악담에 넌더리를 냈었다. 그 원망은 지치지도 않는지, 오살할 년 , 더런 년, 똥통에 빠져 뒈질 년. 욕도, 욕도 그런 욕이 없었다. 성자가 가장 못 견뎌한 것은 자식도 못 낳는 년이란 말이었다. 시어머니는 친정댁이 합천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의 셋째 딸이라고 했지만 몰상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갓 시집와서는 양반 가문이라며 체면 차리고, 예의범절 운운하더니 말짱 도루묵이었다. 며느리가 미워질수록 입은 더 거칠어지고 행동은 사나워졌다. 그러면서도 남편과 자식들에겐 더없이 헌신적이고 교양 있는 아내요, 어머니인척 했다. 며느리 욕을 해도 절대로 담장 밖에 나가도록 큰 소리 하는 법이 없었다. 성자가 부엌에서 끼니를 차리면 안방과 부엌을 연결하는 샛문을 열어 놓고 이야기하듯이 악담과 욕설을 퍼부었고, 들에 나가 일을 할 때는 일마다 사사건건 탈을 잡아가며 성자의 가슴을 짓뭉갰다. 남들이 보기에는 시어미가 다정하게 며느리에게 들일을 가르치는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성자가 사는 곳은 범골이었다. 범골은 예부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성자가 합천 범골로 시집온 지도 햇수로 3년 만이었다. 그 사이 둘째 시누는 삼가로 시집을 갔다. 손위 시누 남편이 중매를 섰다. 삼가 면에서 조그마한 잡화상을 하는 집 큰 아들이라니까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다 했다.

시동생 석구는 성자와 동갑내기였다. 시동생은 장가 들 나이가 지났는데도 장가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 감나무 접붙이는 기술을 익혀 이 마을, 저 마을 불려 다니면서도 연애를 하거나 깊게 사귀는 여자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알고 보니 들님이 때문이었다.

“형수, 이거 들님이한테 좀 전해 주이소.”

얼굴이 술 취한 사람처럼 벌겋게 되어 쑥스러워하며 내민 것은 하얀 고무신이었다. 짚신에서 일본 사람들이 검정 고무신 바람을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다시 하얀 고무신과 꽃무늬가 놓인 하얀 코 고무신 바람이 분 것도 여러 해 전이었지만 가난한 살림에 5전은 족히 주어야 하는 흰 고무신은 그림의 떡이었다. 아이들은 설빔으로 검정 고무신 한 켤레 얻는 꿈을 꾸며 자라던 시절이었다.

그 흰 고무신은 시동생이 여러 달을 안 먹고 모운 돈일 것이다.

“데름이 직접 주지 와 내한테 심바람 시키는데예?”

성자는 서운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한마디 했더니

“들님이가 안 받을라 캐서. 너머 눈 무섭담서. 저거 어머이가 물으모 할 말이 없담서. 형수님 핑계 대는 기 우떨까 하는 눈치라서.”

성자는 속이 사르륵 꼬여 왔다. 들님이의 행동거지가 얄미웠다. 시동생과 자기 일을 알리려고 그런 꾀를 내었구나. 보기보다 여우 짓은 잘하는 여자구나. 어쩐지 요즘 들어 사근사근하게 굴드라니. 성자는 그녀가 하는 짓이 얄미웠지만 시동생을 위해 눈감아주기로 했다.

그때, 들님이는 이미 과부가 되어 아예 친정에 돌아와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늙은 홀아비에게 시집갔다가 본처 자식들 등살에 왔다 갔다 하더니 아이도 한 명 없이 과부가 되었다. 영감이 저녁나절에 논 둘러보려 들에 나갔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다고 했다. 들님이는 오히려 살맛이 났다. 본처 큰 자식에게서 논 서마지기 값을 받아 친정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들님이 때문에 시어머니의 구박은 더 심해졌는지 모른다. 이미 헌 계집이 되었지만 들님이는 들일, 집일, 똑 소리 나게 잘했다. 그러니 들일에는 젬병인 어설픈 며느리와 비교가 되어 며느리가 미운 것이다. 들님이를 며느리로 못 들어앉힌 것이 시어머니는 한이 되고 원통해서 그 분풀이로 며느리를 들볶는 것이다.

그런데 그 들님이에게 연정을 품은 사람이 시동생이라니.

성자는 자신만 없어지면 들님이를 작은 며느리로 들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시집을 한번 갔다 온 경력이 양반 가문에 큰 흠을 남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어머니는 들님이를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다.

시동생의 부탁을 받은 다음 날, 성자는 들님이네 집을 찾았다.

“범골 띠, 나 좀 보이소.”

들님이는 시집갔다 친정으로 돌아오면서 택호 하나를 달고 왔다. 범골 댁이었다.

“엉가가 우짠 일이요?”

들님이는 뚱한 얼굴로 맞아들였다. 들님이가 성자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최근 들어서였다.

“우리 데름이 이걸 주던데.”

성자는 넌지시 치마폭에 감추었던 고무신을 내어 주었다.

“참말로 별 시답잖은 심부름도 다 하고 앉았거마. 엉가나 신지 말라꼬 가지로 왔어예.”

들님이는 당황한 듯이 손을 뒤로 감추며 물러났다.

“우리 데름하고는 언제부터 눈 마찼소?”

성자는 내숭을 떠는 들님이의 모습이 얄미워 정곡을 찔렀다.

“하이고 생사람 잡을 소리 하지마소.”

들님이랑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녀는 성자에게 무척 살갑게 굴었다.

성자는 시어머니에게 넌지시 들님이 이야기를 비추어 본 적이 있었다.

“어머이 들님이가 데름을 좋아하는 것 같아예. 데름도 그런 것 같은데 어머이 생각은 우떻십니꺼?”

“입은 찢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꼬 언감생심 지가 그런 맘을 묵으모 벼락 맞제. 아무리 반상이 무너졌다고는 해도 엄연히 양반과 상것의 구별이 있는데 무슨 소리 하노. 이미 헌 지집 되어 온 팔자 사나운 지집인데. 니가 잘못 알아도 한참은 잘못 안기다. 씰데없는 말 지 내다가 조리 돌림을 당한다.”

성자는 범골을 벗어나 큰 마을의 고갯마루에 올랐다. 가슴이 알알이 쓰렸다. 처음 그 고개에서 쉬다가 마중 나온 남편을 만나 사랑을 했던 곳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 새 정이 들긴 한 모양인지 성자는 애도 하나 만들어 주지 않고 행방이 묘연한 남편이 서운했다. 그리 알뜰살뜰히 사랑한다 하더니 어디서 무얼 하기에 소식 한 장 없는지.

남편은 정말 죽은 것일까.

성자는 고갯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 마을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모내기철이 되면 떠돌아다니던 시동생도 돌아와 지게 품을 팔아 살림에 보탰다. 이번에 오면 들님이하고 혼인을 해서 살림을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성자는 누가 볼세라 다시 돌아서서 산길을 내려오다가 집으로 오고 있던 시동생과 마주쳤다. 시동생은 후줄근한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등에 삼태기를 메고 있었다. 시아버지 초상을 치고 떠났던 길이라 근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은 깡말랐지만 검은 살빛은 건강해 보였다. 시동생은 보퉁이 하나를 들고 내려오는 성자를 보고 대뜸

“형수, 간도 컵니더. 세상이 얼매나 시끄러운데 여자 혼자 길 떠날 생각을 했십니꺼? 가입시더 사돈댁까지 바래다 디리께 예. 요새는 빠스라는 시간차가 협천서 부산까정 댕깁니더. 하리에 한두 번인가 댕기는데 그 차만 타모 금세 갑니더.”

성자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데름 실은......”

“압니더. 아무 소리 말고 댕기 오이소. 우리 성이 무심해서 친정에도 한분 못 갔지 예. 징헌 시집살이 함서 고생했십니더. 이번 참에 푹 쉬고 오이소.”

성자는 시동생과 합천읍까지 나왔다. 세상 구경을 나온 철부지 어린애가 바로 성자 자신이란 것을 합천읍에 나와서야 깨달았다. 산골에 살면서 만 3년 만에 바깥세상 구경을 하는 성자로서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일장기 대신 관공서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이 신기했고, 먼지를 풀풀 날리며 달리는 버스라는 물건이 신기했다. 시집간 후 돈이라고는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는 성자에게 버스를 타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생소했다. 시동생은 성자의 손에 십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버스 요금이 3원인가 한다는데 쌀 반 가마 값이었다. 누가 버스를 타겠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걸어 다녔다. 십리 길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했고, 적어도 백리 길을 걸어야 걸었다는 소리를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하루 백리 길을 너끈히 걸어 다녔다. 새벽밥 먹고 장거리를 준비해서 집을 나서면 합천 장에 도착하면 아침밥 먹을 때라고 했다. 국밥 집에서 요기를 하고 가지고 갔던 물건들을 처분하고 가용에 필요한 장거리를 보아서 집에 오면 해 질 녘이면 닿았다.

“형님 소식 들은 적이라도 있습니꺼?”

성자가 남편의 소식을 묻자 시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잘 있을 낍니더. 아마도 그 서울 사람이랑 만 냈을낍니더. 지난번에도 같이 가자하더니 이참에 그 사람 찾아갔을 낍니더.”

“그리 됐시모 좋을 낀데. 아부님 초상 치로도 안 온 걸 보모 이 세상 사람 아니라는 말도 맞는 것 같기도 합니더. 그런데 빨갱이 사상이 우째서 나뿌다는 깁니꺼?”

“지가 뭘 알아야지예. 성님이 그라는데 사회주의 운동하는 사람은 다 애국자라 쿠데예. 우리 농사꾼들 잘 살게 해 줄라꼬 발 벗고 뛰는 사람들이랍니더. 지주도 없고, 양반 상놈도 없는 세상을 맹글라는 사람들이랍니더.”

“그런데 와 나라에서 그런 사람들을 잡아디릴라꼬 야단입니꺼? 농민들 잘 살게 해 준다는 기 뭐가 잘못이라꼬예.”

“모르지예. 다 같이 잘 묵고 잘 살자는 긴데.”

성자는 시동생과 합천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졌다. 굳이 친정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것을 억지로 떼어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버스에 올랐다.

성자는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시아버지 생각을 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시아버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팠다. 시아버지는 조용하고 말없는 분이셨다. 집안의 내림이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리 험한 일을 하고 산골에 살아도 타고난 선비셨다. 집에 돌아오면 늘 책을 읽었다. 옹색한 사랑이지만 사랑방에는 책들이 많이 있었다. 두툼한 한서에서부터 언문으로 된 이야기책들을 낭랑하게 읽는 소리를 들으며 약초를 다듬고, 바느질을 하면 그곳이 깊은 산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큰 집에도 그렇게 책이 많았다. 일본 유학까지 하고 온 큰 아버지 덕이었지만 그 덕분에 성자는 설국이니, 빙점이니 하는 일본 소설과 고리끼, 도스토예프스키, 까뮈, 톨스토이 같은 소설가가 쓴 외국 번역 소설과 번안 소설, 은세계니 치악산, 무정, 사랑 같은 한국 소설을 일찍 섭렵할 수 있었다. 큰 집을 생각하면 수백이 오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가를 갔을까, 대학을 갔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아직 가슴이 아렸다. 이미 미련을 다 버린 줄 알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이제 성자는 그것이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남매의 정이 남아서 그런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더구나 사촌이지만 남매 지간이 아닌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성자는 시아버지가 살았으면 자신이 집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저 놈들 똥줄깨나 빠졌기 끼라 인구 조사는 멀라꼬 하노. 화전 일가 사는 사람들 사연은 구구절절인데. 숨어 사는 사람들 산 밖으로 끌어낸다고 나가나. 다시는 안 올 끼다. 가다가 호렝이 한테 혼구녕이나 나라모. 아가, 여거서 살다 보니 정이 들제? 같잖은 면서기나 순사들 앞에 싹싹 빌고 살 필요도 없고, 먹는 기 좀 험하기는 해도 손만 보지란하모 배 곪지는 않는다 아이가. 사람한테 젤 중요한기 뭔지 아나? 바로 늠한테 천대 안 받고 사는 기다. 강냉이 죽이라도 배 불리 묵을 수 있고, 푼이파리라도 속 편하게 뜯어 묵는 기 좋은 기다.”

인구 조사를 나온 면서기가 마을의 실태를 파악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시아버지가 한 말이다.

그랬다. 소작인들은 일 년 내 땡볕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지주에게 뜯기도, 나라에 뜯기고 남는 것은 골병과 배고픔이었다. 비록 해방은 되어 일본인들이 물러갔다고는 하나 지주들은 엄연히 거대한 기와집에서 고리 놀이를 하며 부를 축척하고 있었고 소작인들은 고리 삭은 모습으로 한숨만 쉬며 보릿고개 넘길 길이 막막해 아이들을 비럭질 보내는 집이 늘고 있었다.

성자는 시집와서 처음으로 배고픈 설움을 알았다. 친정은 알부자 소리를 들었다. 머슴 한 명을 부리는 자작농이기도 했지만 첫 딸은 살림밑천이니 장남 맞잡이니 하면서 귀염을 받고 자랐다. 맨제지(순 쌀만으로 지은 밥의 경상도 사투리)는 아니더라도 쌀알이 드문드문 섞인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가끔 떡을 해서 동네잔치도 할 만큼 인심도 후한 집에서 자랐다. 성자는 쌀밥이 그리워 울기도 하고 친정 부모님과 수백이 오빠와 친구가 그리워 울기도 했었다.

그런데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던 그 가난한 산골에서 막상 벗어났다고 느끼자 다시 그곳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차며 친정으로 왔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기를 빌면서.

“인자 눈 좀 붙이야제?”

잿골 할머니는 선하품을 하면서 이야기를 끝내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젤 중한 이약은 아직 잇금도 안 들어갔는데 자다니요.”

외삼촌이 남은 이야기를 다 하라는 듯이 잿골 할머니를 채근했다.

“성자가 친정에 돌아와서 이약이야 니도 대충은 안다 아이가.”

“그 이약 말고, 누야가 집 떠나던 날 밤 이약 말이오.”

“그 이약은 낼 하자.” <계속>

이전 13화<장편소설> 연꽃 전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