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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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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09. 2022

10. 겨울바람

 겨울바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서 행복하다. 나는 그 말을 무심코 쓴다. 시골 중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로 전전하던 처녀시절에는 자취방 삶이 싫었다. 공직에 있을 때도 옮겨 다녀야 하고 새로운 터전에 정을 붙여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늦은 결혼을 하고 농촌에 정착했을 때는 이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늘 안주하는 삶을 원했던 것 같다. 옮겨 다니는 것에 진력이 났던 것일까. 성격 자체가 동적이지 못하고 정적이라서 그럴까. 

 

 시댁에서 분가할 때도 싫었다. 시부모님과 사는 것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드센 아버지 밑에서 기를 못 펴던 남편은 자립하고 싶다고 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분가를 하자는데 반대할 수 없어 빈손으로 따라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옳았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있을까. 이혼을 했거나 직장을 잡아 나갔거나 하지 않았을까. 혼자 사는 것에 진력이 나서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을 찬성했지만 살아보니 아니었다.  

 

 분가를 했지만 시댁 이웃이었다. 시어머님은 날마다 호출을 하셨다. 내가 할머니 소릴 들으면서 그때 시어머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불만도 많았다. 내 살림 살기도 힘든데 시댁 살림까지 도와야 하는 것이. 남편에게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같이 사는 게 편할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었다. 자그마치 6년이란 세월을 며느리가 살림을 살아주다 분가를 했으니 시어머님은 오죽 힘드셨을까. 자연스럽게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며느리를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름을 당하는 며느리 입장은 생각이나 했겠나. 당신 힘든 것만 생각했지.

 

 그 세월을 자그마치 36년째 살고 있다. 금세 돌아가실 것처럼 굴던 두 어른은 백수를 바라본다. 우리 부부는 손자 손녀 볼 나이도 한참 지났지만 남매는 여전히 미혼이다. 딸은 포기해도 아들은 장가를 들었으면 좋으련만. 둘 다 혼기가 꽉 찼다. 삶이란 내 뜻대로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쓸쓸해질 때 있다. 자식이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가 생기면 또 다른 살맛이 있다고들 하지만 내 몸이 힘들어지자 손자 손녀 키워줄 자신도 없다. 아직도 나는 며느리다. 지척에 두 어른이 계시기에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부터 무겁다. 솔직히 이젠 두 어른이란 짐을 벗고 싶다. 나도 우리 애들에게 짐이 되는 시점인데 두 어른까지 있으니 집에 오는 애들인들 마음이 편하겠는가.  

 

 작은 언니가 지나는 길이라며 들렸다. 아랫마을 찻집에 갔다. 언니도 노인 티가 난다. 혼자 외롭지 않게 사는 방법이 뭘까. 지금은 퇴직한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지만 무릎이 아프단다. 퇴행성관절염이 왔단다. 다리가 아파 걷기가 힘들어지자 우울증이 오는 것 같단다. ‘내가 다리가 아파보니 네가 얼마나 힘든지 알겠더라. 절뚝거리면서도 농사일하고 시부모 돌보는 걸 보면서도 예사였는데.’ 자신이 당해봐야 안다는 말을 떠올렸다. ‘언니, 늙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해. 부끄러워할 것 없어. 난 하도 오래 절뚝거리며 살아서 아무렇지도 않아. 수술하고 인공관절 한 사람도 아프다고 하더라.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언니는 치료 잘하고 몸 사리면서 살아.’ 나는 언니를 위로한다. 

 

 언니랑 헤어져 집에 오는데 겨울바람이 왜 그리 차가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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