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끝>
그 애들 내 새끼 맞아요. 순애가 오작교를 놓아주었어요. 복실이가 달거리를 하자 밤이면 아무도 몰래 순애가 복실이를 풀어줬어요.
그랬어? 놀랍네.
그나저나 내 강생이 보고 싶네요. 살짝 가서 우리 강생이 봐야겠네.
백구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울지 마라. 다음 생에 더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면 되니까.
다음 생에 그 여자 집에 가서 강아지로 태어날까요? 아직 어리지만 미인이 자라고 있던데. 이름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남자깨나 후리게 생긴 암컷이었어요.
그 여자 네도 강아지가 있었니?
네, 목줄이 풀린 그날 밤에요. 그 강아지 때문에 그놈과 대판 쌈이 난 거지요. 내가 강아지한테 장난을 쳤거든요. 사실 장난이 지나치긴 했어요. 애목을 물고 쩔쩔 흔들다 놓기도 하고 도망치는 것을 뒷다리를 물고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으니.
순애처럼 굴었구나.
그랬지요. 강아지가 싫어하는데도 내가 자꾸 괴롭히니까. 강아지가 그놈 옆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숨잖아요. 처음에 나는 살살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어요. 친구 하자고. 강아지랑 놀고 싶다고. 그런데 그놈이 막무가내로 이빨을 드러내잖아요. 주인님도 알다시피 우리 개들은 이성 간에는 안 싸우잖아요. 그렇지만 동성 간에는 무조건 한 판 붙고 봐야 직성이 풀리죠. 서열이 정해져야 하니까. 상대방이 처음부터 납작 엎드리면 봐 주지만. 어쨌든 서열이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싸울 일이 없죠. 강한 놈 앞에서 약한 놈은 알아서 기니까요. 그 여자네 수놈하고도 한판 붙고 친구 하고 싶었는데. 그 집 식구들이 몽땅 나서서 나를 죽이려고 했어요.
신변에 위험을 느꼈다는 거지?
그럼요. 이러다 맞아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 들데요. 그래도 그놈 애목을 꽉 물고 쩔쩔 흔들었어요. 그놈이 깨갱깨갱 죽는시늉을 할수록 내 등짝을 후려치는 몽둥이는 더 독해졌어요. 참다 참다 그만 그놈 애목을 놓고 나에게 몰매를 가하던 그 치들에게 달려들었죠. 내가 이빨을 사납게 드러내고 달려들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는데 한 여자가 휘청 넘어지잖아요. 너는 내 밥이야. 사정없이 달려들어 물었죠. 이빨에 힘을 꽉 주려는 찰나 왜 주인님 얼굴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어요. 힘이 쭉 빠져 물었던 팔을 놨어요. 여자는 팔로 얼굴을 감싸면서 저 개가 날 물었어. 저 개가...... 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더 깊이 물었을 텐데.
그랬다간 우리 집 거덜 나게 됐을 거야. 더구나 너까지 잃고. 이게 뭐니. 이제 너는 어떻게 이 빚 다 갚을래? 진짜 너는 나에게 배신 때린 거야. 얼마나 아꼈는데. 늘 묶어 놔야 하는 것이 미안했는데. 난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거든. 예전에 우리는 참 자유로웠잖아. 이곳에 우리만 살 때는 거치적거릴 것이 없어 좋았는데. 이웃이 생기면서 문제가 자꾸 커지데.
그래요. 순애 네 집이 들어서고, 그 여자 네 집이 들어섰지요. 덕분에 나는 자유를 박탈당했고요. 그 여자는 이웃 간에 살면서 내 이빨 자국 하나 때문에 주인님을 형사고발까지 했잖아요. 사실 그놈은 자주 우리 집 와서 똥 싸고, 내 앞에 알짱거리다 가곤 했어요. 주인님도 알잖아요. 그 여자는 밤만 되면 개를 풀어놓는다는 것. 어디 그놈뿐이게요. 그 앞에 에스키모에서 썰매 끌다 온 놈도 있었고, 검둥이도 있었고요. 누렁이도 있었지요. 나처럼 하얀 암캐도 있었죠. 그 암캐는 제법 엉덩이가 암팡져서 돼지 뼈다귀 묻어 놨다 파 주곤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없데요. 복날 잔치 했는지. 복날 개 패듯 패 버렸는지.
얘가 말하는 것 좀 봐라. 참나, 너도 복날 개 패듯 했어야 정신 차렸을까.
아니요. 복날 개 패듯 팼으면 나 가출했을 걸요.
가출? 가출했으면 너만 서러웠겠지. 집 나간 놈치고 행복한 놈 못 봤다. 올가미에 걸려 개장국 그릇에 빠지기 십상이지.
그건 그래요. 사실 그 여자네 에스키모개는 참 얄미웠지요?
그랬지. 마당에 똥 싸 놓고 너의 밥통에 남은 밥 다 먹어버리곤 했지. 몽둥이로 쫓아버리려다가 너랑 친한 것 같아 봐 주곤 했어. 개 좀 풀어놓지 말라고 그 여자에게 한 마디 하고 싶어도 이웃 간에 그럴 수가 없어서 참았었지. 사실 그 여자네 이사 오기 전까지, 순애를 물기 전까지 나도 너를 풀어 키웠으니까. 그때가 그립지?
네, 목사리 없이 온 산을 내 구역으로 삼고 뛰어다닐 때가 좋았어요. 처음 목사리 하고 쇠줄에 매었을 때는 진짜 죽겠더라고요. 자유의지를 꺾어버린 주인님이 미웠지요. 며칠을 생난리 쳤지만 주인님이 내 목을 쓰다듬으며 그랬지요. 미안하다. 널 풀어놓고 키우면 안 된단다. 경찰의 단속에 걸리면 벌금 물어야 돼. 누가 신고하면 너는 그 길로 도살장 간다더라. 힘들어도 참아, 참다 보면 익숙해져. 그래서 참았지요. 참고 견디니까 익숙해지데요. 처음부터 묶여 길든 것처럼.
그런데 어째서 사고를 친 거야?
사실 처음에는 목줄이 풀린 줄 몰랐어요. 멧돼지가 못 둑에서 어슬렁거리며 약을 올리잖아요. 목을 길게 빼고 이빨을 드러냈는데 슬슬 앞으로 나가잖아요. 못 둑을 향해 뛰어가는데 내 목을 조이던 줄이 없는 겁니다. 신났죠. 멧돼지는 줄행랑을 놓았고, 나는 그놈을 따라 뛰었어요. 그게 단데. 멧돼지는 나보다 날랬어요. 묶여 살던 내가 다리에 힘이 있겠어요. 멧돼지 놓치고 분한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글쎄 그 여자 집 그놈이 컹컹 짖잖아요. 그래서 찾아갔더니 예쁜 강아지가 알랑방귀를 뀌잖아요. 덥석 물고 장난질을 쳤죠. 그래서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겁니다.
알아.
아무리 그래도 이웃 간에 형사고발이라니 너무 했다.
우리만 살 때와 이웃이 생겼을 때의 차이점이지. 이웃 간에 민폐는 끼치지 않아야 하거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게 중요한 거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이웃을 잘 만나면 평생이 편하고, 이웃을 잘 못 만나면 평생이 불행하다고. 이웃사촌이란 말이 그래서 생겨났을 거야.
근데 그 여자도 이웃사촌 맞나요?
글쎄, 이젠 너 때문에 척을 졌으니 이웃을 잘못 만나 평생이 불행해질지 모르겠군. 솔직히 그 여자는 이웃이지만 너나들이는 못했어. 촌사람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그런 사람 아닐까. 도시에서 왔다고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하면서 돈독 올라 순박한 촌사람 등쳐먹으려는 족속들, 솔직히 그런 사람은 무섭다. 적당히 거리 두기 해야 해.
그렇다고 평생 안 보고 살 수도 없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척을 진다는 것은 서로 불행한 거야. 사람이 살아보면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어. 지금은 내가 가해자가 됐지만 다음에는 내가 피해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사람은 말이야.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앙심을 품게 돼. 그 앙심이 업을 짓는 거야. 이 우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란 게 있단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한 기운이 모이지만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기운이 모인다는구나.
앙심이라. 무섭네요. 사람은 원래 그런 동물인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선한 사람은 악을 선으로 갚는 수도 있지만 용서하기란 쉽지 않아.
그런 점에서 우리 개들은 참 순진하고 착해요. 한 사람을 좋아하면 아낌없이 주잖아요. 믿고 따르잖아요. 주인을 배반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착하지 않아요. 착한 척할 뿐이지. 욕심덩어리죠. 언제나 자기 욕심 먼저 챙겨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 여자처럼은 아니야. 작은 것이라도 나눌 줄 아는 사람도 있고,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도 많아. 내가 가진 보잘것없는 것도 남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 보살 같은 사람도 많아. 그러니까 세상은 공평한 거야. 알게 모르게 선행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람 덕에 세상이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악한 사람만 있어 봐. 세상이 어찌 되겠어. 지옥이 따로 없을 걸. 혹 알아. 그 여자와 잘 지내면 참 좋은 이웃이라고 하지 않을까?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그럼 주인님도 그 여자와 그 집 식구들 미워하지 마세요. 미워하면 업을 짓는다고 하잖아요. 그 업은 내가 다 가지고 갈게요. 어차피 난 죽은 목숨이니 나 때문에 이웃 간에 척 지지는 말라는 말이지요. 그 여자와 나는 전생에 악연이었나 봐요. 내가 그 여자고, 그 여자가 개였던가 봐요. 그 여자가 나를 물어서 내가 죽었나 봐요. 그러니까 이승에서 바꾸어 태어난 거죠.
그럼 다음 생에는 또 네가 그 여자로 태어날지 모르겠네.
그렇게 태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마음을 닦아야지요. 윤회를 하려면 십 년이란 기한이 있다니까. 그 십 년을 절에 가서 살까 해요. 육신은 없어졌지만 영혼은 남아 있으니 지장보살님께 빌어야지요. 다음 생에는 제발 이 악연의 고리를 끊어달라고.
네가 불심이구나. 널 구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부디 다음 생에는 부처의 제자로 환생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승려가 되어라. 이제 마음 편하게 떠나렴. 내가 천도재 지내줄게. 그 여자 일은 마음 쓰지 마. 잘 해결됐으니까.
해결 됐어요. 어떻게?
며칠 전 검찰청에서 호출 명령서가 왔더라. 심문하기 전에 당사자 불러 조정하는 게 있다하데. 난 잘 모르는데 형사고발이 들어가면 조정위원횐가 뭔가 있나 봐. 다녀왔지. 여자가 병원에 다닌 영수증과 약 사 바른 영수증을 챙겨 왔더라. 조정위원회 위원들 앞에 영수증을 내놓더군. 정신적 물리적 피해 보상까지 하라더라. 합의금 몇 백만 원을 달래. 조정위원회 사람들도 그 금액은 너무 과하다고 오십만 원에 합의 보라고 하더군.
네에? 그렇게 많이요? 주인님이 그 여자 데리고 읍내 응급실에 갔을 때도 백신 맞고 응급처치 한 금액이 만원 조금 넘었다고 했잖아요. 의사도 상처가 안 깊어 연고만 바르면 된다고 했고요. 영수증 확인하지 그랬어요?
그랬다간 또 고달파져. 너 잃은 것만으로도 힘든데.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이웃 간에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고. 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없고. 오십만 원 던져 주고 깨끗이 잊는 게 낫지. 너를 당장 없애라는 바람에 너만 없애면 해결될 줄 알았지. 그렇게 뒤통수칠 줄 몰랐던 거야. 어쩌겠니. 다 끝났지만 또 그런 일 당할까 봐 무섭다. 휴, 이제 말하기도 되다. 그만 가거라. 여기 걱정은 말고 다음에 사람으로 환생하면 우리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
네, 주인님도 건강하세요. 저를 위해 부처님께 많이 빌어주세요.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좋은 일 많이 하며 살고 싶어요.
백구는 컹! 하고 크게 한 번 짖고 희미하게 작아지더니 점으로 사라졌다.
“아이가 잘한다. 자려면 방에 들어가 자야지 마루에 앉아서 졸고 있어?”
눈을 번쩍 떴다. 순애 어머니가 왕감 홍시 한 소쿠리를 내게 건넨다. 눈물이 왈칵 솟는다.
“우리 백구가 홍시라면 사족을 못 썼는데”
나는 왕감 홍시를 들고 텅 빈 개집을 오래오래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