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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19. 2022

12. 오일장 장돌뱅이 하기

 오일장 장돌뱅이 하기   


  부산 지인이 과메기랑 생선을 한 박스 보냈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학부모로 만났으니 꽤 오랜 인연이다. 손풍금을 연주하는 멋진 남편과 아내는 잊을만하면 사람과 선물이 오고 소식이 온다. 지난가을 아들이 단감 한 박스를 부탁했다. 독일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며. 부산지인의 딸이었다. 단감 한 박스 보낸 것이 배보다 배꼽이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과메기는 생미역에 쪽파에 김으로 싸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마침 오일장이다. 딸과 함께 장 보러 갔다. 시장은 장사꾼만 전을 벌리고 손님은 별로 없다. 파리만 날리는 저잣거리를 돌아 단골 채소전에 갔다. 허리가 구부러진 주인이 반색을 한다. 

 

 와 그리 안 보였노? 동상이 보고 싶어서 장날마다 지달렸다 아이가. 머 좀 주꼬?

 성님, 저 보고 싶었어요? 그사이 회춘 약 드셨나 봐. 건강해 보여요.

 

 나도 반색을 하며 장단을 맞춘다. 마침 싱싱한 생미역이 있다. 미역과 브로콜리를 달라했더니 손 큰 주인은 덤이라며 푹푹 퍼준다. 인정이다. 미리 알아서 많이 챙겨주기에 가격은 깎지 않는다. 어떤 때는 너무 많다고 덜어내놓고 오기도 한다. 오일장 장돌뱅이로 노인이 된 채소전 할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제 장사 접고 편하게 사시면 될 텐데. 배운 도둑질이라 집에 있으면 몸이 더 아프고 시간이 안 간다며 장돌뱅이가 체질이라 하신다. 

 

 오일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던 아주머니가 있다. 지난해까지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셨다. 한동안 안 보이기에 수소문했더니 무릎 인공관절 하시고 뇌경색 수술하고 요양원에 계신단다. 평생을 오일장 돌아다니며 생선장수로 자식 뒷바라지하고, 집도 멋지게 짓고, 논밭도 샀다는 아주머니는 병이 나서야 생선 장사를 거두었다. 인심도 후해서 생선 한 토막 사면 한 토막은 선물이라며 주시던 인정을 어찌 잊으랴.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으신다. 며느님께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생선을 파시던 아주머니도 채소를 파시는 아주머니도 천직일까.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장삿길에 나섰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천직이 되어버린 사람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뿔에 걸려도 오일장을 접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 오일장은 건재한다. 

 

 오랜만에 들린 오일장에서 딸의 손을 잡고 미역과 브로콜리를 사고 옷 전에서 앞치마를 사고 나오는데 뭔가 허전하다. 가만히 보니 장날마다 보이는 장꾼이 안 보인다. 채소전 옆에 반찬을 팔던 예쁜 장꾼도 없고, 생선장수 부부도 안 보인다. 설 대목에 파리하던 아저씨 모습을 봤는데. 아프신가. 대신 그 자리에 국화빵을 굽는 낯선 아저씨가 있다. 오일장만 서면 보이던 장사꾼이 안 보이는 것도 쓸쓸하다. 천직을 쉽게 버리지는 못할 것이고 몸이 아프던지, 어떤 사고가 있었던지. 사연이 있기 때문에 난전 자리를 남에게 내 준 것이리라. 

 

 엄마, 생선회 뜨다 먹을까? 할아버지 때문에 꿀꿀한 기분인데 한 잔 어때?

 

 어미 마음은 딸이 알아준다. 시아버님이 당신 화를 못 참아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고 요양보호사가 전화를 했었다. 강한 성품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노인도 노인이지만 나는 그 노인을 받들어 모실 자신 없는 며느리다. 내가 울적해하자 딸은 ‘엄마, 어쩔 수 없잖아. 엄마가 간다고 할아버지가 달라질 것도 아닌데 모르는 척 해.’ 어미를 위로하며 오일장 장돌뱅이를 하자고 권했었다.

 

 장날만 오는 생선 횟집에도 손님이 없다. 밀치와 감성돔을 섞어 포장을 부탁했다. 생선회 가격도 많이 뛰었다. 활어도 엄청나게 올랐단다. 물가는 고공행진이고, 오미크론은 확산일로에 있고, 세계 3대 석유 보유국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쟁 직전이다. 세상도 현실도 난해한 지도 같다. 덤으로 매운탕 꺼리를 받았다. 우리 가족은 생선회보다 내가 끓여주는 매운탕을 더 좋아한다. 바퀴 달린 시장 보따리를 가득 채우고야 오일장을 나섰다. 장돌뱅이 하다 보니 꿀꿀하던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래, 어쩔 수 없잖아. 그냥 이대로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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