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복 짓는 여자
지숙은 착한 여자다. 공지영의 소설『착한 여자』의 정인보다 더 착한 여자다. 그렇게 착한 여자에게 삶은 늘 가혹한 것일까.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죄를 받는다고 하지만 세상엔 악한 사람이 더 떵떵거리며 잘살고, 착한 사람은 늘 당하기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주먹총을 쏘지만 하나님은 들은 척도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한다.
'부처님 그녀를 더 이상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지숙이가 아프단다.
'얼마나 아플까. 조금만 아프고 나았으면 좋겠는데.'
우연히 듣게 된 그녀의 소식은 평온한 일상을 뒤집어엎었다. 그녀는 잘 살아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진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랐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령님, 이럴 수가 없소이다. 미친놈처럼 산을 쏘다녀도 그녀를 지울 수 없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 내가 만나자고 하면 나올까. 나를 잊어버렸을까. 나처럼 잊은 척하고 살았을까. 가끔 생각했을까. 아무리 아픈 상처라도 세월이 가면 아문다. 아물지 않아도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가게 되어 있다. 사람은 늘 현재를 산다.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나 미래는 잊힌다. 현재가 불행하면 과거에 집착한다. 과거 속 그녀가 울먹인다.
오빠, 미안해. 난 그를 기다려야 해. 그의 여자가 되어야 해. 아무리 그가 나를 내쳐도 난 오빠에게 갈 수가 없어. 그가 실컷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만나고 싶은 여자 다 만나면 마지막엔 내게 올 거야. 그이에게 나를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어. 그냥 지켜볼래. 그는 내 남자야.
한전에 전화를 했다. 서 재화를 찾았다. 드디어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찾으려면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 한 번도 시도를 안 했을까. 그녀에게 전화를 못할 이유도 없다. 사랑한다고 고백은 했지만, 결혼해 달라고 청혼은 했지만, 그 외에 아무 일도 없었다. 차라리 그녀랑 뜨거운 밤이라도 보냈으면 쉽게 잊었을지 몰라. 나만의 짝사랑으로 끝나버린 사람이기에 이렇게 마음을 에이게 하는 걸까. 부끄럽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기억을 깡그리 지우고 싶었지만 하나도 지우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을. 전업 글쟁이로 시골구석에 들어와 살면서 젊은 날의 나를 싹 지워버리고 살고 싶었으나 마음까지 백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사람이니까. 여전히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자칭 꽤 괜찮은 소설가다. 원고료 수입으로 생활고를 면할 수는 없지만 원고 청탁이 꾸준하니 꽤 괜찮은 소설가 아닌가. 물론 아내 덕에 산다. 아내는 밥벌이를 다닌다. 물론 직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남의 집 품앗이도 나가고 오일장이면 난전에서 채소 장사도 한다. 통장 관리는 아내 몫이니 내 알바 아니다. 손바닥만 한 텃밭만 가꾸어도 생활비는 되지 않을까. 내 생각일 뿐이다. 강이 녀석, 진작 부모 곁을 떠나 자립해 버린 피붙이, 바다 건너가서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당신한테 자식이 있어? 강이는 내 아들일 뿐이지.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르는 당신이 생활비 걱정하고 자식 걱정 할 때가 있어? 놀랄 노자네.
늙어갈수록 아내의 빈정거림이 나뭇잎 같다. 우수수 떨어지다가 뚝 그치고 보면 푸른 하늘이 말갛게 드러나듯이. 아내 말에 의하면 나는 우유부단하기로 말하면 첫째 자리 면할 수 없다. 아내의 잔소리가 길어질수록 내 침묵의 깊이는 더할 뿐이다. 그 속에 희한하게도 착하디 착했던 그녀가 웃고 있었다.
참 많은 장 단편을 썼다. 그 많은 소설을 쓰면서 어쩌면 그녀를 주인공으로 내 세운 작품도 있을 법한데 희한하게도 그녀는 내 어떤 소설에도 등장한 적이 없다. 내가 그리는 여성상은 늘 반항기 강하고 바람둥이 여자에 성깔 드센 대찬 여자다. 지금의 아내가 표본일까. 그 이면에는 섬세하고 착한 여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지가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탓은 아닐까. 그것은 어머니의 영향이지 모른다.
내 어머니는 한 마디로 현모양처였다. 열여섯 살에 부모가 짝 지어준 임 씨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어 맵고 짠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큰 소리 한 번 낸 적 없었다. 아버지는 두 여자를 더 거느리고 셋 집 살림을 했지만 소박데기 면한 것만도 감지덕지하며 산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종갓집 장남이자 종손인 피붙이 나를 놔두고 서른일곱에 돌아가셨다. 지숙, 그녀는 내 어머니를 닮았다. 어쩌면 어머니를 닮았기에 내 아내가 되어 줄 수 없다는 그 말을 오히려 다행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전화번호를 눌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여보세요?
예닐곱 살짜리 아이가 받았다.
어린아이가 있을 턱이 없는데. 전화번호가 잘못된 걸까. 그녀의 아이라면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도 남을 나인데 아무리 늦둥이라 해도 예닐곱 살이면 너무 어렸다. 손자일까? 전화를 잘못한 것 같아 끊으려다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너는 누구니?
행운이요.
엄마 이름이 뭐지?
안 지숙 요.
안 지숙, 그녀였다.
갑자기 둔기에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띵했다.
엄마 좀 바꿔줄래?
안 계셔요. 병원 갔어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그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늦둥이가 있다니.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갈색으로 물든 상수리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바람이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다는 듯이 나뭇잎 몇 개가 팔랑팔랑 떨어져 내린다.
오빠, 보호자가 필요해. 내게 좀 와 줄래?
그녀가 일방적인 사직 통고를 하고 떠난 지 몇 개월이 흐른 뒤였다.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어떤 여자가 나를 찾는다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받아 드니 그녀였다. 그녀는 내 사무실에서 경리를 봤었다. 소설가가 되기 전 내 직업은 건축사, 조그만 건축설계 사무소를 내놓고 직원 두 명과 경리 한 명을 두고 사업을 하던 노총각 시절이었다.
왜 어디 아픈 거니?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네.
응, 오빠, 여기 부산 초량동이야. 늦어도 좋으니까 꼭 좀 와줘.
나는 00 산부인과 주소를 받아 들고 망연자실했다.
서둘러 조퇴를 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초량동 골목을 찾아들었지만 00 산부인과는 왜 그렇게 보이질 않는지. 물어물어 찾아든 산부인과는 으슥한 골목길 안에 있는 초라한 병원이었다.
저 여기 환자 중 안 지숙 씨를 찾아왔는데요.
접수처에 가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징그러운 벌레 보듯 나를 흘겨보더니 퉁명스럽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 예. 보호자 되세요? 여기 사인 좀 해 주시고요. 임산부는 지금 촉진제를 맞고 있거든요. 수술은 내일 해야 할 것 같아요. 애가 너무 커서 돌려 앉힌 후에 유도 분만을 할 겁니다. 수술 도중 산모가 잘못되어도 우리 병원에서는 책임이 없으니 그렇게 아시고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졸지에 나는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남자로 전략해 버렸다.
간호사가 지적하는 곳에 사인을 휘갈기고 그녀가 입원했다는 병실로 올라갔다.
오빠!
그녀는 링거 병을 팔뚝에 꽂은 채 침대에 누워 있다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앉았다. 펑퍼짐하고 헐렁한 꽃무늬 임신복을 입은 그녀, 아무리 봐도 내가 알던 예쁘고 사랑스럽던 지숙이 아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울 듯 웃을 듯 미묘한 표정이다가 금세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말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밝고 환했던 몇 달 전의 그녀를 생각했다. ‘오빠, 우리 순대 먹으러 가자. 시장 국수 먹으러 가자. 아니야, 돼지 족발을 막 뜯어봤으면 좋겠다. 찌짐 어때? 이상하게 요즘 자꾸 먹고 싶은 게 많아. 오빠, 이러다 나 돼지 되면 어쩌지?’ 심심찮게 먹자 타령을 하던 그녀 ‘너는 오동통하게 살이 좀 쪄야 예뻐. 지금은 너무 말라깽이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언제든 말해. 이 오빠가 먹고 싶다는 것쯤은 얼마든지 사 줄 게. 우리 지숙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책임진다.’ 그러다가 결혼 신청을 했고, 그녀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했다. 자기에겐 이미 남자가 있다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그 후로도 끈질긴 내 구애가 부담스러운지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나가버렸다. 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몇 달 만에 전화를 했던 것이다. 겨우 이런 광경 보이려고 전화를 했단 말인가.
오빠, 미안해. 보호자가 있어야 수술이 가능하다는데 오빠 밖에 생각이 안 났어.
그 자식한테 연락하지 왜.
가시가 돋친 내 목소리에도 그녀는 결을 세우기보다 고개를 푹 수그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연락했었어. 근데 바쁘다고 올 시간 없대. 지금은 전화를 받지 않아. 아예 전화기를 꺼버렸나 봐.
그 자식이 누구야! 너를 이렇게 만든 그 자식이 도대체.......
오빠도 잘 아는 사람이야. 내 친구 재화, 난 그 애를 사랑해.
나는 그를 안다. 아주 잘 안다.
이 자식을 그냥!
놔둬. 다 내 잘못인 걸. 그 애 탓 아니야. 그 애는 진작 애기를 지우라고 했지만 난 낳고 싶어서. 첫 애라서. 하지만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결국 지우기로 결정했어. 결정을 하고도 무서워서 병원에 올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애만 키워버린 거야. 다 내 잘못이야. 미혼모 센터에 들어갈까도 했지만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해 봐. 나처럼 불행해지면 그 죄를 어떻게 다 받아. 솔직히 오빠 볼 낯이 없어. 나 참 철면피지?
괜찮아. 좀 누워라. 얼굴이 많이 안 좋다. 일찍 연락하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니.
오빠, 미안해.
그녀가 울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다독거리며 생각했다. 그래, 가장 힘들 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나란 말이지. 고맙다. 지숙아, 너의 의지처가 되어 주겠어. 그나저나 이 자식을 어떻게 손을 봐주지?
능글능글한 서 재화를 떠올리자 그만 목구멍에 가래가 탁 걸린다. 그녀가 재화를 좋아하는 눈치가 보여 혹시 둘이 사귀는 사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재화는 ‘형님, 솔직히 그렇게 착해 빠진 애랑은 연애하기도 부담스러워요. 숙맥이라 남자친구도 없을걸요. 형님이 좋으면 사귀세요. 내 애인이 그 애 친구라니까요. 그 가시나 참 착해요. 관심 있으면 형님 여자로 만들어버리세요. 난 관심 없어요.’ 딱 잘라버렸었다.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그런 놈을 왜 사랑하니. 차버리지. 네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그 자식을 사랑한 거니? 이 바보 같은 애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그렇게 개를 몰라?
그때, 지숙을 병원에 뉘어 놓고 나는 재화를 찾아 고성으로 향했었다. 재화는 그곳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다.
재화야 난 데, 좀 만났으면 싶다.
형님이 어쩐 일입니까?
지나가던 길에 네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재화와 나는 건축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건축 설계 사무실을 내놓고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건물을 지었다. 건축물에는 전기 시설 업체와 연계도 필수다. 그때마다 재화에게 전기담당을 시켰다. 그때 나는 경리 사원이 필요했고, 그가 그녀를 추천했었다. 그와 나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그녀는 내 사무실 경리 일을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사무실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잡는 그녀를 지켜보는 사이 나도 모르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오빠, 나 좋아하지 마. 나 남자 있어. 그 남자랑 잠도 자는 걸.
인마, 거짓말이라고 이마에 써져 있어. 남자가 있으면서 데이트도 안 해? 화장도 하고, 멋도 부릴 텐데. 넌 한결 같잖아. 오빠가 옷 한 벌 사 줄 게.
하나 그녀는 나를 가장 편하고 의지할 수 있는 오빠, 혹은 아저씨, 혹은 아버지 같다고 했다. 남에게 드러내기 힘든 자잘하고 사소한 치부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냈다. 예를 들면 ‘오빠, 이번 달에 생리가 없어. 나 임신한 거 아닐까?’ 혹은 ‘오빠, 생리했다. 남자들은 이상해. 재미도 없는 그 짓을 왜 하려는지 몰라. 난 싫은데 그는 만나기만 하면 여관부터 가자고 해. 내가 헤픈 여자로 보이는 건 아닐까?’ 어찌나 천연덕스러운지 저 아이가 도대체 스무 살 넘은 처녀 맞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어떤 때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이 오빠도 남잔데 내게 두 사람의 잠자리까지 이야기하다니. 너 바보 아니니?’라고 물어보면 픽 웃으면서 ‘오빠가 남자야? 그냥 내 오빠지.’이랬다.
그녀가 내 사무실에 오래 붙어 있을수록 나는 자꾸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백치미를 가진 여자처럼 그녀는 순하고 착해 빠졌다. 대신 나는 그녀가 안쓰럽고 불쌍한 생각이 깊어져 무조건 받아들이고 품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녀를 여자로 생각한다는 것을 안 순간 칼로 무를 자르듯 싹둑 자르고 떠나갔었다.
재화를 만났다. 여전히 말끔한 외모에 멀쩡한 허우대였다. 능글맞도록 웃음기 도는 선한 얼굴을 보니 주먹이 울었다. 한 여자는 지금 사경을 헤매는데 그 여자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천하태평이니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