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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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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l 25. 2023

 건조기와 옷 한 벌

 건조기와 옷 한 벌    


 

 농부는 기어이 헌 건조기를 싣고 왔다. 나는 아무 말 안했다. 장마철에 고추말리고 가을에 감 말랭이 만들 때 잘 활용하면 본전은 빼겠지. 그 집 아낙은 나랑 갑장이다. 시집을 빨리 간 갑장은 손자손녀가 중. 고등학생이다. 아저씨도 참 부지런한 농부였다. 농사도 과학적으로 아주 잘 지었다. 고추모종을 멋지게 키워 분양을 했고,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안에 토마토 농사도 지었다. 나락농사도 많았다. 헌 건조기에 새 건조기도 갖추고 나락 말리는 기계도 갖추었다. 지난해 갑자기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칠십 중반이었다. 알부자 소릴 듣던 사람이다. 


 올봄에 갑장 혼자 고추모종을 이식하는 것을 봤다. 마음이 아팠다. 아저씨 살아계실 때는 아저씨가 다 했었다. 농부처럼 빈틈없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돌아가시기 사나흘 전에 농부랑 통화를 했었다. 대학병원에 입원중이셨는데 코로나로 면회가 안 됐었다. ‘이래 일찍 갈 줄 알았으면 아등바등 안 살았을 텐데. 자네는 잘 사는 것 같아.’ 하시더란다. 갑장은 모든 바깥처리 다 해 주던 아저씨가 없으니 모든 게 힘들다고 푸념한다.


 갑장은 헌 건조기를 그냥 가져가라 했다. 건조기를 운전을 해 보니 고장 났다. 건조기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부품 갈고 수리비만 기십 만 원이란다. 우리가 수리해서 쓰기로 하고 가져왔다. 갑장에겐 고사리나 단감으로 보상을 해야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고받는 것이 인정이다. 갑장이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에 내 또래에 남편 앞세운 아낙이 여러 명이다. ‘어쩌겠어. 어떤 때는 허전한데 산 사람은 살게 되더라.’ 그 말이 왜 아프게 들릴까. 외로움의 반대말은 없다지만 안 외로움이 반대말이라고 우스개를 하는 지인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미혼으로 살든 기혼으로 살든 혼자도 외롭고 둘도 외롭지만 노인이 될수록 외로움은 더 짙어진다. 노인일 때 혼자보다 둘이 살면 덜 외롭지 않을까.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기 때문이리라. 병원 가는 농부를 따라 갔다가 읍내 옷가게 갑장을 만났다. 옷을 살 생각도 없었는데. ‘고사리 가져와. 팔아줄게.’한다. ‘고사리는 남 줬는걸.’했지만 고마웠다. 헐렁헐렁한 만 원짜리 윗도리와 바지를 골랐다. 면으로 된 옷이라 집에서 입으면 편하겠다. 시장 상표면 어떻고 백화점 상표면 어떤가. 입어서 편하고 빨래하기 좋으면 장땡이지. 겉치레를 벗어버리고 살면 낡은 허드레옷일망정 품위 있게 보이지 않을까. 


 "옷 값 참 싸더라. 2만 원 투자하니 몇 년은 편하게 입겠다. 어때?"     

 새 옷을 걸치고 폼을 잡자 농부는 빙그레 웃는다. 며칠 전 얻은 헌 여름옷도 있고, 제주 선생님이 보낸 멋진 여름옷도 있고 스님이 준 옷도 있고 오늘 한 벌 구입했으니 올 여름 카멜레온처럼 자주 옷을 바꿔 입어도 되겠다. 여름옷은 시원한 면이나 마 종류가 시원해서 좋다. 몸에 붙지도 않고 땀 흡수도 좋다. 시장 옷도 잘 고르면 그런 재질의 옷을 고를 수 있다. 


 건조기를 생각하면서 고추밭을 본다. 주렁주렁 달린 고추가 빨갛게 익기를 은근히 기다린다. 장마가 길어지면 고추 말리기 힘들 것 같아 걱정했는데 한 방에 해결 됐다. 헌 건조기 부품을 인터넷으로 구입해 농부가 조립했다. 부품 값도 생각보다 저렴했고, 수리비가 안 들어갔으니 돈 굳었다. 건조기는 쌩쌩 잘 돌아간다. 덕분에 앉은뱅이책상 만들어 딸 생일 선물로 줄 수 있게 됐다. 나는 갑장에게 뭘 갖다 줄까. 머리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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