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모정의 사슬
한동안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사무실에서 신학기 업무에 시달리고 아내는 영덕이를 데리고 어머니가 도왔다는 그 고아원에 가서 자원봉사를 한다. 아내는 영덕이를 다시 재활원에 입학을 시켰으면 하나 영덕이는 한사코 선암사에만 가려고 해서 아내가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었다. 일상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진이가 무사히 서울 대학 영문과에 입학을 해서 기숙사로 떠나갔고 어머니의 자리가 비어 집안이 썰렁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더니 어머니는 집에 있는 날보다 밖에 나가 산 날이 많은데도 어머니의 자리는 언제나 꽉 차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부재중이었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체취와 온기가 남아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구나 싶어 내색은 안 했지만 많이 외롭고 슬펐다.
봄빛은 거리마다 여자들의 옷차림에서 먼저 넘쳐 났다. 연한 보랏빛이나 연둣빛, 상아빛의 화사하고 얇은 실크나 면 종류의 옷들이 활개를 치는 거리를 거닐며 계절은 도시나 시골이나 어김없이 오가건만 어째서 나는 낯선 곳을 배외하고 사는 느낌일까.
나는 어머니의 사십 구제를 지내기 위해 주일마다 영덕이 손을 잡고 선암사에 다녔다. 선암사 길을 오르내리며 김해평야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꿈뜰을 생각했고 그 집을 생각했다. 그 빈집에도 나무에 물이 오르고 연둣빛 새잎이 나풀거리겠지. 그곳으로 서둘러 돌아가길 염원한다. 그 주위에 땅을 조금 사서 집을 짓든지 빈집들이 많으니 빌려서라도 서둘러 옮기고 싶었다. 어머니가 없는 도시는 삭막하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깨닫고 있었다. 나의 평화로움은 어머니의 품에서 얻은 사랑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어머니의 과거가 내게 던져주었던 부끄러움조차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의 존재 의미는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의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잠재의식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아내는 내가 더 말이 없어진 것을 알면서도 탓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곤 한다. 어머니와 아내, 같은 여자라서만은 아니리라.
어머니의 사십 구제가 끝나는 날을 마지막으로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어머니의 방에 들어가 앉아 보았다. 그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다.
“영덕아. 할무이는 인자 부처님하고 같이 있단다. 찾지 않을 거지? 이젠 여기도 자주 못 올 끼다. 이 방도 다른 보살님이 와 계실 끼다.”
나와 아내는 영덕이를 앞에 앉히고 다짐을 받았다. 영덕이는 대침을 앞섶에 안고 앉아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꼬 옷 보 살 이 다 마알 했어.”
라며 배시시 웃었다. 저 아이에게는 할머니의 그림자가 꽃 보살에게로 옮겨 갔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꽃 보살도 조만간 선암사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스승님을 정해 사미계를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미승이 되면 스승의 수발을 들면서 완전한 비구니가 될 때까지 외부와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들었다.
“꽃 보살은 이제 스님이 될 거야. 영덕이도 이젠 스님이라 불러야 돼. 보고 싶어도 참을 줄 아는 것이 남자라고 했지? 할무이가.”
“응. 할무이는 맨날 내하고 잔다.”
“무슨 소리야?”
나는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난처해하더니
“영덕이가 할머니 안 찾는 것이 당신은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어예? 저 아이가 집에서나 절에서나 어머이를 찾아 보채모 우짜꼬 싶어서 가슴을 졸있는데 찾지를 안는 기라예. 당신 촌에 갔다 올 동안도 탈 없이 지 방에 가서 자는 기라예. 나하고 자자니까 할무이가 운담서 어머이랑 거쳐하던 방으로 가데예. 영진이도 나도 놀랬어예. 밤에 그 아가 자는데 들어가 보니 글쎄 그 베개를 꽉 껴안고 편안히 자더라니까예. 영덕이에게 어머이가 무슨 이약을 했나 봐예. 저 베개만 안고 다닙니더. 뺏을 수도 없어예.”
“꽃 보살이 머라데?”
“어머이는 언제나 영덕이캉 같이 있다 캤다데 예. 저 아는 어머이가 돌봐 주실 랑가 모르지예. 지금보다 쪼맨만 좋아지도록 돌봐 주셨으면 싶은 심정이라예. 어머이가 생전에 그리도 애지중지 한 손준깨내.”
어머니는 도울 것이다.
“내가 니한테 못할 짓도 많이 했을 끼다. 이리 번듯이 커서 장개를 가다니, 올매나 고마운지 니는 모릴 끼다. 그 사람도 날 용서해 주실 랑가.”
장가들기 전 날 밤이었다. 어머니는 잠자리에 누워 내 손을 꼭 잡으며 한 말이었다. 그때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보았었다. 절대 우는 것을 내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던 강한 어머니셨는데 그 눈물을 보면서 나는 어머니의 깊은 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어머니도 많이 늙으셨다는 것을 느꼈었다.
“보살님!”
밖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문을 여니 꽃 보살이 과일을 쟁반에 받쳐 들고 서 있었다.
“꽃 보살님, 안으로 드시지예.”
아내는 과일 쟁반을 받으며 그 보살을 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했다.
꽃 보살은 상큼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와 영덕이 옆에 앉았다. 그 처녀 보살의 몸에서 향내가 솔솔 풍겼다. 영덕이는 보살의 먹물 옷을 잡아 자기 옆에 가까이 앉으라는 듯이 끌어당겼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다정스럽고 정이 뚝뚝 떨어지는지 내 마음이 야릇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영덕이가 보살님을 많이 의지했는데. 힘드셨지 예?”
아내는 꽃 보살을 그윽이 바라보며 치하를 하자 꽃 보살은 아니라면서
“저를 이리 따라 주니 고맙지예.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젠 자주 볼 수가 없겠거니 생각하니 섭섭해서 인사차 왔습니다.”
“언제 삭발식을 할 예정입니꺼?”
“다가오는 초파일 전이될 것 같아요.”
“부디 대오하셔서 우리 중생을 깨우쳐 주시지예.”
“고맙십니다.”
꽃 보살은 맑고 고왔다. 이슬을 머금고 있는 어린 꽃송이 같았다.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꽃송이, 승복을 입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하나 가까이 대하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속이 넓고 불심이 무척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은 아무나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생에 좋은 업을 많이 베풀어야 얻어지는 복이라 했다. 불가와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도 했으니 그 어린 나이에 사심 없이 처음 본 스님을 따라 책가방을 든 채 따라 올 정도라면 인연 따라온 셈이 아니겠는가.
“스님이 되고 나서라도 우리 영덕이 생각해서 가끔 놀려 오시면 좋을 텐데.”
아내는 많이 서운한 눈치를 보였다.
“영덕아, 건강하게 지내야 돼.”
꽃 보살은 영덕이의 손을 꼬옥 잡았다.
“누우야, 가아치 가자. 우 리 지입에”
영덕이는 꽃 보살의 손을 흔들며 떼를 썼다.
“그래, 알았어. 어머니 아버지 맘 편하게 해 드려야 해. 할머니나 누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절에 오는 거 알지? 돌아가신 보살님은 꼭 저의 친할머니 같았지 예. 저도 우리 할머니의 공덕으로 부처님의 부름을 받은 것 같거든 예. 어려서부터 할머니는 저에게 ‘니는 부처님 전에 바친 아이다.’하셨지 예. 그것이 부처님께 귀의하라는 암시였는지 모릅니더. 그리고 큰 스님께서 영덕이가 좋아하면 그냥 여기 있게 하셔도 된다고 하시데 예. 돌아가신 보살님도 그러기를 원하신 걸로 압니다만.”
“어머이가 그런 말을 비친 것은 우리도 압니더만 아직은 그럴 맘은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영덕이를 불목하니 노릇을 시킬 수는 없었다. 비록 온갖 천대를 받지는 않을지 모르나 엄연히 부모가 있는데 고아처럼 자라게 할 수는 없었다. 후일 조금 시근이 들어 아이가 굳이 원한다면 모르나 지금은 아니었다. 모자라게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어린 나이에 부모까지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저도 아마 영덕이가 많이 보고 싶을 겁니다. 또 인연이 있으면 만날 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그러고 싶기는 한데. 있다가 봐서.......”
나는 꽃 보살을 만나고 나니 한시바삐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남기신 그 봉투를 열어 보고 싶었다. 그 봉투를 장롱 속에 넣어 놓고 펴 볼 수 없었던 마음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안에 무슨 말이 쓰여 있을지가 겁났다. 분명 어머니의 유언이 담겨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을 안다는 것이 겁났다. 여태 안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 봉투를 개봉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그날 저녁, 나는 영덕이랑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둥근 나무 탁자가 거실에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내가 보는 한겨레신문과 아내가 구독하는 현대 문학이 있다. 아내는 늘 책을 읽었다. 신문은 잘 안 보면서 신간 소설이나 수필집 같은 것은 흔히 사들고 들어왔다. 요즘은 주로 아파트 상가의 대여점에서 빌려 온다고 했다. 장애인의 기사를 다룬 면은 잡지 건 아끼는 책이건 신문이건 간에 오려서 스크랩을 했고, 건강상식이나 한방 의학 같은 책도 아내의 필독서가 된 지 오래다. 아내는 늘 바쁘다. 지금도 아내는 딸애의 방에 들어가 뭔가를 하고 있다. 딸네미가 기숙사로 옮기고 나서 아내는 딸애 방을 자신의 방으로 꾸몄다. 아내에게 나는 먼 존재 같아서 섭섭하다. 그러나 굳이 그런 아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아내에게도 아내의 사생활이 있을 테니까. 아내는 이제 홀가분할까. 어머니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집안의 모든 것의 주인이다. 아내는 묻지 않는다. 어머니의 고향이 어디며, 외삼촌이란 분은 어떻게 만났는지 꼬치꼬치 따지고 물어야 하는데도 아내는 한 마디도 비추지 않는다. 괜히 더 서운하다. 내게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일까.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선암사의 어머니의 방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는 소리는 내가 먼저 했었다. 그런데 꽃 보살을 만나고 금세 마음이 바뀌어 빨리 내려가자고 아내를 닦달했었다. 아내는 화를 꾹 참는 것도 같고, 아예 내 변덕이 당연할 줄 알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집에 와서도 말이 없었다. 왜.
아내도 기다리는 것이다. 아직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 아내에게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 삭히고 또 삭힌 후에 푹 곰삭으면 이야기할 생각이다. 나는 바보상자를 보면서도 마음은 온통 어머니의 그 봉투에 가 있었다.
“영덕아, 이젠 가서 자야지? 옴마가 뭘 하시는지 가 볼래?”
나는 부드럽게 아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이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눈은 다시 바보상자에 가서 멈춘다. 스포츠 하이라이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영덕이는 텔레비전 앞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해학 프로가 나오면 손뼉을 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천진스러운 모습에 매료되곤 한다. 만약 저 아이가 정상아라면 저런 천진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지 않는가. 어쩌면 내가 바보고 저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존재의 의미는 본질에 있고 진실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아들이 사랑스럽다. 자랄수록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의젓한 품위를 느낄 때가 더러 있다. 어머니를 그리 따르던 녀석이 어머니를 찾지 않는 점이 처음엔 참 서운했다. 저 녀석은 정도 못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 아이는 결코 할머니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쓰시던 장롱을 안아도 보고 문갑에서 빗이며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기도 하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염주며, 목탁 등, 어머니의 것은 무엇이든지 문갑 안에 꼭꼭 다져 넣었다가 혼자 꺼내 가지고 놀았다.
내 아이는 바보가 아닐지 모른다. 다만 표현을 잘하지 못할 뿐 속으론 깊고 넓은 생각을 가진 아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란 소설에 나오는 벙어리 주인공처럼 내 아이는 지극히 정상인에다 머리가 비상하게 좋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영덕아, 옴마 불러 보라니까?”
내가 재촉하자 아이는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누나의 방으로 향했다. 조금 있으려니 아내가 영덕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당신이 좀 재우지 않으시고예.”
“머 했노?”
“절에서 회지 발간한다고 글 하나 써 달라캐서예.”
아내가 언제부턴지 자잘한 글들을 쓰는 것 같았다. 문학소녀였으니 있을만한 이야기지만 아내가 쓴 글을 나는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아내도 굳이 나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 준 적도 없고 글을 쓴다는 암시조차 준 적이 없다. 뭘 그렇게 열심히 쓰느냐고 물으면 일기를 쓴다고만 했다.
일기, 나는 일기를 써 본 지가 까마득하다. 아마 학교 졸업과 동시에 일기하고는 담을 쌓았으리라. 아내는 육아 일기를 참 열심히 썼었다. 영진이 때는 더 열심이었지만 영덕이 때는 마음의 빚을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 갈등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일기를 나에게 보인적도 없으려니와 글을 쓰고 싶다고 비친 적도 없었다. 그냥 글 읽는 것이 좋아서 책을 사 보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아내는 문학적 소양을 꽤 지닌 여자였다. 그만큼 내가 아내에게 무심하게 살았던 것일까.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아내의 일상에 눈길이 가는 것은 또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를 일이다.
아내는 영덕이를 데리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안방에 들어와 장롱 안에 넣어 둔 그 봉투를 찾았다. 아내가 보자기에 얌전히 싸서 넣어 둔 것을 발견하고 기분이 묘해졌다. 아내는 이 봉투에 대해서 잊은 것일까. 왜 열어보자는 말을 않는 것일까. 그 봉투를 어디서 읽어야 할지 난감했다. 아내에게 아직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봉투를 들고 딸의 방으로 들어갔다. 딸이 쓰던 책상 위에는 아내가 쓰다 덮어둔 원고지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아내의 책과 원고지, 펜들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책상 위에 그 봉투를 놓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산다는 것이 때에 따라선 참 희한한 느낌이 든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꽤 철두철미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허점 투성이거나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 같다.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젠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내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는가. 자신이 없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도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남들처럼 외도를 해 본 적도 없고, 외도를 꿈꾸어 본 적도 없다. 늘 아옹다옹하면서 살아온 것 같은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가슴에 남는 것이 없다. 중년이 되어서야 철이 드는 것인지. 어머니를 여읜 탓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딸애의 연필꽂이 통에서 가위를 찾아 어머니의 봉투를 잘랐다.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책상 위에 쏟았다. 작은 공책 한 권이 나왔다. 까만 꺼풀이 입혀져 있는 공책은 두께가 그다지 두툼하지가 않다. 나는 조심스럽게 첫 장을 넘겼다. 하얀 봉투가 넣어져 있었다. 그 봉투 속에 든 것을 꺼냈다. 뜻밖에도 그것은 집 등기 문서와 땅문서였다. 등기 이전 명의가 내 앞으로 되어 있었다. 주소를 보니 어머니의 고향이었다. 등기 명의가 바뀐 날짜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바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날짜였다. 그 땅이 어떤 땅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갑자기 커다란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의 죽음은 스스로가 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겼다. 왜 그래야 했을까.
나는 봉투를 밀쳐놓고 공책의 다음 장을 넘겼다.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숨길이 가슴을 짓눌렀다.
“권섭아, 순심이를 만내고 왔느냐?”
첫 장에 어머니는 그 말만 적어 놓았다.
“예. 어머이.......”
나는 앞에 어머니가 앉아 있는 것 같아서 소리 내어 그렇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공책의 다음 장을 넘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과거를 알 만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라 해도 지금의 내겐 하등의 고통도 줄 수 없을 텐데도 어머니는 그 하고 싶은 말을 남기신 모양이었다.
어머니, 나는 가만히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소리치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지만 나이라는 것이 그것을 막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머니의 공책 다음 장에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권섭아, 너도 이젠 내 말뜻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홀가분하게 저 세상 가서 너거 아부지 만내고 싶단다. 너한테 짐만 지우고 가는 것이 마음 무겁다만 잘 삭여 듣거라. 영덕이를 절에 둘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가 자리를 마련했다. 그 아이가 살 터전은 그곳인 것 같다. 조상님이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가거라. 너도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지? 땅문서, 집문서를 봤으리라. 가거라.”
그다음은 독백처럼 쓴 어머니의 편지가 있었다.
나는 너에게 죄인이다. 어미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너를 낳은 그 순간부터 나는 여태껏 마음 편히 자 보들 못했다. 너도 짐작은 했겠지만 너는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었다. 내가 왜 너를 낳아 길렀는지 그 마음은 자식을 가진 여자만이 알 수 있으리라. 제 뱃속에서 자라는 씨가 비록 살인자의 씨라 해도 어미는 그 아이를 거부할 수 없다. 사랑은 본능이니까. 너를 내 뱃속에서 키우며 제발 없어져 주기를 기도한 적도 수 없이 많다. 요즘처럼 인술이 발달하고 돈이 흔했더라면 너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너를 낳도록 애쓴 사람이 바로 나의 남편이었다. 지금도 나는 너를 낳도록 해 준 그 사람에게 감사한다. 너를 기르면서. 해바라기처럼 쑥쑥 자라는 너를 보면서 나는 산다는 것의 기쁨을 알았고 너로 인해 여자 혼자 몸으로 살아야 했던 그 험한 세월을 이겨 나갈 용기도 얻었다. 네가 있어서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너는 정말 티 없이 맑은 아이였으니까. 사랑의 결정체는 수정처럼 맑다는 말을 나는 너로 인해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살았다. 영덕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 아이를 본 순간 나는 내 마음속에 숨어 있던 죄의식에 다시 붙잡혔다. 근친상간에서 태어난 아이는 기형이거나 바보라는 말을 너도 알고 있으리라. 내가 너를 낳을 때 그 천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었다. 그런데 너는 참 잘 생기고 영리했었다. 떠도는 소문에 불과했다고 나 자신은 속으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부처님께서, 천지신명께서 나를 가엽게 여기시어 탈 없이 네가 세상에 태어났다고 나는 믿었었다. 그것이 대물림으로 나를 괴롭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사랑했다. 첫 정을 사촌 오빠에게 느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춘기 때 이성을 느끼는 것은 남이 아니라 가까운 친척이거나 형제자매 사이라는 말을 너도 알고는 있으리라. 어린이 성폭행의 주범이 가족이거나 가까운 친척이거나 이웃에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너도 신문이나 잡지 언론을 통해 알고 있으리라. 어찌 보면 나도 그 피해자일지 모른다. 다만 나 역시 너의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조금 다를까.
예닐곱 살 적에 나는 오빠 앞에서 속옷을 벗었다. 우린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놀이었다. 나뭇짐 새에서, 대밭 속에서 반주 깨미를 살면서, 큰 집 언니들이 우리 둘이를 뉘어 놓고 그 짓을 시켰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에 눈도 뜨기 전에 나는 오빠의 손길에 길들었던 것이다. 너도 사춘기를 격어서 알 것이다. 내가 잠든 사이 네가 나의 치마폭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더듬을 때 돌아눕는 척하며 너를 꼭 안아주면 너는 새큰거리면서 부끄러워했었지. 이성에 눈 뜬다는 것은 본능이다. 처음엔 어머니에게서 그다음에는 누나나 여동생에게서 그러다 윤리 도덕심에 눈을 뜨게 되고 타인의 이성에 끌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억압받지 않고 사랑할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겠니.
나는 부끄러웠다. 나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어린 시절의 삽화를 어머니는 환히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속옷을 몰래 끄집어내어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다가 그것이 어머니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그다음엔 금이 이모의 속옷을 훔쳤던 기억이 났다.
중학교 일 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금이 이모의 방은 대문간 옆에 있었다. 밤일을 하는 금이 이모는 새벽녘에 돌아와 속옷을 빨아 마당에 널곤 했다. 빨간 삼각팬티였는데 가정집 아녀자들은 그런 속옷을 입지 않을 때였다. 하필이면 그날이 일요일이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시장에 나간 뒤였다.
“내 빤쯔가 어디 갔어? 어떤 놈의 짓이야.”
금이 이모는 펄쩍펄쩍 뛰면서 비좁은 셋집 지붕이 들썩거릴 만큼 난리를 쳤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질까 싶어 문밖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밖의 동정만 살폈다.
“속옷 하나도 무서버서 빨래 줄에 널 수가 없구먼. 어떤 창아리 없는 것들이 이 짓을 하는지 몰라. 잡히기만 하모 좆을 빼서 부산 앞바다에다 헹굴 끼다.”
“인근 불량배들 짓이것제. 낮으로는 집이 빈 깨내 그런 갑다.”
“사춘기 격는 머스마들 짓일 수도 있거마. 혹시 아나. 우떤 놈이 그 빤쯔 입고 도리짓고땡 하로 갔는지.”
“색시 빤쯔가 유별나니께 색시 꺼만 훔치는 갑다. 말라꼬 손바닥만 한 그걸 줄에 거노. 남정네들이 군침 돌고로 해 놓고는 딴 소리는.”
“우리 서방이 내 보고도 그런 빤쯔 입고 외다리 꼬아 보라꼬 보채싸서 내 색시 보고 한마디 할라 캤더마 잘 되얏네. 포시 좀 하고 댕기지 말았시모 좋것소.”
평소에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은실이 엄마라는 여자가 거기 모인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다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은실이 옴마는 내 하고 웬수 진 일 있소? 내가 은실이 아부지한테 꼬리라도 친 거 맹키로 말하네. 나 참 더럽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그 심뽀로 본께 내 빤쯔 싱키 간 거 같네.”
“머라꼬? 말이모 단 줄 아나. 이 놈 저 놈 코 다 흘린 것을 내가 훔칫다고? 니 말 다했나? 이 잡년이 내를 우찌 보고.”
급기야는 두 여자가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졌었다.
“이러지들 말어. 세근머리가 없기는 둘 다 똑 같거마.”
주인 할머니가 나서서 말렸다.
“금아! 이리 안 들어오나?”
월남 아저씨의 고함 소리에 금이 이모는 질겁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 저 방에서 나와 구경을 하고, 수돗가에 앉아 말거리를 하던 아주머니들도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은실이 어머니는 입을 삐죽거리다가 가래침을 금이 이모네 방 쪽을 향해 따악 소리를 내며 뱉었다.
나는 그 속옷을 제대로 만져 보지도 못하고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다가 신문지에 똘똘 말아 뒷간에 가 빠뜨렸다.
내 사춘기는 그 사건으로 끝이 났었다. 더 이상 여자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어머니께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나는 사춘기를 공부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