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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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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10. 2023

 칼국수 해 먹다.

칼국수 해 먹다.   

  

  저녁때가 됐다. 농부가 칼국수 해 먹잔다. 한 끼 먹자고 설거지 거리 많은 음식을 해야 하나. ‘저녁 먹지 말자.’ 심드렁하게 대꾸했더니 ‘내가 할게. 밀가루는 있나? 가르쳐만 줘라.’한다. 그래, 비 오고 흐린 날이다. 기분도 축 쳐지고 울적한데 칼국수나 수제비 생각도 났다. 따끈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긴 했다. 재료준비를 했다. 양푼에 적당량의 밀가루를 붓고 물을 부어 뒤적였다. ‘내가 반죽할게’ 농부가 팔을 걷어 부친다. 달걀도 하나 풀었다. 농부는 큰손에 힘만 잔뜩 넣어 밀가루 반죽을 하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팔에 힘 빼고 치대 봐. 손바닥과 손가락에 다 붙이네.’ 잔소리를 하자 ‘물이 너무 많다. 밀가루 더 넣어야겠다.’ 오히려 큰소리다. 

 

 내가 하겠다고 해도 자기가 한단다. 그 사이 육수를 우리고 칼국수에 들어갈 재료를 썰어 놓는다. 농부는 사방에 밀가루 가루를 날리면서 혼신을 다한다. ‘일거리만 잔뜩 만들어요. 설거지하기 싫은데.’ 툴툴거려 봤자 내 입만 아프다. 결국 밀가루 반죽 양푼을 빼앗아 마무리 짓고 반죽을 몇 가닥 떼어 작은 밀가루 공을 만든다. 큰 오븐을 닦아 식탁에 펴 놓고 밀가루를 얇게 깐다. 둥근 밀대를 찾아 헤맨다. 하도 오랫동안 집에서 칼국수를 만들지 않아 둥근 밀대를 어디 치워놨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다듬이 방망이를 쓰곤 했었다. 그 다듬이 방망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잊고 살았다. ‘이거 됐다.’ 농부가 흔든 것은 단단한 보온병이다. 

 

 둥근 보온병의 쓸모가 새로 생겼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맞다. 보온병으로 밀가루 공을 얇게 펴면서 그 위에 밀가루를 살살 뿌려준다. 몇 번을 반복해서 얇게 펴진 밀가루 반죽을 착착 접어 농부에게 준다. ‘당신 맘대로 썰어봐.’그 사이 육수가 끓는다. 건더기를 건져내고 표고버섯을 썰어 넣어 간장으로 간을 한다. 한 소금 더 끓인다. 국물이 팔팔 끓을 때 납작 국수처럼 채 썬 칼국수를 탈탈 털어 넣는다. 고명으로 매운 고추, 대파, 풋마늘을 썰어 올린다. ‘국수가 떠오르면 익은 거요. 간이나 보소.’ 식탁에는 김치만 차렸다. 

 

 얼렁뚱땅 만든 칼국수가 쫄깃하니 제 맛을 낸다. ‘여기 조갯살 들어가면 더 맛있겠다.’는 농부다. ‘아이고 우리 영감 입맛은 왜 안 변하요? 난 이렇게 먹어도 맛만 좋네. 40년이 다 되도록 내가 해 준 음식을 먹는데도 도대체 당신 입맛과 내 입맛은 합체를 모르니 참말로 이해불가요. 맛없으면 먹지 마 내가 다 먹을 테니까.’ 톡 쏘았더니 ‘아, 맛있다. 진짜 맛있네.’ 너스레를 푼다. 퇴직한 남편들이 집에 있으면서 아내에게 잔소리꾼이 된다더니 그 말이 맞다. 농사일이 적어지니 집에서 일거리를 찾는 농부다. 내 자리였던 부엌살림까지 손대기 일쑤다. 내가 손쉬운 자리에 뒀던 물건이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어떤 때는 찾다가 화가 나서 소리친다. ‘당신이 부엌살림 살래? 내 물건 좀 제 자리에 둬. 나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좋다고.’ 어떤 때는 ‘창고에 가서 당신 맘대로 해. 밖에 나가든지. 당신 파크 골프 치러 가라. 요즘 유행이라며?’ 쫓아내려고 덤비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그놈의 명상이 문제다. 다혈질이던 농부가 느긋해졌다. 내가 아킬레스건을 건드려도 웃기만 한다. 화를 버럭 내도 본체만체한다. 덕분에 붉으락푸르락할 일은 없다. 둘이 살면서 다투면 서로 손해란 것을 알기 때문인지. 그래봤자 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서인지. 농부가 하는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농부의 일에 대해 권한 밖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간섭을 안 하려는 편이다. 내 일에 간섭하는 것이 싫지만 그것조차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가진 물건은 내 것이 아니다. 잠깐 필요에 의해 가졌을 뿐이다. 아무리 애지중지하던 것도 죽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칼국수 한 냄비를 둘이서 싹 비우고 설거지를 하는데 농부가 ‘남은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놔도 되나?’ 묻는다. ‘숙성되면 더 쫄깃하고 맛나요. 이삼일은 괜찮을 걸요.’ 하니 ‘네 덩이나 남았잖아.’ 또 시작이다. ‘납작하게 펴서 냉동실에 얼려둡시다. 수제비로 먹어도 되니까.’ 우리 부부는 둘 다 한 문제에 꽂히면 해결이 나야 잊는 성격이다. ‘당신 생각대로 하소. 난 수제비든 칼국수든 매끼 먹어도 좋으니까.’ 두 손 들었다. 농부는 냉장고에 넣었던 밀가루 공 두 개를 꺼낸다. 나는 작은 비닐봉지를 내민다. 비닐봉지에 한 개씩 담아 납작하게 눌러서 착착 접는다. 두 개를 그렇게 해서 한 팩에 넣어 냉동실에 얼렸다. 농부는 흡족한 듯 주방을 나간다. 

 

 오랜만에 칼국수 만들어 맛나게 먹었다. 입맛 까다로운 농부 덕이다.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나는 있는 반찬 주섬주섬 식탁에 차리고 말 텐데. 농부가 해 보겠다고, 가르쳐 달라고 설치면 못 이기는 척 선생이 된다. 어쨌든 우리 집은 농부가 나보다 한 수 위다. 어차피 둘이 살다 한 사람이 먼저 가게 될 거다. 남자도 제 밥은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살림 사는 법을 배워 두는 게 낫다. 농촌에는 노인 반면교사가 많다. 할아버지가 건강하면 할머니가 먼저 망가진다. 어쩌겠나. 타고난 명대로 사주팔자대로 살다 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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