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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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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16. 2022

11.  설밑에서

 설밑에서     



 설은 내게 스트레스다. 두 애가 와서 다 한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말이 쉽지 준비물을 챙겨놔야 설을 쇠지. 쌀을 씻어 물에 담갔다 건져 방앗간에 갔다. 방앗간도 썰렁하다. 모두 노인이 되니 가래떡을 맞추거나 조금 사서 쓴다. 코로나 덕에 설 차례를 없앤 집도 많다고 들었다. 대목장도 썰렁하다. 가래떡을 뽑고 곰거리를 샀다. 한우 곰거리는 비싸기도 하지만 노인과 애들이 좋아해서 시작해놓고 후회한다. 마당가에 솥을 걸었다.  


 이번 설에도 시아버님은 또 우리를 시험하고 계신다. 요양원 들어가시겠다고 하시더니 막상 서류 준비를 하자 가시기가 싫어지신 거다. 해마다 명절 때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삼 년 전인가. 뇌경색으로 수술을 하신 시어머님을 집으로 모신 후 아버님은 힘들어하셨다. 그때도 그랬었다. ‘요양원에 갈란다.’ 막상 입소할 날짜가 닥치자 안 가시겠다고 했다. 그다음 해는 요양병원에 가시겠다고 해서 또 서류를 꾸며 입소를 했지만 열흘도 못 견뎌 퇴원하셨다. 


 이번에도 맏아들이 못 온다는 소식에 화를 못 참아 요양원에 가시겠다고 했다. 농부가 뜻대로 하시라고 서류를 꾸며 내밀자 안 가겠다는 말씀도 못하시고 끙끙 앓고 계신다. 어제 아이들과 끼니를 챙기러 갔더니 요양원에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집으로 오시겠단다.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일단 요양원 입소하면 당신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다. 자식들이 누구든 두 노인을 모시겠다고 나설 줄 아셨는지. 며느리들도 모두 노인이고 환자다. 기저귀 차는 치매 노인과 당신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노인의 뜻을 어떻게 받들 수 있겠나. 

 

부모를 모시지도 않는 자식들이 어찌 내 마음을 알까. 한때 나도 할 만큼 했다고 못 모시겠다고 했지만 지척에 계신 노인을 외면할 수 없어 가슴앓이한다. 내려놓으라고? 말은 쉽다. 농부가 모시게 두라고? 농부는 나랑 안 사나? 시부모님 때문에 속상하면 그 여파가 어디로 가나. 부부 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 모신 적 없는 자식들이라고 편할까마는 나는 왜 하루가 여삼추 같아야 하는가. 불만이 목구멍까지 찬다.


 두 노인은 ‘국이 됐네.’하시면서 곰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 드신다. ‘아버님, 좀 힘드시더라고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잖아요.’그 말을 할 수가 없다. 만약 내가 그 말을 하면 당장 내게 의지하시게 된다. 내 몸도 건사를 못해 쩔쩔매는 입장이다. 만약 두 노인을 요양원에 모시게 되면 마음이라도 가벼워질까. 대신 ‘아버님, 며느리는 미워도 손자 손녀는 예쁘지 예?’했다. ‘너거가 오니 내가 웃는다.’는 노인은 며칠 새 살이 쏙 빠졌다. 오래 사시는 두 노인도 안쓰럽고 몸이 망가진 나도 안쓰럽다. 그 불통이 자꾸 농부에게 튄다. 


 두 아이가 노인들 밥을 차려드리고 오고 기쁨조 노릇을 하니 그나마 낫다. 노인은 요양원 가시겠다는 말을 거두지 못해 속병을 앓으신다. 자식들 중 누구라도 그냥 이대로 사시는 게 낫다고 하면 두말없이 ‘그러 마’하실 노인이다. 노인을 너무 잘 아는 나는 누가 ‘시어른 요양원 가시겠다더니 가셨소?’ 물으면 ‘요양원 입소하신 후에야 실감 날 것’이라고 우스개를 한다.  


 가족 모두 모여 앉아 가래떡을 썰고, 아들이 만들어주는 이름도 생소한 스페인 요리에 와인을 마시고 세 사람이 현 정치와 인문학 토론을 벌이는데 나는 누워서 귀만 연다. 귀 여는 것도 피곤해 잠이 든다. 임인 년 소원이라면 오래 살지 않고 잠자듯이 저승길 갔으면 하는 거다. 꿈에서조차 ‘내가 죽으면 저 두 노인 어쩌나. 농부가 힘들어 어쩌나.’한다. 두 애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내려놓고 엄마 몸만 생각하란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결국 노인은 설날 아침 선언하신다. 요양원 안 가시겠다고. 그럴 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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