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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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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31. 2023

  사랑의 선물을 기다리며

사랑의 선물 을 기다리며

    

  제주에 계신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내가 말이야. 오늘 선물을 보내려고 우체국을 가는데. 혼났어.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얼마나 억수같이 퍼붓는 빗줄긴지. 눈도 어둡지, 길도 안 보이지, 낯선 길이지. 혼났어. 진짜. 내 승용차도 아니고 딸의 오래된 승용차를 끌고 나섰잖아. 나는 내가 오가는 길만 기억해. 우체국은 몇 번 가 봐서 알아. 빗속을 뚫고 운전대를 꽉 잡고 가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몰라. 겨우겨우 우체국에 닿았는데 글쎄, 세트가 내려져 있는 거야. 토요일인가 했더니 아니야. 금요일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싶어 문 앞에 가 봤더니 종이가 한 장 붙어 있더라. 다른 곳으로 우체국을 이전했다네. 난감하더라. 그래도 어쩌겠어. 나선 걸음이니 선물을 보내야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고 말이야.”


  젊은 사람도 비가 쏟아지는 날은 운전하기 어려운데. 팔십 어른이 얼마나 용을 쓰셨을까. 선물을 부치려고 나선 길이었단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시지 그랬냐고 했다. 일단 마음먹고 나선 길이니 해결해야 했단다. 어떤 선물인지 모르겠지만 그 선물에 깃든 선생님 마음이 더 큰 선물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물이란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라 급할 것도 없다. 비가 그친 후 느긋한 시간에 보내도 되련만 빗길을 뚫고 고생고생하며 우체국을 찾는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선물보다 선생님 마음이 더 큰 선물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선물이든 선물에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담긴다.  

 

 “선생님, 오늘 일을 글로 써 놓으세요. 재밌어요. 폭우를 뚫고 우체국 찾기를 하는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해요. 많이 힘드셨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셨으니 다행입니다. 소설 한 문장을 읽는 기분입니다. 방 따뜻하게 해 놓고 푹 쉬세요.” 

 

 선생님과 통화를 하는 내내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소용돌이치는 제주 바다가 보이고 하얀 포말이 바위를 치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은 제주 살이 일 년이 넘었다. 제주는 선생님께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까. 오랜 이민 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다. 고국에 돌아와 일 년이 넘도록 주저앉을 줄은 몰랐다 하신다. 건강이 악화 되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시는 줄 안다. 

 

 “내가 말이야. 이번 달 말에 수필집이 나와. 조촐하게 출판기념회를 할 생각인데. 멀리 있는 사람은 초대를 할 수 없어. 여기 지인들만 부를 생각이야. 이해해 줘.”

 “아니에요. 선생님, 수필집 상제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자네는 진짜 문인이야. 서울 갔을 때 말이야. 거기 어디 시장 근처를 지나는데 백화점이 있더라고. 구경삼아 들어갔어. 그때 딱 생각나는 사람이 있더라. 옷을 몇 벌 골랐지. 선물하려고. 다음 주 화요일 쯤 도착할 거야. 마음에 안 들면 집에서 허드레옷으로 입어. 체격이 맞을라나 몰라서 걱정이긴 한데. 그냥 입어. 그 옷 보내려고 우체국 찾다가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만 알아주면 돼.”

 

 아이고, 이 일을. 실컷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선물 받을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이다. 나는 선생님께 무엇으로 보답하나. 글만 열심히 쓰란다. 수필과 잡문의 경계 없이 글을 쓰는 것에 천착하는 나를 예쁘게 봐주시는 선생님,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출판 기념회 때 마음 같아서는 제주까지 달려가고 싶지만 나 혼자 길나서기 어려우니 어찌 하리요. 

 

 “선생님, 저는 보답할 길이 없는데. 어쩌면 좋아요.”

 “좋은 글 열심히 쓰는 게 보답이야. 문인은 글을 써야 돼. 자네처럼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문인이야. 이름만 문단에 올려놓고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많잖아. 나는 글을 쓰는 자네가 좋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나는 온종일 구름 위를 걷는 듯이 들떠 있었다.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은 더 좋은 글을 더 열심히 쓰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생색내기에도 서툴고 사람관계도 서툰 내게 글은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다. 비록 정제되지 않은 글이라 해도 내 마음에 진솔한 글쓰기를 한다. 그 마음을 알아주시는 선생님이라 더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 간절하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글밭 누비셔야 해요.’ 나는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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