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소문의 진실
새벽녘에 겨우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는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머니는 그 시절, 틀에 박힌 여자의 일생을 과감하게 떨치고 시댁을 나설 수 있었을까. 아니 정조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시절에 어떻게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사촌오빠를. 보통 여자는 귀밑머리 마주 푼 사람과 백년해로하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라는 말을 한다. 설령 지아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모가 맺어준 사람과 평생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미덕이요 효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나라 여자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그 고정관념을 깨끗이 지워버린 것이다. 내가 만약 일찍 태어났더라면 어머니는 영영 그 집 귀신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다. 아니 지아비를 사랑했다면 아무리 심한 시집살이라도 참아냈을 것이다. 어머니 정도라면.
방안의 어둠이 조금씩 걷혀 가는 것을 보니 날이 밝은 모양이었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났다. 외삼촌의 곤한 잠을 깨울까 염려하며 일어났는데
“벌써 일어날라꼬? 눈 좀 더 안 붙이고?”
외삼촌은 깨어있었다.
“저 때문에 깊은 잠을 못 주무셨지예?”
“늘그모 잠이 없어지는 기 정상이제.”
새벽 공기 마시며 동네 구경이나 하고 오겠다며 방을 나서니 외삼촌도 따라 나왔다. ‘말라꼬 벌써 일어 났노.’ 하면서 잿골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다들 잠을 설친 밤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찬바람이 획 지나치며 얼굴을 강타했다. 해뜨기 전의 기온이 하루 중 가장 낮다고 하더니 산골 바람이라 더 매서운 느낌이 들었다.
골목을 벗어나 언덕에 올랐다. 우아하게 생긴 소나무는 겨울 찬 빛에 더 싱싱하고 푸르른 자태로 서서 마을을 관망하고 그 옆에 대나무가 살랑거리며 바람을 막아주는 것 같았다. 마을은 아직 안개가 자욱하고 깨어나는 기척이 없어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앙상한 잿빛 나무와 안개 탓인 것 같기도 하지만 겨울 농촌은 쓸쓸했다. 사람이 적으니 더 그런 것일까. 마을 입구의 회나무와 느티나무는 가녀린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데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으 춥다. 나온 김에 큰 집에나 가서 둘러보고 오까?”
외삼촌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앞장을 섰다. 그 주위 논에는 파릇한 보리 새싹이 자라고 비워 둔 논에는 그루터기마다 싹이 푸르게 솟아나 있었다. 겨울에도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땅이구나 싶으니 새삼스럽게 감상적이 되었다. 생명의 온기를 느낀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 아닌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와 평화로움을 한껏 품고 있는 농촌 마을의 겨울 전경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내 발길도 자연스럽게 그 고가로 이어졌다. 고가는 더 낡아진 채 삭풍을 맞은 고목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저 집을 갖고 싶다. 나는 순간적으로 또 그 생각을 했다. 이미 여러 큰 손을 거쳐 누군가의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을 것이지만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꼈다. 잿골 할머니께 사실 확인을 하고 그 주인이 누군지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배 곪지 않는다더니. 큰 집을 보니 참 새롭구먼.”
외삼촌은 멀찍이서 그 집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했다.
“집안의 대가 끊기고 보니 저리 쇠락하는 기 기정사실이지만 아깝구나. 너희 막내 외삼촌 죽고 나서 새로 양자 한 명 디리자 해도 큰 어머이가 싫다더마. 딸 자석 있는데 먼 걱정이냐면서 앞으로는 장자 필요 없다 하드라마. 외국 나가삐니 아들 자슥 필요 없제.”
“수백이라는 분은 어떤 분이었십니꺼?”
“참 아까운 사람이었어. 좀 우유부단한 면은 가지고 있었지만 인정 있고 의리 있는 성이었어. 큰 어머이가 너무 드세서 외아들을 치마폭에 싸고 살아서 탈이었제. 고마 그때 군대 밥 묵고 말뚝 박았시모 별 탈이 없었실랑가. 누야가 일부종사하고 잘 살았시모 또 모리제. 사람 맘이란 기 간사해서 잘 되모 지 잘난 탓이고 못 되모 조상 탓이라고 가끔은 집안에 평지풍파 일가 놓고 사라진 누야가 밉기도 했거든.”
“그분이 군에 갔던 겁니까?”
“하모. 누야가 시집가고 그 형님이 뜬금없이 군대를 지원해서 간기라. 그때는 돈만 주모 군대 안 가도 되고, 대학생은 면제도 해 주던 때였거든. 세상이 뒤숭숭하니 집안에서 군대 안 보낼라꼬 돈뭉치를 싸들고 가서 대학에 넣었다데. 그런데 학도병으로 지원을 해삔기제. 누야가 친정에 돌아왔을 적에 그 형님도 집에 와 있었어.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소문이 돔시로 큰 아부지가 부랴부랴 형님을 군에서 끌고 왔제. 외동아들인 데다 대학생이니 돈만 디밀면 군대 옷 벗기는 것이야 식은 죽 묵기였어. 세상이 온통 썩어 있을 때였으니 말하모 뭐하니. 나도 그때 학도병으로 지원을 해서 강원도 횡천에 가 있었제. 군대에 말뚝 박았시모 좋것다더마 누야가 왔다는 소리 듣고 난께 맘이 달라졌는지도 모르제. 전쟁이 터지기 전에 그런 사단이 일어나고 누야는 이미 행방을 감찼어.”
나는 외삼촌께 그 사단이 무엇이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보촌댁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머니였고,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 아들이라는 이 아이러니에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머니는 왜 이제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해 주신 것일까. 그냥 묻어버리고 가셨더라면 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나는 새삼스럽게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를 무척 존경했었는데 그 환상이 깨어지면서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내 조상은 그럴듯한 양반가 거나 적어도 몰락한 왕족의 후예쯤은 되었으며 하고 바랐던 적도 있었다. 한편으론 어머니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영덕이가 어머니의 죄 값을 대신해서 저능아로 태어났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손자 때문에 묻어버리고 싶었던 기억을 되살려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외삼촌은 그 집 마당을 익숙한 걸음걸이로 들어갔다. 사랑채 앞에 있는 매화나무를 쓰다듬어도 보고, 감나무를 안아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산수유와 매화나무 가지에는 씨알만 한 꽃망울들이 자잘하게 맺혀 있었다. 나는 마루 끝에 궁둥이를 걸치고 앉았다.
“누야는 영덕이가 이 집에서 사는 걸 원 하신 건 아닐까.”
외삼촌은 내 마음을 넘겨 집기라도 하듯이 영덕이 이야기를 했다.
“어머이가 무슨 말이라도 한기 있습니꺼?”
“그 아를 고향에서 자라도록 했시모 좋것다는 말을 했거마. 절에 의탁시킬까도 했지만 너거들이 얼른도 없실끼라면서 차라리 촌에다 뿌리를 내리는 기 그 아를 위하는 길인 것 같다 하더마는.”
“제 생각도 그렇습니더. 퇴직 하모 조용한 시골에 들어가 텃밭이나 일굼서 살았시모 싶지 예. 영덕이 그 아이가 화초 가꾸는 데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같아서 분재나 화훼 같은 것을 해 봤으모 싶어 안사람과 의논한 적이 있습니더.”
“갈만한 장소는 물색해 봤고?”
“생각만 하고 있었지 막상 갈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지예. 그라다가 지난봄에 여게 등산을 왔다가 이 집을 봤지 예. 우짠지 맘에 들어 관심을 갖게 됐던 기라예.”
“그런 걸 보모 조상의 혼백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제. 니를 부른 기 조상이었을 끼라.”
“야옹!”
갑자기 들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의 수북한 쑥대 속에서 튀어나와 장독간을 지나 대밭 속으로 휙 지나간다. 그 서슬에 깜짝 놀라 축담에 뛰어오른 외삼촌은 간 떨어질 뻔했다고 혀를 찼다.
“고마 가자. 겨울인데도 이러니 여름 같으모 수풀이 짙어서 아무도 이 집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것다.”
죽은 사람이 산사람과 정을 떼려면 무섬증이 들도록 한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시신을 염하면서 나는 그 조그만 몸피가 섬뜩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어머니의 혼백이 이 집 주위를 맴도는 것은 아닐까. 대문을 나서면서도 자꾸만 뒤통수가 쭈뼛쭈뼛했다.
“동네를 한바꾸나 돌았데이. 오데 갔더노?”
잿골 할머니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찬은 없지만 마니 무라.”
무청을 넣어 끓인 구수한 된장국에 김장 김치, 청국장, 된장 밑에 넣어 삭힌 노란 깻잎, 마늘장아찌만 보아도 어머니의 음식 솜씨와 닮은 것 같아서 마음이 찡했다. 그것을 촌 음식이라 하든가. 유난히 토속적인 그런 음식들이 내 식성에 맞았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는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숟가락질을 하던 잿골 할머니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여자 혼자 몸으로 아 키움서 살기에는 참 팍팍한 세월이었는데. 니를 보니 참 감개무량하다. 이리 만낼 줄 알았시모 진작 서로 길 터서 댕김서 우애를 나누는 긴데. 너거 옴마가 싫다더마. 지 죽고 나면 자연히 알아지는 비밀을 가지고 평생을 혼자 앓으며 살았다니.”
“자형은 온제 돌아가셨습니까?”
외삼촌이 말머리를 자르며 물었다.
“나도 알고 보고 애가 많은 사람이다. 자네가 알다시피 아무것도 없는 집으로 시집을 갔제. 자네는 알끼다만 저기 아랫담 들어오모 들머리에 시장 통이 있제. 그 시장 통에서 풀무질을 하던 사내한테 시집을 간기라. 하루쟁일 잉걸불에 뜨거운 김 쐬가며 낫이랑 호메이랑 칼을 벼리며 벌어 묵고 살다가 친정 동네로 이사를 했제. 전쟁이 남서 그 짓도 못 해 묵고 배를 쫄쫄 굶고 있응께 친정 아부지가 처갓집으로 들어오라 캐서 왔건마는 그놈의 빨갱이 물이 들어서 산사람 따라 안 갔나.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긴 했제. 부역 나갔다가 다리를 다쳤다니께 훈방으로 풀리 나긴 했지만 날마동 순사한테 불리 다니며 조사받는데 이골이 난기라. 거기다 다리병신이 돼서 왔으니 절뚝뱅이 소리 몬 면하고 살다가 화병으로 죽은 기라. 술 처 묵고 살림 뿌사는 기 다반사였싱께내 어서 죽었시모 내 팔자나 필랑가 싶더마. 막상 죽고난깨 그것도 걸리더마. 5남매나 되는 자식새끼는 줄줄이 달고 여자 홀몸으로 사는 기 참 심 들었지. 친정에서 준 논마지기에 명줄을 걸고 들일 끝나고 나모 밤낮없이 삼 삼고 베틀에 앉아 매달린 덕에 살았제. 우리 살아온 시절 이약이야 거기 사는 기가 못 죽어서 살아온 것이제. 하도 살기가 딱하다 보니 난중에는 그 인간은 참 복도 많아 일찌감치 잘 죽었구나 싶은 심정이 되더라니께.”
나는 전쟁 중에 태어났다. 1950년생이다. 전쟁의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만 듣고 배웠을 뿐이지 그 전쟁의 상처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모른다. 내가 격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가슴에 닿는 느낌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그러나 학교 다닐 적에 옥수수 죽을 끓여 주거나 빵 배급을 주던 것을 받아먹은 기억도 있고, 길에서 미군을 만나면 그들이 던져주는 초콜릿이나 깡통, 껌 등을 받아먹은 기억은 있다. 완월동 골목에서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옷을 입은 거리의 여인들이 미군만 보면 '헤이 웰 컴 죽여 주께’ 하면서 호객행위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겐 모두가 금이 이모였다.
이곳도 전쟁의 상처는 깊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도 있고, 자기 집에 몰래 숨어들어 마룻장 밑에 굴을 파고 숨어 있거나 천정 위에 올라가 숨어 지내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 끌려 나와 마을 한가운데서 몽둥이에 맞아 죽기도 하고 병신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너거 큰 외할아부지가 인민재판받고 대창에 찔리 죽었다. 악덕 지주라꼬. 수백이 형님은 용케 도망을 쳐서 죽음은 면했지만 니가 서너 살 때쯤 병사했을 끼다. 배싹 골아가꼬 골골했거든. 맘 병이 더 심했것제.”
외삼촌은 자신의 잘못인양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외갓집이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외할아버지의 선견지명 탓이었을 것이라 한다. 공산화되었을 때는 북한군을 위해 곡식을 털어 밥을 지어 먹이고, 사위가 빨치산이라 둘러대고, 국군이 들어와 설칠 때에는 또 국군을 위해 곡식을 털었다 한다. 아들이 군인으로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민초가 난세에서 살아남는 법은 박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던 것일까. 그렇다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인데.
잿골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 마을에 잠깐 있다 간 인민군 대장은 참 정직했어. 마을에 있는 닭 한 마리도 손해 나게 안 했거든. 닭을 잡으라 했으면 그에 합당한 값을 꼭 지불했었어. 나는 통일이 되모 꼭 만내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 있제. 그 전쟁 통에 살았시모 아매 동생 나 꺼리는 됐을 거야. 인민군 소좌였는데 어찌나 싹싹하고 정이 많든 지 내하고 의남매를 맺었제. 우리 누님 하자는데 우짜노. 우리 아거들이 대장 삼촌, 대장 삼촌, 함서 따랐었어. 그 짧은 기간에도 정이 많이 들어 서울 수복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산으로 철수함서 후제 살아남으모 꼭 찾아 오꺼마꼬 함서 갔제.”
“참 전쟁이라는 기 무섭기는 했어. 사람 목심이 포리 목심 같았으니께.”
외삼촌이 한숨을 푸욱하고 쉬셨다.
“어머이 이야기를 더 해 주이소.”
“그래, 성자가 동네에서 사라진 후에도 수백이 오빠는 성자를 못 잊은 기라. 우짜다 길에서 내캉 만내모 혹시 소식 없더냐고 물어보곤 했거든. 그 당시에사 나는 성자가 오빠를 병신 맹글었시니 잡으모 감옥에 쳐 넣을라고 찾는 줄 알았제. 소문이 그리 낫싱께.”
“그럼 아니란 말입니까?”
그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자네 옴마 소문을 오데서 들었노?”
“여기 농협에 댕기는 진숙이라는 아가씨한테서 예.”
“얄궂기도 해라. 우리 친척 오빠 딸내미를 우찌 알고?”
“그 아가씨 사귀는 총각이 바로 제 밑에 있는 인연입니더. 부산에서 아구찜하는 보촌아지매한테서 할머니 이약도 들었습니더. 그때는 성자라는 분이 우리 어머닌 줄도 모르고 재미 삼아 들었지 예.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할머님이 무연히 만나고 싶어서 김 주사더러 촌에 갈 때 같이 가자고까지 했었지예.”
“그래 맞다. 인연이란 돌고 도는 기다. 다 얽히고설키서 사는 기 세상살이제.”
인연이란 말이 맞는 것일까. 이렇게 풀릴 인연이었으면 진작 풀려야 했던 것을, 그랬다면 오히려 나는 어머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 않았을까.
“온 김에 며칠 쉬다 가지?”
“낼은 출근해야지예.”
아침 설거지를 끝내 놓고 커피 한잔을 마주 놓고 앉았다. 세 사람 사이엔 긴 침묵이 흘렀다. 잿골 할머니는 이야기하기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당사자도 없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며 소문의 진상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친정에 돌아와 살면서 다시 수백이 오빠라는 분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단다. 사촌끼리 참 잘 지낸다고들 생각했지 두 사람 사이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것은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는 남편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시동생도 두어 번 다녀갔다. 집에 가자고 했지만 남편도 없는 집에 가기 싫다고 거절했다. 남편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어머니는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두렵기도 했다.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쫓기는 몸이라 올 수 없겠지만. 시동생은 자신의 소원대로 들님이랑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지만 들님이가 아이를 갖는 바람에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시댁에 갈 명분이 완전히 없어진 셈이 되었다.
수백이 오빠의 혼처 자리가 정해졌다. 집에서 혼사를 서두르고 있었던 탓에 날은 금세 잡혔다. 육이오 전쟁이 터지던 그 해 3월이었다.
어머니는 어차피 맺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체념을 하고 지내면서 큰 집에 가서 혼인 준비를 도왔다. 그날 밤에도 늦도록 집안 식구들과 일거리를 거들었다.
집에 돌아왔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큰 집으로 달려갔다. 밤만 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성자는 스스로 화냥 끼를 타고 난 여자 같아서 진저리를 치면서도 또 오빠의 방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남의눈을 피하는 만남이기에 더 짜릿하고 감칠맛이 났는지 모른다. 이젠 마지막이다 여겨지기 때문에 더 절실하고 안타까운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란 감정일까.
몇 날 며칠로 잔치 준비를 하느라 파김치가 된 집안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성자는 밤이슬을 맞으며 들길을 지나 큰집의 뒤채에 있는 작은 봉창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취에 익숙해 있어 금세 열꽃이 피었다. 간절함, 너무도 절실한 그 감정은 더 이상 서로를 찾지 말아야 한다는 안타까움으로 서로의 몸을 탐했다.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도록 열락의 꽃을 피우고 나서 나란히 누웠다.
“이젠 진짜 오지 않을 거야.”
“그래야겠지. 너도 시댁으로 돌아가.”
“갈 맘이 없어. 그 집에 뭐가 있다고 내가 가야 해 남편이 있어, 자식이 있어.”
“그 사람이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잖아. 널 그렇게 사랑했으니까. 찾아오겠지.”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 그 사람이 죽었는지 몰라. 안 그러면 찾아와도 여러 번 왔을 건데 안 오는 걸 보모. 엉가 될 여자가 미인이람서?”
“성자야, 니를 안 만내고 살 수 있을 랑가. 자신이 없다.”
“오빠!”
어머니는 이불깃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구나. 더 이상 오빠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는 한이 있더라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나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헤어짐의 고통이 아릿하게 전해 왔다. 정수리 끝이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그 심정은 어떤 것일까. 아내와 헤어지고 내가 겪었던 그 고통보다 몇십 배는 더 아팠으리라.
“그런데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누웠다가 날벼락을 맞았지. 수백이 오빠가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성자가 살그머니 일어나 옷을 입으려는 참이었는데.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란다. 어찌나 놀랐던지 문만 쳐다보고 있는데. 시커먼 그림자 두 개가 순식간에 방 안으로 들어오더래. 성자가 수백이 오빠를 깨우려고 막 흔드는 순간, 한 남자가 성자의 입을 털어 막으면서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하더래 ‘소리 지르면 죽어. 빨리 옷 입어’그 말을 듣는 순간 성자는 혼이 달아났다더군. 남자가 성자 옷을 집어 주면서 빨리 입으라고 하더래. 어떻게 옷을 주워 입자 ‘살고 싶으모 아무 말 말고. 저 사람 따라 나가라. 안 그러면 둘 다 죽이고 이 집을 몽땅 불살라 버릴 테니까.’ 그 남자가 성자의 귓가에 나직이 말하더래. 성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못 나가겠다고 버티자 딴 남자가 수백이 오빠의 목에다 칼을 대고 ‘물건을 잘라줄까. 목을 따 줄까’하더래. 벌거벗은 채 잠에 빠졌다 깬 오빠도 사색이 되긴 마찬가지였지. 성자가 무엇인가 꽉 잡은 채 혼절을 하자 남자는 가볍게 성자에게 자루를 덮어 씌워 어깨에 둘러메고 손살 같이 산 쪽으로 토끼는 거야. 성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 큰 집 쪽에서 ‘아아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래. 성자는 수백이 오빠가 죽은 줄 알았지.”
잿골 할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성자는 그 비명소리에 온 몸의 맥이 쭉 빠지면서 이젠 나도 죽었구나 싶었다. 자루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아무 소리 말고 가만히 있으시오. 당신을 해칠 사람은 아니오.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좀 얌전히 있어 주시오. 나도 힘들면 패대기 칠지 모르오.”
성자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죽을힘을 다해 가슴에 끌어안고 있는 것은 수백이 오빠의 베개였다. 연꽃무늬로 짠 대침이었다.
새벽 여명이 밝아 올 임세 장함산을 넘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조그만 산마을이었단다. 그 사람은 마을 입구에 있는 주막집을 서슴없이 들어가더니 방안에 대고 '어머이'라고 불렀다. 육십은 넘은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누가 볼라 퍼뜩 안 들어오고 머하노? 이 색시가? 니는 옆방으로 가거라.”
하면서 아주머니가 성자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자 옆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얇은 벽을 통해 나직이 들렸다.
“수고했네. 새복 바람이 꽤 찹았제.”
“우째 놓고 왔노. 입단속 잘 해 놨나?”
“예, 팍 쥑이삘라 했는데 차마 죽일 수는 없고, 가운데 다리만 잘랐삐고 왔으니 목숨에는 지장 없을 낍니더.”
성자는 그제야 그 목소리가 어딘지 귀에 익다는 생각을 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 이 진구였다. 이제 죽은 목숨이구나 싶었다. 아내의 서방질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할 것이며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왔으니 변명이 통하지도 않을 처지란 걸 알았다. 아니 성자는 변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수백이 오빠를 죽이지 않은 것만도 고마워서 눈물이 쏟아졌다.
잿골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너거 어머이는 딱 죽어 삐시모 좋것더란다. 서방 볼 면목도 없는 데다 그 상대가 사촌 오라비니 그 심정이 우떨지는 니도 짐작이 가제?”
“그분이 알고 있었군요.”
“함, 그 사람이 말하더란다. 시집왔을 때 이미 알았다더란다. 상대가 눈 줄은 몰랐지만 너거 어머이 마음속에 딴 사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드란다. 그래도 너거 어머이가 좋아서 내색 하모 도망칠까 싶어 전전긍긍했다 하더란다. 그러다가 지가 도망 다니는 여게 성자가 친정으로 갔다 소릴 듣고 뒤를 밟은 기라. 도대체 어떤 놈인가 싶어 처음에는 연놈을 다 죽이기로 작정하고 뒤를 밟았는데. 사촌 오빠라는 것을 알고는 ‘불쌍한 사람.’하면서 인자 수백이 오빠는 싹 이자 삐고 지하고 살 수 없냐면서 ‘니 없시모 나는 못 살겠다.’ 하드란다. 너거 어머이도 남편 보기 참말로 미안해지더란다. 이미 친정에는 온갖 소문이 무성할 테고 친정으로 다시 갈 수도 없는 처지에다 경찰들이 찾아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는데 싶은 심정인 데다 그 사람도 이미 남의 사람이니 더 이상 미련을 갖는다는 것이 도리가 아니다 싶더란다. 평생 속죄하는 맘으로 살리라 작정하고 남편을 따라 댕기기로 작정을 했단다. 남편이 빨갱이 연락책을 맡고 있었다나. 우쨌다나. 그러나 너거 옴마 팔자도 참 기구한 거라.”
그날 오후 나는 부산 집으로, 외삼촌은 사천으로 갈라졌다. 내게 남은 것은 어머님의 유언일 수도 있고 유품일 수도 있는 그 사각봉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 것일까. 그리고 그 대침이 기다리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