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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기차를 기다리는 소금 꽃

<단편소설. 끝>

by 박래여

그러나 운명은 남자 편이었다. 그녀가 섬을 떠나려던 날 태풍 경보가 내렸다. 이삼일 작정하고 온 여행이 일주일이 되고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었다. 하루에 한 번 밖에 다니지 않는 통통배를 매번 놓쳤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허락하지 않는 한 섬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가 떠나고자 할 때마다 선장이 가로막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조금 더 기다리면 물밑으로 기차가 다니게 된다고 그때 물밑 기차 타고 서울 가면 되지 않느냐고. 친정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연락이라도 드리고 싶다면 대신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답장 없는 편지를 기다리며 그녀는 선장의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선장을 믿었다. 물밑 기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꼭 보고 싶었고, 그 기차에 처음 오르는 영광을 누리고 싶었다. 그 사이 혜숙은 결혼했다. 섬에서 하는 전통 결혼식은 떠들썩하고 신바람 났다. 그녀의 뱃속에도 선장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물밑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선장과 그녀 사이에는 아이가 둘이나 생겼고 그녀는 뭍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섬 아낙이 되었다. 선장을 따라 바다에 나갔다. 그물에 딸려 올라오는 펄떡거리는 생선의 힘찬 생동감에 반해 친정도 가족도 모두 잊고 살았다. 가끔 친정에 다녀오고 싶다고 해도 섬으로 온 여자가 그렇게 떠나면 돌아오지 않더라고 다음에 물밑 기차 오면 같이 가자고 선장은 끝내 뭍으로 가고자 하는 그녀의 길을 막았다.

드디어 하이도에서 대통령이 나왔다. 그녀는 선장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믿었다. 물밑 기차가 다니게 될 것이라 믿었다. 대통령이 나온 섬에는 물밑 기차 대신 쾌속정 한 대가 섬과 뭍을 이어 주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었다. 아니, 걱정되었다. 선장을 졸랐다. 물밑 기차를 기다리다가는 파파할미 되겠다고 배 타고 한 번만 친정에 다녀오자고.

선장은 그녀에게 셋째 아이만 낳으면 같이 다녀오자고 했다. 그 셋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녀는 섬을 벗어나 강원도 친정에 갈 수 있었다. 십수 년 만에 선장과 아이 셋을 데리고 친정에 갔더니 대문을 열고 나오던 친정어머니가 ‘이게 꿈이냐 생시냐’하며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가족 모두 그녀가 죽은 줄 알았다. 아버지는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실종 신고를 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딸을 잃어버리고 한숨과 술로 세월을 보내던 아버지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울었다. 저승에 가서 아버지를 무슨 낯으로 뵐 수 있겠느냐며 펑펑 울었다. 선장은 그녀를 꼭 껴안았다.

“내가 대신 벌 받을 게.”

“당신이 왜? 당신 좋아서 못 떠난 내가 벌을 받아야지”

아직도 두 사람은 신혼 같았다. 나는 그녀가 눈물을 닦고 웃자 그녀에게 물었다.

“아직도 물밑 기차를 기다리나요?”

“그럼요. 틀림없이 물밑으로 기차가 다닐 겁니다. 이 작은 섬에서 대통령이 나왔는데.”

선장은 먼 눈 보기를 했다. 나도 믿었다. 물밑 기차는 다닐 것이다. 그녀의 바람대로.

혜숙이네 아이들과 선장 네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잘 놀았다. 어른은 어른끼리 몰려다녔다. 혜숙의 남편은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나와 별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가 있는 동안 자신의 일을 제치고 아침이면 갯벌에 나갈 차비를 하고 기다렸다. 갯벌에 나가 세발 낙지를 잡고, 조개도 캤다. 1톤 트럭에 우리 가족을 싣고 섬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녔다. 저녁이면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는 부둣가로, 해변으로 몰려가 단란주점이나 노래방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발을 비비다 오곤 했다. 그 섬에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노래방, 술집, 음식점 등등. 혜숙의 남편은 참 자상하고 가정적인 사람 같았다. 말은 없지만 마음 씀이 참 따뜻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연인이었단다. 두 집 어른들끼리 사돈지간을 맺어 놨었다니.

그날, 선장 부부는 바다로 일을 나가고, 혜숙은 두 아이를 데리고 목포에 볼일이 있어 나가고 혜숙의 남편만 우리와 동행이었다. 한 가족 같았다.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 삼 칸 초옥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초가집을 생각나게 했다. 갓 심은 잔디가 아직 터를 다지지 못해 썰렁하긴 해도, 사랑채도 미완성이었지만 대통령 생가는 아늑한 기운과 따스함이 스민 나지막한 구릉 아래 아늑했다. 그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가 우물을 바라보며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읊었다. 그가 따라 읊었다. 시를 외우는 남자가 신기해서 가만히 바라봤다.

우리는 대통령 생가를 나와 염전으로 갔다. 염전체험은 아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무자위에 올라 물을 퍼내는 과정을 자상하게 가르쳐주고 직접 체험하게 해 주고 염전 창고에 들어가 산더미처럼 쌓인 소금을 퍼 올리는 시범도 보여 주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염전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참 자상한 남자였다. 가끔 그의 눈빛이 선창가에 서서 나를 바라보던 강렬한 첫 눈빛으로 돌아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하이도, 그곳에서 나는 나를 다시 봤다.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려가는 그들 두 부부를 보며 산골 생활에 진력을 내고 있는 나를 봤다. 한 때 내게도 꿈이 있었다. 거창하지 않았다. 전원에 살며 작가가 되는 꿈이었다. 산과 나무와, 풀과 꽃이 좋아서 온종일 휘파람을 불며 산야를 쏘다니던 때도 있었다. 전원주택을 지어 사철 꽃이 지지 않는 꽃밭을 가꾸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모습을 그렸던 적도 있었다. 현실은 저 멀리 떠나 있고, 환상만 가득한 산중 생활의 행복만 오롯했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세월에 퇴색해 버린 내 꿈은 피곤에 지치고, 푸름에 지쳐 가능하면 떨쳐버리고 떠나고 싶었다. 그런 나를 그들은 다시 보게 했다. 나는 물밑 기차를 기다리며 사십대로 접어든 이 연주, 그녀의 눈빛에서 내가 잃어버린 꿈을 주웠고, 까맣게 탔지만 눈빛이 싱싱한 선장의 강인한 팔뚝에서 힘을 느꼈다. 준이 아빠의 자상한 배려에 따뜻한 인정을 느꼈고, 혜숙의 활달함에 생의 활기를 배웠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사흘의 달콤한 섬 생활을 끝내고 귀로에 선 전 날 밤, 어른 다섯 명은 헤어지기 아쉽다며 노래방에 가서 마지막 밤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도 트럭에 타지 않고 들길을 걸었다. 휘파람을 불고, 고성방가를 해도 거침없이 퍼져 바다로 빠지던 그 밤, 그가 슬그머니 봉투 하나를 내 손에 잡혀주었다. 나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다음 날 아침, 봉투를 열어보니 배를 예약한 표 석장이 들어 있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그는 별로 말이 없지만 표정만으로도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는 진지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한다. 어떻게 변했을까. 혜숙과 다정하게 늙어가겠지. 선장과 그녀도 아름답게 늙어가겠지.

지금도 나는 그들 두 부부 덕에 얻은 아름다운 추억 하나 깊이 새기며 산다. 산촌 아낙으로서는 평생 한 번도 타 볼 수 없는 통통배를 타고 온종일 바다에 나가 어부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고, 바다에서 나는 진기한 먹을거리에 현혹되기도 했고, 미역만 먹고 자라는 전복과 김 양식장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소금 꽃이 하얗게 핀 염전에 나가 염 밭 일구는 수레를 타기도 하고, 소금 산을 보기도 했다. 맛 좋은 천일염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산촌에 사는 사람의 식탁에 오르는 것이 주로 채소류 듯이 바다에 사는 사람의 식탁에는 해산물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선장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고 갔을 때 그녀가 끓여주는 가오리 보리 잎 된장국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본 독특한 된장국이었다. 어떤 맛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우리가 떠나는 날, 두 남자와 두 여자는 뱃전까지 따라 나왔다. 그녀는 네모반듯한 아이스박스를 뱃전에 올려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이것 들고 가서 먹어 봐요. 어제 잡은 건데. 자잘한 것은 살려주는데 일부러 가져왔어요. 싱싱해서 횟감으로 좋아요.”

“물밑 기차 오면 타고 산골 우리 집에도 오세요. 네 분이 꼭요. 고마웠어요.”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역까지 마중 나온 남편에게 선물 상자를 안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열었다. 얼음 위에 누운 가오리 옆에 작은 상자 하나, 그 상자를 뜯었을 때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다섯 마리의 무지갯빛이 나는 손바닥만 한 자연산 전복이 있었다. 그 옆에 얌전하게 접힌 쪽지를 폈다. <바위섬에서 직접 잡은 자연산 전복. 혜숙에겐 비밀로 해 주세요. 명수> 그의 이름이 명수란 것을 처음 알았다. 남편과 나는 고마워서 웃고, 그의 속내를 알 것 같아 더 환하게 웃었다. 왈가닥에 불뚝성이 많은 혜숙, 남편을 쥐 잡돌이 하듯 몰아대지만 천성이 밝고 부지런한 친구, 자신의 남편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척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였었다. 혜숙이가 알면 샘나서 여러 날 까탈을 부릴 것은 자명한 일, 비밀로 부쳤던 이야기를 이제야 한다.

그때, 남편은 동네 선후배를 몽땅 불러 가오리 회 잔치를 했었다. 자연산 전복 맛도 보였다. 지금도 시장에서 가오리를 볼 때나, 기차를 탈 때나, 전복을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을 기억한다. 지금은 소식이 끊어져버린 그들이지만 내 기억 속에는 영원하다. 그들이 기억날 때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는다. 잘 살겠지. 잘 살아야 해. 물밑 기차를 기다리며 가난한 어부의 아내로 아름답게 늙어가는 그녀와 선장님, 혜숙과 명수 씨, 언젠가 꼭 한 번 더 가야지. 벼르기만 하다가 강산이 변하고 또 변해도 아직 못 갔다. 더 늙기 전에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들 덕에 하이도란 섬은 늘 내게 아름답고 순결한 하얀 소금 꽃이 핀 섬으로 기억한다. 아직 그녀는 거기 있을까. 물밑 기차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연주는 책을 덮었다. 그제야 책표지 안쪽에 실린 작가의 얼굴이 기억났다. 귀여운 여인을. 그녀에게는 뭔가 있었다. 묘한 매력을 풍기는 여자였다. 선장도 혜숙이 남편도 그녀에게 끌렸었다. 연주는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선장이 얄미워 옆구리를 얼마나 꼬집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전혀 두 남자를 의식하지 않았다. 무심했다. 그 무심함이 더 매력이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두 남자가 벌인 작태를 그녀는 알까. 선장은 여자를 배에 태우면 재수 옴 붙는다는 미신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아내 외엔 누구도 선장의 통통배를 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와 두 아이를 초대한 것이다. 새벽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해 질 녘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배에서 온종일 고기를 잡으면서도 틈새마다 두 아이와 그녀를 보살폈다. 그녀가 춥다니까 자신의 외투를 벗어 입혀 주고, 아이들이 배고프다니까 그물에 잡혀 올라온 귀한 세발낙지도 미련 없이 썰어 내주고, 온갖 잔챙이를 넣어 라면을 끓여 주기도 했다. 평소엔 그 모든 것을 연주가 했었다. 눈에 쌍심지가 돋았지만 연주는 내색하지 않았다. 낯선 여자의 향기에 무심하다면 그것은 남자도 아니지.

문제는 혜숙이 남편이었다. 그녀가 두 아이랑 떠난 뒤로 사는 낙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늘 부둣가를 헤매고 술에 절어 들어왔다. 띄엄띄엄하던 말문조차 닫아버렸다. 혜숙은 복장이 터져 죽겠다고 가슴을 쳤다. 말을 해야 해결책이 나오지. 저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원래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녀가 다녀간 후로 유독 더 그랬다.

“아이고 글씨, 집에 오마 딱 한 마디 한당께. ‘우체부 왔당가?’ 우체부는 말라 기다린다요? 하면 금세 입술에 본드를 착 붙여삔당게. 참말로 내가 몬 살어. 사람이 어째 저라는지 모르것당게.”

“어디서 편지 올 데가 있었겠지.”

“편지 쓰지도 않는 사람이 올 데가 어데 있간디. 근데 말이여. 내 친구 있잖어. 저 번에 댕겨 갔던?”

“근디?”

“그 친구 편지 왔다니께 되게 좋아하더라고. 너거도 편지 받았지야? 고맙다는 안부 편진디. 명수 씨헌티 무지무지 고맙다고라.”

“그려서?

“또 놀러 오라 허라고 그러더마. 나가 열 엄청 받았지야.”

“그려서?”

“눈꼴 시서 못 보것더마. 너머 유부녀 꼬실 일 있소? 함서 괌을 좀 질렀제.”

“그라고는?”

“그 뒤로 암 말 없다가 그 양반이 그리 간기라.”

혜숙은 화가 나면 표준어는 사라지고 전라도 사투리가 표준어와 섞여 튀어나온다. 열받았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열을 받아 제 가슴을 콩콩 쳐 댔는데. 어느 날 명수 씨가 조용히 갔다. 하이도 섬 북쪽에 있는 바위섬에서 명수 씨의 익사체가 발견되었다. 그 섬은 섬이라기보다 바윗덩이가 바다에 턱 놓인 형국이다. 물 위에 솟은 바위벽에는 신기하게 늙은 해송 한 그루가 자랐다. 사체는 자연산 전복을 따러 갔던 동네 해녀 할머니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그 바위섬은 하이도 근처에서 유일하게 자연산 전복이 나는 곳이었다. 전체가 검은 바위로 된 섬, 바닷물은 맑고 깊었으며 물속에 소용돌이가 치는 곳이라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바다 밑의 지형을 잘 아는 해녀나 수영을 잘하는 뱃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선장과 명수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김 명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

연주는 책과 호미를 챙겨 느릿느릿 언덕에서 걸어 나왔다. 멀리 염전에 가둔 물빛이 은빛으로 빛났다. 무심히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기도 하고, 꽃샘추위에 다리 밑의 거지가 얼어 죽기도 하는 세상이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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