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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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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17. 2023

 날마다 채식만 하는데

날마다 채식만 하는데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 ‘우리 너무 잘 먹는 것 같지?’ 물었다가 ‘뭘 잘 먹는데?’ 농부의 말에 ‘완전 무공해 자연산만 먹잖아. 오래 살겠다.’했더니 농부는 ‘날마다 풀만 먹는데?’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채식만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절로 채식하니 얼마나 좋아.’ 나는 또 너스레를 푼다. 식탁에는 동네 할머님이 주신 것으로 만든 시금치나물, 풋마늘 장아찌, 농부가 주변에서 뜯어다준 취나물, 텃밭 가에서 딴 가죽나물, 머위나물, 파김치 등등. 푸성귀만 잔뜩 차려진다. 가끔 된장찌개도 놓이고 달걀도 굽지만 육 고기 없는 밥상이기 일쑤다. 


 발품만 팔면 먹을거리가 지천인 봄이다. 며칠 전, 취나물을 뜯어볼 요량으로 산비탈에 올라가려다 포기했다. 비탈을 돌아다니다 사달이 나면 나는 뒷전이고 농부가 힘들어진다. 겨우 집 주변에서 뜯어온 취나물 한소쿠리를 손질하며 바튼 숨을 쉬었다. 그 뒤부터 농부는 취나물 노래하기 전에 뜯어다 준다. 오늘 아침에는 어린 제피 순을 한 소쿠리 뜯어다 준다. 제피 순에 티를 골라내고 씻어서 소금에 살짝 절였다. 향이 어찌나 강한지 입안이 얼얼하다. 물과 소금, 양조간장을 약간 짜게 섞어 팔팔 끓인다. 그 물을 식혀 제피 순에 붓는다. 단 것을 즐기면 설탕이나 매실 액을 첨가해도 된다. 고추장에 버무려도 된다. 일 년 내내 밑반찬으로 제격이다.  


 제철에 나는 먹을거리는 보약이다. 농부는 옻순도 꺾었다. 옻이라면 겁난다. 나는 옻을 탄다. 나는 멀찍이 서서 구경꾼이 된다. 매년 이맘때면 옻순을 따서 동네 친구들과 술잔치를 한다. 옻을 타지 않는 사람은 옻순이 참 맛있단다. 옻은 농부가 먹는데도 옻이 오르는 사람은 나다. 옻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은 옻이란 말만 들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인다던가. 그 정도는 아니다. 심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신기하게 남매도 옻순을 먹는데 괜찮단다.  


 밑반찬 몇 가지 만들어 놓고 요것조것 먹고 싶은 것 꺼내는 재미도 잠깐이다. 농부가 기운이 없단다. 아프다는 말을 자꾸 한다. 도끼나물도 마련해야겠다. 도끼나물이란 육 고기를 절간에서 이르는 말이다. 스님도 아프면 육 고기로 단백질 보충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 가족은 채식으로만 살 수 없는 체질을 가졌나 보다. 가끔 육 고기나 생선도 먹어줘야 한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나는 자꾸 생선비린내가 싫다. 밥상에 생선 올리는 일이 뜸하다. 끼니마다 쇠고기, 생선이 빠지면 화를 내셨던 시아버님 생각이 난다. 노인이 될수록 단백질 보충이 필수다. 


 농부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도끼나물 좀 사야겠지?’ 들은 척도 안 하고 삽짝을 나간다. 안 들렸겠지. 보청기를 끼지도 않고 나갔다.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안 들리고,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오고, 잘 먹는데도 기운이 빠지는 것, 이게 다 노화 현상이다. 슬기롭게 받아들이고 처신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우리 운전면허증 반납하게 되면 여기서 살겠나?’ 승용차라는 발이 없으면 동네 내려가기도 힘들다. ‘딸이 집에 들어오고 싶다 하잖아. 농사꾼으로 살고 싶다는데. 오라 하지 뭐.’ 대수롭잖게 대답하자 농부는 웃는다.


 오늘은 수영 갔다가 마트에 들러야겠다. 도끼나물이라도 사다 대령해야 농부의 불만이 수그러질 낌새다. 고된 농사일 할 때는 날마다 한 끼는 육 고기를 식탁에 올려야 했었다. 농사일 수월해지니 먹을거리도 수월해져 나는 쾌재를 부른다. 가끔 농부가 밥상을 차리기도 하니 노후 대책은 잘 되어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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