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Jun 12. 2023

  덤에서 배우는 인생

 덤에서 배우는 인생     



 참 오랜만에 오일장에 갔다. 발통 달린 손수레를 끌고 시장을 돌았다. 손님은 별로 없고 장꾼만 복작거린다. 부산스러워야 할 저자골목이 한산하다. 저잣거리 난전에도 만 원 이하의 물건을 찾기 힘들다. 콩나물 값도 두 배다. 단골 생선좌판 아저씨도 알은체 하고 시장골목 상가 주인도 반긴다. ‘요새 와 그리 안 보이나?’ ‘아팠더나?’ 그런 소소한 물음조차 인정스럽다. 둘이 살면서 시장 볼 일이 드물었다. 삼시 세 끼도 제때 반찬 한두 가지면 족하다. 오일장보다 농협 마트 이용이 간편하다. 


 농부의 생일이 다가왔다. 올해는 윤달 덕에 생일이 늦다. 남매가 연휴를 맞아 온다는 바람에 오일장 나들이를 강행했다. 조기 한 손과 반찬거리 몇 가지를 샀다. 쇠고기와 조갯살도 샀다. 돼지고기 앞다리 살도 한 덩이를 샀다. 생닭도 두 마리를 샀다. 쇠고기와 조갯살은 미역국용이고, 돼지고기와 닭은 훈제용이다. 훈제해서 저장고에 두고 먹으니 편하고 맛도 좋다. 목돈이 들지만 선물용으로도 괜찮다. 재주꾼 농부가 굽는 것이라 나는 재료만 사다 주면 된다. 


 난전은 현금거래다. 지갑이 텅 비도록 시장골목을 돌아다녔다. 과일이 빠졌다. 좋은 물건을 갖고 오는 과일장사 아저씨는 시장 밖에 있다.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그 아저씨에게 간다. 아직 장사꾼 때가 덜 묻은 모습이 보기 좋다. 몇 년 전까지 할아버지가 하던 과일 전이었다. 트럭에 과일을 싣고 와 길거리에 펴 놓는데 과일이 싱싱하고 다른 집보다 쌌다. 인정스러워 덤도 잘 주셨다. 


 어느 날, 그 할아버지 대신 중년의 아저씨가 전을 벌였다. 초보 장사꾼 모습이 역력했다. 손님맞이하고 물건거래 하는 것도 서툴렀다. 어색한 장사꾼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책상물림 같았다. 퇴직하고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장삿길에 들어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는 제법 익숙한 장사꾼 티를 냈다. 사과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아이고, 되라. 아저씨한테 사과 사러 오기 참 멀어요.”

 너스레를 풀었다. 마침 옆에 서 있는 두 아낙이 아는 사람이다.

 “이 집 사과 맛나요.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요. 시장에 과일전이 여러 곳이지만”

 덕분에 그들도 사과를 샀다. 

 “아저씨, 발품 팔았는데. 덤 없어요?”

 아저씨는 웃으며 

 “이건 갈아드세요.”

 

 대여섯 개의 사과를 덤으로 준다. 오일장에 장돌뱅이를 하는 재미는 덤에 있지 않을까. 덤은 인정이다. 장사꾼은 십 원의 이문을 보고 십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하던가. 그만큼 돈 한 푼에 애달 복달하는 것이 장사꾼이란 뜻은 아닐까. 거상 임상옥은 사람을 중시하는 장사꾼이었다. 난전을 도는 장사꾼 중에도 거상 임상옥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덤은 그 ‘사람을 중시하는 장사꾼’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덤으로 받은 사과 몇 개가 참 소중해 보인다. 

 

 참 사람살이가 우습다. 예전에는 농부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시장을 본 것이 아니라 시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시장을 봤었다. 농부의 생일날 아침이면 두 어른을 모시고 아침을 먹었다. 자연히 생일상이 걸 수밖에 없었다. 농부의 식성을 생각한 생일상이 아니라 시부모님 식성을 생각한 상차림이었다. 농사일도 많았던 시절, 며칠 전부터 반찬거리를 사 들였었다. 모자라는 것은 전날 밤에 마트에 가서 사왔다. 생일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동동걸음 쳤었다. 두 어른을 모시고 생일 밥을 먹고 과일과 차까지 대접한 후 광주리에 생일음식을 갖추갖추 담아 드렸었다. 반찬 하기 싫다는 시어머님을 위해.

 

 올해는 편하다. 대접할 시부모님도 없는데 남매가 온다니 또 시장을 보게 된다. 내 팔자대로 사는 것이겠지. 내 나이 때 시어머님은 편했을까. 내가 시집살이를 할 때였다. 손에 물 묻힐 일은 적었다. ‘야야, 이거 해라. 야야, 저거 해라.’ 지시만 하면 해결되었으니 며느리 덕에 편하게 사셨다는 것을 아시기나 하실지. 시어머님께 며느리는 덤이 아니었을까. 덤으로 얻은 인생일지 모른다. 내 삶의 덤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떤 덤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남은 삶을 살아볼 일이다.  

                2023.     5.  

매거진의 이전글  칡 순이 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