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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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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05. 2023

 어떤 마무리를 원하는가.

어떤 마무리를 원하는가.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요 근래 어머님이 음식을 안 드시려고 한단다. 입맛 돌아오는 약을 처방했는데도 음식을 거부한단다. 입맛이 까다로운 어른이다. 한 주 전에 큰아들 내외, 막내아들 내외가 다녀갔으니 마음병이 도졌나 보다. 속내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머님도 생각할 것이다. 치매환자에 뇌수술 후유증으로 언어기능이 상실됐지만 완전히 정신 줄 놓지는 않았다. 말귀 다 알아듣는단다. 알겠다며 면회 신청을 했다. 점심을 준비해 가겠다고 했다. 


 삼계탕을 끓여 어머님을 뵈러 갔다. 보름 만에 본 어머님은 살이 많이 빠지셨다. 음식을 못 드시면 뼈와 가죽만 남을 텐데. ‘엄니, 저 보고 싶었구나. 며칠 전에 형님과 동서 댕겨가기에 한 주 늦추어 왔는데. 저 자주 올게요. 안심하시고 자 죽 드세요.’ 나는 애교를 부린다. 어머님은 죽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다 나와 농부를 번갈아 바라봤다. 농부가 숟가락으로 떠먹이자 잘 받아 드셨다. 죽 한 그릇을 조금 남기고 다 드셨다. 옆에서 지켜보던 요양보호사가 신기해한다. 마음병이었을 것이다. 


 어머님이 웃는다. 심심하게 해 간 무짠지도 요구르트도 잘 드신다. 입에 맞는 새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밥을 드셨던 어머님이다. 내가 만든 음식에 길든 어머님이기도 하다. 삼계탕이 입에 맞았다는 뜻이다. 이제 밥을 거부하지는 않으시겠지. 일단 죽을 드셨으니 안심이다. ‘엄니, 죄송해요. 그래도 저는 엄니가 살아계셔서 좋아요.’ 어머님의 등을 쓰다듬었다. 어머님이 빙그레 웃는다. 마음이 풀린 표정을 보니 내 마음도 풀린다. 걱정했던 것보다 나아서 다행이다. 


 우리 부부의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말이 없다. 어머님 모습이 내 모습이 된다. 나도 오래 살면 요양원에서 어머님처럼 죽음만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싫다. 어떻게 죽음 준비를 해야 하나. 말은 쉽다. 독한 맘먹고 곡기 끊으면 된다. 곡기 끊는다고 하루아침에 죽는 것도 아니다. 병원으로 옮기면 강제로 영양보충 할 것이고 산소 호흡기 끼울 것이고, 영양제를 투여할 것이다. 숨만 붙어 있다고 사람인가. 사람 구실 할 수 없으면 죽어야 한다. 연명치료 거부 사전 의향서도 받아 놓았지만 안심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을 원하나. 국가에서 자발적 안락사를 채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죽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다. 국가에서 못 해주면 자식에게 단호한 대처법을 마련해 놔야 한다. 법적 효력이 있는. ‘내가 곡기 끊으면 병원으로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억지로 음식이나 물을 먹이려고 하지 마라.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해 먹을 것을 요구하더라고 절대 듣지 마라. 내 죽을 자리에 가만히 두어라. 마지막 유언이다.’ 그래 놓는다고 자식이 그대로 이행할까? 효심 깊은 자식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는 일은 아닐까.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아름다울 수 없다. 어떤 죽음이든 고통은 따른다. 남은 자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치부해야 할까.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영화 『노트북』이나『어웨이 프롬 허』,『아무르』에서 보는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을까. 『아무르』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치매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병이고 아름다운 마무리와 거리가 멀다. 오랫동안 시부모님 곁에서 노인의 대열에 들어선 우리 부부로서는 죽음에 대해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살아계신 어머님이 좋다. 조금씩 건강과 정신이 나빠져 가는 어머님을 뵐 때면 마음이 무겁고 힘들지만 아직은 뵐 수 있어 좋다. 어머님을 위해선지, 나를 위해선지, 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인지, 면회만 가면 뵐 수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살아계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부부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남은 나날이 작별의 시간이라는 사실만 인식한다면 편안한 죽음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잘 살았다. 잘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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