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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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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23. 2023

  비와 북망산

 비와 북망산     



 남매가 왔다. 비덕에 술판, 토론 판 벌어져 날밤 새운다. 찻잎을 따야 하는데 비가 말린다. 

에라, 애들 캉 놀자. 그가 만든 훈제 닭과 돼지고기, 부침개는 술안주로 제격이다. 막걸리, 맥주, 소주, 매실주, 바닥나는 밤이 이틀 동안 이어졌다. 황매산 철쭉 구경도 접고, 하동 차 축제도 접고 네 식구가 온종일 이야기판으로 즐겼다. 부모에게 온갖 이야기를 풀어놓는 아이들을 나름대로 마음 엿보기 하는 시간이다. 


 골짝물이 콸콸 흐른다. 창문을 열면 물소리에 잡혀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집 아래위 저수지는 온통 황톳물이다. 제주도는 폭우로 피해가 속출한다는데. 장대비 덕에 가뭄 해갈은 되었지만 피해를 입는 지역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터넷으로 세상 보기 하는 것도 귀찮아진 이즈음이다. 뉴스를 안 본 지도 오래되었다. 보고 들을 가치가 없어 보이는 뉴스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는 친구의 남편을 배웅하러 갔다. 북망산 가는 사람을 배웅하러 가는 날, 비는 억수로 쏟아졌다. 죽음은 예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급성신장염이었단다. 칠십 대 초반의 가장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난제다. 어쩌면 내 안에 든 두려움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아닐 거야. 나는 살 수 있어.’라고 최면을 걸지도 모른다. 시골에 살면서 자주 접하게 된 죽음이지만 전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내 명은 몇 살까지 이어질까. 죽음을 바라볼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일 자세는 덜 된 것 같다. 하루하루 마지막불꽃을 태우듯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아니다. 그냥 내가 죽을 때가 되면 ‘죽는구나. 잘 살다 간다.’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는 조금 우울한 얼굴로 돌아왔다. 두 애가 있어 그의 기분을 풀어주니 다행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모를 수도 있다. 


 오후에 가족 모두 수영장에 다녀왔다. 먹을 게 푸짐한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내가 해 주는 음식들이 맛있다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제까지 두 애에게 밥을 챙겨줄 수 있을지. 두 애가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죽을 수나 있을지. 굵은 빗줄기처럼 묵직한 그림자 하나 가슴을 짓누른다. 

                         202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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