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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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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23. 2023

  우리 모두 알차고 평화롭기를

우리 모두 알차고 평화롭기를    


 

  농부는 봉사활동을 떠났다. 목수 일이 지천인 명상 센터에 갔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과 유대는 끈끈하다. 방석 깔고 앉아 있다고 명상이 아니다. 들숨날숨을 바라본다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도 아니다. 내 마음에 낀 구름을 제거하는 것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어떤 아낙이 자꾸만 살이 빠진다. 고민이 가득한 얼굴은 밝지 않다. 무슨 고민이 저리 많을까. 그냥 내려놓을 수는 없을까. 나는 날마다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 미안해지는데 고민스러운 얼굴을 보면 위로하고 싶다.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할까. 각자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유야 많을 게다. 부부 문제, 자식문제, 돈 문제, 고부간의 문제, 기타 등등 일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한두 개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비밀도 있을 거다. 어쩌면 사소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서 시작된 고민일 수도 있다. 내게 주어진 것이 짐이라는 것을 알면 그 짐을 벗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벗어버릴 수 없다면 지고 가면 된다. 애쓸 필요는 없다. 살아가는 일은 짐을 지고 가는 일이다. 무겁든 가볍든 내 생애에서 진 짐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이미 운명이란 짐을 지고 나오지 않았나. 

 

 얼마 전 군청에서 전화가 왔었다. 쥐꼬리만큼 받은 유산이 재산으로 잡혀 의료급여가 바뀌었단다. 의료급여 적정 수준에서 겨우 이십만 원 정도 웃돌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단다. 어머님 계신 요양원에서도 전화가 왔다. 4월부터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요양비와 병원진료비, 약값이 비싸진단다. 군청담당자에게 어머님이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세대주가 되든가. 어머님만 따로 지역가입자로 등록해야 한단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을까. 의료보험 조합에 문의를 하고 아들에게 의논을 했다. 아들은 조모와 부모까지 부양가족으로 등록했다. 아들이 의료보험을 많이 내게 생겼다. 대안학교 교사의 봉급에서 의료보험료가 높아지면 아들이 힘들지 않을까. 차라리 농부가 지역가입자로 등록하여 나와 시어머님을 부양가족으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다시 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들은 당분간 그대로 두란다. 이번 달 의료보험료 나오는 것 봐서 이야기하잔다. 할머니 요양비도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 알아보고 결정하잔다. 아들은 의료보험료가 턱없이 높게 책정되면 바꿔야 하지만 조금 올랐으면 그대로 두는 게 나을 것 같단다. 어차피 시어머님 몫은 국가연금으로 해결된다. ‘그래, 네가 하자는 대로 하마’ 대답은 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나도 매달 들어오는 기초연금보다 매달 지출하는 생계비가 더 많으니 불필요한 지출은 줄여야 할 것 같다. 불필요한 지출의 항목에 어떤 것을 넣을까. 매달 후원금이나 회비 명목으로 나가는 돈부터 끊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겹치면 삶의 고충이 된다. 나는 생각하는 것이 자꾸 싫어진다. 머릿속을 텅 비우고 사는 게 좋다. 순리대로 풀리겠지. 내 복만큼 살겠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가겠지. 사람은 각자 복만큼 산다. 어떤 어려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 자포자기하지  않으면 살 길은 언제나 열린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별 고비 없이 무난한 것 같다.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 짤 때도 있었지만 그만한 고충 없이 사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이보다 더 힘들 때도 살았는데. 그런 말을 쉽게 한다. 고민하지 않고 살기, 현실에 순응하고 살기, 낙천적으로 살기, 생각이 짐이 되면 내려놓아버리기. 그런 마음으로 산다. 

 

 나는 그녀에게 별 위로도 안 될 몇 마디를 한다. ‘힘들다 생각하면 자꾸 힘들어져요. 고민한다고 현실이 달라질 것도 아닌데 놓아버리세요. 그러려니 해야 내가 편해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기도 하잖아요. 내 몸 축나면 나만 더 힘들어져요.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남들도 다 힘들게 살아요. 사는 일이 그렇잖아요.’ 오지랖 넓은 말을 하고 내가 부끄럽다.

 

 농부에게서 문자가 왔다. 잘 도착하여 목수 일 열심히 하고 있단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몸이 힘들고 고단해도 마음은 즐겁다. 고단한 노동에서 벗어나 조용히 참선에 드는  시간을 사랑하는 농부다. 농부에게 주어진 시간이 알차고 평화롭기를. 내게 주어진 시간도 알차고 평화롭기를. 우리 모두 알차고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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