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처음>
돌확에 핀 꽃
나뭇가지 사이로 나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내 얼굴을 관통한다. 이 푸른빛이 도는 따뜻한 빛 한 줄기가 추억의 강을 건너게 한다. 먼 옛날 철없이 행복했던 시절의 아기자기했던 삶이 바로 저 햇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 생의 종착역에서 돌아보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다. 바로 어린 시절이다. 가난해도 가난을 몰랐고,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던 순수했던 한 때, 내게도 사심 없이 행복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호박 샘 곁에서 살 때였다. 햇살처럼 오롯이 나만을 위해 간직된 곳, 희미해지는 기억의 파편을 주워 땜질을 해서라도 완성하고 싶은 그 시절, 나는 절실했다. 뭔가 써야 한다. 써야 한다. 내 속에서 솟구치는 열망을 풀어내야 한다. 나는 소리치고 있었다. 이제 끝날 때가 됐는데. 지금 풀어놓지 않으면 안 돼.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것은 세상에 없다. 무슨 일이건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고, 나는 그때와 장소를 봉합해서 내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뭉쳐 두었던 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일기 중 한 대목을 떠올려 본다.
//마음속이 뜨거울 때 글을 써라. 농부가 소의 멍에에 구멍을 뚫으려면 화로에 달군 쇠로 재빨리 멍에로 쓸 나무를 지져야 한다. 일각이라도 지체하면 쇠로 나무를 뚫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달궈진 쇠는 즉각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생각을 기록하는 일을 뒤로 미루는 작가는 식은 쇠로 멍에에 구멍을 내려는 사람과 같다. 그런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태울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호박 샘을 다시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솔직히 내 안에 든 두려움을 꺼내 세상에 펴 보이는 것이 더 두려웠는지 모른다.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싶은데 용기가 없었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죄스러워서 금세라도 눈 딱 감아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죄질이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된 것도 어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같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니, 그 아이, 상금이를 생각하면 숨이 턱 멎는다. 한 순간의 실수라고 하기엔 그때 나는 참으로 용의주도했다. 내가 무슨 침묵을 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사자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내가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사건이었는지 모른다. 그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상금이었으니까. 나는 그저 낮잠이 들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뿐이라고 했다. 어머니 역시 우리 아들은 잠이 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른다고 역성을 들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어머니가 ‘니 진짜 암 것도 본 거 없나?’라고 물었을 때 시침 뚝 떼고, ‘진짜 나는 아무것도 몰라. 책 보다 잤어.’ 그렇게 대답했었지만 나는 안다. 내 양심의 한쪽이 예리한 칼날에 찔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야기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진주 촉석루 너머 서장대 아래 호박 샘 곁에 살았었다. 호박 샘은 아직 그곳에 있을까. 파란 이끼가 끼고, 은빛 돌 꽃이 화사했던 호박 샘, 돌확을 땅에 파묻은 것 같았던 작은 샘, 누군가가 쌓았을, 아니면 원래 그렇게 생겨났을 수도 있는 돌담 사이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깎이고 파여 둥근 절구통을 박아놓은 것 같았던 호박 샘, 늘 맑은 물이 흐르는 호박 샘 곁에서 그 물을 먹고사는 성 밖의 산동네 사람들, 가파른 바위벽에 붙은 작은 게딱지 같은 집에서 주인으로 혹은 세 들어 살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따사롭고 풍요로웠던 사람들, 그 사람들 목을 축여주던 샘, 호박 샘은 내 기억에서 한자도 더 자라지 않고 퇴색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다.
지금도 내 기억 속의 호박 샘에는 여전히 맑은 물이 흐르고, 새벽부터 크고 작은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 그들이 보내던 정겹던 인사와 환한 웃음, 물 한 바가지를 떠 뒷사람에게 돌리며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 목 먼저 축이라고 하던 사람들, 바가지로 퍼내는 물만큼 금세 채워지던 샘, 샘에서 흘러나온 물은 돌담으로 만들어진 좁은 도랑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빨래터에 모여 수런수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다시 아래로 흘러 남강에 다다랐다. 북장대 아래 깎아지른 절벽을 휘돌아 남강의 품에 안기는 호박 샘의 물줄기는 내 심장을 관통하는 핏줄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날 아침 어머니는 문간방 여자를 불러 손을 잡고 지렛대를 받쳐 만든 난간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어머니의 손에는 따뜻하게 감싼 달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 달걀로 여자의 눈 주위를 둥글게 문질러 주었다. 퉁퉁 부어 푸르게 멍든 꽃 위에 둥근 달걀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봉창 구멍 사이로 어머니와 여자의 행동거지를 조용히 관망했다. 지난밤의 광란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칠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 싶었다. 남자는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새벽 댓바람을 마시며 진주 역전으로 청소 리어카를 밀고 나갔을 테니까. 남자는 이슥한 밤에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동네 개들의 잠을 몽땅 깨워놓고 귀가를 하면 밤새도록 여자를 쥐어뜯고 두들겨 패다가 제풀에 지쳐 잠이 들었다. 숨죽인 여자의 흐느낌과 비명도 서서히 잦아들고 세상이 고요하게 가라앉으면 그제야 나도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어머니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혀를 찼다. 어떤 때는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했다.
아무래도 새댁을 내 보내야겠는데. 불쌍해서 어쩌누. 셋방살이 면할 처지도 아니고, 저 화상이 변할 리 만무하고, 오다가다 만난 인연이라는데. 저러다 저 참한 새댁이 도망질이라도 하면 그 사단을 우짤꼬. 그 불통이 우리한테 뛸까 무섭다. 저런, 저런, 꼴에 저건 또 뭔 짓인고. 실컷 두들겨 패 놓고.
어머니가 혀를 찰 때는 문간방에서 여자의 신음소리가 요상하게 들렸다. 끙끙 앓거나, 잉잉 쥐어짜는 여자의 신음소리거나 헉헉거리는 남자의 신음소리거나. 신기한 것은 그렇게 남의 잠을 방해해 놓고 남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저 남자 얼굴을 꼭 봐야지. 벼르다가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나면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신기하게도 남자는 첫새벽닭이 울기 전에 일어나 대문을 나선다는 것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남자가 잠이 들면 도둑고양이처럼 일어나 해장국을 끓이고, 아침 밥상을 준비한다는 여자였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저렇게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여자를 북어 패듯이 패도 새벽에 일어나는 남자나, 밤새도록 남자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여자가 밥상을 차려 내는 것이나 다 젊은 혈기라고, 젊음이 좋긴 참 좋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런 어머니도 서른 중반의 한창 농익은 나인데 꼭 진액 다 빨린 쪼글쪼글 늙은 뒷방 할머니 같았다.
아침이면 푸른 멍 꽃을 달고 남자가 먹고 간 밥상을 들고 나와 살그머니 부엌에 들어가는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 여자를 불러 쪽마루에 나란히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했다. 언니가 동생에게,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하듯이 여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었다.
어쩌겠냐?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 캤는데. 이것도 다 전생의 업이다. 새댁이 참고 살아야제. 애가 생기면 또 달라지는 것이 남자란다. 아직 애가 없으니 팔자 고칠 수도 있다만 전생의 업으로 만난 인연은 도망간다고 풀리지 않는단다. 한 남자 구제해 주는 셈 치고 살아보면 후제 옛날이야기하며 웃을 때도 있을 게다.
죄송해예. 진짜 죄송합니더.
여자는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며 기어든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람살이가 별 건가. 우리 집이니까. 내가 괜찮으면 괜찮은데. 옆방 아가씨하고 뒷방 총각에게 미안해서 그렇지. 다행인 것은 옆 방 아가씨가 참해서 새댁 마음을 이해해 주기 때문에 고마운 거라.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데 말없이 참아주는 걸 보면 참 괜찮은 아가씨야. 뒷방 총각은 한 성깔 하는 것 같은데. 다행인 것은 잔업이 잦아 자네들 난리 치는 걸 자주 안 본다는 거지. 욱 하는 성질에 쌈이라도 붙어 봐. 칼부림 나지.
술만 깨모 저이가 다시는 안 그런다고 하는데. 그 술이 웬수라예. 워낙 일이 더럽고 고되다 보니 술 안 먹고는 못한다 카네예. 한 잔 두 잔 하다 보면 필름이 끊긴다고. 죄송합니더.
참 자네도 착한 사람일세. 그렇게 당하고도 남편이라고 감싸 안는 걸 보니.
어머니는 웃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여자가 부러웠을지 모른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밤이면 슬그머니 베개를 안고 내 옆에 와서 눕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았다. 숨이 막히게 나를 껴안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어머니와 분리되었다. 내 방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는 허접한 것들을 쟁여 놨던 옆방을 치워 내 공부방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드디어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머니로부터 독립이 유일한 꿈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아들 한 명을 의지하고 사는 어머니는 누가 봐도 아직은 탱탱한 삼십 중반의 과부였다. 내가 일곱 살 때, 국수 공장에 다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지은 지 오래된 기와집 한 채와 국수 공장에서 준 얼마간의 위로금이었다. 우리 집은 진주성 서쪽 성벽 아래 호국사 앞의 산비탈에 있었다. 지금 진주성 서문이 있는 곳이다. 남강을 등지고 판자촌이 들어선 그 산비탈 집은 호박 샘 바로 옆이었다. 문간방 앞의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진주성 서문이 나오고, 그 위에 호국사가 있었다. 지금도 호국사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우리 집 쪽에서 보면 호국사 서북쪽 가장 높은 곳에는 북장대가, 호국사 서쪽으로는 서장대가, 호국사 뒤쪽으로는 촉석루가 있었다. 호박 샘과 우리 집을 중심으로 아래위 계단식 판자촌이 들어선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오래전 일이라고 했다. 성안 사람이 아니라 성 밖 사람으로 분류되어 살던 비루먹은 동네에서 그나마 내 집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위로금으로 먹고 살 방법을 찾았다. 방을 여러 개 들여 세를 놓는 방법이었다. 우리 집은 마당이 꽤 넓은 집이었는데 어머니는 안채를 중심으로 대문간부터 빙 둘러 크고 작은 쪽방을 넣었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댓돌 위에 작은 쪽마루 하나를 달아내 세를 놓았다. 셋방 식구를 거느린 주인댁이 된 어머니는 아주머니가 아니라 주인아씨나 주인마님이었다. 노부부는 깎듯이 어머니를 주인마님이라 불렀다.
우리 집 마당은 자꾸 작아져 둥근 것도 타원형도 아닌 하늘을 집 가운데 들여놓았지만 다행인 것은 화단이 있다는 거였다. 애초에 어머니는 화단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도 방을 넣을 생각이었지만 내가 싫다고 했다. 화단에는 아버지가 심은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나는 그 석류나무를 아버지 보듯 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우리 집에 세 든 사람과 공동으로 쓰는 장독간과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장독간 옆에는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자외(재래종 오이)도 올리고, 나팔꽃도 올렸다. 방 두 개와 네 모 반듯한 마루와 부엌이 있는 안채는 어머니와 내가 기거하는 곳이고, 나머지 안쪽의 집은 공장에 다니는 총각 한 명이 세 들어 살고, 그 옆방에는 일수놀이 하는 노인 부부가 살고, 문간방에는 새댁이 살고, 문간방 옆의 가장 부엌 달린 작은 방은 시청에 다니는 아가씨가 세 들어 살았다. 어머니는 월세를 받아 생활을 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과외공부를 시킬 정도는 되었다. 나는 주말이면 공무원 누나에게 영어와 수확을 배웠다. 지금 생각하니 월세 대신 과외선생으로 그 누나를 들였던 것 같다. 문제는 내 공부방에서 문간방이 빤히 보이는 쪽으로 봉창 하나가 달려 있다는 거였다. 나는 밤마다 문간방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 봉창의 창호 문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놓고 살펴본다는 거였다.
아들, 깼으면 퍼떡 일어나 학교 갈 준비 해야지. 밥 차려 놨으니 빨리 밥 무라. 까딱 하다간 지각하것다. 시내버스 올 때가 다 돼 간다. 도시락 까 묵지 말고 잘 챙겨라.
문간방 쪽마루에 앉은 어머니에게는 투시경이 달린 모양인지 안채에서 내가 하는 행동을 모조리 보고 있었다. 나는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면서 어머니와 여자가 나누는 대화에 당나귀 귀가 되어 있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곤 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1970년대는 진주 성안에 사람이 살았다. 하루에 몇 번씩 시내버스도 다녔다. 촉석루와 호국사를 빙 둘러 내려가는 시내버스는 자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 일곱 시 사십 분에 있는 통학버스를 놓치면 지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통학 버스를 놓친 날은 서장대에서 북장대까지 달리기를 했다. 진주성은 온통 푸른 숲이었다. 책가방을 들고 호젓한 가로수 길을 달리는 맛도 꽤 괜찮았지만 숲길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훈육주임 선생의 사랑의 매가 더 무서웠으니까. 지각생은 무조건 운동장에서 토끼뜀 열 바퀴에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사랑의 매 다섯 대를 맞아야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고, 그 매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려.
그런데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살게 된 것이 언제였더라. 여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여자 애가 문간방 여자 집에 들어왔다. 뜻밖에 내게도 장난감이 생긴 것이다. 우리 집 셋방 식구 중에 나 외에 어린애가 없었는데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가 한 명 생긴 것이다. 나를 오빠야!라고 불러주는 아이, 나만 보면 배시시 웃는 다섯 살짜리 꼬마.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이 꼬마는 소리 소문도 없이 내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남자의 아이라고도 하고, 여자의 아이라고도 했는데 누구 아이인지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고 대충 그 방에 식구 한 명이 늘었다는 것만 알았다. 상금이라는 여자애는 양쪽 볼에 보조개가 폭 파인 귀여운 아이였다. 잘 웃고, 잘 울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허리가 기역자로 꼬부라진 할머니가 그 아이 손을 잡고 물어물어 우리 집을 찾아왔다고 했단다. 할머니는 아랫방 여자랑 장시간 밀담을 나누더니 아이를 재워놓고 할머니 혼자 돌아가더란다.
아들, 여동생 하나 만들어 달라더니 잘 됐지? 앞으로 니가 오빠 노릇 톡톡히 해야겠다. 불쌍한 아이니까 잘 데리고 놀아야 해.
공부하라매?
공부를 하루 종일 하냐? 주말에 집에 있을 때 같이 놀아주라는 거지.
아이가 어린애답지 않게 붙임성이 좋아. 눈칫밥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애 어른 같어.
그때가 시월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었지 싶다. 주말인데도 공무원 누나에게 붙잡혀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과외 시간은 보통 밤이었다. 누나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내 방에 와서 한두 시간 같이 공부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밑바닥을 기는 수학을 좀 끌어올려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누나는 황금 같은 주말 오전을 내게 할애한 것이라고 했다. 그날은 누나 방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나는 누나의 냄새가 좋았다. 화장을 하지 않지만 누나 방에 가면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내 방은 아무리 닦아도 꼼꼼한 구린내가 나는데. 누나 방에는 꽃향기가 났다. 누나는 세숫비누 냄새라고 했다. 누나에게서 여자 냄새를 처음 맡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이유도 모르고 사타구니가 뻣뻣해지는 것 때문에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기도 하는.
누나는 연애도 안 해? 주말인데. 집에도 안 가?
나의 까탈에 누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래, 너 때문에 누나 데이트도 포기했다. 각오해. 이번에 성적 안 오르면 나도 너 포기할 거다. 너의 어머니께 면목이 없잖아. 그러니까 우리 열심히 해 보자.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귀는 호박 샘 아래에 있는 빨래터에 가서 꽂혔다. 동네 아주머니들 몇이 둘러앉아 빨래를 하는 모양이었다. 탁 탁 탁 방망이 질 소리와 빨래 헹구는 물소리 장단도 예술이지만 그 사이 여자들 뚝배기 깨지는 소리와 소곤소곤 귀엣말 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가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대충 끼어 맞추어 보면 이런 내용이었다. 상금이를 두고 가면서 할머니가 한 말이라 했다.
철없는 저 어린것 좀 잘 봐주이소. 내가 인자 키울 심이 없어서 지 애비한테 매끼고 가는 기라예. 우리 큰 아가 저 아만 데리다 주고 오모 저거랑 같이 살자 캐서 늙은 기 자슥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우리 상금이, 불쌍한 우리 상금이. 이람서 우는데. 내가 딱 억장이 무너지더라. 새댁이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거는 아이라 카데.
그 집이 요새 며칠 조용해서 밤에 잠을 잘 잔다 싶더마 다 이유가 있었네.
하모, 새댁 남편이 요새는 술을 입에 안 댄다쿠네. 새댁이는 그 아가 이뻐 죽것다 카고. 참 오랜만에 새댁이가 웃는 소리를 듣는다 카이. 그 아가 아부지, 옴마 함서 까르르 까르르 웃는데. 듣기만 해도 좋더라.
또 이야기가 있다. 새댁이가 입덧을 하는 기라. 새댁이가 올매나 좋아하는지. 그 아가 복덩이라서 저거한테 복을 싸 온 기라카네. 애 안 들어선다고 그리 애를 태우더마. 그 아가 오고 올매 안 있어 들어선 기라 안 하나. 삼시랑이 시샘을 하모 애를 점지 한다카더이 그 말이 참말인 갑더라.
우야든둥 좋은 일이제.
문간방에도 단풍이 곱게 들기 시작한 것이다. 단풍잎이 다 떨어지면 또 삭막한 겨울이 오겠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단풍이 곱게 들수록 사람들 마음이 더 행복감으로 출렁인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